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2ㅣ  구독  지난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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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현 기자

제25회 세계지식포럼이 지난 11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올해 세계지식포럼은 사반세기를 맞아 여러 변화를 시도했고, 역대 최대 규모 청중이 참여했습니다. 올해 세계지식포럼이 지난 24년과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매일경제 주최로 10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지식축제인 제25회 세계지식포럼 특별세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내외 글로벌 리더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사진=매경DB> 
서울을 떠나 영종도에서…한국의 다보스로 변신

세계지식포럼이 25주년을 맞아 단행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행사 장소 변경이었습니다. 세계지식포럼은 지난 24년간 줄곧 서울에서 개최됐습니다. 국내에선 단연 최대 규모 글로벌 포럼이며, 아시아를 통틀어서도 선도 포럼 중 하나로 자리 매김한 세계지식포럼이 그동안 한국에서 가장 글로벌화 된 도시인 서울을 기반 삼아 성장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영향력이 큰 해외 인사들은 서울에서 대부분의 만남과 비즈니스 일정을 소화하고, 한국 정재계 리더들도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만큼 이들 오피니언 리더가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서 포럼을 여는 건 주최 측의 서비스 마인드 측면에서 당연한 선택입니다. 그래서 세계지식포럼은 그동안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 홍은동 스위스 그랜드 호텔(옛 그랜드힐튼호텔), 광장동 워커힐호텔, 장충동 신라호텔 등 서울 대표 호텔들에서 열렸습니다.

세계지식포럼 미디어월 /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리조트

이런 상황에서 올해 행사를 서울이 아닌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서 포럼 개최를 시도한 것은 굉장한 모험이었습니다. 지난 24년간 총 6만3000여명의 참가자와 5800여명의 연사들이 참여하면서 탄탄한 인적 인프라가 구축됐지만 “과연 참가자들이 바쁜 일상 가운데 영종도까지 포럼을 들으러 올까”하는 우려가 적잖았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세계지식포럼 팀은 아침 출근시간과 낮시간에 직접 차량으로 서울 중심부에서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리조트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는 시뮬레이션을 수차례 실시한 결과 파악한 차량 이동 시간은 평균 1시간 20분이었습니다. 반면 지난 10년간 포럼이 열린 신라호텔은 서울 중심부에 있는 덕에 세계지식포럼의 주요 참석자인 기업인들이 접근하기 무척 수월합니다.


결국 모객이 성공하기 위해선 참가자들이 세션 한두개 듣고 행사장을 떠나는 포럼이 아닌 하루 종일 포럼장에 머물며 다양한 세션을 듣도록 해야했습니다. 이를 위해선 세션 구성과 연사들의 질적 수준을 이전보다 끌어올리는 정공법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이와 더불어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인스파이어 리조트 2박3일 숙박권을 파격적인 할인가에 제공하는 이벤트를 실시하고, 서울과 경기도 주요 주거지역에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등 참가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올해 3월 공식 개장한 인스파이어 리조트의 화려한 시설과 볼거리도 참가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투자 구루, 존 그레이와의 대화' 세션

그 결과 25회 세계지식포럼은 참가자 규모에서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단순히 등록 참가자 수 기준이 아닌 3일간 진행된 86개의 세션 대부분이 만석을 이루며 참가자들의 호응이 뜨거웠습니다. 예년의 개막식 격인 ‘25주년 기념 특별세션’ 참석자 수 역시 예년 보다 60% 늘면서 성황을 이뤘습니다. 참석자들이 접근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가볼만 하다”는 판단을 한 결과일 것입니다.


일부 국내 여타 포럼들의 경우 첫날 오전 개막식이 끝나면 참석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이후 세션이 진행되는 공간이 텅 비는 경우가 적잖습니다. 연단에 선 연사나 방청석에 앉은 참석자 모두 민망한 상황이죠. 포럼 전반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기 보단, 국내 주요 인사들을 초대하는 개막식에 역량을 집중한 결과일 것입니다. 이 경우 개막식에 정재계 VIP 인사들이 내빈으로 참석해 주최 측 입장에선 뿌듯해 할 순 있을 것입니다. 반면 포럼 참가자 입장에선 듣고 싶은 매력적인 세션이 많지 않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는’ 행사에 불과할 수 있겠죠.

