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이란 단어조차 허락되지 않는 노동
 Season 6  vol 75. 💡2026.10.30.~11.5

돌보는 자는 왜 돌보지 않는가
돈을 벌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

여자도 성인이 될 수 있다

입주자님 안녕하세요! 플랫팀 김서영 기자입니다. 이번 주도 잘 지내셨죠? 

어느덧 10월의 마지막 플랫레터네요. 올해의 끝도 다가오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다가올 11월에도 플랫과 함께 풍성한 이야기 나눠주세요. 

이번 주에도 입주자 프로젝트 [그러코 이 집안을 이겨나갔어]를 전합니다. 그 시절 여성들의 삶이란 신산함과 치열함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자식들을 먹이고 공부시키기 위해 도시에서 분투했던 이야기가 이번 화에 펼쳐집니다. 

또 플랫은 입주자님들의 성원 덕분에 플랫x김영사 북토크, [읽는시간]도 잘 마쳤습니다. 다음 북토크 소식도 기다려 주세요🥰

그럼 이번 주 플랫레터 시작합니다.

과연 우리 사회는 돌보는 사람을 돌보고 있을까요. 돌봄이 필수가 된 시대, 돌봄 노동자의 권리는 자주 뒷전으로 물러납니다. 여기에 더해 성별화된 노동 구조 하에서 돌봄은 여성의 헌신과 봉사의 영역으로 치부되고, 돌봄 노동자들은 전문성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도 시달리고 있고요. 

2023년 유엔은 10월29일을 ‘세계 돌봄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이 날을 맞아 요양보호사, 간병사, 특수교육지도사, 노인생활지원사, 사회복지사 등 5개 직종 6명의 현장 노동자들이 모여 돌봄 노동자로 겪었던 괴로운 현실을 서로 나눴어요. 

요양보호사 이은복씨는 9년차입니다. 그는 환자들에게 맞거나 성추행을 당해도 문제제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두 손으로 어르신 몸을 지탱해야 해서 무방비 상태였는데, 그 순간 추행을 당했다. 뒤에는 벽이라 도망갈 수도 없었고, 그 분을 붙잡은 손을 놓으면 낙상될 수 있기 때문에 놓지도 못했다. 아픈 것보다 수치심과 두려움이 더 컸다. 혼자 거동을 못하는 힘 없는 노인에게 성추행 당했다고 하면 보호자도 기관도 믿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른 이들의 경험담도 비슷합니다. 간병사 한영란씨는 이렇게 말했어요. 

“간병사로 일하면서 남성 환자에 의한 성희롱·성추행 피해를 많이 봐 왔다. 어떤 환자는 간병사가 병상 아래 간이침대에서 쉬고 있으면 ‘내 침대로 올라와서 같이 자자’고 한다.”

이용자의 자택에 일일이 방문해야 하는 노인생활지원사의 경우 혹시 당할지 모르는 피해에 대한 공포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르는 상태로 가야 하기 때문인데요. 유승현씨는 바로 그런 점이 두렵다고 했습니다. 

“이용자 자택에 방문해 일하는데 야한 동영상을 같이 보자고 하거나, 한 번 만져보자고 하거나. 그런 성추행·성희롱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더 두려운 건 이용자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방문 돌봄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용자가 성범죄 관련 전과가 있는지, 또는 어떤 감염병이 있는지 사전 정보가 제공되지 않은 채로 방문 돌봄을 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말할 창구도 마땅치 않고, 피해 사실을 알려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담당 지자체나 국가가 “이용자 보호가 우선”이란 태도를 취하기도 하고, 돌봄 노동자 스스로도 재계약이 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입을 다물게 됩니다.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도 ‘내 덕분에 당신이 돈을 번다’는 식의 태도로 ‘갑질’을 하기도 합니다. 특수교육지도사 정유정씨는 “수없는 위험에 직면하지만, ‘위험’은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단어”라고 자조합니다. 물론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예전에 특수교육 관련 토론회에서 노동조합이 교육 환경이 ‘위험하다’고 표현했다가, 학부모들이 공개 사과를 요구한 일이 있었다. 5대 일간지에 공개 사과문을 게시하라고 했다.” 

돌보는 자의 안전과 권리는 누가 돌봐야 하는가. 어쩌면 답은 정해져 있지만 모두가 외면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여성의 노동이란 점에서 사회적으로 저평가되는 고질적인 문제도 있고요. “돌보는 사람이 존중받아야 좋은 돌봄도 가능하지 않을까”란 돌봄 노동자의 말이 와닿네요. 


