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폭력 피해 지원 활동가, 쪼이와 밥먹다
Host
담: 엄살원 주인. 기획, 음식, 편집 등등을 한다.
유리: 엄살원 직원. 손님 섭외, 식사, 편집 등등을 한다.
예인: 연출, 감독. 촬영하다 쉬는 시간에 잠깐씩 식탁에 앉는다.
Guest
쪼이: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피해 지원 활동가. 유리의 친구. 초면인 담의 집에 Jameson 위스키 한 병+콜라+칵테일 얼음을 들고 나타난 범상찮은 손님. 

삭제 지원 활동가의 초능력

담: 만나서 반가워요, 쪼이.

쪼이: 초대받아서 좋아요. 파이 너무 맛있었어요.

담: 더 드시지. 적게 먹는 편이에요?

쪼이: 아니요. 조금 남겼다가 술 마실 때 같이 먹고 싶어서...

담: 앗, 그럼 인터뷰 얼른 마치고 술 마셔요.

쪼이는 디지털성폭력 피해지원 활동가, 구체적으로는 ‘삭제 지원 활동가’인 거죠?

쪼이: 네.

담: 사전 질문지를 보니까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업무는 간접 지원 업무랑 직접 지원 업무로 나뉘는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다른가요?

쪼이: 간접 지원 업무에서 대표적인 건 이슈 파이팅이나 집회 결성이 있고요. 직접 지원 업무는 상담이나, 제가 하고 있는 불법 촬영물 삭제가 있어요.

담: 그러니까 직접 지원 업무를 하는 사람은 피해 당사자하고 좀 더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거네요.

쪼이: 네. 

담: 왜 이 일을 하게 됐나요? 

쪼이: 김지은 씨가 JTBC에 나왔을 때가 계기 였어요. 그때 댓글 반응을 보고 충격 받았거든요. 김지은 씨의 모습을 가지고 저건 거짓말이다, 이렇게 단정하는 댓글이 엄청 많았잖아요.

전에는 원래 미술을 공부했었어요. 근데 그걸 보고서 미술 작업할 때가 아니다, 김지은씨 같은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지금 안 하면 나중에 너무 후회할 것 같았어요. 결과적으로 되게 잘 선택한 것 같아요. 저는 이 일 하면서 가슴이 뛰거든요. 삭제 지원은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고요.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어요.

담: 왜 상담은 선택하지 않았어요?

쪼이: 저는 상담할 자신이 없었어요. 거리 두기를 진짜 못해서. 저는 정말, 막말로 내 앞에서 이명박이 울어도 함께 울 사람이라서.

일동: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쪼이: 대신 제가 삭제는 자신있는 게, 찾는 걸 잘해요. 정보 수집하는 데에 집착하는 게 있어요. 일단 많이 모아요. 물건도 그렇고.

유리: 집에 가면 엄청 뭐가 많아요. 물품이 그냥 깔렸어.

쪼이: 수집 능력이 있죠. 일단 불법 촬영물도 수집을 해야 지우잖아요. 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미지에도 예민해요. 

저는 삭제 지원에서 제일 중요한 게 숨은그림찾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촬영물을 찾는 프로그램이 있고 기술이 있어도, 결국에는 그 기술이 안 통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럴 땐 눈으로 대조해서 특정 이미지와 똑같은 이미지를 찾아야 된단 말이에요. 그걸 제가 되게 잘해요. 그리고 이미지를 기억하는 능력도 좋아요.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내가 피해 지원 업무 가운데 삭제를 제일 잘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해보니까 역시 참 잘하더라고요.

담: 숨은그림찾기를 잘해야 한다는 건, 해당 파일이 인터넷상에 하나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인가요?

쪼이: 그것도 있고요. 예를 들어서 유튜브 홈페이지를 생각해보시면, 여러 영상이 한 화면에 쫙 깔려 있잖아요. 유포되는 사이트 화면도 그런 식인데, 그중에서 제일 내 피해자 같은 영상을 눈으로 보고 찾아야 되는 거죠. 

말씀하신 것도 맞는 게, 한 피해자당 피해 촬영물이 한 개만 있을 때가 보통 없거든요. 알고 보니 그 사람 영상이 열 개, 스무 개, 몇백 개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원 요청을 하시는 분들은 영상이 한 개만 있다고 생각을 하시니까 한 개만 보내주세요. 그러면 제가 그 영상을 보고 이 사람의 다른 영상도 다 찾아야 해요. 이 사람의 인상이라든지... 모습이나 특징 같은 걸 기억했다가 다른 영상에서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유리: 같은 영상이 하나가 있어도 그거를 쪼개서, 분할해서 유포 하기도 하니까. 그걸 딱 알아봐야 돼. 올릴 때 썸네일도 다 다르게 하죠.

쪼이: 맞아. 맞아요. 맞아요. 우리 이런 일 했어 ㅠㅠㅠ

유리: 네. 저도 디지털 성폭력 삭제 지원 활동 했었으니까... 너무 공감가요. 초능력처럼, 화면만 보면 직관적으로 촤자자작 찾아지는 거죠. 이 사람 내가 아는 사람 같아, 그래서 클릭해보면 피해자 영상이야. 이렇게 해서 찾는 경우가 진짜 많아요. 

그럴 때도 있다? 어떤 사이트를 발견했는데, 근데 왠지 직감이...

쪼이: 직감이 와.

유리: 3 페이지만 넘기면 내 피해자가 있을 것 같아. 그래서 넘겨보면 진짜 있는 거야! 

쪼이: 진짜...(격하게 동의하는 중)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우리끼리 그런 말을 자주 하는데요. 삭제의 신이 온다! 신내림을 받는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요. 어떤 사이트 화면을 봤는데, 영상 썸네일이 그냥 까맸거든요? 제목도 그냥 ’코리안 걸’ 이랬어요. 근데 이거 내 피해자다, 그런 확신이 있었어. 그러고 들어가 보면 딱 제가 생각하던 바로 그 피해자가 맞아! 그리고 예전에 저도 제가 찾아내고서 얼탱이가 없었던 게, 무슨 썸네일에 이상한 무늬가 있었거든요? 근데 딱 보니까 어? 이거 내 피해자 피해 촬영물 모텔 소품인데? 이랬는데 딱 맞았어.

유리: 이거 진짜 그래.

쪼이: 그 영상은 심지어 파일이 깨져서 썸네일이 이상했거든요. 전체 화면 구석에 (무늬가) 요만큼만 잡힌 거였어요. 그런데 그걸 알아볼 수 있다는 게... 삭제신이 들린다고 밖에는.

