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이라는 덫
2026.11.02 | Vol. 213

안녕하세요, 에디터 J입니다. 어느새 11월입니다. 외투 깃을 여미며 출근하는 아침, 달력도 이제 두 장 남았네요. 요즘 저는 거리를 점령한 은행 열매 사이를 조심조심 피하고, 낙엽은 사뿐사뿐 밟으며 마지막 가을을 즐기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겨울이 성큼 찾아오겠지요. 구독자님도 그전에, 짧게 머물다 갈 늦가을 풍경을 잠시 멈춰 서서 눈에 담아 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오늘의 한 장, 빠르게 열어볼까요? 💌

‘확신’이라는 덫

제가 전투경찰로 복무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병영 내 온갖 부조리를 겪었던 저는 내무 생활 개혁에 대한 의지가 충만했습니다. '내가 고참이 되면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리라.' 의욕만 앞선 젊은이들이 흔히 그러하듯, 분대장 완장을 찬 저는 일련의 개혁을 밀어붙이기 시작했지요. 각자의 속옷은 각자 빨기, 근무 시간은 공평하게, 불합리한 관행은 살펴보고 없애기. 이 변화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옳은 일이니 당연히 좋은 결과가 따라올 거라 믿었거든요. 하지만 제가 꿈꾸던 이상적인 내무반은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후임들은 갑자기 주어진 자유와 자율에 당황했고, 기강은 삽시간에 무너졌습니다. 부조리를 방치하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지만, 제가 바꿔 놓은 현실 역시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저의 확신은 왜 실패했을까요? 

[…] 그러나 제멋대로 살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삶이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타인은 기쁨의 샘일 때도 있지만 우리 삶을 제한하는 질곡일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타인을 조종하려는 충동이 우리 속에 스멀스멀 자리 잡는다. 자기 의사를 타인에게 부과하여 그가 내 뜻을 수행하는 것을 볼 때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권력에의 의지이다. 권력에의 의지는 분수를 모르기에 언제나 한계를 넘는다. 성경은 이러한 과도함 혹은 오만함이 곧 죄라 말한다. 죄는 남을 해칠 뿐만 아니라 자기도 파괴한다.


서슴없음과 당당함은 자신을 강자로 여기는 이들의 한결같은 태도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기심과 결합되면 몰염치함으로 변질된다. 몰염치는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는 우리가 사랑 가운데 서로를 대하기 위하여 필요한 태도가 ‘머뭇거림’이라고 말한다. 가속화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머뭇거림이 답답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머뭇거림 속에는 함부로 말하거나, 판단하거나, 응대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 담겨 있다. 지나칠 정도로 단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 나름의 확신 때문이겠지만 그들은 자기도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다. 종교인들의 언어가 특히 그러하다. 확신은 고단한 생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기둥이지만, 그 확신이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폐쇄성에 갇힐 때는 아집에 불과하다.


김기석, 『당신의 친구는 안녕한가』  

오늘 한 장의 저자 김기석 목사는 확신이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순간 아집이 된다고 경고하며, 그 해결책으로 20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신비주의 사상가인 시몬느 베이유의 '머뭇거림'을 소개합니다. 흔히 우리가 바라는 덕목의 목록에는 좀처럼 오르지 못할 것 같은 이 태도가, 사실은 사랑 가운데 서로를 대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돌아보면 20대의 저는 동기가 순수하고 옳으니 결과도 옳으리라는 근거 없는 낙관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말도 있죠.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분대장 완장을 차고 밀어붙인 개혁도 결국 저자가 말한 '자기 의사를 타인에게 부과'하려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상대의 마음과 속도를 헤아리지 않고 위에서 내려준 자유는, 후임들에게 자유라기보다 혼란이었을 테니까요. 상대에 대한 이해 없이 제 확신만으로 설계한 '천국'은 결국 허상이었습니다.


이는 믿음을 가진 우리가 특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기도 합니다. 저자도 종교인들의 언어가 유독 단정적이라고 꼬집지요. 우리는 종종 강한 확신이 곧 강한 믿음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래서 고통 중에 있는 이에게 "다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예요", "기도가 부족해서 그래요" 같은 말을 너무 쉽게 건네곤 합니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확신의 언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낼 수 없게 만드는 닫힌 문이 되기도 하지요. 위로한답시고 저 역시 그런 말을 쉽게 건넨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돌아보니 너무 많군요😭). 하나님을 향한 확신과 내 판단에 대한 확신은 엄연히 다른 것인데 말이죠.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고전 8:1~2).


그렇다면 머뭇거림은 일상에서 어떤 모습일까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단톡방에 누군가를 향한 판단의 말을 보태기 전에 잠깐 손을 멈추는 것,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메시지를 한 번 더 읽어 보는 것,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결론부터 내리고 싶을 때 한 박자 참고 끝까지 들어 보는 것. 그 짧은 멈춤 속에 저자가 말한 '함부로 말하거나, 판단하거나, 응대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 담겨 있습니다. 그때 내무반의 제게 필요했던 것도 옳다는 확신이 아니라, 그 옳음을 어떻게 이뤄 갈지 한 번 더 숙고하는 한 박자의 머뭇거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구독자님, 요즘 어떤 확신을 붙들고 계신가요? 혹시 그 확신이 누군가를 향한 단정의 언어가 되어 있지는 않나요? 이번 한 주는 말하기 전에, 판단하기 전에 한 번쯤 머뭇거려 보면 어떨까요? 그 짧은 머뭇거림이 상대를 숨 쉬게 하는 작은 여유가 되어 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단단하게, 이웃을 향한 말은 조금 더 천천히.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한 장에서 다시 만나요.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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