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달의 반환점 6월입니다.

6월의 궁궐에서 온 편지
📬 6월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 추천 영화와 장소 : 영화 <모리의 정원>과 윤선도의 부용동 정원 

📸 제철 궁궐 : 종묘대제에 다녀왔습니다

🌿 궁궐을 걷는 시간 : 정동진에서 만나요!

📬 6월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궁궐을 걷는 시간’ 산책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한 때가 2020년 10월입니다. 시작할 때만 해도 모든 게 처음이었습니다. 수없이 다녀온 궁궐이었지만 산책을 안내하는 건 또 다른 일이었어요.


산책 동선을 짜기 위해 몇 번이고 답사를 가서 실제 코스를 걷다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굿즈와 팸플릿, 소박한 이벤트를 준비하면서도 이 프로젝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저도 몰랐어요. 날씨가 좋지 않아 산책이 취소될 때면 기운이 빠지기도 했습니다. 장대비 내리는 하늘을 원망스럽게 쳐다보기를 몇 차례. 꺾이지 않는 마음만큼 중요한 건 꺾여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거라고 누군가 말했던가요. 더위와 장마, 추위와 눈이 이어지는 여름과 겨울에도 산책을 ‘계속’하기 위해 올해는 박물관 산책 프로그램을 시작했고요.


그렇게 차근차근 계속해온 시간이 쌓여 ‘궁궐을 걷는 시간’이 5월 기준 58회 차가 되었습니다. 100회를 기준으로 절반을 넘겼네요.

초창기 '궁궐을 걷는 시간' 진행 당시 사진입니다. 새록새록합니다.  

한 마라톤 선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 때 이야기입니다. 탄자니아 마라톤 국가대표로 출전한 존 스티븐 아쿠와리는 평소 기록이 좋아 메달을 딸 가능성이 높은 선수였어요. 그런데 경기가 시작하자 결과는 달랐습니다. 완주를 딱 절반쯤 남겼을 때쯤 그만 넘어져 다시 뛰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말았던 거죠.


모두 그가 경기를 포기할 거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쿠와리는 다시 일어나 꿋꿋하게 달립니다… 라기보다는, 다친 다리를 겨우 끌면서 걷기 시작했어요. 그런 아쿠와리를 경찰차와 구급차가 뒤에서 불을 밝힌 채 호위하고 따라왔습니다. 방송국 중계차도 함께였고요,.


부상을 당한 선수 한 명이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중이란 소식이 경기장에 전해지자 관중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꼴찌를 기다렸습니다. 이미 마라톤 시상식까지 모두 끝난 뒤였지만 말이죠. 그리고 아쿠와리는 불 꺼진 경기장으로 들어와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무릎에 감은 붕대는 다 떨어져 너덜거리는 상태로 말이죠. 가장 큰 박수를 받은 꼴찌 선수였습니다.

존 스티븐 아쿠와리의 실제 경기 모습입니다.(출처: 트위터 @Olympic)

마라톤 경기 중 반환점쯤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체력도 갑자기 떨어지고, 긴장도 풀어지는 때여서 그렇다고 말이죠. 그래서 이때쯤 포기하거나 부상을 당하는 선수가 많다고 합니다. 마라톤을 뛴 적은 없지만, 듣고 보니 이해가 되었어요. 아쿠와리도 결승선을 20여 킬로미터 남겨둔 지점에서 넘어진 거였고요.


‘궁궐을 걷는 시간’도 100회 기준 반환점을 넘긴 셈입니다. 저 자신에게 칭찬도 해주고, 프로그램을 재정비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산책을 시작하던 마음을 다시 떠올리며 앞으로를 계획하기도 했고요. 마치 저만의 마라톤을 뛰고 있는 듯합니다.


꺾여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린 선수는 1968년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최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32회 동남아시안게임 육상 5천m 결승전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결승선에 통과한 보우 삼낭(캄보디아) 선수 이야기도 인상적입니다.(🔗기사)

중학생 때 달리기를 시작한 보우 삼낭 선수는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해야 했습니다. 한 켤레뿐인 운동화로 트랙이 아닌 흙바닥을 뛰어야 했어요. 노력이 결실이 되어 결국 캄보디아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었는데요. 그렇게 출전한 대회에서 보우 삼낭 선수는 비록 꼴찌를 했지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경기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경기 후 보우 삼낭 선수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인생에서 조금 느리든 빠르든 목적지에 결국 도달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끝까지 뛰었다.”