담: 영상을 찾아다녀야 하는 범위가 어떻게 돼요? 그러니까, 어디서 영상을 찾아야 돼요?

쪼이: 이론적으로도 실제로도, 이건 무한의 공간이 대상이에요. 무한의 공간에서, 무한의 사이트에서 정보를 찾아야 하는 이상하고 현실성이 없는 업무.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많이 쓰니까 일단은 Google 위주로 찾아요. 전 세계 사람들이 제일 많이 접속하는 사이트니까.

담: 저는 삭제 지원 활동에서 제일 힘든 부분은 심적인 고통일 거라고 단순하게 예상했었어요. 근데 쪼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이건 전문 직종이다, 특별한 능력이나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 일에서 요구되는 다른 능력이 또 뭐가 있을까요?

유리: 직관력이 진짜 중요해.

쪼이: 맞아요. 저랑 팀원들이랑 이거 되게 자주 생각해요. 만약 나라면 삭제 지원 활동가로 어떤 사람을 뽑을까? 일단 유리가 말한 것처럼 직관력이 최우선이 돼야 하고요. 농담이 아니라 전 활동가를 뽑을 때 숨은그림찾기를 시험 보게 해서 뽑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미지를 분석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를 봐야 하고요. 창의력도 중요해요. 거의 프로파일러처럼 가해자의 심리를 예측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담: 예를 들면 가해자의 패턴같은 거요?

쪼이: 네.

담: 그러니까 이런 새끼는 어느 사이트에 유포했을 것이다, 영상을 분할했을 것이다 안 했을 것이다 이런 추측?

쪼이: 그런 것도 해야 되고, 키워드를 예측해야 돼요. 저희는 키워드라고 표현을 하는데, 영상의 제목 같은 게 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만약 제 영상이 유포된다면 <삭발녀> 이런 식의 키워드로 유포가 되겠죠? 

일동: (쓰러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쪼이: 강의 나갈 때 맨날 이렇게 예시를 들어요. 기존 피해자 중에 삭발녀는 아직까지 없는 것 같아서ㅋㅋㅋㅋ 내가 유포되면 이게 삭발녀라는 키워드로 유포될 거라는 예측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담: 그러니까 피해자가 어떤 식으로 소비될 건지를 내다봐야 하는 거군요.

쪼이: 네. 그리고 이런 촬영물은 어떤 플랫폼에 주로 유포될 것 같다, 이런 판단도 그때그때 달라요. 새로운 플랫폼도 추적해야 해요. 가해자들이 계속 도망을 가기 때문에 플랫폼이 되게 빨리 바뀌어요. 그 변화를 계속 따라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또 창의력이 중요하죠. 

유리: 그리고 인터넷 한 짬바가 있으면 도움이 되는 거 같아. 나는 남초 커뮤니티한 경험이 도움이 됐거든.  댓글도 일부러 많이 읽었어요. 남자들이 사이트에서 하는 대화를 계속 봤어. 그래서 내가 남자들과 함께 그 영상을 능동적으로 찾아다니는 사람으로서 그 사이트에 존재를 하는 거죠.

쪼이: 여기에서 연결되는 게, 이게 제일 중요한 거야. 집요함하고 끈기. 이것도 저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한번 집착하면 끝도 없이 집착하는 편이에요. 어떤 영상은 1년 동안 삭제 요청하기도 했어요. 결국 지워졌을 때는 정말 뿌듯했죠. 사실 이게 어려운 지점인 게, 삭제 요청을 한 번 하고 “내가 삭제 업무 했다”고 말할 수도 있거든요. 근데 한 번으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단 말이에요. 그래서  지원자 개인의 윤리와 가치관이 되게 중요한 거예요.

유리: 내가 이걸 일로만 생각하면 삭제 요청 하나하나가 실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하지만 이런 경우가 있잖아요. 영상을 하나 지웠는데, 가해자 새끼가 지워지자마자 바로 “내 거 지웠네?” 하면서 다시 올리는 경우. 그러면 이 새끼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면서 계속 그 가해자랑 추격전을 벌여야 하는 거지. 

쪼이: 전쟁이야.

유리: 잡힐 때까지 쫓아다녀. 10번 삭제 요청하고서 실적 10번 채웠네, 그렇게 퇴근할 수는 없잖아.

쪼이: 예를 들어서 피해자가 “내 영상 안 지워졌는데 너네 뭐 했어?” 했을 때 ‘난 삭제 요청했는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거기서 끝나면 안 돼요. 

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담: 유리가 자주 하는 말 있잖아. “사실인가?” 

유리: 맞아. 내가 그 말 자주 해. 갑자기 그게 왜 생각났어요?

담: 이 말을 유리가 다양한 맥락에서 썼던 것 같거든? 가령 글에 대해서도 좋은 글이고 나쁜 글이고를 떠나서 ‘사실관계가 틀린 글은 안 보고 싶다’는 거야. 비거니즘도 그래. 관념적으로 생각할 때는 어떤 게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인지를 판단하는 게 복잡한 일처럼 느껴져. 예를 들어서, “동물들이 행복한지 우울한지를 어떻게 알지? 그걸 알 수 있다는 게 인간 중심적인 생각 아닌가?” 그럴 수 있잖아. 그때 적용해볼 수 있는 말인 거지. “사실인가? 우리는 정말 알 수 없나?” 실제로 도축 당하는 동물들은 비명을 지르잖아요. 그걸 목격하면 ‘동물의 입장에서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가치판단을 보류하는 건 불가능한 것 같거든요? 

좀 멀리 돌아왔는데, 그런 식으로 성폭력 문제도 탁상공론을 벌이기가 쉬운 주제인 것 같아. 특히 디지털 성폭력은 이전까지의 성폭력하고 양상이 다른데도 나는 이걸 ‘안다’고 생각했거든요. 디지털 성폭력 활동가들이 등장하면서 이 문제가 꽤 수면으로 올라왔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고.

유리: 이것도 직접 봐야 이해하는 부분이 있어요.

쪼이: 물론 최근에 디지털 성폭력이 이슈가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전히 이건... 보지 않고서는 모르거든요? 삭제 업무에 관해 여기저기 알렸더니 이제 다들 이 일의 성격을 안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전에는 모르면 실무자에게 알려달라고 했던 부분도 있는데... 종종 저희를 그냥 4D 직종 중 하나로만 생각하는 느낌이 들어요.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삭제는 할 수 있다고 알고 있는 거죠. 그런데 아니거든요. 아까 말했던 직관력, 창의력, 그런 게 주로 이미지를 봐야 하기 때문에 요구되는 전문성이거든요.

