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이 도시에 켜켜이 쌓인 것
결에게,

안녕 결, 오월의 첫 편지야.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 창으로 하늘색을 꼭 확인하거든, 그 색으로 하루의 날씨를 점치곤 해. 오늘은 그 창을 보며, '날씨 예술이겠군'하며 양치를 했어. 아니나 다를까, 하루 종일 날씨가 좋았어.


오월의 첫날은 부암동에서 보냈어.

부암동은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있는 고즈넉한 동네야. 석파정 미술관과 환기 미술관이 있어 웅장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유동인구가 적고 집들이 궁궐같이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금 쓸쓸하기도 해. 그 동네에 만두를 먹으러 갔어. 자하 손만두라는 곳인데 떡만둣국을 조랭이떡으로 만들어서 귀여워. 연두, 분홍, 노랑 색색으로 빚은 만두도 예쁘고 말이야. 


하루 종일 맛있는 걸 먹고, 흠 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바다같이 푸른 가로수 아래를 걸으면서도 마음 한 켠에 박힌 돌덩이 같은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어. 


부암동으로 가는 버스 안,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었어. 서울 곳곳에서 시위를 한다는 기사였지. 친구는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야 했고, 좁아진 차선에 내가 탄 버스도 영 속도가 나지 않았어. 창밖으로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앉아 구호를 외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어. 그 모습을 보는데 조금 전 국회의사당 앞을 지날 때 보았던 피켓이 떠올랐고, 시청을 지날 때 보았던 어떤 죽음을 추모하고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어. 그리고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지. 이 도시에 켜켜이 슬픔과 분노, 모멸이 쌓여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 풍경을 봐놓고도 친구에게 '오늘 같은 날 집에 있으면 지는 거야'라는 농담을 던진 내가 조금 싫어. 날씨가 어떠하든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사람들, 날씨가 예술이라도 마음이 조금도 밝아질 수 없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뱉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렇게 자책하고 있는 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  


그래서 죄책감은 잊고, 대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았어. 유명 정치인이 혐오 발언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뱉고, 노키즈존이 유행처럼 번지고,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불편하다'라는 말로 밀어내는, 배척하고 모멸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명제가 유전자에 새겨지고 있는 지금 말이야.


나는 환대라는 말을 떠올려보았어. 다른 존재를 두 팔 벌려 맞이하는 마음을. 특히 어린이날이 다가오는 요즘, 어린이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나는 어릴 때를 생각하면 환영받았던 기억이 먼저 떠올라, 공원이든 식당이든 가게든 어디에서든, 내려다보던 다정한 눈빛을, 단 것을 건네는 손과 미소를, 몇 살이에요? 물어오는 살가운 목소리를. 그 기억으로 나는 이제껏 사랑하고 또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


어린 시절은 굳기 전의 촛농 같아서 외부 자극에 쉽게 변형되지, 그리고 자신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미처 길러지지 않아 타인의 평가를 내 것처럼 받아들이게 돼. 그 시절에 환대를 받는다면 나를 사랑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사람으로 자랄 것이고, 대신 배척과 멸시를 당한다면 스스로에 대한 미움을 차곡차곡 쌓아가겠지. 환대만 받은 사람도, 배척만 당한 사람도 없을 거야. 하지만 요즘에는 후자가 너무 만연한 게 아닌가 싶어.


그래서 작은 다짐을 하나 했어. 일상 속에서 환대를 한번 실천해보자고. 첫 번째로, 다가오는 어린이날 만나는 어린이들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작은 쪽지와 함께. 문구는 '어린이날 100주년을 축하합니다, 온 세상이 너를 환영해'로. 어때? (웃음)


그리고 오늘은 너에게 이 질문을 건네고 싶어.

네가 어릴 때 받은 가장 따스한 환대는 무엇이었는지, 지금의 너를 지탱하는 어떤 기억 말이야. 

혹시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 가까운 날들에 받았던 환대를 이야기해 줘도 좋아.


끔찍한 일들이 인간들로부터 매일 일어나는 날들이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해.

내가 받아왔던 다정을 디딤돌 삼아, 이 도시에 새로운 환대를 켜켜이 쌓아올릴 거야.


결, 안전하고 평안한 오월 첫 주를 보내길 바랄게.

다음 주에 다시 만나.


2022.05.01. 민경

추신. 부암동에서 찍은 사진을 함께 보낼게:)
답장은 여기로 보내주면 돼,
보내준 답장은 우리 모두 볼 수 있다는 점 기억해줘.
모두들 너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있으니까.
#5-2. 지난주에 받은 답장을 나눌게,
어떤 존재를, 시간을, 장소를 떠나보낼 때 어떻게 마음을 돌보는지 물었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한 자락을 붙잡아두고 싶었거든"

최근에 여행지에서 읽었던 책이 떠오르는 질문이다.
제목은 <나이 듦>이었는데 부제가 ‘유한성의 발견’이었지.
인상적인 구절을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아.