2023년도 반환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보우 삼낭 선수의 말처럼 느리든 빠르든 중요한 건 계속해나가는 것. 그래서 결국 나만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2023년의 남은 날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최근 새 앨범을 발표한 슈가의 노래 제목에 담아 보냅니다.

Life goes on.(삶은 계속된답니다.)” 


_궁궐산책 안내인 이시우 드림

🎬 추천 영화와 장소 : 영화 <모리의 정원>과 윤선도의 부용동 정원 

※ 영화 <모리의 정원> 스포일러가 ‘살짝’ 있습니다. 그러나 스포일러를 알고 봐도 충분히 좋은 영화입니다.

※ 제 블로그에 보길도 영상과 사진 등을 더 올려놓을게요.


모리의 우주, 모리의 정원

화가인 모리(야마자키 츠토무) 씨는 정원에 삽니다. 정확히는 자신의 정원에서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가지 않은 채 집 안에만 머물러요. 아흔이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건강한 모리는 아침식사를 뚝딱 해치우고 허리춤에 가방 하나를 두르고 꼬깔 모양의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자신의 정원으로 출근합니다.


정원에서 뭘하냐고요? 꽃과 나무, 동물과 곤충을 관찰하는 일이 전부예요. 아, 바닥에 떨어진 작은 돌멩이를 보는 것도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일이고요.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가 않아요. 모리에게는 중요한 일이고, 때문에 무척 진지합니다. 그래서 멀리서 손님이 찾아와도 정원을 관찰하는 과업을 멈출 수 없어요.

영화 <모리의 정원>

그런 남편의 일을 방해하지 못하는 아내 히데코(키키 키린)는 손님에게 이렇게 말하며 난처해합니다.


“연못의 송사리를 보느라 바쁘다고 하네요. 이제는 벌레를 보고 있네요.”


정원을 이렇게 진지하게 관찰한다고 해서 관찰 일기라도 쓰냐고 한다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다만 정원에 있는 모든 대상에 차고 넘치는 애정을 쏟는 것만은 분명하죠. 풀잎에 다가가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봐도 그래요.


“여태 자라고 있었는가.”


작은 돌 하나를 주워서는 대화하듯 역시 이렇게 묻습니다.


“어디서 날아오셨나.”


그리고 허리에 묶은 가방에 소중히 담아갑니다. 마치 함께 집에 가자는 것처럼 보였어요.

영화 <모리의 정원>

이는 2020년에 개봉한 영화 <모리의 정원>(감독 오키타 슈이치)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일본 화가 구마가이 모리카즈(1880~1977)의 실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세상을 떠나기 전 30여 년 동안 자신의 정원에서 나가지 않은 채 살았다는 화가인데요. 이렇게만 설명하면 집의 정원이 얼마나 넓기에 거기에서만 살았을까, 할 수도 있겠어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모리의 정원이 부감샷으로 그려지는데요. 영화에서 묘사한 정원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리에게는 그 정원이 하나의 세계, 우주였을 겁니다. 정원의 크기보다 중요한 건, 그곳에서 무얼 보고 느끼고 생각했느냐겠지요.


흔히 시야를 넓히기 위해 여행을 떠나라고 합니다. 자신이 사는 나라는 물론 해외까지 말이죠. 마치 지구에 남긴 발자국의 거리만큼 생각의 면적과 깊이가 비례한다고 믿는 이야기 같아요. 저도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만, 모리를 보며 생각이 좀 더 넓어졌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30년 전까지 모리가 여행한 세계는 자신의 정원이 전부였습니다. 정원 여행만으로도 충분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넓이를 측정하는 세상의 수치로만 보면 몇 제곱미터에 불과했겠지만, 화가 자신의 예술과 행복을 실현하는데 정원 여행만으로 가능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모리가 정말로 정원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느냐고요? 영화에서 확인해보시죠.

영화 <모리의 정원>

윤선도의 무릉도원, 보길도 부용동 정원

영화를 보며 모리처럼 오랜 시간 특정 공간에 머물며 자신의 예술(또는 학문) 세계를 완성한 인물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오래되지 않아 떠오른 이름이 하나 있었는데요. 바로 고산 윤선도(1587~1671)입니다.