유리: 이건 눈으로 들어오는 거야.

쪼이: 그리고 언어도 없고.

유리: “이건 이런 거야.”라는 설명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현상을 보는 게 아니라, 현상을 보고 나서 “아 시발, 이게 뭐지? 뭐라고 설명하지?”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작업이에요. 실무자가 정보를 갖다줘도 직접 보기 전엔 모른단 말이야.

담: 보기 전엔 모른다.

유리: 응. 그리고 보면 영영 달라져. 

내가 삭제 지원 활동가일 때, 그때도 비건 지향이었거든요? 근데 여름에 그 가해자로 만든 냉면을 먹고 싶은 거예요. 불법 촬영물 계속 올리는 어떤 가해자 때문에 너무 빡쳐가지고 걔의 고기로 만든 냉면을 먹고 싶은 거야.

쪼이: 먹을 것에 빗대는 게 가장 큰 대상화잖아요.

유리: 한동안 입버릇이었어요. 그 사람으로 만든 평양냉면 먹고싶다. 

쪼이: 나는 소원이 그냥 지나가는 가해자 남성을 죽인 다음에 광화문에 이렇게 이순신 동상 앞에 이렇게 매달아 놓고 싶거든.

예인: (촬영 정리하고 합류) 진짜 예술가시다. 또 감명받았어요.

쪼이: 대한민국 여성 아무도 그걸 안 하는 게 너무 신기해. 

유리: 우리가 봤던 거를 모든 여성이 다 본다면 지금과 같지 않을 거야. 죽창의 시대가 열릴 거라고 생각해.

쪼이: 동학농민운동 되는 거야. 산 들어가서 나무 깎아가지고 창 만드는 거야. 

그 생각도 한 적 있다? 전략적으로, 내가 삭제 지원하다가 돌아버린 척 하고 한 명만 죽이면 이슈되지 않을까. 나 정신과 다닌 기록도 다 있잖아. 그렇게 되면 가해자들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안 하기로 한 이유가, 경찰 관련 업무를 했던 동료가 있는데, 그분이 알려주셨어요. 감옥이 춥대요. 

유리: 쪼이가 추위를 많이 타거든요ㅋㅋㅋㅋㅋㅋㅋㅋ 

쪼이: 응ㅋㅋㅋㅋㅋㅋㅋ거기서 일하는 직원도 추울 정도면 범죄자는 얼마나 춥겠어. 그래서 포기했어요.

담: 두 사람이 되게 잘 아는구나. 쪼이랑 유리는 처음에 어떻게 만났어요?

쪼이: 생각해보면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만난 건 얼마 안 돼요. 18년에 유리가 하는 강의 갔다가 만났어요. 삭제 지원에 대한 강의였는데. 유리가 엄청 울었잖아. 나도 유리 보면서 너무 많이 울었어.

유리: 으악 너무 쪽팔려 ㅠㅠ 나도 그 순간에 처음 알았어요. 내가 이 일에 대해서 아무한테도 제대로 얘기를 해본 적이 없구나. 망했다. 입을 여는데 바로 눈물이 막 쏟아졌어.

담: 심리 상담 처음 받을 때처럼?

유리: 응. 나도 놀랄 정도로 엄청나게 오열을 하고 있는데, 강의는 이미 망한 것 같고. 그런 강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쪼이: 이전에는 이 분야에서 실무 강의라고 할 게 없었으니까. 저는 그 강의가 너무 와닿았거든요. 당시에 이 사람 나이를 몰랐지만, 20대 페미니스트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촬영물을 보는 거 자체에 대해서 해석이 완전히 다른 세대인 거야. 그래서 제가 함께 존나 오열을 했거든요. 이후로도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아직도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얘기하거든요. 존나 울었다고.

유리: 그분들한테도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ㅠㅠ 저 이제 그런 사람 아니라고요.

담: 그게 2018년의 일이에요?

쪼이: 네. 이 영역이 아예 다르다는 걸,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걸 그때 느꼈어요. 아직도 마찬가지예요. 예를 들면 삭제 지원이라는 게 있다는 걸 모르거나, 피해 지원 단체에 대한 오해 때문에 디지털 장의사한테 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 너무 안타까워요. 똑같은 삭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피해자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위험성이 크거든요. 피해자 신상 노출을 철저하게 막아야 하는데 그런 기본적인 인식도 미비한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비용도 굉장히 비싸요. 달마다 200만 원씩 받고 그래요.

담: 피해 지원 단체에 대한 오해가 뭐가 있을 수 있을까요? 난 잘 상상이 안 가요.

쪼이: 저희 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공공기관이라서 불신하더라고요. 저도 몰랐어요. 저한테 공무원 아니냐고 그러고. 너희 단체로 가면 신고를 꼭 해야되지 않냐, 피해자들은 경찰 신고에 부담이 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디지털 장의사한테 요청하는 거다, 이런 얘기 들으면 진짜... 

유리: 그것도 사실이 아니지 않아?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신고 안 하잖아.

쪼이: 그렇죠. 지원 업무랑 경찰 신고랑은 아무 상관도 없거든요. 경찰 신고 자체가 되게 부담이라는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 센터가 2018년에 개소를 했잖아요. 그때 처음 센터를 찾아온 피해자 중에 파산하고 오신 분들도 있었거든요. 이미 디지털 장의사라든지, 업체에서 하는 삭제 지원, 지원도 아니지, 서비스를 받으셨고 그 삭제 비용을 제공하다가 파산하신 거예요.

유리: 파산하기가 쉽지 않은데도.

담: 하...

쪼이: 그게 한 번 200만 원 내고 끝인 게 아니에요. 처음에 의뢰를 하고 비용을 물으면 성범죄 피해 지원에 3개월은 걸린다, 그렇게 답변한대요. 그러니까 600만 원의 비용을 투자해야 된다는 거야. 그 얘기를 듣고 너무 너무 분노가 치밀었어요. 서비스 내역을 저희가 다 받아봤는데, 보니까 삭제도 제대로 안 해요. 피해자는 자기 영상 삭제하려다가 파산을 했는데도...
음식을 사랑하는 쪼이

담: 우리 잠깐 쉴까요? 과일 먹어요. 수박 잘라올게요.

