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하우스와 소셜미디어 다양성
안녕하세요, 김경달입니다. 이번주 씨로켓 인사이트의 주제는 '클럽하우스'입니다. 저도 며칠간 '클럽하우스'에서 마실 다니느라 바빴는데요. '유튜버의 미래'방에선 이연과 김시선, 앤드류님 등 유명 크리에이터분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공감했어요. 의외로 영상을 다루는 분들인데 결론처럼 강조한 얘기는 '글쓰기가 중요하다'였답니다. 실리콘밸리 방에선 미미박스와 센드버드 대표님들이 스타트업 분들에게 조언하는 걸 구경하며 배울 수 있었죠. 가수 호란님이 자장가 불러주는 방과 성대모사 방 등이 엄청 붐비더군요. 썸원님의 미디어 방에서 토론도 나눠봤네요. FOMO(Fear of Missing Out) 자극한 초대기반 홍보에다, 오디오 기반의 자율적인 소셜서비스라 편안하면서도 참여의 즐거움이 있다보니 빠르게 확산중인 듯 합니다.
클럽하우스의 인기 배경과 시사점에 대해 박상현님이 넓고 깊은 안목으로 정리를 해주셨어요!

기타를 들고 웃고 있는 이 사람. 지난 일주일 동안 (아마도)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해진 얼굴이 아닐까 싶다. 글로벌하게 "뜬" 오디오 기반의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의 앱 아이콘에 등장한 이 인물의 이름은 보마니 엑스(Bomani X, 트위터Link)다. 앱을 설치한 사용자들이라면 이 얼굴에 익숙해졌을 거고, 끊임없이 뜨는 알람에서 하루에도 몇 개 씩의 클럽을 열면서 스피커로 참여하는 이 사람의 이름을 봤을 거다. 

온갖 원색과 플랫(flat) 디자인, 인스타그램류의 그라데이션이 난무하는 아이폰 화면에서 흑인 남성의 실물 흑백사진으로 등장하는 개성있는 아이콘 때문에 클럽하우스의 앱은 눈에 확 들어온다. 하지만 기타를 들고 있는 뮤지션의 사진 때문에 이 앱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음악 스트리밍 앱 아닐까, 하는 오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보마니는 도대체 누구이고,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이 앱은 왜 뜬금없이 흑인 뮤지션의 얼굴을 아이콘으로 사용했는지 궁금해진다.
실리콘밸리의 테크브로(Techbro) 문화
우선, 보마니는 클럽하우스 앱의 최초 아이콘이 아니다. 클럽하우스의 아이콘이 앞으로 보마니의 얼굴로 영원히 고정된 것도 아니다. 클럽하우스에 따르면 두 세 달에 한 번, 주요 업데이트가 있을 때 마다 앱 아이콘 속의 얼굴이 바뀐다고 한다. 현재 아이콘으로 사용되는 얼굴은 보마니의 얼굴은 지난해 12월 10일에 이루어진 업데이트 때 바뀐 것이다. 물론 단순히 유명한 사람들의 얼굴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클럽하우스에 활발하게 참여하며 호스트, 스피커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서 골라 소개하는 것. 보마니 이전에는 여성들의 얼굴이 사용되었다. 가령 에스프리 드보라(Espree Devora) 같은 인물이 그렇다.

에스프리 드보라(위의 사진에서 안경을 쓴 인물)는 흔히 "실리콘비치"라고 불리는 로스앤젤레스의 스타트업계의 소식을 전하는 유명한 테크 팟캐스터로 "the Girl who Gets it Done(일을 해내는 여자)"라는 별명으로 통하고, WeAreLATech.com 을 만든 사람이다. 눈치를 챘겠지만, 클럽하우스는 의식적으로 여성과 유색인종, 특히 흑인을 앱 아이콘으로 노출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클럽하우스 앱이 유색인종 개발자가 만들어낸 건 아니다. 클럽하우스를 만들어낸 알파 익스플로레이션(Alpha Exploration Co.)의 공동 창업자 폴 데이비슨(Paul Davison)과 로한 세스(Rohan Seth)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흔하다고 하는 '스탠포드 공학도 출신 백인 남성'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여성과 흑인이라는 실리콘밸리의 마이너리티 그룹을 자꾸 아이콘으로 내세울까?

클럽하우스를 만든 공동창업자 로한 세스(왼쪽)와 폴 데이비슨
미국에서는 몇 년 전 부터 실리콘밸리의 "테크브로(tech bro)"들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온다. 소셜미디어와 빅테크로 대표되는 인터넷 2.0 기업들이 백인 남성 엔지니어들에 의해 주도 되면서 여성과 소수인종들은 채용과 승진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특히 기업의 경영진으로 올라가는 것은 백인 남성들에게 국한되어 있고, 스타트업을 세워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것도 백인 남성들이라는 거다.