플랫 입주자 프로젝트 [그러코 이 집안을 이겨나갔어] 시리즈의 2회가 나왔습니다. 손녀 이수영씨가 기록한 할머니 김정임씨의 생애사인데요. 꿈많았던 소녀가 종갓집 큰며느리가 돼, 기대와 달리 도시로 가지 못하고 농사일과 집안일을 해야 했던 이야기를 앞서 전해드렸습니다. 김정임씨는 결국 가출하기로 마음먹었다가 실패했어요. 이번 화에선 그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처음엔 울산으로 가려고 했으나, 적응에 어려움이 예상돼 돌아옵니다. 김정임씨가 그 다음으로 문을 두드린 곳은 광주였습니다. 

“설 쇠고는 이불 보따리, 쌀가마니 짐 싸서 광주에 있는 친정 오빠네 집으로 왔어. (중략) 내가 악착같이 도시에서 살라고 그런께 ‘느그가 노력하면 살 거다’ 이랬제. 내가 돈이 있어, 배움이 있어? 내 고집으로 끝까지 우겨서 드디어 광주에 발을 딛게 되았지.”

‘돈 되는 일이라면 다 하는’ 삶이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세탁소를 본업으로 하며 온갖 가욋일까지. 그러면서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짐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 백운동에 세탁소 자리가 한 반데(군데) 났다더라고. 막상 광주에 오긴 왔지만 다른 재주는 없고, 그래도 바느질은 해 왔던 거니까 그거라도 해 보자 싶었지. (중략) 그때부터 할아버지랑 둘이 세탁소를 했지. 할아버지는 다림질하고, 나는 바느질하고.”

“한 달에 35만 원, 40만 원 남짓 벌었어. 내 손으로 돈을 벌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지. 글지만 ‘어서 벌어서 자식들 갈치고 돈 모아야지.’ 오로지 그뿐이었어. 안 먹고 안 입고 돈 한 푼 더 모아볼라고 시골서 쌀 갖다 먹고.” 

“그것뿐이다냐. 몇 푼이라도 벌 수 있으면 뭐든 다 해봤지. 마침 동네에 밤 껍데기 깎는 데가 있더만. 오죽하면 세탁소 마치고 저녁이면 거기 가서 밤도 깎았어. 한 푼이라도 더 벌라고.”

“주말이면 또 시골에 농사지으러 댕겼어. 우리가 광주로 나와 부렀은께 시어른 둘이서 농사짓기 힘들잖아. 매주 토요일이면 세탁소 문 닫고 밤에 차 타고 시골로 달려갔지. 그렇게 3년을 주말마다 올라 댕겼어.” 

점차 사업을 불리고 이사도 가면서 고향 동네 사람들 사이에선 도시로 진출해 자리 잡은 선례가 되기도 했습니다. 요즘에 비해 마을 공동체가 더욱 살아있었던 시절의 이야기예요. 

“거그서 7년간 했지. 그땐 나 혼자 세탁소를 허고, 할아버지는 몇 년 뒤에 부동산업에 뛰어들었어. 형편이 차츰 나아져서 모은 돈으로 차도 처음 사 봤어.”

“시골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에 많이 찾아왔어. 동네 사람 중에 도시 나와서 사는 사람이 우리뿐이었거든. 무슨 일 보러 광주 오면 항상 우리 집에 들렀어. 말하자면 사랑방이었제. 없는 반찬이어도 밥 한 끼 맥여서 보내면 내 마음이 흐뭇했어.”

그러면서 시댁 어르신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납니다. 김정임씨의 인생은 또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그러코 이 집안을 이겨나갔어]는 매주 목요일 공개됩니다. 다음 3편도 기대해 주세요! 


조선은 유학의 나라고, 인구의 절반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조선의 여성 유학자’란 분류는 여전히 낯선데요. 지난달 30권으로 완간된 <창비 한국사상선>에는 ‘조선의 여성 유학자들’이 포함됐습니다. 13권 <임윤지당·이사주당·강정일당>에서 여성 유학자들의 글을 옮기고 해설한 이숙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의 인터뷰 기사를 소개합니다. 

이숙인 연구원은 유교 경전의 여성사상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조선 여성의 사상과 삶을 연구해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조선시대엔 여성의 사회 활동에 큰 제약이 있었는데요. 이숙인 연구원은 “2000년 역사가 넘은 유교 경전에는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며 “서구의 자유주의가 도달하지 못한 삶의 대안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가능성을 띄웠어요. 

