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노

어린이날을 맞아 어릴 적 꿈꿨던 장래희망을 떠올린 유령이. 잊고 지냈던 패션 디자이너를 향한 열정이 다시 불타올랐다는데?

👻: 오늘은 한국 패션의 뿌리! 지금도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령!

▲ 반도 호텔,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패션? 그게 뭔데? 🤷‍♀️

1956년, 서울 반도 호텔에 모여 쇼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 이 쇼는 아침부터 티켓 없이 찾아온 사람들이 입장시켜 달라며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을 정도로 큰 기대를 모은 자리였어요. 마침내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패션쇼가 시작되었는데요. 그 역사적인 순간에 관객뿐만 아니라, 디자이너 노라노 역시 잔뜩 긴장한 채 쇼를 지켜봤다고.

▲ 초기 노라노 의상을 재현한 모습, 출처: 티빙

6.25 전쟁 이후, 한국은 상처를 치유하며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어요. 의복 문화도 그중 하나였죠. 하지만 당시에는 모델이라는 직업조차 없을 정도로 패션은 대중에게 낯선 개념이었는데요. 그런 시기에 노라노는 모든 과정을 직접 준비하여 패션쇼를 열었어요. 자신의 옷을 좋아하는 이들을 모델로 섭외하고, 연주될 음악, 어울리는 사회자까지 직접 선정했죠. 그렇게 열린 패션쇼는 패션의 불모지에서 시작했지만, 화려하게 막을 내리며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고 해요.


👻: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준비한 패션쇼라니 너무 대단한 것 같아령!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나령?

▲ 유학 당시의 노라노, 출처: 티빙

명자에서 노라, 나의 이름으로 ✨️

명자라는 이름의 소녀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혼란스러운 1930년대에도 학교에 다닐 수 있었어요. 그러나 그녀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가는 일본의 만행을 피하기 위해, 갑작스럽게 일본인 장교와 결혼하게 돼요. 그런데 남편은 결혼 일주일 만에 전쟁터로 떠나버리고 그녀는 홀로 남아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게 되죠. 심지어 남편의 생사가 불분명하다는 전보가 날아오자, 그녀가 보상금을 받는 것이 싫었던 시댁은 일방적으로 그녀를 내쫓았어요. 

이후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남편은 그녀와 같이 살기를 원했지만, 그녀는 이혼을 선택해요. 시댁의 부당한 대우를 더는 참지 않겠다는 결심이었죠. 이 다짐과 함께 그녀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요. 그녀는 노명자라는 이름 대신 노라 노라는 이름으로 여권을 발급받는데요. 희곡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처럼 자주적인 삶을 살길 원했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유학을 떠난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비행기를 탄 여성이 되었다고.


*노라: 노르웨이 극작가 헨릭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으로, 속박된 여성의 삶을 벗어나 자주적인 선택을 하는 인물.


👻: 새로운 이름으로 유학길에 올랐다니 노라의 강한 의지가 느껴져령! 그녀는 유학 이후에 어떤 활동을 했나령?

▲ 영화 <노라노> 속 당시 신문 기사, 출처: 티빙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

미국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노라노는 양장점을 열어요. 이후 외교관과 대사관 부인들의 파티복을 시작으로, 대중 가수, 연극, 여성국극* 등을 위한 각종 공연 의상을 제작하며 활발하게 활동하죠. 특히 영화 의상을 만들 때는 직접 시나리오를 분석해 어울리는 옷과 헤어, 액세서리, 메이크업까지 영화의 전체적인 스타일링을 담당했다고. 


*여성국극: 해방 후 등장한 여성 창극으로 소리, 춤, 연기가 모두가 어우러진 공연예술

노라노는 여성 기성복을 대중화시킨 장본인이기도 한데요. 그녀는 맞춤복을 제작하며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여성의 평균 체격에 맞춘 기성복을 제작했죠. 노라노는 일하는 여성이 편견 없이 직업인 그 자체로 비춰지면서, 동시에 불편하지 않은 실용적인 옷을 만들고자 했어요. 그 결과 세련되면서 세탁하기도 편리한 한국 여성 맞춤 기성복이 탄생했죠. 백화점에 그녀의 의상이 처음 진열된 날 단 하루 만에 옷이 전부 매진되기도 했다고.