'투자 구루, 존 그레이와의 대화' 세션
하지만 올해 세계지식포럼에선 마련한 자리보다 많은 참석자들이 세션장을 찾으며 상당수 참석자들이 선 채로 세션을 듣는 풍경이 3일 내내 계속됐습니다. 주최 측 입장에선 참석자들에게 죄송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또 참석자들이 연사들과 소통에 적극 나서며 질의응답 시간이 활발했고, 세션 이후 연사와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는 모습도 계속됐습니다.
라이징 스타 발굴…연사의 세대교체 단행

올해 세계지식포럼은 연사의 세대교체가 단행됐다는 점에서도 평가받을 만 합니다. 사실 국내에서 열리는 포럼들에 참석하는 해외 연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특정인이 수년째 단골 연사로 참여하는 경우가 적잖습니다. 이들이 매년 대동소이한 발언을 하는 탓에 참석자들 사이에서 “언제까지 똑같은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느냐”는 불만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국제관계·외교안보 분야에서 이같은 모습이 두드러졌습니다. 소위 한반도 전문가라고 하는 해외 연사 중 일부는 수년째 업데이트 되지 않은 ‘썰’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경제분야에서도 2000년대 스타 경제학자들이 2020년대 들어서도 여전히 국내 포럼에 얼굴을 내밀며, 한국 포럼들이 이들 올드보이들 수입의 원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세계지식포럼에선 이같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연사풀에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특히 경제학 분야에선 최근 글로벌 학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젊은 학자들을 발굴해 국내에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섭외에 나섰습니다. 부의 분배와 과세, 조세 피난처 분야 연구로 주목받고 있는 가브리엘 쥐크만 UC버클리대 교수, 노동경제학과 행동경제학 분야에서 주목받는 신예 경제학자인 저스틴 울퍼스 미시건대 교수가 대표적입니다.


국제관계 분야에서도 미국 싱크탱크 출신 인사들의 비중을 줄이는 대신 외교현장에서 실제 활약했던 인사들의 목소리를 키우는데 공을 들였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승리 시 국무장관으로 유력한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과 존 켈리·라인스 프리버스 전 백악관 비서실장 등을 통해 참가자들이 미 대선 이후 달라진 외교안보 지형을 가늠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했습니다. 세라 비앙키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대선 이후 미국의 통상 정책 변화 방향에 대한 전망을 내놨는데, 참석한 기업인들 사이에서 “실질적인 정보가 많아 유익한 세션이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아세안·남미·아프리카 이슈까지 확장

글로벌 포럼을 지향하는 여타 국내 포럼들을 살펴보면 연사 풀에서 영미권 인사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올해 세계지식포럼에선 영미권 외 아세안,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러시아 등 다양한 지역의 리더들을 초대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글로벌 포럼 역할을 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선 세네갈, 에티오피아, 르완다 전현직 장관들이 참여해 ‘비즈니스 인 아프리카’ 세션을 열었고, 아세안에선 캄보디아 총리를 38년간 지내고 지난해부터 상원의장을 맡고 있는 훈센 의장이 55명의 국가사절단을 이끌고 참여해 ‘아세안 공동 번영’을 주제로 연설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선 장관급 이상 고위 관료가 10여명 참여했는데, 외교방문이 아닌 민간 포럼에 이같은 규모의 사절단이 온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또 베트남 10위권 재벌기업으로 꼽히는 뱀부캐피탈그룹의 응우옌 호 남 창업자 겸 회장이 베트남 경제 전망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동안 국내 포럼에선 거의 조명하지 못했던 남미와 관련해선 마우리치오 마크리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현재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추진 중인 아르헨티나 경제개혁과 더불어 남미의 포퓰리즘 개혁 방안에 관한 전망을 통찰력 있게 전해주었습니다. 기업인 출신인 마크리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지내며 아르헨티나의 고질병인 방만 재정을 타파하는데 주력했던 인물입니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 <사진=매경DB>

또 천재 해커 출신이자 대만의 첫 트랜스젠더 각료로 화제를 모았던 오드리 탕 전 대만 디지털경제부 장관도 참여해 집단지성의 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러시아 민주화 운동의 리더이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으로 올해 초 암살당한 알렉세이 나발니의 부인 율리야 나발나야도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해 국내 미디어가 거의 다루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 내부의 변화의 움직임에 대한 생생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소폭과 김치전 먹으며 소통...만남의 플랫폼 역할도