쪼이: 저 오늘 위스키콕이 너무 마시고 싶어서 위스키랑 얼음이랑 콜라랑 다 사왔거든요. 드실래요?

담, 유리: 네!

예인: 저도 조금만.

(위스키콕 쪼르륵...)

담: 저 사실 위스키콕 처음 마셔봐요. 맛있다. 원래 탄산을 싫어했어요. 근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탄산수가 그렇게 땡기더라고요.

쪼이: 탄산수 제조기 사세요. 맛이 차원이 달라요. 탄산이 신~선해.

일동: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리: 광고 카피 같았어.

예인: 전 이화주 마셔보고 싶어요.

쪼이: 그거 진짜 맛있어요. 

예인: 그걸 과일에 찍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대요.

쪼이: 그래요? 과일 찍어 먹어봐야겠다. 이화주 생각보다 안 비싸요. 보급형 이화주는 하나에 만원 정도. 근데 그거 먹다가 훅 갈 수 있어요. 

담: 도수가 높아요? 많이 높아요?

쪼이: 아니요. 그냥 계속 먹게 돼서. 

일동: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인: 연말에 VIP 모아서 스탠드업 코미디 하면 안 돼요? 엄살쇼 이렇게 해서?

담: 저는 서면 인터뷰를 다 읽고도 쪼이가 어떤 사람인지 감이 안 잡혔어요. 왜냐하면, 하는 일은 심각한데 답변들이 뭐랄까, 바아아아아앍은 느낌이 있었어. (유리: 밝은 게 아니라 봐아아아앍은). 특히 음식 얘기가 예사롭지 않았어요. 냉장고에 있는 음식과 그것들의 상태를 묻는 질문도 있었는데요. 이 답변을 봐서는 음식 안 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요리를 되게 잘하시는 거 아니에요?

쪼이: 요즘에는 잘 못 해요. 일 시작하고, 이사하고 나서는 요리를 안 했어요. 

담:  일 하기 전의 식습관하고 지금하고 많이 달라요?

쪼이: 다르죠. 지금은 생존을 위해서 먹는다는 느낌이죠. 당장 내가 먹을 수 있는 걸 먹어요. 전에는 그래도 이걸 요리해서 이걸 먹어야지 하는 선택권이 있었어요.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도 만들어 먹었는데, 지금은 돈이 없어도 사서 먹거든요.

담: 원래 돈이 없을수록 돈이 더 들잖아요.

쪼이: 저는 과자 이런 거 안 먹었거든요. 특히 봉지 과자는 짜고 맛없어서. 그런데 요즘엔 너무 맛있어요.

담: 업무량이 너무 많아서 챙겨 먹을 시간이 안 나는 거예요?

쪼이: 그런 것도 있는데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제가 하는 일이 컴퓨터를 많이 하는 일인 거잖아요. 근데 컴퓨터 작업이 주는 물리적인 피로하고는 명확히 다른 부분이 있어요. 다른 팀원들 경험으로도 계속 확인하게 돼요. 저희 팀에 10년 동안 다른 팀에서 근무하던 선생님이 넘어오셨거든요? 근데 그 선생님도 여기 오고부터는 퇴근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대요. 어느 날은 운전하다가 갑자기 앞이 안 보였대. 그 때 알았죠. 확실히 뭔가 다르구나, 이 업무가. 저는 보시다시피 음식을 사랑하는데도 점점 요리를 안 하게 됐어요. 

담: ㅠㅜ...비건 실천까지 하기는 너무 힘든 거 아니에요?

쪼이: 먼저 말씀해 주셔서 말하는 건데, 저는 ‘내가 다 할 수는 없어’ 이렇게 정당화해요. 놀랄 정도로 주위 사람들이 다 비건이거든요. 그중에서 저만 느슨하게 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만날 때마다 죄책감을 느껴요. 그리고 비건 친구들이 하는 말이 다 맞아요. 안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담: 모든 직업에 윤리관이 필요하지만, 활동가들은 유독 윤리적인 이상과 실천의 괴리에 더 많이 좌절하는 거 같아요. 실천이 어려운 데에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는 거잖아요.

쪼이: 일단 저희 회사 근처에 비건 옵션이 되는 식당이 하나도 없어요. 본죽밖에 없어요.

담: 저도! 근무하는 논술학원이 대치동에 있는데 밥 먹을 때 거의 본죽만 가요. 

쪼이: 얼마 전에 약간 다른 가능성을 봤어요. 제 친구가 한성폭(한국 성폭력 상담소)에서 일하는데, 거기는 일단 소장님이 비건이세요. 팀원 중에도 비건이 있고. 탕비실이 되게 잘 돼 있어서 돌아가면서 요리를 하신대요. 그러니까 비건을 계속할 수 있는 거죠. 조직 안에서의 분위기도 중요하다는 걸 거기서 느꼈어요. 

담: 일반적인 조직 안에서 비건지향인은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 다른 구성원을 눈치 보게 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고 생각해요. 이건 딱히 비건지향인을 악의적으로 대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오해고요. 동물을 안 먹는 게 그걸 먹어서 나한테 나쁘기 때문은 아니잖아요. 가령 함께 식당에 가서 시킨 음식에 고기가 들어있을 때, 그러면 주변에서 어, 담이 어떡해, 담이가 먹을 게 없네, 하거든요? 물론 끼니를 못 챙길까 봐 걱정해주는 마음이지만. 그럴 때 기분이 이상해요. 사실 죽은 건 제가 아니잖아요. 비거니즘 운동에서 저는 당사자가 아닌 거고.

유리: 맞아요. 비건 지향인은 연대자.

담: 비건 옵션을 요청하는 게 ‘내가 어떤 종류의 취약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를 다른 방식으로 대접해달라’는 요구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초점이 거기 있는 게 아닌데도. 이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착취의 양을 함께 줄여 보자, 그런 요청인 거잖아요? 

쪼이: 제 친구랑 얘기하다가 깨달은 게 또 뭐냐면, 백설기라든지 콩떡은 비건이잖아요. 동물성 재료가 들어갈 리가 없잖아요. 회사에서 나이 많으신 분들은 떡을 좋아하세요. 

담: 나이 들수록 빵 먹으면 소화 안 될 수 있어요. 저도 떡 좋아해요.

