🍓슬픔을 '기억'하는 일

Season 4 🌊🏄‍♀️ Vol 33. 2024.12.06. ~ 2024.12.12.

총칼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
동덕여대의 평화를 바라는 교수들의 소리
다시 바라는 <서울의 봄>

총칼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지금이 정녕 2024년이 맞는지,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게 맞는지, 끊임없이 곱씹어보게 되는 요 며칠이었습니다.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입주자 여러분도 충격이 크셨죠? 🤯

경향신문 편집국 역시 긴박하게 돌아갔습니다. 대통령이 밤 10시 20분쯤 계엄령을 선포한 뒤 30여분 만인 11시, 계엄사령부가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내용의 포고령 1호를 발표했습니다. 신문 발행이 가능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경향신문은 비상계엄 선포가 반헌법적이라고 판단하고 호외를 냈습니다. 📰

국회에서 4일 오전 1시 무렵 빠르게 계엄 해제 결의안을 가결했지만, 여전히 모든 상황이 불확실합니다. 야당들은 군을 동원해 국회 기능을 정지시키려 한 대통령의 행위가 '내란'에 준한다고 보고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요.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퇴진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으로, 여의도로, 용산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역사 책에서나 나온 계엄 사태를 내가 직접 겪다니.'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저는 무엇보다, 44년 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던 여성들이 생각났습니다. 플랫팀이 지난 5월 이후 쭉 보도하고 있는 '우리는 서로의 증언자' 기획의 주인공들 말이죠. 💌 계엄군 여럿에게 강간 피해를 당한 피해자는 아직도 계엄군이 입고 있던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그때 맡았던 술 냄새, 땀냄새와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구토한다고 했습니다.

3일 밤 무장 군인들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진입했을 때, 총을 휘두르며 유리창을 깨부쉈을 때, 경찰이 시민들을 막아섰을 때, 지금 이들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돌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 지난해 12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당시 성폭력 피해 16건에 대해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는데요. 당시 조사위원 9명 중 국민의힘 추천 위원인 이종협·이동욱·차기환 위원은 약 100페이지에 달하는 소수의견을 작성했습니다.

이들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추정만으로 대한민국 국군을 성폭력 가해자로 낙인찍히게 하는 보고서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군인들이 저지른 국가폭력을 반성하거나 사죄하지 않고, 축소하는 데 급급했죠. "이런 인식을 가진 자들이 '1980년 광주'를 역사로 남기지 못하고, '2024년 계엄'으로 불러들인 것은 아닐까." 임아영 플랫팀장의 지적입니다.

저는 국회에 진입한 군인 개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조사위는 앞서 2021년, 1980년 당시 제7공수여단에 복무한 대대본부 및 33대대 소속 중 199명에게 진술조사 참여를 요청했는데요. "잘잘못을 묻고자 하는 게 아니라 진상규명에 도움이 될 경험이나 증언을 듣고 싶다"는 취지였습니다. 29명이 진술에 응했는데, 이들이 쓴 편지 일부는 이랬습니다.

"회상해보면 과거 정치군인들의 욕망에 애꿎은 부하 장병들의 희생만 강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양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40년이 지났지만 5월이 오면 항상 마음 한구석이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언젠가는 광주 5·18 묘역에 가서 진심으로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에 계엄군으로 동원된 젊은 장병들을 보며 이 편지가 떠올랐습니다. 5·18 당시 성폭력 피해를 44년 만에 증언한 이남순 선생님은 '계엄 호외'를 읽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계엄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말이어요. 호외를 읽고 재밌었어요. 대통령이 국민에게 깜짝 선물을 주려고 했나봐요." 이 반어법에서 느낀 건 한국 사회가 그래도 1980년보다는 조금 더 나아졌다는, 조금은 바뀌었다는 실낱같은 기대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총칼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입니다. 잘못된 인식이라고, 반헌법적이고 불합리한 주장이라고 저항하고 맞서는 겁니다. 🕯️⚔️ 이 사태를 모의하고 부대 출동을 명령한 책임자들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합니다. 군인들이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포고령에 따라 국회 결의를 막으려 했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이들을 희생양 삼으려 했던 수뇌부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할 것입니다. 1980년과 2024년은 그렇게 달라져야 합니다.

사진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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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예슬 기자

🗞️ 동덕여대의 평화를 바라는 교수들의 소리

📑 동덕여대에서 벌어진 '공학 전환 반대 시위' 이후 학교 측이 학생들을 고소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이에 교수들도 침묵을 깨고 나섰습니다. 지난 4일 캠퍼스에 붙은 성명서에서 교수들은 "학생에 대한 형사 소송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요구 사항은 네가지입니다. 학교의 형사소송 즉각 철회, 정상적인 학사가 운영되지 못할 경우의 대책 수립, 학생들의 회복 방안 마련, 교수 목소리 경청 등입니다. 🎓

📑 교수들은 학생들의 과격한 표현 방식은 아쉽지만, "제자를 포기하는 스승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학생들의 분노가 정당하다. 학교는 형식적으로만 의견을 수렴하거나, 학생 의사를 반영하지 않은 적도 많아서 공학 전환 역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리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어요.