임윤지당·이사주당·강정일당은 모두 조선 후기인 영조~순조대를 살아가며 각기 다른 사상의 궤적을 남겼습니다. 

‘최초의 여성 성리학자’로 꼽히는 임윤지당(1721~1793)은 일찌감치 남편과 사별하고 자녀 없이 일생을 보냈습니다. 그는 고독 속에서 학문을 벗 삼으며 학문을 하는 이유로 “고기 맛이 입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아 그만두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고 밝혔어요. 

다만 여성이었던 탓에 스승·제자와 교류하지 못했고, 학문을 해도 세상에서 펼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숙인 연구원은 이를 두고 “윤지당은 학문적으로 청정한 공간에 있어서 그런지 단호한 원칙주의자였다”고 평가합니다. 후손, 제자, 학파도 없던 윤지당은 말년에 스스로 문집 간행을 추진했고, 친동생과 시동생의 도움으로 문집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담장 안에서 고군분투하면서도 “여자도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을 실천하려 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가난한 양반집에서 태어난 이사주당(1739~1821)은 20세 연상 남편의 네 번째 아내로 출가해 남편을 스승 삼아 학문을 익혀나갔습니다. 사주당은 임종하며 <태교신기>를 제외한 모든 글을 불태워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로 <태교신기>에 영혼을 갈아넣었는데요. 그의 태교론은 가문의 ‘대 잇기’보다 여성의 ‘아이 낳기’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기존 남성 유학자의 이론과 크게 달랐습니다. 기존 태교 논의가 덕성, 인성을 논했다면, 사주당은 위생, 건강을 아울렀다는 점도요. 사주당은 직접 경전을 편집해 딸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강정일당(1772~1832)은 6세 연하 남편을 맞아 학문 스승 역할을 했습니다. 남편이 나태해지면 ‘척독’(쪽지 편지)을 통해 “조심하고 노력하라”고 꾸짖었고, 가난 속에서도 “배우지 않으면 사람의 도리를 행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남편은 정일당 사후 아내를 기리는 수 편의 조문을 남겼고, 자신이 지었던 것으로 돼 있던 글을 아내 이름으로 되돌리기도 했습니다.

이 셋의 일생에선 ‘유교사회 조선’이란 이미지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여성 유학자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숙인 연구원은 “경전 해석의 여지가 좁아진 것은 한(漢)대 들어 유교가 국가 이데올로기가 되면서부터입니다. 이때부터 남녀의 상하 관계가 일상에 적용됐습니다. 조선에서는 경전의 질서 개념과 국가 질서 개념이 연결되면서 이런 생각이 훨씬 심해졌죠”라고 설명합니다. 

조선의 유교가 남성중심 이데올로기였다는 점을 완전히 부정하긴 어렵지만, 그 속에서도 수양하고 정진한 여성들은 분명히 존재했네요.


이번 주에는 류현서 인턴기자가 흥미로운 전시를 소개합니다! 가을은 전시의 계절이기도 하지요! 


🍵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


“자신이 사용하는 AI에게 700자 이내로 자신을 가감 없이 분석해달라고 요청해 이를 작성해주세요.” 최근 저를 당황시킨 한 방송 제작사의 자기소개서 문항입니다. AI로 자아를 분석하는 최신의 트렌드를 반영하겠다는 의도였겠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인간 고유의 것인 정체성마저 AI가 판단하도록 내어주게 될 미래는 상상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친절하고 깔끔한 챗GPT에게 대체되는 것은 아닌지 문득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시대불문 화두였습니다. 30여년 전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아”라며 기타 줄을 타고 흐르던 고뇌는 이젠 기술과 결합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수많은 자아들은 SNS 공개 계정과 비공개 계정을 오가고, 때론 알고리즘이 만든 버블 속에 갇히기도 합니다. 이 심오하고도 어려운 질문을 무려 60년 전부터 던져왔던 여성 예술가가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린 허쉬만 리슨입니다.


전시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는 기술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되어 온 그녀의 자아들을 펼쳐 보입니다. 1941년생인 그녀는 비디오부터 인터넷, AI까지 다양한 기술과 감응해왔습니다. 특히 페미니스트 작가의 시선으로 기술의 관점에서 여성의 정체성이 재현되는 방식을 미디어 아트의 형태로 표현해낸 점이 인상깊습니다.