쪼이: 저는 떡을 싫어하거든요? 근데 회사에서 간식으로 떡이 굉장히 많이 나와요. 그래서 친구랑 이런 농담도 해요. 아, 저분들이 이미 비건식을 주장하고 계신다ㅋㅋㅋㅋㅋㅋ좋은 일이다ㅋㅋㅋㅋㅋ
소진 방지

담: 피해 지원 활동가로 일한 지는 얼마나 됐어요?

쪼이: 2018년부터 햇수로 4년째. 얼마 전에 딱 3년 차 딱 지났어요.

담: 일이 슬슬 익숙해지고 그러나요?

쪼이: 신기한 게 3년째 충격받고 있어요. 가해자들의 행태는 항상 너무 충격적이어서. 다만 일부러 무뎌진 부분이 있기는 해요. 진짜로 익숙해졌다기보다는 나를 위해서...

담: 명상 기법 같은 거구나.

쪼이: 그냥 이런 게 있구나,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데. 그 와중에도 가해자들은 그 충격을 더 업데이트를 해줘요. 신기해. 가해자들이 진짜 성실해. n번방 사건 때 가해자 중 한 명이 신상 공개가 됐잖아요. 보자마자 제가 “어? 나 걔 아는데?” 이랬거든요. 심지어 그 사람이 유포한 피해자 중에선 제가 지원한 피해자가 없었는데도요. 어떻게 알았냐면, 제가 입사하고 나서부터 그 사람 촬영물을 계속 마주친 거예요. 다른 피해자를 지원하면서도. 일반 사람한테는 블로그 연재하는 것도 되게 힘들잖아요. 얘는 너무 장시간 꾸준해서 제 기억에 남아 있는 거예요. 

내가 따라잡아야겠다. 내가 저렇게 꾸준히 피해 지원을 해야지, 그래야 저들을 조금이라도 이길 수 있지. 저들은 항상 나를 초월하는 게 있어. 맨날 충격받고 배워요.

담: 쪼이가 지금 웃으면서 설명하잖아요. 거의 득도의 경지가 아닌지...

유리: 그런데 날마다 똑같이 충격 받고ㅋㅋ 배우다가도ㅋㅋ 한편으로는 그날 따라 심장에 뭐가 쾅 오는, 그럴 때가 있잖아. 갑자기 그간 웃었던 것들이 쭈르륵 눈앞에 나열됐다가 한꺼번에 격파가 돼버리는 그런 순간도 있거든요. 그래서 3년 동안이나 그 일을 했으면... 솔직히 어떻게 멘탈 관리를 하는지가 너무 궁금해.

쪼이: 본인도 하셨으면서. 저보다 많이 하셨어요.

유리: 내가 할 때는 그런 게 있었어요. 저는 이 분야에서 초창기에 활동한 멤버 중 하나였어서, 전문적인 케어를 받지는 못했지만, 민간의 도움이나 응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만났던 어떤 한의사 분이 홧병에 좋은 한약을 지어줬거든요. 근데 진짜 홧병에 좋은 거야. (쪼이: 거기 어디예요?) 경희한방병원이요. 너무 화가 나가지고 돌아버릴 것 같을 때 한 포씩 먹으면은 좀 진정이 됐어. 쪼이 같은 경우에는 규모가 큰 기관에서 여러 사람하고 일을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활동가들에게 케어가 정확하게 잘 들어가는지 그런 게 궁금해.

쪼이: 소진 방지라고 하는데요. 활동가들이 상담 같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저희 기관 안에 소진 방지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 제가 애를 많이 썼어요. 솔직히 저는 제가 말해서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일 시작할 때부터 ‘나의 힘듦을 어떻게 언어화 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많았어요. 

디지털 성폭력이, 이렇게 말하기 짜증 나지만, 주목받는 분야란 말이에요. 소위 말하는 높으신 분들도 많이 찾아왔어요. 장관도 오고 국회의원도 오고. 그때마다 그 사람들한테 계속 말했거든요. 소진 방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정규직 만들어 달라. 이런 얘기를 필터 없이 다 했어요.

유리: 너무 좋아. 멋있어.

쪼이: 진선미 장관 붙들고 저 너무 힘들다고, 정신과 가고 싶다고 그랬어요. 여성가족위원회 국회의원들이 다 찾아왔을 때도 그랬어. 거기 표창원도 있었다. 평소에 제가 발언하는 걸 좋아하니까, 팀장님이 그날 네가 저 자리에서 발언해라, 하고 데리고 갔는데, 그 사람들한테 (폭풍 연기) “눈 한쪽이 안보여요...” 이래가면서ㅋㅋㅋㅋ

유리: 존나 너무 좋아ㅋㅋㅋㅋㅋㅋ

쪼이: 웃픈 게, 그게 진짜 거짓말은 아니었어요. 어느 날 삭제를 하는데 오른쪽 눈이 안 보이는 거야. 그때 알았어요. 내가 삭제를 지금 당장 그만둬도, 나이가 들었을 때 눈부터 먼저 맛이 가겠구나. 국회의원들 왔던 날엔 삭제 업무를 안 했기 때문에 그 순간엔 사실 괜찮았거든요? 그래도 뻔뻔하게 말했죠. 저 눈이 안 보여요... ㅇ<-< 

담: 어떻게든 한번은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에 섭외하고 싶다.

쪼이: 하여튼 저한테는 그게 큰 성과에요. 소진 방지 제도가 실제로 생겼으니까. 저희는 전부 다 심리 상담받아요. 심리 상담 비싸잖아요. 근데 전 매주 가요.

담: 쪼이는 거리 두기를 잘 못 한다고 했는데, 삭제 지원을 해도 피해자와의 관계는 생기지 않아요? 피해자들 의뢰를 받을 때는 어떻게 해요?

쪼이: 저희 같은 경우는 접수를 받는 사람하고, 해당 피해자의 삭제 지원을 담당하는 사람이 달라요. 소진 방지 주장하면서 이 얘기도 했어요. 피해자의 음성을 들으면 이 피해자가 살아 숨 쉬는 사람이라는 걸 자각을 하잖아요. 계속해서 피해자의 인격을 인지하고, 중요한 존재로 느끼고. 그런 상태에서 촬영물을 보면 더 힘들 것 같은 거죠.

유리: 지금 먹고 있는 매시드 포테이토처럼 되는 거예요. 두개골 안이.