📑 이 상황에서 동덕여대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광주여대의 사례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광주여대에서도 최근 남녀 공학 전환 논의가 벌어지며 학생들이 시위에 나섰는데요. 학교 측이 적극적인 대화와 소통을 바탕으로 학생들과 신뢰를 쌓고 사태를 일단락했습니다. 총학생회장단과 시위 참여 학생들이 포함된 면담을 3시간 가까이 진행한 학교 측은 "공학 전환을 추진하지 않겠다.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고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 '폐경'은 죄가 없다

🌹 지난 11월 4일, 한 보드게임에서 캐릭터를 소개하는 문구에 '폐경' 대신 '완경'이라는 단어가 쓰여 화제가 됐죠. 일부 남성 유저들이 "'완경'은 페미니즘 단어"라며 불만을 제기했는데요. 게임을 수입해 번역한 코리아보드게임즈가 이 주장을 일축하며 내놓은 입장문이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회사는 "폐경을 겪은 당사자들은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을 겪는다고 하는데, 완경은 삶의 단계 하나를 완료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조금이나마 위로받는다는 느낌이다"라며 "이 표현을 거두지 않는 것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여성들에 대한 예의"라고 했습니다.

🌹 이에 대해 칼럼니스트 위근우가 쓴 글은 과연 언어의 의미란 무엇인지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그는 진짜 중요한 건 폐경이냐, 완경이냐가 아니라 그 단어가 쓰이는 맥락이라고 했습니다. '폐경' 자체는 현상에 대한 건조한 사실 진술인데, 미디어 등에서 오랫동안 '비가역적 상실'이라는 의미까지 담기며 말이 오염됐다는 겁니다. 이는 "여성 신체의 변화를 남성 중심적 사회 안에서 특정한 편견을 담아 재현"했다는 점에서 문제입니다. 다만 '완경'을 대신 쓴다고 남성의 몸을 정상 신체로 전제하고 여성의 몸을 타자화한 우리의 언어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중요한 건 언어가 사용되는 지평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요.

✋ 잠깐❗ 이 기사는 어때요❓ 🤫💌

📍 플랫팀 기자들의 연재, 다들 잘 읽고 계세요? <'얼빠' 아니고 '야빠'인데요⚾>는 30대 여성 기자인 제가 야구판의 남성중심적 문화를 바라보며 느낀 점을 담은 글입니다. 👉여기에서 읽어주세요.

📍 아이돌 그룹을 덕질하는 이아름 기자는 엔터 산업에서 여성팬을 바라보는 편견에 대해 쓰고 있어요. <'아이돌 덕질', 제 맘이잖아요?🥰>는 👉여기에서 읽어주세요.

다시 바라는 <서울의 봄>

💬 이번주 내내,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을 다시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셨을 겁니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대박'을 쳤죠. 저는 개인적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허구를 섞은 '팩션(fact+fiction)' 장르를 싫어하는 편인데요. 이 영화만큼은 극장에서 흥미진진하게 즐겼던 기억이 납니다.

💬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김성수 감독의 전작인 <아수라>를 보고 팬(?)이 된 배경도 있습니다만.. 😅 결국 '선택과 집중'에 충실한 콘텐츠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 영화가 다루는 것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 세력의 정권 탈취 과정인데요. 그간 신군부를 다룬 콘텐츠는 1979년 12월부터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의 전국 확대까지 긴 기간을 아우르는 게 많았습니다. 혹은 5·18 민주화운동을 조명하거나요.

💬 하지만 <서울의 봄>은 12월 12일부터 13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단 9시간을 다룹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이후 힘의 공백, 김종필과 대구·경북(TK) 세력 간 대립 등의 역학관계도 고려할 필요가 없죠. 대립 구도가 단순해지면서 사전 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됐습니다.

💬 이런 콘텐츠의 힘은 특히 당대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도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전국적 흥행으로 이어졌습니다. 🎫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서울의 봄>을 보면 독재 청산의 긴 이야기가 아직 제대로 된 적도 없음을 느끼게 된다"며 "이야기를 통해 단죄되지 않은 악이 받았어야 할 마땅한 벌이 현재화된다"고 짚었습니다.

💬 이와 함께 계엄과 관련된 다른 영화들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1998년 개봉한 미국 영화 <비상 계엄>은 뉴욕이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의 연쇄 테러 위협을 받자 정부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병력을 투입한 상황을 다뤘습니다. 계엄사령관 윌리엄 데보로(브루스 윌리스)가 통제하는 상황에서 FBI 수사관 앤서니 허바드(덴젤 워싱턴)가 진실을 추적하는 내용입니다. 우루과이 극좌 단체에 의해 미국인이 납치 살해된 실제 사건을 다룬 1972년작 영화 <계엄령>도 있습니다. 미국인이 살해되기까지 일주일간을 추적하며 군사정권의 정치 탄압과 노조 파괴를 비판하고 미국이 배후 조종했다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 이런 영화가 다시금 조명되는 것도, 현 상황이 실제로 큰 불안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겠죠.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억울하게 희생되는 목숨이 없게, 영화가 영화로 남을 수 있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끝까지 저항하고 맞서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