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나는 잘할 거야!'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중 어떤 생각을 더 많이 하시나요?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와 '네가 그걸 할 수 있겠어?' 중에서는 어떤 말을 더 자주 건네세요? 첫 번째 질문에는 후자, 두 번째 질문에는 전자를 택하셨다면... 반갑습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우리는 왜 이렇게나 애쓰며 살면서도 스스로를 의심할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의심일까요,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일까요? 글 속에서 실마리를 찾으실 수 있길 바라며, 염승숙 소설가가 《노인과 바다》를 n번째 읽고 쓴 리뷰를 보내드려요.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의 도입부에서부터 주인공의 ‘운’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년 ‘마놀린’의 부모가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노인 ‘산티아고’를 두고 그가 영락없는 ‘살라오’가 되어버렸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장 운이 나쁜 사람, 불행 중 최악의 상태. 어떻게 두렵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운을 갈구한다! 그러나 노인은 팔십오 일째의 행운을 기대하되, 운에 의지하지는 않는다. 운 따위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운이 아니라 ‘운명’을 믿기 때문이다.

 
고기가 고기로 태어났듯이 어부는 어부로 태어난 거라고, 그게 자신의 타고난 운명이라고 노인은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그는 어부로 태어났으니까, 어부답게, 매일 배를 타고 나가서 낚싯줄을 정확히 드리운다. “두 눈은 바다와 똑같은 색이었으며 패배라고는 모르는 기운찬 눈빛”으로 “우리는 믿음이 있지”라고 중얼거리면서. 그는 누구보다 확신에 차 있다. 오두막의 커다란 드럼통에서 상어간유를 한 컵씩 퍼 마시며, 펄떡거리는 바다거북의 심장과 같은 것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걸 그는 안다. ‘운이 찾아올 때 나는 준비가 되어 있을 테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강인한 쪽은 없다. 타고난 운명을 받아들이고 대비하면 버틸 수 있다고 믿는 겸허한 희망을 품는 것 말이다.

《노인과 바다》는 한평생 행운을 바라지 않은 인간이, 단 한 번도 희망과 확신을 잃었던 적 없는 인간이, 노인이 되어서도 거대한 청새치와 싸워 패배하지 않고 돌아오는 여정을 통해 우리에게 놀라운 전율을 선사한다. 승리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열정을 다해 끝까지 싸웠다면, 죽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패배가 아니다. 인간은 결코,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어.” 노인의 뒤에서 말하는 헤밍웨이의 목소리를 듣는다. 작가로서 독자를 넘어 전 인류에게 남기고픈 눈부신 메시지! 누가, 감히, 이 말에 반기를 들 수 있을까?

이 소설은 헤밍웨이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빛나는 수작이자 그의 대표작이다.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며 나는, 이 책이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손에 ‘지나치게’ 일찍 쥐어지는 건 패착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버리게 된다. 10대 시절 내가 읽은 《노인과 바다》는, 겨우 10대의 지식과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작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이라면 희망을 잃지 않고, 목표를 향해 도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깨달았다는 내용만으로 《노인과 바다》의 독후감을 채웠던 과거의 나와는 절연하고 싶어질 정도로 재독, 삼독의 과정에서 나는 비로소 깊은 떨림을 느낀다. 시간도, 체력도, 열정도 이제는 모든 걸 잃지 않았느냐고, 인간이라면 누구도 예외 없이 그것을 기필코 빼앗기기 마련이지 않느냐고 헤밍웨이는 노인에게 끈질기도록 묻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노인이 이렇게 답하는 걸, 우리는 본다.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보여주고 말겠어.”

《노인과 바다》에서 ‘사랑스러움’을 맡고 있는 소년 마놀린은 노인이 불 꺼진 작은 항구에 도착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잠든 노인이 숨을 쉬는지 확인하곤 울기 시작한다. 노인을 위한 커피를 주문하면서도 계속 울고 있는 소년의 곁에서 나도 기어이 눈물을 쏟게 된다. 소년의 울음은 결국 어부의 삶을 이해해버린 어린아이의 그것이다. 인생이란 꾸준히 나아가는 배 위에 올라타 있는 여정이고,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거센 파도 위에서 몇 날 며칠을 요동칠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 지닌 삶의 속성이라는 진실. 힘겨울 수도, 찢겨나갈 수도 있다. 그러니 소년은 신문지에 얼굴을 파묻고 잠든 노인의 두 손을 보면서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노인이 자신을 향한 강한 확신만으로 밤낮의 사투를 벌였음을, 그리고 그것이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믿음이라는 걸 알아버렸을 테니 말이다. 노년의 삶은 누구에게나 낯설고도 가까우며 끝끝내 울고 싶어지는 거라는 걸, 나도 비로소, 절감해버린다.

젊은 날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버린 듯 애달프고 서러운 기분이 들 때, “더는 스무 살이 아니지만” 하고 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리게 될 때, 머리 위에 반짝이는 별도 달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자꾸만 《노인과 바다》를 펼쳐 들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망망대해에서 홀로 거대한 청새치를 배에 묶어 끌고 오는 노인이, 구름의 터널 속에서 청새치를 노리는 상어들에게 작살을 내리꽂으며 얼마나 스스로를 독려했는지, 그 장면을 거듭 복기하고 싶다. 카사블랑카의 한 선술집에서 덩치 큰 흑인과 팔씨름을 했던 때. 그곳 부두에서 가장 힘이 센 남자와 밤새 승부한 끝에 그의 손을 탁자 위에 눕혀버리고 말았던 때! 그 후로 오랫동안 노인은 ‘챔피언’으로 불린다. 분명히, 그랬던 적이 있다. 손에 쥐가 난 채로도 낚싯줄을 잡고 있는 노인이 줄곧 매달린 건, 과거의 화려한 영광이 아니라 자신감의 재현이다. 이 승부에서조차 나는 패배하지 않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리라는 집념.

이따금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를 냉대하는가. 어렵다고, 못한다고, 너는 되지만 나는 할 수 없다고 몇 번이고 나를 미워하고 외면한다. 포기하고, 자신을 잃는다. 그러니 노인이 보여준, 자기 자신을 향한 무한한 독려이자 정신적인 고무가 나는 새삼 뭉클하다. 내가 나를 믿어줄 때, 그 신뢰가 나를 행동하게 하고, 나를 지키며, 또한 나를 나의 ‘자리’로 온전히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모든 고통과 마지막 남은 힘과 오래전에 사라진 자부심을 모두 끌어모아” 고기의 괴로움에 맞서는 노인에게 나의 남은 모든, 애달픈 존경과 경외를!

《노인과 바다》를 읽고 난 뒤에 우리가 할 일은 다시 이 작품의 첫 장으로 돌아가서 페이지를 넘기는 것뿐이다. 강해지기 위해 날마다 바다거북의 흰 알을 먹거나 상어간유를 한 컵씩 마실 수 없다면, 매일 밤 황금빛 해변의 사자들 꿈을 꿀 수 없다면, 어쩌겠는가? 《노인과 바다》를 반복해서 읽을 수밖에. 우리에겐 단지 그 방법뿐이다. 다시 한번 더 노인과,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