쪼이: 진짜 매시드 포테이토 될 수 있으니까. 아까 말한 것처럼 삭제할 때는 가해자의 생각에 이입해서 그들의 행동을 예측해야 하는 부분도 있단 말이에요. 그러다 보면 어느 정도 피해 촬영물을 소비해야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정도를 되게 잘 지켜야 돼요. 분리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유리: 저는 분리하는 방법으로 케이팝 들었어요. 제가 있었던 곳은 초기에 쪼이네 시스템보다는 좀 더 관계가 밀접했어요. 피해자의 상담 내용을 다 알고 시작하는 형태였어서. 어느 날부터 유포 사이트 화면만 보면 편두통이 너무 심한 거예요. 근데 화면을 끄면 아픈 게 싹 나아ㅋㅋ 그럴 때 케이팝 들으면 좀 분리가 돼요. 블랙핑크 진짜 많이 들었어.

쪼이: 저는 음식을 좋아하잖아요. 계속 먹으면서 해요. 이것도 너무 블랙코미디인 게. 처음에는 불법 촬영물을 보면서 못 먹겠는 거야. 구역질이 나와가지고. 그걸 보면서 편안하게 나 좋은 행동을 하는 거 자체가 구역질이 나서 음식이 맛있게 안 느껴지고. 그래도 내가 죽겠다 싶으니까 억지로 먹다가 나중엔 적응이 됐어요. 그렇게 먹고 먹고 먹다가 살이 존나 쪘어요. 15kg 쪘어요.

유리: 당뇨 조심해야 돼요.

쪼이: 저 양가에 다 당뇨 있어서 더 조심해야 되는데. 여기 와서도 큰일 났어요. 콜라를 엄청 먹었네.

꾀병도 병이다

담: 쪼이는 정신과 약은 안 먹어요?

쪼이: 안 먹어요.

담: 상담으로 충분해요?

쪼이: 저는 정신과 가면 문제가 없다 그래요.

담: 꾀병을 부려본 적이 있는지 묻는 말에 답을 이렇게 쓰셨죠. 없다. 이미 아픈 걸 인정받기도 어렵다.

쪼이: 정신과에 가니까 선생님이 저는 정신병이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증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환경에 계속 놓여 있는 거래요. 정신 질환이라는 건 상황하고 맞지 않게 병적인 증상이 발현되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서 공황은 누구한테나 올 수 있는데, 뜻밖의 상황에서 또는 사소한 이유로 공황 발작이 올 때, 그런 게 공황 장애인 거잖아요. 근데 저는 반복적으로 공황이 오지만 장애라고 볼 순 없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아프다고 말해도 되는 건지 헷갈렸어요. 제가 작년에 너무 아파가지고 119 불러서 응급실에 간 적이 있거든요? 

담: 그때는 어디가 안 좋았어요?

쪼이: 삶에서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었는데, 자는 와중에 눈알이 너무 아팠어요. 눈알을 누가 불로 지지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보통 눈이 피로하면 건조한 느낌이 들 수가 있잖아요. 그러면 눈을 감고 있는다든지, 특히 자고 있으면 그게 해소가 되어야 하는데 너무 괴로웠어요.

다음 날에 강의를 들을 때도 내내 아팠죠. 양해를 구하고 눈을 감고 들었어요. 그런데도 더 심해지기만 하는 거예요. 응급실에서도 이거를 설명할 병명도 없고, 피검사 해봐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고. 그래서 한의원 다니면서 한약 먹고 그랬어요. 꾀병을 따로 부리기에는 이미 겪고 있는 것도 너무 힘들어요.

담: 아까 다른 팀원도 운전하다가 앞이 안 보이는 경험을 했다고 했죠. 눈에 관련된 질환을 공통적으로 겪는 거예요?

쪼이: 네. 다들 그래요. 그리고 또 공통적인 게 다들 기억력이 안 좋아진다고 말해요. 지능이 떨어진다고.

예인: 이거 너무 전형적인 PTSD 아니에요?

쪼이: 기억력이랑 어휘력이 떨어져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상황에 맞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나. 제가 맨날 사람들한테 밑밥 까는 게, 30년 후에 진흥원을 산재로 고소할 수도 있다고.

유리: 나는 그게 어떤 감각이었냐면, 눈에 실핏줄이 있잖아. 메인 핏줄이 있으면은 거기서 뻗어 나오는 굉장히 세밀한 가닥도 있잖아. 마음에도 그런 식으로 눈이 있는데, 그 미세한 잎맥이 똑똑똑 끊기는 거야. 원래는 세세한 나뭇잎의 결이 모여서 숲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게 점점 사라져. 지능이 떨어진다는 게 그런 느낌이었어. 

담: 근데 지금 너무 섬세하게 말한다.

유리: 지금은 할 수 있는데 그 상황에서는 설명을 못 했어요.

쪼이: 그리고 병원 가서 “나뭇잎의 잎맥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이럴 수는 없잖아. 눈 때문에 응급실 갔을 때 119 구급대원이 이런 일로 구급차 부르는 거 아니라면서 각종 긴급 상황이 적혀있는 팜플렛을 주셨어. 근데 살면서 눈을 못 뜨는 게 처음이니까 나한테는 분명 긴급 상황이었거든요.

담: 삭제 지원 활동가들이 공통적으로 혹사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기관이 눈인 거네요. 다른 신체적인 증상도 있어요?

쪼이: 신체화 증상이 많은데, 막상 설명하면 굉장히 추상적이에요. 예를 들어서 어떤 피해 촬영물을 봤는데, 갑자기 사탕을 잘못 삼킨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목에서 났어요. 아기 때는 식도가 작으니까 사탕이 크게 느껴지잖아요. 목에 커다란 청포도 사탕이 걸려 있는 느낌. 근데 병원에 가서 청포도 사탕을 삼킨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럴 순 없으니까.

담: 진단이 안 나오니까.

쪼이: 답답해서 한번은 다른 조직이나 단체, 커뮤니티에 갔을 때 내 상태를 뭐라고 설명을 하면 좋을지를 정신과에 물어봤어요. 선생님이 가벼운 우울증이라는 거예요. 그게 충격적이었어요. 그리고 주변에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은 하루에 약을 적어도 세 포씩은 먹는단 말이야? 근데 나는 한 포밖에 안 주는 거야. 이상했어요. 체감되는 증상으로는 약을 병으로 받아 놓고 퍼먹어도 모자랄 거 같은데. 

담: 질문지에 마지막으로 원 없이 엄살을 부려달라고 부탁드렸죠. 쪼이가 “이거는 라이브로 보여드릴게요.” 이렇게 썼어요. 보여주실래요?

