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붕괴되실 뻔한 적이 있었나요?
“내가 품위 있댔죠? 품위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요? 자부심이에요. 난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어요. 그런데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박찬욱 ‘헤어질 결심’ 중 )
“그러나 위대한 사람도 때로 위대해 보이지 않은 행동을 하기도 하고, 미천한 사람도 때로는 위대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한번의 ‘행동’은 한번의 행동일 뿐입니다. 그것이 부정적인 행동이든 긍정적인 행동이든 우리는 그저 개별 행동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고, 계속 자신의 가치를 향해 걸어나갈 뿐입니다. 그것이 수용-전념치료에서 말하는 ‘품위’입니다.”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중)
산업보건전문가의 윤리
산업보건의 일차적 목표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조성하고, 노동자의 노동능력과 고용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산업보건 전문가는 전문적인 역량을 갖고 이러한 목표를 추구해 나갑니다. 그런데, 전문가 윤리란 이 목표를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장애물을 만나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의 해법은 법과 규제를 새롭게 만든다고 해서 완전하게 해결되지 못하죠. 오히려 또 다른 문제를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답을 얻고 싶은 것은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윤리란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중독사건의 발생, 그리고 두 가지 정보
2022년 트리클로로메탄 중독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창원파티마병원의 이현재 선생님(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은 소화기내과 전문의로부터 한 명의 환자를 의뢰받습니다. 간염으로 치료하여 호전되었으나, 업무에 복귀한 후 다시 악화되어 온 환자였습니다. 이현재 선생님은 환자가 세척작업에 종사하였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세척제로 인한 독성간염일 가능성을 의심하였습니다. 환자에게 세척작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환자의 입장을 배려하여, 환자가 듣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하였습니다. 나중엔 사업주와도 통화를 하였으며, 문제해결을 위해 언제든지 자문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였습니다. 사업주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관계당국에 신고하는 것을 유보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당 사업장이 대책을 마련하였다는 소식이 없었고, 상담했던 노동자는 연락이 두절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조치를 하면 좋을까요?
여기, 두 가지 정보가 추가로 확인됩니다. 이 정보는 서로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 작업환경측정팀을 통해 알아본 결과, 유성케미칼로부터 공급받은 세척제의 MSDS 상 '1,2-디클로로에틸렌'이 있었습니다 . 이 물질은 간독성이 가능할 수 있지만 독성이 강한 성분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작업환경측정결과에서는 노출기준이 초과된 경우는 없었다고 전달받았습니다. (나중에 트리클로로메탄이 MSDS에 누락된 것을 알게 됨)
- 타 특수건강검진기관 전문의 선생님으로부터 해당 사업장의 직원 4명과 협력사 직원 3명이 일반건강검진 소견에서 높은 수준의 간수치 상승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습니다.
산업보건전문가를 위한 윤리강령 중 ‘개선사항에 대한 추적’
2015년에 발표된 ICOH의 산업보건전문가를 위한 윤리강령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증거가 있어도, 위험제거나 문제해결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거부하거나 주저한다면, 산업보건전문가는 결정권을 가진 고위경영진에게 최대한 신속하고 분명하게 서면으로 우려를 전달하여야 한다. 또한 적절한 과학적 지식을 고려하고, 노출 제한을 포함하는 관련 건강보호기준을 준수하도록 강조하고, 법률과 규정을 지키고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할 고용주의 의무를 상기시켜야 한다. 필요한 경우, 노동자와 그들의 대표에게 알리고, 관할 당국에 연락을 취해야 한다”
산업보건전문가를 위한 윤리강령 3판
위의 글처럼, 이현재 선생님은 ‘결정권을 가진 고위경영진’에게 최대한 신속하고 분명하게 알렸습니다. 하지만 사업주의 개선조치는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긴급하게 직업환경의학센터 회의를 열고, 산업안전보건공단과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기로 결정합니다. 관계당국에 신고를 한 것은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지만, 유사한 노출이 있을 수 있는 제 3의 사업장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