👻: 아름다움과 편리함을 모두 잡았으니, 인기가 없을 수 없었겠어령! 그런데 노라노에 대한 사랑은 국내뿐만이 아니었다구령?

▲ 재현된 아리랑 드레스, 출처: 티빙

미국을 뒤집어 놓으셨다 🇰🇷

노라노가 처음 국내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맞춤복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인지 그녀의 고객들은 대개 외교 대사관들의 가족이나 미군 부대의 사람들이었는데요. 그녀는 한복을 재해석한 드레스로 그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고, 이 드레스는 이후 큰 사랑을 받은 아리랑 드레스*의 시작이 됐죠. 또한, 그녀는 꾸준히 쇼를 관람하고 옷을 연구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전시켰어요. 그리고 1965년, 하와이에 직접 쇼룸*을 열며 해외에도 디자이너 노라노를 알리기 시작했다고.


*아리랑 드레스: 노라노의 서양식 한복 드레스로 한복과 양장의 특징을 모두 갖춘 드레스. 국가 등록문화재 제613호로 등록.


*쇼룸: 디자이너의 작품을 선보이는 공간.

▲ 뉴욕 백화점 거리, 출처: 티빙

하와이에서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에 진출한 노라노는 미국 패션계를 완전히 매료시켰어요. 당시 뉴욕 메이시스 백화점 1층에 있는 15개의 쇼룸에는 모두 그녀의 옷이 걸려있었을 정도였죠. 그 외에도 저명한 잡지 보그와 하퍼스 바자에도 노라노가 디자인한 의상 광고가 실릴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주목할 점은 모든 의상에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특징들이 담겨있었다는 거예요. 노라노는 모든 수출품에 태극 문양을 넣은 로고의 상표를 달았고, 개중에는 저고리와 도포 등 한복을 재해석한 옷 역시 적지 않았다고.


👻: 한국의 전통미를 담은 옷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니 감동적이에령! 그런데 노라노의 옷에 담긴 이야기는 이게 전부가 아니라구령?

▲ 60주년 전시회를 위해 기증된 옷, 출처: 티빙

사람을 위한 옷, 노라노 🫂

노라노의 옷이 큰 사랑을 받은 이유는 옷에 그녀의 정성 어린 배려가 묻어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녀는 화려함보다는 편안함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멋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데요. 보여지는 것에만 치중하기보다는, 편히 움직일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죠. 더불어 옷은 부유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여성들에게 자유로운 표현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이 있었다고.

그녀는 특히 여성 직업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어요. 노라노 60주년 전시회를 준비하며 자신의 옷을 입었던 여성들의 의미 있는 발자취를 찾고자 했죠. 노라노의 옷은 당시 여성이 사회가 규정하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어요. 이런 그녀의 가치관과 작품은 최근 빠르게 변화하는 패스트 패션*의 흐름 속에서, 옷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죠. 이것이 바로 그녀의 옷이 지금도 하나의 작품이자 역사로 평가받는 이유라고.


*패스트 패션: 최신 유행에 따라 빠르게 제작, 유통되는 패션.


👻: 입는 이를 위한 옷이라니… 옷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령!

플롯 TMI 💎
영화 <노라노>

노라노 60주년 기념 전시회를 준비하며 노라노의 역사를 돌아보는 사람들. 이제껏 제작했던 옷을 기증받아 정리하며 저마다 추억을 회상하죠. 80여 년을 살아오며 긴 시대의 흐름을 겪은 그녀는 여전히 직접 옷을 만들고 있어요. 노라노의 역사와 옷에 담긴 이야기, 한국 의복 역사를 함께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 노라노의 이야기를 생생한 자료들과 함께 만나보세령!

▲ 다큐 영화 <노라노> 예고편, 출처: cinema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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