“나이가 듦에 따라 과거에 더 사로잡히는 것은 시간의 유한성을 더욱 날카롭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살아온 날이 긴 만큼 그 날들에 대한 후회의 양도 늘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 권을 더 소개하자면 오수영 작가의 <긴 작별 인사>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와.

“다시 만날 수 없다면, 살아있어도 다시 만날 수 없는 관계라면, 그들은 내 삶의 반경에 여전히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는 동안 안부조차 물을 수 없는 사람들. 세상 어딘가에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살아있다고 믿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죽음과 이별은 얼마나 다를까. 결국 다시 볼 수 없다면, 그건 모두 서로의 삶에서 이미 죽은 사람들이다.”

애도는 원래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다’는 의미이지만, 저 구절처럼 이별도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 그리고 그 이별이 대상의 유한성으로 인한 필연적인 사건이라면… 민경이 말하는 ‘애도’의 의미는 아마도 끝맺음으로 인한 슬픔을 달래는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의 애도 방식은 ‘기록’이야. 나의 경험과 인식을 가감없이 글로 적거나,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 물리력으로 유한성을 흐려버리게 만드는거지.

취업하고 제일 먼저 구입한 전자기기도 좋은 카메라였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한 자락을 붙잡아두고 싶었거든. 요즘은 블로그를 새로운 기록장으로 사용하고 있어.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하면서 생긴 습관 중의 하나는 딱 1년 전, 2년 전, 3년 전의 오늘로 돌아가서 그 때의 내가 썼던 일기를 다시 읽는 거야. 2021년 4월의 나는 뭘했지? 2020년의 4월엔? 그런 식으로 꼬리를 물고 들어가다보면,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음.. 어떻게 보면 이것도 일종의 르포르타주라고도 볼 수 있겠다!ㅎㅎ

최근엔 할머니의 기억을 기록해보자고 결심했어.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계신데, 점점 사라져가는 할머니의 기억을 애도하고 싶은 나의 작은 마음이야. 언젠가 잘 엮어서 직접 읽어드리고 싶어.

답장을 쓰는 지금 시간은 밤 10시 39분이야. 오늘 하루와도 벌써 이별이다.
다행히 그다지 슬프지 않은 걸 보니, 오늘 하루 나는 꽤나 최선을 다한 것 같아.
민경의 하루도 유한함 속에서 따뜻한 의미를 찾는 하루였길 바라.
"슬퍼하는 초라한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어"

고향에 다녀왔구나! 할머니의 첫 기일이라구? 돌아가시고 처음 맞이하는 돌아가신 날이구나 ㅜ 슬펐겠지? 슬펐을거야ㅠ 요즈음은 주변에서 부고를 너무 많이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어이없이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아서 망연자실하다.

그런데 네가 전하는 너의 할머니의 첫 기일 분위기는 따스하고 흥미진진하구나! 내가 이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얼굴도 모르는 피자집 사장님 덕분일까 너의 아빠가 받았던 위안이 내게도 전달되었기 때문일까 부러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으므로 너무 많이 사랑하지 말고 집착하지도 말고 놓아 버리며 살아가자.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내 이야기를 들려줄께. 나의 애도의 방식은 너와는 사뭇 다른 것 같아. 아니 정반대라고 할 수 있지. 나는 이별의 순간을 누군가와 공유하지 않았지. 오히려 혼자만의 공간을 찾기 바빴어. 슬퍼하는 초라한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어. 답장을 쓰는 이 시간에 문득 생각해본다. 안으로만 껴안았던 그 시간들이 나를 뭉그러뜨렸던 것은 아닐까?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사실 나는 나누는 자체에 서투른 것 같다. 왜냐하면 기쁨을 나눴던 기억도 별로 없기 때문이야.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살이가 희노애락의 연속이니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오픈하고 나누어 보려고 한다. 긴 세월 익숙해진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너와 주고 받는 레터가 트리거가 될 것 같아. 그래서 나의 삶이 더더욱 기쁘고 덜 슬퍼지기를 바래본다. 또한 편지를 보는 모든 이에게도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래본다.

다음 편지는 또 어떻게 꾸며질까?
답장 잘 읽었어.
여린 순간들 속 마음을 솔직하게 나눠주어 고마워.
우리의 마음이 이별 앞에 무뎌지지도 무너지지도 않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