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 이종, 구조, 추진력
지금을 읽고 싶은 사람들의 미디어 이야기, 어거스트

여러분, 전 뉴진스가 좋습니다. VAUNDY, 녹황색사회, 이매진드래곤스 등이 가득하던 제 플레이리스트는 이제 뉴진스가 정복했습니다. 숏츠에도 뉴진스, 플레이리스트도 뉴진스, 유튜브도 뉴진스니까 온세상이 뉴진스입니다. 


데뷔 6개월 만에 빌보드 핫100에 두 곡을 진입시키고, 벌써 밀리언셀러 앨범 판매를 기록했습니다. 그 위대한 그룹 BTS의 빈자리를 채웠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하이브의 성장 모멘텀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BTS, 블랙핑크 다음은 뉴진스라는 기대감도 있습니다. 


단순히 찬양하는 글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텔미-쏘핫-노바디’만큼의 충격을 ‘어텐션-하입보이-디토-OMG’ 4연타에서 느꼈습니다. 콘텐츠로 1차 충격을 받고, 직장인으로서 보이는 그 하부 구조에 2차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제가 받은 충격을 언어로 풀어내어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 오늘의 에디터 : 구현모
2023년 체력 경제력 그리고 티원의 롤드컵 우승을 기원합니다
오늘의 이야기
1. 걸그룹 프로듀싱에 대한 이해
2. 하지만 비명은 끊이질 않고
3.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시도

걸그룹 프로듀싱에 대한 이해

출처: GQ

이 글을 쓰기 전에, 여러 엔터테인먼트 및 A&R 실무진들과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대중과 실무진 사이에 괴리가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앨범에 대한 주도권’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직까지 걸/보이그룹에 대해서는 어른들(프로듀서, 회사)이 미성년 연습생에게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주먹구구로 돌아가던 과거와 달리 많이 선진화되고, 그만큼 시스템화된 지금, 엔터테인먼트에서 가수나 프로듀서가 일방적으로 리드만하는 구도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특히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이해관계자가 많은 대형회사는요.


그렇기에 뉴진스의 성공을 단순히 ‘민희진만의 크리에이티브’로 해석하거나 ‘민희진이 너무 돋보이려고 한다’는 비판이나 ‘순진무구한 뉴진스를 민희진의 뜻대로 조종한다’는 넷상의 비난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이긴 합니다. 이 이야기를 먼저 조심스레 하는 이유는 민희진 대표와 멤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포함한 구조를 봐야하기 때문입니다.

뉴진스 : 이종적인 구조, 이질적인 콘텐츠

출처: YTN

뉴진스의 구조는 상당히 이질적입니다. 우선, 콘텐츠입니다. 뉴진스 콘텐츠의 제작자들은 걸/보이그룹 판과 거리가 멀던 사람들입니다. 가장 최근에 주목을 받은 OMG의 뮤직비디오는 광고를 전문적으로 찍던 돌고래유괴단의 신우석 감독의 작품입니다. 메시지를 시각화한다는 점은 같지만,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광고와 서사가 있는 노래를 이야기로 만드는 뮤직비디오는 분명히 다른 영역입니다. 


프로듀서도 그렇습니다. 총괄 프로듀서 ‘250’은 이전까지 걸/보이그룹 작업을 종종 했지만, 기본적으로 케이팝 음악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는 이센스와 김심야가 소속된 ‘비스츠앤네이티브스’ 소속 DJ거든요. 작년에 낸 개인 앨범의 음원과 뮤직비디오 모두 ‘세련된 광기’가 느껴지는 멋진 아티스트입니다. 


그래서 나온 콘텐츠는 기괴하고 아름답습니다. Ditto의 뮤직비디오는 게임 ‘화이트데이’를 상기시킬만큼 기괴하면서 아련합니다. OMG의 뮤직비디오는 돌고래유괴단이 만든 새로운 광고인가 싶을 정도로 돌고래유괴단 색깔이 강력하고, 신유석 감독의 페르소나인 침착맨도 등장합니다. 음원 성적은 더 말할 게 없습니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뒤져보면, 뉴진스의 음악은 기존 한국 공식인 ‘패스트 팔로워’를 넘어서 세계 트렌드 최첨단에 있다고들 평가합니다. 


비주얼도 이질적입니다. 이쁘고 귀엽고 능력 있는 멋진 아이들에게 90년대 감성을 세련되게 입혔습니다. Ditto 뮤직비디오 속 의상은 한국인들이 과거 소비하던 일본 99~2000년대 초반 영상 속 여고생과 같고, 뉴진스와 하입보이 시절 의상은 2000년대 초반 패션과 비슷합니다. 과거 아날로그 감성을 낭낭하게 구현한 굿즈도 이질적입니다. 소위 ‘컨셉에 진심’인 편입니다. 


