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충청도와 전라북도, 경상북도 등 중부 지방에 시간당 최고 146mm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이 폭우로 지금(12일 오후)까지 6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어요. 먼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피해자와 유가족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와 함께 극단적인 폭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여름철 폭우가 잦은 편이었지만, 점점 그 정도가 심해질뿐더러 폭우를 예측하기도 어려워지고 있어요. 전문가들은 그만큼 안전 대책을 철저히 세워서 언제 어디서 발생할 지 모르는 폭우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지난해 여름, 우리 사회는 폭우로 비롯된 끔찍한 참사를 겪었습니다. 이른바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불리는 사건입니다. 폭우로 불어난 미호강 강물이 미호천교 임시 제방을 무너뜨렸고, 400여 미터 떨어진 궁평2지하차도로 밀려들어와 수십 명의 사람들을 집어삼켰습니다. 이 참사로 14명이 목숨을 잃고 16명이 다쳤습니다.

▲ 오송 참사 생존자의 차량 블랙박스 화면. 지하차도에 가득찬 물 위로 차량이 떠 다니고 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7월 15일)이면 오송 참사가 발생한지 꼭 1년이 됩니다. 이번 주 ‘타파스’는 오송 참사 1주기를 맞아, 참사의 원인은 무엇이고 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살펴 보려고 합니다.

“지하차도 통제해야 된다” 시민 경고 무시한 경찰 😰


지난해 7월 15일 오전 7시 4분, 충청북도경찰청 112 종합상황실에 신고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신고자가 “제방이 넘치려고 한다”라고 말하자, 상황실 직원은 “어디가 넘치려고 하냐” 라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신고자는 “미호천교” 라고 정확한 위치를 지정합니다. 이것이 오송 참사를 예견한 최초의 신고 전화였습니다.😰


이날 미호강 미호천교 부근은 사흘째 쏟아진 폭우로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 있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미호천교에는 원래 있었던 제방이 아니라, 흙더미를 쌓아 만든 임시 제방이 세워져 있었어요. 이 임시 제방은 기존 제방에 비해 부실할뿐더러 높이도 훨씬 낮았습니다. (왜 임시 제방이 세워져 있었는지는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만약 신고자의 말대로 제방이 넘친다면 큰 피해가 날 수도 있는 상황. 실제로 신고 접수 후 약 1시간 뒤, 강물은 미호천교 제방을 무너뜨리고 궁평2지하차도를 덮쳤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이 신고를 접수하고도 즉각 출동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경찰이 출동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뉴스타파는 검찰의 오송 참사 공소장 내용을 토대로, 사건 당사자인 경찰 14명과 경찰 출신 전문가 등을 취재했습니다. 그 결과 당시 경찰의 대응 방식에서 여러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 오송 참사 당시, 경찰은 신고 전화를 비긴급 코드인 ‘코드 3’으로 분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먼저 참사 당일 오전 7시 4분 최초 신고 당시, 경찰은 신고 내용을 ‘코드 3’로 분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112에 접수된 신고 내용을 ‘코드 0’부터 ‘코드 4’까지 총 5개 단계로 분류하는데, 이 중 ‘코드 3‘는 즉각 조치할 필요가 없는 비긴급 사건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당시 신고자는 “미호천교 제방이 넘치려고 한다” 라며 구체적인 위치와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더군다나 이날 새벽 4시부터 미호강 미호천교 지점에는 홍수 경보가 발령돼 있었어요. 즉 경찰은 긴급한 사건으로 판단할 정황이 충분한데도 이를 무시하고 ‘비긴급’ 사건으로 치부했습니다.🤨


기회는 또 있었습니다. 최초 신고 이후 약 한 시간이 지난 오전 7시 58분, 동일한 신고자가 다시 한 번 112에 신고 전화를 한 것입니다. 이때 신고자는 “제방에 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지하차도를 통제해야 될 것 같다” 라며 구체적인 상황과 조치 내용을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번에도 비긴급 코드인 ‘코드 2’로 분류하는데 그쳤습니다. 결국 참사가 발생한 오전 8시 30경까지 지하차도는 아무런 통제 없이 열려 있었고, 평소와 다름없이 지하차도로 향하던 차량들은 순식간에 쏟아진 강물에 삼켜지고 말았습니다.

▲ 오송 참사 생존자의 차량 블랙박스 화면. 참사 현장인 궁평2지하차도 방향으로 차량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당시 경찰은 두 차례의 신고에도 불구하고 지하차도를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대응 방식에 대해 경찰 출신 전문가들은 ‘대응 코드 자체에 무작정 얽매여선 안 된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112 상황실에서 당시 상황을 ‘비긴급 코드’로 분류했다고 하더라도, 현장에서 위험성을 인지했다면 긴급 출동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죠.


하지만 뉴스타파 취재에 따르면, 당시 일부 경찰들에게는 ‘코드 3의 경우 현장 출동을 하지 않고, 신고자와 통화도 안 하고 자체적으로 종결하는’ 관행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순찰차가 신고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도착한 것처럼 허위 보고한 정황도 발견됐습니다.🤨


만약 참사 당시 한 명의 경찰관이라도 지하차도를 통제했다면, 14명의 시민이 숨지는 대형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경찰은 “제방이 넘친다” 라는 시민의 경고를 무시했고, 평소 관행대로 대응 코드에 따라 사건을 처리했습니다. 그 결과는 시민 14명의 죽음과 16명의 부상이었습니다.

