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덟 번째 (여자) 사람 : 배우 한예리

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From. someone nice

에디터 🐱 윻, 🐹 또,

디자이너 🐰 몽미꾸가 만들었어요!

사진 출처 : 엘르 코리아 2021 3월호

Vol.8 배우 한예리

차분하고 따뜻한 색감을 지닌 배우.

2007년, <기린과 아프리카>를 통해

미장셴 단편 영화제에서

인기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더 테이블>, <춘몽>,

<최악의 하루>와 같은 독립 영화는 물론,

<청춘시대>, <녹두꽃> 등 드라마에 출연하며

여전히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가장 최근 작품인 영화 <미나리>로

큰 사랑을 받았다.

오늘 1일 막을 내린

2022 서울 국제 여성영화제에 특별 초청되어

<예리한 순간들>이라는

배우 특별전이 진행되기도 했다.

🐱 당신의 목소리는 바다유리를 닮아서

한예리 배우를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자신있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 잘 알아? 라고 묻는다면 그건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호에서는 한예리 배우에 대한 멋진 이야기는 몽미꾸와 또에게 맡기고, 저는 '한예리'라는 배우의 아주 작은 파편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입니다.

처음으로 한예리라는 이름을 인지하게 된 계기는 목소리였습니다. '제이름은요'라는 노래를 통해서 말이죠. 언제 어디서 처음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심플한 반주 위로 흐르던 보드랍고 단단한 그녀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순간만큼은 생생합니다. 그 노래가 KBS 드라마 스페셜 <연우의 여름>이라는 작품에 나온 노래라는 것도 가사를 외울 정도로 노래를 들은 후였죠.

그렇게 잊혀지는 듯 싶었던 한예리라는 이름은 <코리아>의 북한 탁구선수 류순복을 만나며 다시 한 번 기억 중추를 두드리게 됩니다. 하지만 너무 강렬한 두드림이었을까요? 설렘과 긴장 사이를 오가는 순복이 얼굴로 내뱉는 북한사투리는 '제이름은요'를 불렀던 사람이라는 기억마저 까맣게 지워버릴 정도였습니다. 배우가 아니라 정말 탈북민이 연기를 한 건 아닌지 검색해 볼 정도였거든요.

그러다 드디어 제 귓가에 한예리 이름 세 글자를 또렷하게 읆조려 준 작품, <청춘시대>를 만납니다.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바라는 거라곤 오직 하나, 죽을만큼 노력해서 남들처럼 평범해지는 것을 꿈꾸게 된 진명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많이도 울었습니다.

울음기 하나 없이 담담하게 '소리 내어 울고 싶을 때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아, 한예리는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구나.'를 처음으로 깨달은 느낌이었습니다. 늘 어딘가를 떠다니듯 부유할지언정 그 안엔 변하지 않는 단단한 중심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 그렇게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바다유리를 닮았다고요.

바다유리는 버려진 유리조각이 오랜 시간동안 바다 속 파도에 의해 깎여지면서 만들어집니다. 원래의 색은 그대로지만, 모습만큼은 생각할 수 없을만큼 보드랍고, 맨질맨질하고, 깨지기 전보다 한결 따뜻하게 빛나죠. 데뷔 이래 한예리 배우가 연기한 모든 역할들 역시 그렇습니다. 여기저기 부딪히고, 때로는 깎여나가지만 거기서 무너지지 않고, 새로운 무언가로 나아가죠. 앞으로 그녀는 또 어떤 색의 바다유리를 줍게 해줄까요? 생각만해도 즐거워지는 일입니다.

P.S 이 글을 쓰며 오랜만에 '제이름은요'를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이번호를 보시면서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예리한 순간들

앞선 글 말미에 윻이 소개한 '제 이름은요'를 듣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할 이야기와도 관련이 있거든요.

올해 서울 국제 여성영화제에서 한예리 배우의 첫 데뷔부터 지금까지 주요 작품 10편을 상영하는 특별전 <예리한 순간들>이 진행되었는데요. 그 중에서 유일한 드라마 상영작인 <연우의 여름> 속 한예리 배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연우의 여름>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인디 밴드 보컬을 하고 있는 연우가 짧은 여름동안 ‘나’를 발견하는 과정을 그린 단막극 드라마입니다. 병가를 낸 엄마의 자리를 대신해 연우가 대기업 건물의 청소부로 출근하면서 드라마는 시작하죠. 연우는 그 건물에서 사내방송 아나운서로 일하는 옛 동창 지완을 우연히 만나 머쓱한 재회를 합니다. 지완은 소개팅 자리에 나가기 싫어 연우에게 대신 나가달라 부탁하고, 연우는 하루 동안 지완의 이름과 옷을 빌려 소개팅 자리에 나갑니다. 스타일이 정반대인 지완인 척 연기하기 힘들었던 연우는 하이힐을 벗고 맨발로 한강을 걷는 등 자연스레 본모습대로 행동을 하고, 그 모습에 소개팅 상대 윤환은 서서히 호감을 쌓아가죠.

부탁받은 대로 첫 만남에서 멈췄어야 했는데, 연우는 그러지 못합니다. 그 뒤로도 계속 지완인 척 구두와 정장 치마를 갖춰 입고 윤환을 만나러 갑니다. 약속 시간이 되면 퇴근한 척 하기 위해 대기업 건물에 들어갔다가 로비를 통해 나오고, 집에 바래다 주겠다는 윤환에게 번지르르한 동네의 오피스텔 주소를 말하게 되죠. 이를 지완이 알게 되고, 연우는 그동안 거짓으로 꾸며온 찰나의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기 이름조차 제대로 밝힐 수 없었던 시간들을 말이죠. 그리고 비로소 나다움을 찾아 이를 노래합니다.