쪼이: ㅋㅋㅋㅋㅋ 지금까지의 인터뷰 자체가 엄살 아니었나요? 따로 준비한 건 없어요. 근데 엄살을 잘 부리긴 해요. 페북하고 인스타에도 아프면 아프다고 엄청 광고해요.

유리: 엄청 하나요? 저 페이스북 친구인데 잘 모르겠어요.

쪼이: 제 딴에는 두 가지 이유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첫 번째 이유는 개인적인 측면인데, 제가 평소에 되게 밝단 말이에요. 사람들이 보기에도 해피해보여요.

담: 정말루. 이름도 쪼이!

유리: 조이도 아니고 쪼이!

쪼이: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제가 아픈 걸 몰라요. 워낙 외향적이어서, 아프고 우울해도 일단 나와서 사람을 만나면 순간적으로 텐션이 올라가서 괜찮아 보여요. 근데 이게 괜찮은 거라기보다는 조증에 가까운 거예요. 만약 제가 제삼자가 봤을 때도 아파 보인다면 그건 심각한 상태겠죠. 그러니까 약간 강아지 아픈 거랑 비슷한 것 같아요. 강아지도...

담: 죽기 전까지 티가 안 나잖아요. 귀신같이 숨겨.

쪼이: 맞아요. 강아지들도 괜찮은 척을 잘하니까 진짜 아플 때 돼서야 병원 데려가잖아요.

담: 유리 왜 웃죠 ㅋㅋㅋㅋㅋㅋ?

유리: 그냥 죽기 전까지 티가 안 나는 쪼이를 상상하니까 웃겨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쪼이: 나는 정말로, 못 걸을 정도로 무릎이 아프다고 해도 사람 만나면 너무 기분 좋고 밝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근데 어느 순간에 사람들이 나의 상태를 정말로 모르는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광고를 하기 시작했어요. 몸살 기운이 너무 심해. 너무 우울해. 나 지금 죽고 싶어. 이렇게.

두 번째 이유는 사회적인 측면인데요. 기성세대가 이런 20대, 30대 여성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껴요. 이건 여러분도 공감하실 거 같아요.

담: 맞아요. 저는 우정이 깊은 선생님하고 만나도 여기서는 세대가 갈리는구나, 그런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어요. 특히 고통에 대해 말할 때 그래요. ‘고통’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선생님은 바로 전쟁을 떠올리시거든요.

쪼이: 전에는 좀 다르게 생각했었어요. 저는 대안 대학교를 나왔거든요? 거기는 50~60대 한국 남성 엘리트 교수들이 강의를 많이 해요. 그분들 앞에서 제 고통을 말하는 게 무의미해지는 이유가, 그들은 학생 운동하다가 납치당한 세대잖아요.

담: 고문 당하고요.

쪼이:  그분들은 나의 상태가 공감이 하나도 안 되겠죠. 그 정도쯤이야,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학교 다닐 때는 내가 아재들한테 그것까지 바라는 건 에너지 소모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피해 지원을 하면서, 여성 운동 판에 들어와서도 비슷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물론 저의 상태를 객관화할 수 있도록 해준 감사한 분들도 있어요. 그분들이 공통적으로 한 얘기 중에 하나가 이거에요. 지금 10대부터 30대 청년들의 상태가 심각하다. 왜냐하면 우리 때는 힘들다고 얘기는 했어도, 죽고 싶다는 얘기는 안 했다. 이게 그들이 봤을 때도 이상한 현상인 거예요. 그래서 저의 힘듦을 자꾸 언어화하려고 해요. 

담: 쪼이한테는 엄살도 운동이구나.

쪼이: 네. 쭉 그러니까 어떤 분은 내 페북 팔로우 취소하셨나 봐ㅋㅋㅋㅋㅋㅋ 처음에는 댓글도 달아주고 그러던 분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약간 호통을 치시더라고요. 아프면 병원에 가라고.

담: 사실 보기가 힘들죠. 나는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도 좋지 않은 것 같아. 첫째로 잘 못 믿겠어요. 타인의 고통을 진짜 똑같이 느낄 수 있다고? 나란히 감기에 걸려도 겪는 몸이 이렇게나 다른데.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의심이 돼. 둘째로는 실제로 다 공감을 해도 문제잖아요. 사람은 고통을 느끼는 걸 싫어하니까, 오히려 내가 이입할 수 있는 고통이라고 판단되는 순간 상대를 뚝딱뚝딱 고쳐가지고 그만 아프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공감 좀 못해도 괜찮은 것 같아요. 오히려 상대의 고통하고 나하고 거리 두기가 잘 되면 조금 더 오래 그 사람의 증언을 들어줄 수 있잖아요. 견딜 만한 체력이 남을 때는, 보는 내가 괴로우니까 너의 고통을 전시하지 말아라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있잖아. 우리 어제도 이런 얘기 하지 않았어요? 고통을 전시해야 하는 상태도 괜찮은 상태는 아니라고? ㅋㅋㅋㅋㅋㅋㅋ

유리: 꾀병도 병이다ㅋㅋㅋㅋㅋ

담: 맞아.

유리: 나는 자살 생각 엄청 많이 하거든. 근데 그러면 자살팔이 한다고 그러거든요.

담: 맞아. 자살팔이라는 말이 있지.

유리: 그렇다고 내가 진짜인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쪼이: 자 이거 보세요~) 이럴 순 없잖아 ㅋㅋㅋㅋㅋㅋ 죽고 싶은 걸 증명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담: 그 상태도 딱히 병이 아니지는 않아 ㅋㅋㅋㅋㅋㅋ

쪼이: 자살 참고 있는 상태, 자살 마려운 상태 ㅋㅋㅋㅋㅋㅋㅋㅋ

유리: (병뚜껑을 든다) 자살 사고는 아직도 나날이 이렇게 있어. 다만 알고리즘을 내면에 만들어가지고 관리를 하지. 스스로 질문을 여러 개 만들어서 물어봐. (병뚜껑을 움직인다) 대답이 ‘아니오’라면 여기로 가시오. 대답이 ‘네’이면 여기로 가시오. 이런 식으로 프로세싱이 돼 있어. 이 안에서 자살사고를 계속 돌리면서 자살을 유예하는 거야. 이런 관리의 필요를 언제 느꼈냐면, 나는 활동 할 때뿐만이 아니라 10대 때도 자살하고 싶다고 많이 말했거든요? 근데 이게 말을 하면 할수록 우스워지더라고요. 

