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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n Thompso

마음이 복잡할 때면 국어사전을 검색하곤 한다. 사전 속의 건조한 단어 해석이 마구 범람 하려는 슬픔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2023년에는 ‘실패’라는 단어의 뜻을 많이 찾았다.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이 실패일까 아닐까 하는 판단이 자주 필요했다. 실패는 명사로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이라는 뜻이다. 이 풀이에 따르면 내 365일은 거의 매일 실패로 수렴된다. 뜻한 대로 될 때가 하루도 없으니 나라는 사람 자체를 실패자라 명명해도 옳을지 모른다. 올해 대형 사고를 많이 쳤고, 수습 과정에서 소중한 돈과 시간, 에너지를 부지기수로 잃었다. 딱히 가진 것도 없는데 그나마 쥐고 있는 것마저 전부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스스로 초래한 불행 속에서 자신을 사랑하기 힘들었다. 사랑은 커녕 작가로서 갈고닦은 언어적 기술을 나를 욕하는 데 전부 쏟아부은 나날이었다.

그런데 반복하다 보니 실패에도 요령이 붙기 시작했다. 실패가 성공이 되는 마법적 능력이 생긴 건 아니었다. 다만 남의 판단이 끼어들기 전 가장 먼저 내 사건에 자의적 해석을 붙일수 있었다. 자의적 해석이란 별것 아니고, 실패를 인식한 후 나만의 기준으로 라벨링을 하는 작업이다. 점수를 매기거나 순위를 정하거나, 복구에 드는 비용을 산정하는 등 몇 가지 숫자를 이용하면 쉬웠다. 반복되는 실패들은 점점 일상성을 획득해 갔다. 모든 실패가 다른 실패들과 어울려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일이 돼갔다. 이제 실패가 벌어질 때마다 ‘또 뜻대로 되지 않았고 뭔가를 그르쳤구나’ 하고 생각한 후 그냥 살아간다.
Markus Spiske

요즘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당당하게 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주변인들이 털어놓는 고민이 귀찮아서가 아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실패를 근거로 스스로에게서 자격이나 권리를 박탈하는 습관부터 버릴 필요가 있다. “나 같은 건 밥 먹을 자격도 없어” “난 사람 대접받을 권리가 없어”는 과거의 내가 가장 재미있어하던 자기비하 표현이었다. 저런 말을 뱉으며 안도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모든 걸 내 잘못이라 말하는 순간 저항하고 다투고,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가 없어지니까. 그러나 모든 게 불편한 상황에서 마음만 편하다면 그거야말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실패는 죄가 아니다. 불쌍한 인간의 전유물도 아니다. 그러니 실패했다고 해서 불쌍한 인간을 자처할 이유도 없는 것이었다. 물론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실패를 축복으로 여길 순 없다. 그러나 세상 끝난 듯한 불행으로 인식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이제는 나의 실패들이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데이터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실패는 무엇이 필요했는가? 무엇을 시도했는가? 그리하여 무엇을 잃었는가? 같은 심도 있는 답변일 뿐이다. 실패에 내포된 정보와 행동 동선을 쫓아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다음 액션이 결정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아직 실패하지 않은 또 다른 방식들이 가장 상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실패에 집중하면서부터 성공에 대한 결벽적 갈망도 많이 줄었다. 예전에는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단숨에 거머쥐는 성공에서 희열을 느꼈는데, 이제는 이런저런 패배감 속에서 마침내 피어오르는 작은 성취감에 큰 가치를 둔다. 실패한 후 곧바로 비슷한 실패를 해도 후회는 없다. 반복되는 실패에서 읽어낼 수 있는 데이터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라는 사람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나 성향, 취향 같은 것들이랄까. 이제는 내 어쩔 수 없는 측면들을 누르기보다 충족시키려는 연습을 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안 돼” “하지 마” “참아” 같은 부정적 지시어 대신 “마음대로 하되 책임을 져라”라는 지침을 주는 식이다.

연말을 앞두고 한 해 동안의 크고 작은 실패를 돌아보며 어쨌든 저것들은 온전한 내 것이구나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실패에는 이상한 안정감이 있다. 성공하면 누구나 그 성공을 빼앗으려 들지만, 실패는 아무도 욕심내지 않는 것이다. 내 것 하나 없는 세상에 유일한 내 것이라면 역시나 실패를 너무 미워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런 우스갯소리를 해본다.