금호건설, 불법적 제방 철거… 행복청은 알고도 무시했다 🤨


위에서 참사 당시 경찰의 대응 문제를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참사의 직접적 원인인 ‘미호강 범람’ 문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참사 당시 미호천교에는 임시 제방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임시 ‘제방’이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사실은 단순히 흙더미를 쌓아둔 것이나 마찬가지로 기존 제방에 비해 높이도 견고함도 훨씬 부족했습니다. 홍수 피해 예방이라는 제방의 본래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구조물이었어요.🤨

▲ 미호천교의 기존 제방과 임시 제방을 비교한 모습. 임시 제방은 기존에 비해 부실할뿐더러 높이도 훨씬 낮습니다.

그렇다면 왜 당시에는 이런 부실한 임시 제방만이 세워져 있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당시 미호천교 부근에서 벌어지고 있던 여러 건의 대형 공사를 살펴봐야 합니다.🤔 


원래 미호천교 부근은 병천천과 미호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두 개의 물줄기가 한 곳에서 만나다 보니 매년 홍수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었습니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호천교 부근의 강폭을 약 260미터 넓히는 계획을 세웠는데요.


강폭을 넓히려면 기존 제방을 없애고 다시 쌓는 한편, 강에 놓인 다리도 늘어난 강폭만큼 연장해야 합니다. 문제는 강폭을 넓히는 공사 도중에도 홍수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 공사는 ①먼저 새로운 제방을 쌓은 다음 ②강에 놓인 다리(미호천교)를 연장하는 순서로 진행됐어야 했어요.


그런데 당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은 새 제방을 쌓는 것보다 미호천교를 포함한 도로 공사를 먼저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제방이 방해되자 시공사인 금호건설은 기존 제방 일부를 철거해 버렸어요.😰 


이는 명백한 불법 행위였습니다. 원래 제방 등 하천 구조물에 손을 대려면 사전에 환경부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금호건설은 제방 철거와 관련해 어떤 허가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어요. 즉 허가도 없이 임의대로 시민 안전을 책임지는 구조물을 없애 버린 셈입니다.


그렇다면 공사를 발주한 행복청, 그리고 미호강 관리를 총괄하는 금강유역환경청은 이 사실을 몰랐을까요?🤔 


뉴스타파 취재 결과, 행복청과 금강유역환경청 모두 제방 철거 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행복청은 이미 2022년 8월 금호건설이 제방을 철거한 사실을 보고받아 알고 있었고, 금강유역환경청도 2022년 10월 미호천교 공사 현장을 방문해 제방 철거 사실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2022년 금호건설이 감리단장을 통해 행복청에 보낸 공문 일부. 기존 제방 일부가 철거되어 침수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행복청은 새 제방을 쌓는 것보다 도로 공사를 우선시해서 홍수 위험을 가중시켰고, 또 시공사가 기존 제방을 무단 철거하는 것을 사실상 방치했습니다. 금강유역환경청 역시 제방 철거 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시공사 금호건설이 얼기설기 쌓은 임시 제방은 폭우 앞에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폭우로 불어난 강물은 임시 제방을 무너뜨리고 지하차도를 덮쳤습니다. 결국 14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행복청과 금강유역환경청 등 공공기관이 ‘오송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각자도생이 아닌 ‘더 안전한 사회’로


오송 참사 당시 국내 SNS에는 ‘각자도생’ 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지 1년도 안 돼 일어난 또 다른 대형 참사였습니다. 경찰도, 정부 기관도, 그 무엇도 나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알아서 잘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국민들의 마음 깊숙히 박혔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오송 참사는 2014년 세월호 참사, 2022년 이태원 참사와 놀랍도록 구조가 비슷합니다. 참사 이전에 이미 수많은 전조 증상이 있었지만, 관계자들과 정부 기관은 경고를 무시하기 바빴습니다. 그 모든 무시의 결과는 억울한 시민들의 죽음이라는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주 월요일(15일)은 오송 참사가 발생한지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최근 오송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다시 참사 현장에 모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피해자들의 요구대로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기를, 그리고 다시는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가 근본적 대책을 세우기를 바랍니다.


다음주도 전국에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구독자 여러분 모두 부디 무탈한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주 ‘타파스’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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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필름 새 영화 <판문점>, 아래 링크에 접속하시면 상영관과 상영 시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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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은 우리에게 특별한 달입니다. 71년 전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한국전쟁 정전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정전 후에도 판문점은 남북 평화를 논의하는 공간으로 끊임없이 역할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판문점에서는 아무런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영화 <판문점>은 전쟁 중에도 평화를 위한 대화를 한 장소인 ‘판문점’의 진짜 의미를 짚어봅니다. 


배우 박해일이 내레이션을 맡고 뉴스타파 송원근 감독이 연출한 영화 <판문점>을 극장에서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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