가장 이질적인 건 메시지입니다. 역대 걸/보이그룹의 데뷔곡들은 대개 출발의 설렘, 세계관에 집중된 메시지(SMP 등) 혹은 컨셉에 맞는 사랑노래 등이었습니다. 모든 예술에는 해석의 자유가 있다지만, 대개 저런 메시지와 그에 일치하는 퍼포먼스를 갖고 왔습니다. 


뉴진스는 좀 다릅니다. 꽤 단시간에 뮤직비디오와 함께 뽑아낸 4곡에는 ‘사랑’이라는 틀을 쓰고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가 주제로 담겨져있습니다. 실제로 신우석 감독 인터뷰를 보고 나니, 확신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자유지만, 적어도 메시지를 던지는 사람들은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생각하고 만들었구나 싶더라구요.


팬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해도 이질적입니다. 기존 그룹들의 팬송은 대개 팬에 대한 고마움, 사랑, 영원함 등을 노래합니다. 그런데 뉴진스의 팬에 대한 메시지는 팬을 만날 때 느끼는 설렘과 사랑을 담지만 동시에 우리는 누구 하나 이끄는 게 아니라 수평적이며 함께 가는 거라는 꽤나 도발적(!)인 메시지를 담습니다. 


여기서 도발적인 메시지라고 하는 부분에 공감하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사회에 대해 ‘함께 사는 세상’ 내지 ‘갑질 없는 세상’ 을 희망합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를 소비자로 규정하는 곳에선 ‘돈 내는 사람이 왕’이라거나 그 권력을 통해 타인을 조종하거나 깎아내리곤 합니다. 재화에 인격이 있는 엔터테인먼트는 특히나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화려하고 돈을 많이 벌고 남부러울 것 없는 연예인들도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걸리고 몇몇의 경우 SNS를 운영하지 않으며 철저히 거리를 유지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팬이 원하는 선 안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고, 여론의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는 업계의 특성상 ‘수평적으로 함께 가자’는 메시지는 정말 이질적입니다. 특히 OMG 뮤직비디오 마지막에 ‘가자’라고 하는 부분은 특정 플랫폼을 향한 광역 도발에 가까웠죠.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뉴진스야’ 라거나 ‘우리는 주체적으로 나아갈 거야’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일종의 선언이기도 하죠.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기도 합니다.

의사결정과 구조의 승리

뉴진스 안에 멤버들과 A&R팀이 있고, 민희진 대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민희진 대표도 궁극적으로는 HYBE라는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민희진의 감각과 의사결정 그리고 이게 가능한 구조에 대해서도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어도어는 하이브의 음악 레이블 자회사입니다. 여러 언론 기사에 밝혀져 있듯, 이 소속사는 민희진님에게 모든 권한을 쥐어주고, 그만큼의 지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하이브 이외의 다른 엔터사도 비슷한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직장인분들 아시죠? 많은 자원과 권한이 갈수록 이해관계자가 많아지고, 이런저런 눈치를 봐야합니다. 처음에는 눈치 안 보고 일만 할 수 있게 해줄게라고 말했는데, 며칠 뒤부터는 잔소리가 시작되기도 하고, 눈치가 보이기도 하죠. 소위 ‘쩐주’라거나 ‘주식시장’이라거나 차상위 상사 등 여러 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초기 사업모델이 산으로 가거나, 속도가 느려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종종 ‘대기업 소속 계열사 느리다’라는 비판도 있기 마련이죠. 


하지만 어도어는 달랐습니다. 민희진 대표가 모든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듯합니다. 실제로 원하는 대로 앨범을 만들고자 대표가 됐다고 하는 민희진님의 특성을 고려하면 모든 의사결정이 대표 선에서 진행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민희진님을 믿고 그녀의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HYBE 고위 관계자들의 담대함도 박수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권한의 위임과 믿음을 책으로 배우지만 이를 행하는 건 어려우니까요. 


이 의사결정 구조에서 남다른 크리에이티브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신우석 감독에게 전권을 주고, 침착맨에게 방송을 제안하고, 신속하게 결정하는 날카로운 의사결정은 민희진님이 주도하는 현 구조가 아니었으면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역설적으로, 1) 능력있는 대표가 2) 훌륭한 자원 투자를 받고(멤버, 인프라 등) 3) 자유롭게 의사결정해서 4) 원하는 파트너와 일해야만 이정도의 결과물이 나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두 명의 감각과 크리에이티브만으로 해석하기엔 너무 거대합니다.