Writer 정지음
싫은 것들을 사랑하려고 글을 쓴다. 25세에 ADHD 진단을 받은 이후 〈젊은 ADHD의 슬픔〉으로 브런치북 대상을 수상했고,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오색 찬란 실패담>, 그리고 첫 소설 〈언러키 스타트업〉을 펴냈다.
- <엘르> 2023년, 11월호 발췌


드림 아카데미! 11개국에서 모인 18명의 소녀들_+보이스

음악으로 하나된 소녀들의 생애 첫 화보

K팝 아티스트가 되겠다는 꿈 하나를 안고 전 세계 12개 지역에서 6000:1의 경쟁률을 뚫고 모인 ‘더 데뷔: 드림아카데미’의 18명 소녀들. 피부색과 종교, 각기 다른 성장 배경과 언어를 뛰어넘어 감동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노래가 있다고 믿는 이들을 엘르가 만났습니다. 도전과 실패를 기꺼이 감수하는 소녀들의 한 마디.

“두 살 때부터 춤을 췄고 힐댄스를 가장 좋아한다. 처음 힐을 살 때 걱정이 많았지만 도전해 보고 싶었던 장르였기에 설렘과 기대를 안고 가게에 들어가 무작정 골랐던 기억이 난다” - 유아(일본) 


“매일이 도전이기 때문에 쉽게 길을 헤매거나, 스스로 누구인지 잊어버리기 쉽다. 늘 이성을 유지하고 현실 감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사마라(브라질)


“세상이 아무리 너희를 바꾸려 해도,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고 지키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이 성공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 마키(태국)

성장하고, 배우고, 울며, 많은 일을 겪었지만 이 모든 것을 겪은 후에 비로소 내 멋진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내가 됐고, 더 이상 꿈꾸는 일이 두렵지 않다” - 셀레스테(아르헨티나)


“네 살 무렵 라틴 댄스 대회에 출전했을 때 무대에서의 희열감을 처음 느꼈다! 1만 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춤췄던 <아메리카 갓 탤런트> 출연 때도. 무대에 계속 오르고 싶은 이유” - 다니엘라(미국)

때때로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수 있지만, 자신감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고 칭찬하자!” - 메이(일본)


“어떤 일이 생기면 자문한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머릿속에서 위로가 되는 조언을 해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고, 이를 통해 답을 얻는다” - 소피아(필리핀)


“미국에서 자란 유색 인종 소녀로서 항상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말을 들어왔다. 우상이라고 부를 만한 인도계 ‘팝스타’도 없었다. 고정관념에 속에서 코미디에 가까운 방식으로 콘텐츠에 묘사되기도 했는데, 우리 또한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 라라(미국)

“어릴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고, 꿈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자랐기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동남아시아 소녀들에게 영감이 되고, 세상에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외치고 싶다.” - 에즈렐라(호주)


나는 그저 내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고 싶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까지 말이다. 힘든 순간을 딛고 일어섰으니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노래하고 싶다” - 렉시(스웨덴)

“증오와 악행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전 세계 소녀들에게 꿈을 좇고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건 순수하고 가슴 벅찬 일이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자격이 있는지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기회가 됐으면 한다” - 칼리(미국)


“가나 출신인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춤추고 노래했다. 부모님이 이혼하신 이후에는 우리 자매를 홀로 키우는 어머니를 보며 진취적인 여성 리더를 꿈꾸게 됐다. 어디서 왔든, 인종이 무엇이든, 어떤 종교를 가졌든 당신은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음악을 통해 전하고 싶다” - 마논(스위스)


더 많은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 18인의 화보와 인터뷰는 엘르 11월호에서 만날 수 있어요💚

- <엘르> 2023년, 11월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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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작은 인간" 에세이가 특히나 좋았어요! 출산을 오래전에 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임신 기간 내 있었던 입덧과 출산 고통에 의연해지는 것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원래 제가 조그마한 아픔에도 못 견디는 타입의 사람인데 제왕절개를 하던 자연분만을 하든 간에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임신 기간 내 계속 들었어요. 호르몬의 영향인 것 같고 참 신기하다 싶어요.

- 고라니의 눈빛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벨리랑 콜라보 해주신 덕분에 엘르 보이스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벨리도 보고 사진 찍고 줄 서서 키링도 받고 너무 즐거운 대학 축제였어요. 뉴스레터를 구독하니까 이메일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작가의 마음이 글로 전해진 것 같았어요. 엘르보이스가 더 유명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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