문제는 이들이 성공과 돈벌이의 기회를 독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테크 기업의 경영진이 젊은 백인남성, 즉 테크브로들로 채워지면 기업의 문화가 남성중심적으로 흐르면서 차별과 성희롱은 물론 모럴해저드와 불법행위까지 만연하게 된다. 조직이 특정 대학이나 지역 출신으로 채워질 경우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이해가 동일한 집단끼리 서로서로를 챙겨주고 잘못을 눈감아주면서 기업은 문제를 수정하지 못하고 점점 경쟁력을 잃게 된다. 실리콘밸리는 물론 많은 미국 기업들이 근래들어 다양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의 하나로 내세우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다양성을 갖춘 기업이 좋은 실적을 낸다는 연구결과에 기반한 것이다.
BLM과 실리콘밸리의 각성
올해 초 애플은 '인종간 평등 및 정의 이니셔티브(Racial Equity and Justice Initiative)'에 1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경제적으로 낙후되었을 뿐 아니라 흑인들이 많이 사는 것으로 유명한 디트로이트 지역에 개발자 학교를 세우는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다. 애플의 이러한 결정 뒤에는 지난 여름 이후로 다시 불붙기 시작한 BLM(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그런데 애플의 이니셔티브의 이름에 들어간 '평등'에 사용된 단어가 과거에 흔히 보던 'equality'가 아니라 'equity'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quity에는 이미 사회경제적 차별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상황에서 단순히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약자에게 더 많은 자원을 제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양의 자원을 깔아준다고 해도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의 모양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성과 평등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얻어질 수 없는 가치다. 이를 잘 보여준 것이 지난해 3월, 클럽하우스가 출범했을 때의 모습이다. 클럽하우스는 서버가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에 공개되지 않고 초청장을 통해서 천천히 사용자들을 모았다. 그런 이유로 초기 가입자들은 자연스럽게 창업자와 벤처투자자들(VCs), 그리고 테크기업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즉, 돈이 많은 백인 남성들이 주를 이루는 실리콘밸리의 인구 구성이 고스란히 클럽하우스 사용자층에 반영된 것이다. "링크드인의 오디오 버전"이라는 농담이 나온 것이 그 때문이다. 

이런 쏠림현상을 바로잡고 사용자층의 다양성을 키워낸 것은 다름 아닌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벤처 캐피털인 앤드리슨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투자사의 파트너 크리스 라이언즈와 벤 호로위츠의 아내이자 호로위츠 가족재단의 설립자 펠리시아 호로위츠가 흑인 커뮤니티를 클럽하우스에 끌어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두 사람 모두 흑인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지난해 5월과 7월 사이에 흑인 커뮤니티가 눈에 띄게 많이 가입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흑인 자본도 참여하면서 사용자 뿐 아니라 투자자까지 다양화되는 결과를 얻어냈다.

클럽하우스에 투자한 VC 벤 호로위츠의 아내 펠리시아 호로위츠는 이미 클럽하우스의 주요 인플루언서로, 앱 사용자층의 다양성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마니 엑스가 클럽하우스에 가입해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점(2020년 7월)이다. 기타리스트인 보마니는 처음에는 대화에 참여해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동시에 기타를 조용히 연주하며 배경음악을 깔아주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예 말을 멈추고 연주만 하면서 그가 호스트가 된 클럽은 하나의 콘서트장으로 변했고, 곧이어 다른 뮤지션들을 초청하면서 점점 널리알려지기 시작했다. 

보마니를 비롯한 흑인 창작자 커뮤니티(Black creatives)가 앱 내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라이언 킹'과 '드림걸즈' 같은 유명한 뮤지컬을 함께 부르는 클럽행사가 등장했고, 흑인 뮤지션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을 얼굴을 프로필 사진으로 걸고 그들을 흉내내는 등 다양한 예술적인 시도들이 생겨났다.

온라인 다양성
지난 1월 말, 한국인들 사이에 클럽하우스가 본격적으로 퍼지던 첫 하루 이틀 동안에 가장 쉽게 눈에 띄던 것은 가상화폐나 개발자, 테크기업 종사자들이 모인 클럽들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면서 출판인과 저자들이 등장했고, 여성들만 모여 고민을 나누는 모임, 다양한 직종별로 고민을 나누는 모임 등으로 활발하게 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성이 보이는 것은 클럽하우스 출범 초기의 결정과 떼어놓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아이콘의 디자인부터 앱의 인터페이스, 사용방법과 룰 등의 세밀한 요소들이 결국 그 플랫폼에 찾아오는 사용자들의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트위터가 어느 소셜미디어 보다 "사나운 곳"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140자라는 제한과 리트윗 등의 기능이 만들어낸 결과다. 트위터에서 사나운 말을 쏟아놓는 사용자도 인스타그램에서는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얼마전 네이버는 그동안 사용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실시간 검색어를 폐지하기로 결정하면서 그 이유를 "정보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네이버는 실시간 검색어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정보의 쏠림을 막을 수 없고, 결과적으로 사회적인 폐해가 크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실검의 폐지만으로 정보의 다양성이 확보된다고 보기는 힘들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듯 자극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는 결국 양질의 정보보다 훨씬 빠르게, 멀리 퍼질 수 밖에 없다. 네이버는 그동안 받아온 비판을 피하기 위한 조치를 한 것일 뿐, 실검 폐지로 온라인 정보의 다양성이 확보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온라인에서의 다양성은 단순히 장애물을 없애는 것으로 이뤄지지 않고 적극적인 노력과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있어야 달성 가능하다는 것이 클럽하우스가 보여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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