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조선이 유일한 목표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삶의 쾌적도를 잘 알지도 못하는 머리로 끊임없이 저울질해가며 먼 도시에서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계획해보았습니다. 어쩐지 웃고 있는 제 얼굴이 잘 그려지지 않았었죠. 어느 도시를 가도 여전히 무표정으로 살아갈 거라면 내가 조금이라도 더 이해받을 가능성이 많은 곳이 낫지 않을까? 이미 독립을 하며 한 도시를 떠나온 처지에, 늘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삶이 피로했던 것도 같습니다.
이 못생기고 내가 쌓아온 온갖 흑역사로 그을린 서울에는 정말 미운 사람들이 많기도 하죠. 그래서 또 여길 떠나갈 준비를 해야 할까요? 못생긴 도시 속에 더 못생기고 삐뚤어진 건 겁먹은 내 인정욕구였을지도 모릅니다. 당산역과 합정역 구간을 지날 때마다 뉴욕 메트로를 타고 있는 거라고 정신승리 하던 와중에, 사실은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한강의 윤슬만은 사랑했을지도요. 그게 아니라면 매번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어울리는 곡을 골라 들었을 리가 없을 테죠.
무언갈 단념해야만 했던 장소들이 있다면 그저 바라는 것 없이 누군가와 웃었던 곳들도 여기저기 포진해 있습니다. 이게 내 누덕한 서울이라면 여기서 잘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나를 내쳤던 시간들이 여전히 밉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지나온 것 같다면, 내가 발 딛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살아봐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모든 세속의 미움과 감정의 잔재에서 벗어나, 감사로만 가득한 내일로 나아가자 같은 뭘 모르는 소리는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미운 사람들의 얼굴을 도시 하늘에 애드벌룬으로 배경처럼 띄워놓고도, 우리는 눈앞의 해야 할 일과 하고 싶던 일을 끄떡없이 해치워가며 오늘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멀리의 초록> 새해 첫 편지는 그런 여러분과 함께 듣고 싶은 곡으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 여성 아티스트가 꾸준히 시티팝을 만들고 노래하고 있다는 게 때로 얼마나 위로가 되곤 하는지요. '불을 밝혀줘', '서울의 밤', 최근에 발표한 '아가씨' 등 우주의 시티팝 곡들에는 서울의 음영이 들어있습니다. 영영 도시의 주변인으로 남진 않을까 하는 태생적인 불안마저 시절의 낭만으로 물들여주죠. 눈에 띄게 씩씩하지도, 남다르게 관대하지도 않은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는 오늘. 실컷 살아내자고요. 많은 것들을 미워하며, 그럼에도 할 수 있는 만큼은 사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