원래 말이라는 게 하면 할수록 뼈가 없어지는 성질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우스워지는 성질의 말이야. 계속하다보니까 나 스스로도 알겠더라. 주변 사람들이 내가 정말 죽기 전까지는 안 믿겠구나. 나중에는 반응이 ‘진짜 죽을 때 불러줘’ 이런 느낌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

담: 양치기 소년 되는 거야ㅋㅋㅋㅋㅋ

유리: 20대 초반까지 그런 계기를 거치면서 죽고 싶다는 말을 비교적 덜 하고, 비교적 정상인 척을 할 수 있게 됐어. 이게 밖에서 보기에는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성공적이지 않나. 자살 얘기 좀 덜 하고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너도 살고 나도 살았다는 것을 축하해

쪼이: 저는 지금 20대 여성인데, 무서운 게 30대인 친구들하고 만나서 얘기를 하면 그 친구들 주변에는 다 죽은 친구들이 있어요. 이게 제 삶의 가장 큰 두려움이에요. 내 주위에서도 누구 한 명은 죽겠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어요. 시한폭탄 같아요. 

유리: 죽을 수도 있는 그 친구가 나일 때도 많고요.

일동: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쪼이: 나도 마찬가지야. 모르는 사이에 내가 나 스스로를 죽일 수도 있어.

유리: 응. 스스로에게 잘해줘야 돼.

쪼이: 내가 잘해줄게요.

유리: 잉...8ㅅ8 나랑 17년 동안 친구인 애들이 있어. 관계가 오래됐잖아요. 그 친구들 중에서 어렸을 때 가정환경이 안 좋았던 친구가 있는데, 나도 그때 상황이 진짜 안 좋았거든. 그걸 서로 다 보면서 자란 거야. 그래서 만나면 축하하거든요. 살았다, 이거를. 너도 살아 있고 나도 살아 있다. 이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담: 다 데리고 갈 수 없으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 많이 하죠. 주변 순찰을 잘 돌고, 특별히 걱정되는 사람이 안  떠오르는 경우라고 해도. 일단은 괜찮아 보여. 1, 2년 간은 문제없을 거라고 쳐. 그래도 통계나 한국의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볼 때, 10년 후에는 누가 옆에 없을 가능성도 많은 거예요.

쪼이: 뉴스 같은 거 뜨면 서로 상태 확인하는 톡방 있지 않아요? 살아있지? 괜찮지?

담: 아, 중요하죠.

유리: 나도 있어. 약 먹었니? 이런 거 물어보는 톡방.

쪼이: 어떤 사람은 주기적으로 만나줘야 돼. 근데 느낄 수 있는 게, 그 사람도 나를 만나주고 있어. 그런 관계가 있어요.

담: 저는 순찰 돈다고 표현해요.

유리: 나는 그런 식의 도움을 전부 강하게 기억하고 있거든. 왜, 각골난망이라고 하잖아. 뼈에 이렇게 새기는 도움이 있어. 근데 이제 존나 뼈가 조각칼로 다 파여가지고 남은 뼈가 없는 것 같은데ㅋㅋㅋㅋㅋㅋ

쪼이: 주변 사람들이 열심히 살렸어?ㅋㅋㅋㅋㅋㅋㅋㅋ

유리: 응. 쪼이도 그중에 하나예요. 

쪼이: (유리를 와락 안는다)

유리: 쪼이가 나한테 옷을 엄청 많이 줬어. 사람이 죽고 싶으면 별 하찮은 이유로도 죽고 싶어지잖아.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죽을 일이 아니라는 걸 나도 알아. 아까 그 알고리즘 첫 번째 질문이 그거에요. 항상 물어봐야 돼. 이게 정말 죽을 만한 일인가?

한번은 옷장을 열었는데 입을 옷이 없었어요. 그날따라 그게 견딜 수가 없는거야. 예쁜 옷 입고 싶어서. 평상시에는 도전정신 발휘하지 않고 오랫동안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어느 자리에서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종류의 옷을 사요. 근데 나도 취향이 분명히 있어.  그리고 그 취향은 굉장한 노력과 자본이 투여돼야지 구현할 수 있는 그런 취향이야.

근데 난 자본이 없으니까 남이 버린 옷을 주워 입거나 해야 돼.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이 다 뒤죽박죽된 옷장을 보다가... 아니... 나도 눈이 있는데, 나도 배운 사람인데! 

담: 무엇을 배운 사람? ㅋㅋㅋㅋㅋㅋ

유리: 뭐가 아름다운지를 배운 사람인데ㅋㅋㅋㅋㅋ 

그날 내가 SNS에 올렸거든요. 이제 새 옷 좀 입고 싶다, 이런 식으로. 그걸 보고 쪼이가 나를 불러서 쪼이 집에 안 입는 옷이 많으니까 가지고 가라 그랬어. 옷을 많이 줬어. 솔직히 그중에서 많은 것들을 못 입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

쪼이: 그 옷들이 좀 그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담: 둘이 옷장이 교차되는 상상은 잘 안 되긴 하는데 ㅋㅋㅋㅋㅋ

쪼이: 그때 그 원피스 입었어요?

유리: 아니요...

쪼이: 아니, 그때 생각하기에는 유리랑 너무 잘 어울리는 원피스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주면서 알았어. 안 입겠구나.

담: 생각이 다를 수 있어요.

유리: 그래도 쪼이가 큰 도움이 됐어. 그리고 그 날 나한테 산딸기쨈 사줬잖아요. 그 산딸기쨈도 맛있었어.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거지같이 보일 수 있지만...^^

쪼이: 저도 한 거지해요.

담: 나도 원하는 물건과 사게 되는 물건 간의 갭을 견디기가 어려울 때가 많았어. 어떤 밤에는 맘에 안 드는 물건 하나를 노려보면서 내가 저것 때문에 죽을 것 같아... 그러느라 못 자는 거야.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거의 빈티지 옷을 사는데, 예전엔 가끔 새 옷 입고 싶다, 새 헌 옷 말고. 그런 생각 했었어요. 비건 되고 나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이제 빈티지 옷으로 옷장이 가득 차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거야. 자랑스럽게까지 느껴져. 내가 가난해서 이런 게 아니라 윤리적이어서 그런 거라고 거창하게 의미부여 하고.

유리: 담이 넝마주이 윤리의 시대가 올 거다, 그런 얘기 하잖아.

담: 응. 그러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있어야 돼. 모두가 거지들한테 배워야 하는 시대가 올 거야.

유리: 제가 진짜 잘 가르칠 수 있죠.

쪼이: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