반희수 유튜브 채널을 예시로 들어볼까요? 반희수는 뉴진스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극중 촬영자의 이름이자 팬클럽인 ‘버니즈’의 발음을 따온 캐릭터입니다. 이 사람의 채널이라는 컨셉으로 운영되는 유튜브가 있습니다. 귀엽고 신박한 아이디어지만, 이를 구현한 게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엔터테인먼트를 막론하고 일하는 현장에서는 여전히 반짝이고 아름답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공기처럼 떠다닙니다. 하지만 그걸 제안하는 사람의 실력, 권한, 입지 그리고 조직문화와 구조 때문에 구현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만약 대기업 신입사원이 저런 아이디어를 제안했다면 1) 기획서를 내야하고 2) 그거 제안하면 니가 할래? 라는 1차 상사의 압박과 3) 구현하려면 돈이 드니까 하지 말자는 2차 상사의 의사결정 때문에 사라지기 십상입니다. 어도어의 신속한 의사결정력 덕분에 반희수라는 유튜브 채널도 신속하게 구현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뉴진스가 침착맨 채널에 출연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채널에 배우 박정민, 류준열, 이동진 평론가, 신우석 감독 등 유수의 사람들이 나왔지만 뉴진스가 채널에 출연할 줄은 몰랐겠죠.

슈퍼스타 민희진의 감각과 추진력
출처: 중앙일보

민희진님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과거 “JYP”를 외치던 박진영과 “BRAVE SOUND”를 외치던 용감한 형제의 전성기보다 더더욱 슈퍼스타 프로듀서입니다. 팬과 안티를 모두 미치게 만드는 진짜 슈퍼스타죠. 


이전 비애티튜드의 인터뷰를 보면 해린, 혜인, 민지, 다니엘, 하니를 하나로 묶고 이들과 메시지를 조율하고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민희진님이 세세히 의사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에서 읽어낼 수 있는 바가 있습니다. 우선, 민희진님은 인위적인 설정보다 멤버들의 본래 모습을 투영한 흐름을 선호합니다. 우리가 찬사하는 에프엑스와 샤이니, 레드벨벳과 NCT 모두 민희진과 멤버들의 정반합을 통해서 나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더불어 기존 ‘케이팝스러움’에 더이상 재미를 못느끼는 것 같습니다. 약간 자극적으로 해석하면, 어차피 기존에 하던 것이랑 비슷하게 하려면 굳이 1) 내가 2) 나와서 할 필요가 있었겠는가라는 생각도 하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게다가 성공공식은 없기에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에서 본인이 갖고 있는 모든 자원(네트워크 경험) 을 100% 쏟아낸 작업이 바로 이번 뉴진스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큰 문제의식은 바로 팬과 아티스트 나아가 소통과 해석이었습니다. 이전에서부터 악의를 가진 비난과 사실상 ‘답정너’ 해석과 비판에 대해 꽤 염증이 컸던 듯합니다. 최근에 낸 입장문에서도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 사람들에게는 긴 설명도 무색합니다”라고 하셨죠.


최근에 나온 씨네21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행간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 안에서는 뉴진스의 프로듀싱 과정이 좀 더 구체적으로 나와있습니다. 인터뷰를 다 읽고 나서의 감상은 1) 실력 있는 기획자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좌고우면하지 않으면 이 정도 프로덕트가 나올 수 있으며 2) 민희진 정도 되는 실력자여야만 모든 권한을 자유롭게 받아낼 수 있구나 였습니다. 

뉴진스는 지금 가장 세련된 신생 아티스트이자 선두주자입니다. 그래서 뜨겁습니다. 실제로 뉴진스 이후로 아이돌 음악이 달라질 것이라는 찬사와 도발적인 메시지에 어금니를 꽉 깨문 저주가 혼재합니다. 


중요한 건 다음입니다. 지금의 뉴진스는 민희진이라는 브랜드 자본이자 시스템 그리고 멤버 개개인의 재능이 만나 생긴 산물입니다. 하지만 이 공식이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멤버들의 새로운 끼가 보일 수 있는 다음 라운드가 더더욱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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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구현모>의 코멘트
전 출퇴근에 다시금 팟캐스트를 듣고 있습니다. 잔잔하고, 텐션이 높지 않은 팟캐스트 위주로 듣고 있는데 하나 추천드립니다. 주변에 있을 법한 일상 이야기가 잔잔하게 흘러나와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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