제1전시장의 ‘카멜레온의 고백’ 섹션은 유년기에 대한 그녀의 회고입니다. 형체 없이 흩어지는 각양각색의 얼굴에서 혼란과 불안을 어렴풋이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슬프고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녀의 분열은 기계와의 접속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임신 중 산소탱크에 의존해 치료받았던 기억을 형상화한 <숨쉬는 기계>에서는 깊은 호흡이 끊임없이 흘러나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모든 작품의 끝에서 느껴진 것은 생명력이었습니다.


그녀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보기도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중 태어나 미국 전후 TV 프로그램과 광고를 경험한 그는 ‘여성으로서 자신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재구성 되는가’ 끊임없이 질문했다고 합니다. 그는 직접 ‘로베르타’라는 금발 푸른 눈의 여성이 되어 그의 삶을 몸소 겪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룸메이트를 구하는 광고를 내기도 할만큼 구체적으로 진행됐지만 곧 종료됐습니다. 로베르타로 분한 리슨이 신변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인데요. 그 예상 가능한 마무리까지가 작품의 완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섹션은 제 3전시장의 ‘살과 기계’였습니다. <팬텀림>은 포토 콜라주 기법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여성의 신체가 카메라, TV, 쌍안경 등의 이미지와 결합됩니다. 침대 위 편안한 숙면의 자세도 TV 속 이미지와 결합하는 순간 사뭇 다른 뉘앙스를 풍기게 됩니다. 이를테면 게슴츠레 감은 듯 뜬 두 눈 같은 이미지요. ‘팬텀림’이 팔이나 다리가 절단된 뒤에도 여전히 통증을 느끼는 환상지를 가리킵니다. 동의한 적 없는 통념에 끊임없이 대상화되며 괴로워하는 여성들이 떠오르는 작품이었습니다.


플랫이 발행했던 기사🧵‘기술이 여성의 이름과 경험을 재현할 때’도 생각났습니다. 챗봇, 홀로그램 등의 기술이 여성을 재현할 때 특정한 이름과 얼굴 같은 개별 서사 없이 젊은 여성의 모습만을 반복 생산해온 역사를 짚어준 글이었어요.


전시 말미의 <전자일기>에서는 수십년간 기술 속에 존재해왔던 자신을 기록하고 스스로 해석해온 리슨의 모습이 보입니다. “나는 나로 태어났지만, 하나의 나로 살아야할 이유는 없다”는 그녀의 말처럼 그는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자아를 바라봐 준 것입니다. 파괴와 소멸 대신 생성과 저항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수많은 자아들은 기술에게 스스로를 내어주지 않을 수 있도록 길을 터줍니다. 공존의 방식인 겁니다.


“나를 700자로 정의해줘” 라는 요청에 딸깍-하고 돌아오는 답을 마주하는 방법은 수만가지 내 모습을 스스로 들여다보고 존재 가치를 불어넣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때 AI는 단 한 장의 글로 나를 정의할 수 없을 테니까요. 어쩌면 404 에러창를 띄우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수많은 페르소나로 존재하는 자신을 인정해보고 긍정하는 것, 범람하는 기술의 시대에 여성이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이 아닐까요?



👤 할머니께서 정말 당차시네요.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어서 혼자 광주까지 올라가시고! 당시 종부로서 살아가셨던 어려움도 느껴지고. 그다음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 울 엄마, 할미 생각이 마니 나요^^ 다음 글이 많이 기대 됩니다

👤 그때 이쁜 이모였읍니다 지금도 겁나 예쁘지요...

👤 이게 사람 사는 삶인가….저도 종갓집 출신인데 놀라고 갑니다. 할머님이 대단하시네요

👤 가해자감시센터 만들어서 24시간 감시하고 이상 발견되면 경찰출동요청해서 가해자들이 두려워하는 세상을 만들어야됨. 이번에 정부랑 국회가 관계성범죄대책위원회 만들었다는데 부디 이번에는 제대로된 대책들이 나오길 바람.

👤 관계성 범죄에 대한 형벌은 합의, 반성, 초범을 양형에 반영해서는 안됩니다. 해당 범죄는 구조적인 이유로 합의가 많을 수밖에 없고, 반인륜 범죄자에게 반성은 무의미하며, 상습범에게 초범 논리는 통하지 않습니다

👤 싸가지없게 사세요. 이상한 양심의 가책은 극복하세요. 정말 행복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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