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원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2019년 저자의 트위터를 통해서입니다. 저자 데이먼 크루코프스키는 대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3인조 밴드 갤럭시 500를 결성해 4년간 활동했고, 이후 베이시스트이자 파트너인 나오미 양과 듀오로 음악을 하며 두 차례 내한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2005년 내한 공연을 봤고 그보다 전에는 몇몇 밴드에서 갤럭시 500와 데이먼 & 나오미의 곡들을 커버하기도 했을 만큼 오래전부터 팬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책 출간 소식에 관심이 갔죠. 하지만 흥미를 끄는 부분은 더 있었습니다.
우선, 『다른 방식으로 듣기』(Ways of Hearing)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존 버거의 유명한 책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를 참조합니다. 버거의 책은 동명의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출발했고, 『듣기』는 저자가 진행한 팟캐스트의 책 버전이에요. 한국어판에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보기』 원서의 앞표지에는 본문의 첫머리가 실려 있습니다. 표지를 넘기면 보통의 책과 별로 다르지 않지만요. 『듣기』 역시 앞표지에서 글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표지를 넘기면 곧바로 이어서 읽을 수 있습니다.
표지에서부터 디자인이 범상치 않은 책이죠.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트위터에서 본문 이미지를 봤는데 팟캐스트, 즉 말의 톤과 속도를 반영한 조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디자이너는 프랙티스(Practise)의 제임스 고긴인데요, 제가 오래 함께 일한 잡지 『GRAPHIC』에서 많이 보던 이름이라 더욱 반가웠어요. 한국어판에서도 그 멋지고 흥미로운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마티의 조정은 디자이너가 세심한 눈과 손으로 원서를 거의 그대로 감쪽같이 옮겨놓아 페이지까지 똑같답니다. 저와 편집자들은 ‘이게 되나, 되는구나’ 하며 감탄했어요.
저에게 음악은 평생 제일의 관심사입니다. 그런데 음악 관련 책을 옮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친구들의 요청으로 음반 보도자료, 음악 다큐멘터리 자막 등을 번역한 적은 있지만요. 제가 출판사에 책을 제안해 번역한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정식으로 제안한 건 아니지만요. 책은 읽고 싶어서 가지고 있었는데 뒤늦게 여유가 생겼을 때 제안서를 써볼까 하던 차에 마티 사무실을 방문한 일이 있었고, 그때 이 책 얘기를 꺼냈다가 일이 성사됐어요.
그런 만큼 정말 재미있게 작업했습니다. ‘힘들었지만 재밌었다’는 옮긴이 후기는 아주 흔하지만 빈말이 조금은 섞인 경우가 많을 거예요. 또는 ‘재미가 없지는 않았지만 힘들었다’의 다른 표현일 거예요. 이 책은 힘들지 않았고 재미있기만 했습니다. 진심으로요. 내용도 흥미롭지만 초장부터 제가 또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그룹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가 등장하고, 익숙한 음악과 인물들이 중간중간 나오니 말 그대로 신나게 작업했죠. 크게 웃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면서요.
작업하면서 느낀 이 책의 중요한 미덕 중 하나는 따라가기 쉽고 지루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들으면서 이해하기 쉽도록 쓴 팟캐스트 대본을 책으로 옮긴 것이니까요. 그런 특성상 각 챕터의 주제에 대해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 점이 다소 아쉽기는 해요. 그런 특성과 관련해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미덕은, 아마도 모든 번역자들이 가장 싫어할 책의 구성 요소인 ‘감사의 말’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 대신 이례적이게도 팟캐스트 사운드 디자이너와 책 디자이너의 약력이 들어가 있어요.
작업은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했습니다. 말의 ‘음악적인’ 측면을 번역에 반영하려고 노력했어요. 먼저 어느 정도 들은 뒤 책을 보면서 번역하고, 한 챕터가 끝나면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번역한 원고를 눈으로 따라가며 점검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의 한국어판을 참조하는 이 책의 제목에서 ‘다른 방식’은 주로 과거에 우리가 음악을, 그리고 소리를 들었던 방식을 말합니다. 스트리밍과 노이즈캔슬링이 보편화된 지금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들었죠. 1990년대 말 인터넷과 mp3, 무엇보다 냅스터의 등장 이후 음악의 생산과 소비와 향유 방식은 급변했습니다. 이 책에는 라디오와 LP, CD,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었고 유선 집 전화기로 긴 통화를 했던 세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딱히 음악 팬이 아니어도요. 디지털 시대 이후 청취 환경의 변화를 몇 가지 주제를 통해 되짚고 과거를 불러내는 시도는 책의 마지막에 저자가 각 챕터를 요약하는 부분에서 ‘소음’이라는 키워드로 수렴됩니다. 소음에 귀를 열기, 그것이 바로 다른 방식으로 듣기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독자라면 삶의 여러 다른 영역으로 생각이 이어질 것 같아요. 기술과 자본주의의 결합으로 인한 변화는 세상 곳곳에서 대체로 같은 방향을 향해 흐르고, 비슷한 문제를 일으키는 듯합니다. 천천히 읽고 있는 정지돈의 『스페이스 (논)픽션』에서 어제 이런 문장을 만났습니다.
“문제는 키오스크로 대체되고 난 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간소화될 줄 알았던 주문은 메뉴 선택 사이에 끼워 넣은 마케팅 요소들로 복잡해졌고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1분이면 끝날 주문을 10분 동안 한다. 키오스크가 고장나거나 버퍼링이 있는 경우도 다반사다.”
모든 것이 엄청나게 편리해졌지만 엄청나게 피곤해졌다는 생각을 저는 일상에서 자주 합니다. 여러 의미에서요.
* 영어를 들을 수 있는 분은 책 뒤에 나와 있는 링크를 통해 팟캐스트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 언급되는 음악이 궁금한 분은 제가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참고하세요. 나오는 순서대로 모아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