이번 포럼은 참석자들이 상호 교감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는데 이에 대한 호응이 무척 컸습니다. 세션 외 비공식적인 소통과 만남의 기회에 대한 참가자들의 갈증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같은 만남의 플랫폼 역할을 한 이벤트가 포럼 둘째날 저녁 진행된 K포차였습니다. 세계지식포럼을 찾은 해외 연사들에게 한국 길거리음식과 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으로 마련된 K포차에 대해 연사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이며 개장 시간 20여분 전부터 긴 줄이 이어졌습니다. K포차 공간에는 최대 140명이 들어갈 수 있지만, 참석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결국 옆 컨퍼런스룸에서 식사를 하도록 안내해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K-포차:밍글링 나이트 <사진=매경DB>

K포차에선 골뱅이무침, 해물파전, 김치전, 녹두전, 어묵꼬치, 두부김치, 닭강정, 떡볶이, 김말이, 소떡소떡 등 다양한 안주가 제공됐습니다. 한강라면으로 알려진 라면 끓이는 기계도 놓였는데 해외 참가자들은 한국식 라면 문화을 체험하며 관심을 보였습니다. 또 준비된 소주, 맥주, 막걸리를 마시며 ‘소폭’ 등 한국식 술문화를 경험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연사들은 연사들끼리, 다양한 기업과 기관에서 참여한 참가자들끼리 소통이 활발했던 것은 물론, 연사와 참가자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풍경도 자주 목격됐습니다.


세계적인 투자자인 짐 로저스는 같은 테이블에 앉은 한국인 참가자가 인사를 하자 대화를 나누다 명함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베스트셀러 ‘테라 인코그니타, 앞으로 100년’의 저자 이언 골딘 옥스퍼드대 교수도 옆자리에 앉은 한국인 참가자와 첫 인사를 나누고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세계지식포럼이 단순히 일방향 지식 전달이 아닌 참가자들이 교감하며 지식을 공유하는 장으로 기능을 한 것이죠.


베스트셀러 ‘칩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 로빈 니블릿 채텀하우스 석좌연구원(전 소장),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의 저자 마이클 베클리 터프츠대 교수, ‘펜타닐’의 저자이자 탐사보도 전문언론인인 벤 웨스트호프는 북사인회를 통해 참가자들과 소통했습니다. 이들의 북사인회에는 시작 전부터 긴 줄이 이어지면서 마련된 책이 다 동나는 통에 사인을 받지 못한 참가자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또 세계지식포럼에서 처음 시도한 미니CES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세션 청취라는 다소 수동적이고 정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참가자들이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국내 기업들의 제품을 체험하면서 즐길 수 있는 포럼으로 변화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포럼장 대형 로비에 삼성전자와 더불어 수면기술, 피부미용, 4D 게임, 홈씨어터 관련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국내 4개 스타트업을 포함 모두 5개의 체험 공간이 마련됐습니다. 많은 참가자들이 이들의 제품을 체험하며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이들 기업이 자연스럽게 홍보되는 효과를 거뒀습니다. 수면기술 기업인 에이슬립은 이 자리에서 세계지식포럼을 방문한 C사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현장에서 제안받기도 했습니다.

세계지식포럼 행사장에서 한 참가자가 더투에이의 실감형 콘텐츠를 체험하고 있다.

삼성전자 전시관에선 요리사 모자를 쓴 로봇이 스스로를 파티시에(페이스트리 요리사)라고 소개하며 삼성전자의 갤럭시 Z6 시리즈를 재료 삼아 여러 차례 물에 담가보고, 억센 세척솔로 디스플레이 화면을 닦거나 수차례 접었다가 폈다를 반복하는 모습을 통해 스마트폰의 방수와 강도를 과시했습니다.

삼성전자 전시장 스케치
글로벌 이슈에 낮은 관심…관련 세션 홍보 필요성

물론 올해 세계지식포럼에서 아쉬운 대목도 있었습니다.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우주기술, 뇌과학 등 산업·신기술 관련 세션에는 참석자들이 대거 몰리며 성황을 이뤘지만, 중동 분쟁과 러시아 정치, 동북아 안보 전망 등 지정학 세션에선 연사들의 이름값 대비 참가자 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해외 지정학 이슈에 대한 국내의 낮은 관심도가 반영된 결과로 보이나, 관련 세션과 연사에 대한 홍보가 다소 부족해 보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26회 세계지식포럼은 내년 9월 9~11일 사흘간 개최됩니다. 올해 연사와 참가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던 부분은 더욱 발전시키고, 아쉬웠던 대목은 보완하며 보다 완성도 높은 포럼을 만들어가는데 매경미디어그룹은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올해 세계지식포럼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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