보고 나면 왜 영화제에서 이 단막극을 상영하기로 결정했는지 단번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라기엔 한 편의 단편영화 같은데, 이러한 극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게 바로 한예리 배우의 연기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죠. 들키는 순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위태롭게 거짓말을 하는 표정. 부끄러움을 실토하는 태연하지 못한 목소리. 마음 속에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 조용히 엄마를 뒤에서 끌어안는 움직임. 당시 이 드라마로 한예리 배우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단번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배우라는 걸 알 수 있었죠.

“너무 애쓰지 마세요.

저도 요새 이것저것 따라가느라 조금 힘들거든요.

그냥 바람 맞으면서

시원한 맥주 한 잔 하고 쉬어요, 우리”

- <연우의 여름> 연우의 대사 중

잔잔한 목소리로 흐르듯 말해서 평범한 대사도 깊이 있게 느껴지는 게 한예리 배우의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해요. 영화 <춘몽>에서 주영이 예리에게, "시예요, 언니가."라고 한 것처럼 말이죠. 미처 영화제에 오지 못했다면, 이번달은 '한예리 필모 도장깨기'를 하며 영화제의 여운이라도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요? (내년 여성 영화제는 꼭 함께 해요!)

*<연우의 여름>은 KBS 공식 홈페이지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드라마 <청춘시대>

드라마 <청춘시대>, <(아는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영화 <최악의 하루>, <더테이블>, <미나리>. 제가 정말 감명 깊게 본 작품들인데요. 공통점이 뭘까요? 바로 모두 배우 한예리 출연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
은희* 들과 모니카 모두 매력 넘쳤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필모그라피는 드라마 <청춘시대>의 윤진명입니다 💗 이 작품을 통해 한예리라는 배우를 제대로 알게 되었기 때문인데요. 워낙 배우가 윤진명 (일명 윤선배)이라는 인물 그 자체였기 때문에 한동안 저는 한예리라는 이름 대신 윤 선배라고 불렀을 정도에요.

<청춘시대>의 쉐어하우스 ‘벨앤포크’에 사는 5명의 주인공은 저마다 별별 사연이 다 있는데요. 윤 선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편의점, 과외, 레스토랑 서빙 등 알바 오억 개에 취업 준비를 병행하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대학생이었어요. 동생은 식물인간 상태로 몇 년째 병원에 누워있고, 병원비로 생긴 빚 갚느라 휴학도 여러 번 해서 28살에 취업 준비를 하다 보니 서탈, 면탈도 잦았고요. 크게 소리 내 웃는 것도 손에 꼽을 정도였고 항상 우울한 느낌이 가득한, 행복이랑은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였어요.

특별한 것을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특별한 운명을 타고 났다고

남다른 삶을 살거라 믿었다.

죽어도 평범해지진 않을 거라 다짐 했었다.

평범하다는 것은 흔한 것,

평범하다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 것,

평범하다는 것은 지루하다는 의미였다.

그때의 나에게 평범하다는 것은 모욕이었다.

회사원이 될 거야.

죽을만큼 노력해서 평범해질 거야.

나는 지금 평균 이하다.

- <청춘시대 1> 4회 중

드라마 방영 당시 저는 현 회사에 계약직으로 갓 이직했던 때였습니다. ‘정규직 전환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하루하루 불안해서 그만큼 윤 선배에게 더더욱 마음이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윤 선배한테 시련이 닥칠 때마다 내 일처럼 마음이 아팠었답니다.

하지만 고생 끝에 행복 시작이라고 시즌2에서 윤 선배는 연예기획사에 취뽀를 하게 됩니다. 진짜 무슨 내가 최합한 것도 아닌데 눈물 날 정도로 좋았다니까요. 물론 별별 사건들이 또 일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취준생 때의 윤 선배보다는 웃는 일도 많아졌고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어요. 불행에 지쳐 감정이 메말라버린 줄만 알았었는데 '윤 선배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싶었다니까요.? 애인과 애교 섞인 통화도 하고.

사실 시즌1 때 우울하다가 시즌2 때 아무리 행복한 일이 많아졌다고 해도 갑자기 밝아지면 어색할 수 있는데 한예리는 그 어려운 완급 조절을 잘한 것 같았어요.

나는 늘 거리를 잰다.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지 않도록.
나는 늘 거리를 잰다.

필요 이상 다가오지 못하도록.
거리를 둔다는 것은

스스로를 고립시킨다는 것.
거리를 둔다는 것은

그만큼 외롭겠다는것.

생존.

그렇다. 이것이 나의 생존전략이다.
나는 차단막을 댄 경주마처럼 살았다.
나는 그렇게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을 것이다.

- <청춘시대 2> 4회 중

그리고 치열하게 사느라 타인을 거리를 두는 게 생존방식이던 윤 선배가 기획사의 망돌(ㅠㅠ) 멤버 헤임달에게 아주 큰 힘이 되어주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막막한 삶을 겪어봤기 때문에 힘든 사람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거예요. 이렇게 남을 돕게 될 줄도 알고 . . . 이런 성장 드라마가 또 어딨단 말임 (ㅠㅠ) 헤임달뿐만 아니라 불안했던 20대의 몽미꾸에게도 공감과 위로를 주었답니다.

이렇게 제 인생에 깊이 새겨질 윤 선배를 연기해준 배우 한예리. 앞으로도 다양한 캐릭터들 많이많이 맡아주시길 바라요 💗

* <최악의 하루>와 <더테이블> 모두 이름이 같습니다. (근데 김종관 감독님 피셜 동일인물 아니래요 ! 제가 여쭈어봄) 그리고 <(아는건 별로없지만) 가족입니다>에서도 역시 은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