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써지지 않던 시간을 보냈던 이야기
밑줄일기
-아침 출근길을 앞둔 당신에게 문득 찾아오는 사소한 편지
054.삶이 글보다 크다

아주아주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일요일 밤이면 한숨이 나오면서 이번주엔 써야하는데, 라고 생각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들곤 했습니다. 원래는 그럴땐 휴재 공지를 하곤 했는데, 그 공지를 쓰는 시간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제 피같은 스티비는 하릴없이 과금되고 있었네요.


그러다 오늘 아주 오랜만에 짧은 글을 써 보았습니다. 어쩌면 바로 지난호 - 못하는 것을 못하는데로 견뎌보기 - 의 경과보고가 되어줄까요.


자체 휴재를 풀었지만, 당분간 글을 매주 쓰긴 어려울 것 같아요.(자세히 보면 밑줄일기 카피가 조금 바뀌었죠?) 자주 쓰려 노력해보겠지만, 소식이 없으면 제가 현생에 바쁜 순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주세요.

(...) 쌓이는 글도 없고, 마음속에 차오르던 문장도 없다 보니 글을 쓰던 감각은 몸 바깥으로 빠져나가버렸다. 자연히 뉴스레터도 보내지 못했다.


왜 이렇게 문장들과 멀어졌을까. 직접적으로는 집중해야 할 다른 일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 


한편 운동과 운전을 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몸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운전을 하면서 엑셀과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기 위해 발에 주는 힘을 조절하는 감각을 익혔다. 아직은 어려워서 차가 내 말을 안 듣지만. 운동을 하면서 어제보다 오늘 한 번 더 동작을 할 수 있다는 감각이, 바벨을 잡은 자리에 굳은살이 생겨나가는 게 기뻤다.


오랫동안 나는 몸으로 하는 것이 자신 없었다. 스스로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머리와 그 외 부수적인 기관인 것처럼 느껴졌다. 내 몸에서 사고하는 머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기관들엔 별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내 손과 발이 지느러미 같다는 농담을 했었다. 하지만 연습하면 몸을 다루는 감이 좋아지는 걸 느낀 지금, 시간이 오래 걸릴지언정 효과가 드러나는 것이 기뻤다.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든다. 흘러가는 계절을 가만히 느끼거나, 생각을 정리하거나, 무언가를 가만히 읽을 시간이 부족했다. 오랫동안 나는 읽고 쓰고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이 변화가 낯설었다. (...) 


내 삶이, 내 존재가 글보다, 일보다 크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라는 줌파 라이히의 책 제목을 비튼 문장이다. 글을 쓰지 않은 한 달 동안 그 말이 종종 내 머릿속에 생각났다. 글과 일 말고 발견한 새로운 기쁨이 기쁘면서도,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하고 흘러가버린 이 시간이 아쉽다.

이번주 밑줄
첫 번째 문장

자신의 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를 그냥 알아차리는 감각이다. (예민한 몸감을 가진 사람은) 자신과 타인, 혹은 주변 상황과의 물리적 구도를 재빨리 파악하고 정확한 위치에 자신을 세운다.

-곽세라, 앉는 법 서는 법 걷는 법

두 번째 문장

우리가 어깨에 짊어진 것이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 그 어깨에 운동 같은 걸 하나 더 얹으려면 분명 어깨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 또한 생기기 마련이다. 뭘 내려놓아야 할지는 사람마다 어깨에 얹힌 종류와 가짓수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리고 넣고 빼기는 저마다의 몫이다

-출처: 류은숙, 아무튼 피트니스

독자님이 보내준 편지

지난번 편지인 못하는 일은 못하는데로의 글은 제가 올해 쓴 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이기도 합니다. 다른 분들이 제 운전면허 이야기에 다들 공감의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운전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게 분명하지만 취업을 코 앞에 두고 운전면허에 도전한 이유는 저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도전하지 않아서 좋아하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도 했고요.  마흔 셋 4월에도 여전히 운전은 못하고,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면허가 있다는 것, 운전에 도전해봤던 경험이 아주 큰 설명의 지점이 되더라고요. 내가 얼마나 노력해봤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큰 소리로 운전 진짜 못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면허 일기를 솔직하게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기백만원짜리 신분증으로 끝나버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고 다시 시험을 치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경과를 보고드리자면, 여담으로 저는 그 다음주에 기능을 땄고, 도로주행 교육을 받았고, 다음주가 도로주행 시험입니다. 과연 이번 시험은 몇 번이나 걸릴지 세봐야겠어요.

피하고 싶은 마음은 책임감에 대한 부담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거든요 아무래도? 그래서 또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도 보자면, 사실 저는 매년마다 그 해만의 좌우명을 만들어 살거든요 1년용이라 의지를 불태우기 좋고 부담도 덜하고 만족스럽습니다.(...) 성장하고 겪고 지나오며 이런 저런 생각도 많아지고 사실 좋은 생각 자체가 많잖아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번에 담을 필요없이 한 번씩 끊어 가져가는거죠
->편지에서 이 말을 듣고 올해의 좌우명을 떠올리려 했는데 어려웠었어요.. 일단 지금 드는 생각은 "복잡한 것은 복잡한데로" 라고 썼답니다.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을 문제들이 종종 저를 힘들게 하니까요.

오랜만에 들어와 밀린 글을 읽고 있어요.(....)제가 마음이 힘들고 난 뒤부터는 어느 순간 '안녕하세요'의 '안녕'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어렸을 때는 그냥 했던 인사말인데 요즘은 저와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바라며 지내게 됐습니다. 이게 무슨 변화일지 모르겠지만 다들 너무 치열하게 살아가는 세상이라 큰 사고 없이 나를 잘 돌보며 본인의 일상 속에서 평안함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 편지는 지난주에 보내주셨는데 저의 안녕을 빌어주셔서 새삼 감사했답니다. 가족이 아프다보니 안녕함과 평온함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가 느끼게 됩니다. 저도 독자님의 안녕을 비는 인사를 건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