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맡게 되었을 때 내심 기뻤습니다. 번역가께서 작성해 준 원고 검토서가 정말 흥미진진했거든요. 그리고 20대 남성인 제가 경험할 수 없는 임신과 출산, 육아를 다루고 있는 글이니 편집 과정에서 무언가 많이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지요.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단어 중에는 '친정'이 있습니다. 사전에선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지요. '친정親庭 1. 결혼한 여자의 부모 형제 등이 살고 있는 집.' 보통 결혼한 여성의 경우 자신의 어머니를 친정어머니,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을 친정집이라고 표현하곤 하지요.
교차교정을 본 부장님(1얼)께서 이를 '본가'로 바꾸는 게 어떨지 의견을 주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본가本家 1. 따로 세간을 나기 이전의 집. 2. 본래 살던 집. 잠시 따로 나와 사는 사람이, 가족들이 사는 중심이 되는 집을 가리키는 말. 3. 여자의 친정집.'으로 풀이되어 있어 사용해도 크게 문제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번역가께서는 오독의 여지가 있는 단어를 쓸 수는 없다며 '부모님댁'을 재차 제안하셨습니다. 번역가의 주변 지인들(여성 10명)께 확인해 보니 '시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예요. 동료 번역가 분들도 오역의 여지가 있다는 답변을 해 주셨다고 하더군요.
그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원더박스 편집부 세 얼간이는 모두 남자니까요. 🙋🏻♂🙋🏻♂🙋🏻♂ 크게 배운 경험이었습니다. 현실은 사전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 부분들은 '부모님댁'으로 고쳤습니다. 하지만, '친정'이라는 단어를 모두 없앤 건 아니랍니다. 어원을 찾아 봤으나 찾을 수 없었고 단어를 구성하는 한자어에 비하나 모욕의 의미가 없기에 무조건 사용하지 않아야 할 단어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또 이 단어를 친근해서 좋다는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그래서 '친정집/친정엄마' 등의 표현은 사용하지 않아야겠다고, '친정'을 사용할 땐 앞뒤 맥락을 잘 살펴야겠다고 개인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본가'라는 표현이 성별에 관계없이 두루 쓰일 수 있는 언어로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친정'과 '본가', '부모님댁'의 뉘앙스가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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