윤선도를 바로 떠올릴 수 있었던 건 작년 가을 보길도로 아내와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에요. 보길도는 세 번째 방문이었습니다. 세연정과 동천석실을 다시 보고 싶어 10여 년 만에 다시 찾았어요. (후략) ※ 아래 링크에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윤선도의 정원, 세연정
📸 제철 궁궐 : '종묘대제'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5월 7일 종묘에서 열렸던 종묘대제에 다녀왔습니다. 종묘대제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인데요.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신위에 제사를 올리는 종묘제례와 이 의식에 맞춰 춤과 노래, 연주 등을 공연하는 종묘제례악입니다.


종묘는 정전과 영녕전 구역으로 나뉘는데요. 현재 정전을 보수 공사 중이라 올해 종묘대제는 영녕전에서 치러졌습니다.

종묘제례는 어가행렬이 궁궐에서 나오며 시작합니다. 실제로 이날 종로 거리에 어가행렬이 지나갔어요. 임금이 종묘에 도착하면 본격적인 제례가 펼쳐지는데요. 취위, 진청행사, 신관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등 열 단계가 넘는 엄숙한 의식이 이어집니다. 2시간 동안 이어진 행사를 마친 후에는 평소 공개하지 않던 종묘 신실을 볼 기회도 있었습니다. 더 많은 사진과 영상은 블로그에 올려두었어요.


🌿 <궁궐을 걷는 시간> 6월 산책 안내


1) 6월 ‘궁궐을 걷는 시간’ 산책은 쉬어갑니다. 지난봄부터 집필을 시작한 책이 있는데요. 마감이 코앞으로 달려왔습니다😂 6월은 쉬고, 원고 잘 마무리하고 7월에 다시 걸어요.


2) 강릉 정동진에 위치한 영화서점 이스트씨네에서 북토크가 있습니다. 바닷마을 서점에서 영화와 궁궐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해요. 

▪️ 일시 : 2023년 6월 24일 토요일 오후 3시

▪️ 장소 : 정동진 이스트씨네 

▪️ 참가비 : 1만 원. 책 <궁궐 걷는 법> 1권 + 음료 1잔 포함

▪️ 신청방법 : 이스트씨네 @eastcine_bookshop 인스타그램 DM 신청(아래 링크)

💌 다음 편지는 6월 30일 금요일에 도착합니다📮

 

🥹 응원의 답장, 환영합니다.
✍️ 궁궐과 관련해 궁금한 것이나,
전시/책/영화/드라마 등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5월, 궁궐산책자에게서 온 답장


아버지의 사진을 통해 지금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너무 좋았어요. 어쩌면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이런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때를 맞춰 내리는 비처럼 작가님의 편지가 참 좋네요. 고맙습니다;) _
 
궁궐에 가면 건물들은, 나무들은 아주 오래전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겠지...하는 생각을 해본 적 있어요. 시간 여행을 해서 보고 싶기도 했고요. 오늘은 일부지만, 60년 전의 궁궐을 구경한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저희 엄마도 어린 시절 초등학교를 매일 2시간 가까이 걸었다고 들었어요. 시골 아니고, 서울 신림동 근처(!)에서 이태원까지라고 들었던 것 같네요. 그 시절 어른들은 그 정도는 그냥 걸었다고 하셨나 봅니다. ㅎ 인터넷 편지인데, 꼭꼭 예쁜 물건만 골라 담은 종합선물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_갈배

봄바람같은 메일이네요, 덕분에 기분 좋은 금요일을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_🌿

5월의 편지는 어느 때보다 부모님의 빛바랜 사진이 함께 해 더 여운이 길었습니다.저도 교복을 입고 덕수궁이며 경복궁을 다녔던 시절이 있어 잠시 그리운 것들이 마구 소환되었어요. 고맙습니다. 편지 감사히 읽었습니다. _🌳

궁궐은 왕이 살던 집이고 나라의 일이 이뤄지던 역사의 장소로만 여겼는데, 우리 아버지의 추억이 어려 있는 곳이기도 하네요. 같은 장소에서 시간을 달리해, 또 다른 추억을 쌓아가고 있는 아들 이시우 님의 이야기라 더 좋았어요. 궁궐이 좀 더 가깝게 느껴졌어요. 이번 레터는 참 감동적이고 따뜻했습니다. _상준

멋진 '사진'이 있어서 조금 더 특별한 편지였어요. 5월 어버이날과 어울리기도 하네요. 다음에 집에 가면 부모님 사진을 찾아 봐야겠어요. 어디에서 찍었나 여쭤 봐야겠어요. _제이유

✉️ 궁궐에서 온 편지는 5월 25일 현재 291명이 함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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