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파고든 유명인에 대한 아버지와 두 딸의 글입니다.
2024.8.21. 스물세번째 이야기
70대 아버지, 30대 두 딸이 함께 같은 주제로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
땡비에서 나눠볼 오늘의 이야기는 🐝내가 좋아하는 유명인입니다. 시인, 배우, 가수 등 만난 적도 없지만 마음이 가는 인물이 있나요? 여러분이 덕질하고 있거나 요새 푹 빠진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님도 오늘 땡비와 함께 내가 왜 이 인물을 좋아하는지 함께 돌이켜보면 좋겠습니다. 💌

바람의 말 마종기(by. 못골)


걸어가다가 복도에 걸려있는 시를 우연히 읽는다.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이하 생략

- (마종기 '바람이 전하는 말' 중)


시에 발길이 잡혀서 '어라! 무슨 이런 내 마음에 쏘옥 드는 시가 있지!' 하며 걸음을 멈추고 서서 끝까지 읽는다. 작은 바람에도 자신의 의지를 넣어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의 마음이 나에게 와서 멎는다. ‘오! 내 정서에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 작가는 시의 표현이 사후의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해석은 독자 자신이 하고 주제도 스스로 맞게 정하면 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시 해석이나 문학 감상은 너무 입시 위주의 틀에 박혀 ‘님은 누구냐?’, ‘나타내고자 하는 사상은 무엇이냐?’란 질문에 우린 늘 정답을 생각해 왔다. 님도, 바람도, 당신도, 떠나는 것도 모두 독자가 마음대로 의미부여 할 수 있는 것이다. 조국, 광복, 사랑 등등 우리가 고정적으로 생각해 내어야 했던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시의 해석을 벗어나 자유롭게 시를 감상한다. 


마종기 시인을 인터넷에 탐색해 보니 아동 문학가 마해송의 아들이다. 영광도서에 들러 마종기 시인 책을 샀다. 읽으니 문장마다 표현된 그의 느낌이 전해와 나도 그가 되어 본다. 이과 출신과 문과 출신의 사고는 판이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 사위 둘이 이과이고 딸들은 모두 문과이다. 그래서 가족 간에 게임을 할 때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이과가 별거 있어? 대충 그래!” 하면 또 “문과는 다른가? 어디 문과 패 한번 보자!” 하는 식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마종기는 의사이면서 시인이다. 이과이면서 문과 역량을 겸비하니 완벽하겠다.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까? 자신에게 주어진 제재와 고통이 오히려 좋은 글감이 되어 자신의 정신세계를 더 풍부하게 했을 것이다. 상처받은 인간일수록 더 예민하고 감수성이 뛰어나다. 살아야 하니까? 그래서 같은 사물도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보는 다의적 생각을 한다. 


아버지 마해송은 1956년에 연재된 어린이 동화소설이지만, 사실은 정치풍자소설인 ‘물고기 세상’에서 이승만을 늙은 거북이에 빗대며 4, 19 혁명을 예언한 걸작 동화작가이다. 그 아들이 마종기이다. 그는 1965년 한일회담 반대 서명으로 불법 연행되어 강제 투옥, 고문 등 박정희 군사정권의 보복으로 강제로 이주당하게 된다. 국가 권력이 은밀하게 강제한 국외 이주자라는 조건을 생각하며 그의 시를 읽어야 한다. 강제로 외국으로 이주하게 되어 외국에서 늘 조국을 그리워하며 시를 쓴 사람이다. 쫓겨 나가서 바라보는 조국의 의미를 섬세한 필체로 잘 표현하고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면 그냥 눈물이 날 것 같다. 눈물이 날 것 같다는 문학의 감성이 나는 좋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거나 이루어질 수 없어도 문학으로는 가능하다. 인간인데 꿈꿔 보지도 못한다면 얼마나 삭막한가. 감방 속에 고립되어 있어도 생각의 범주, 상상의 세계는 가두지 못하기 때문에 좁고 좁은 감방 속에서 오히려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분개하고, 환희하는 시들이 만들어져 왔다.      


모든 불꽃이 그림으로 완성된 

안정된 세상의 쓸쓸함

내 고통의 대부분은 

그 쓸쓸한 물이다. 

(이하 생략)

- (마종기 '쓸쓸한 물' 중)


불완전하고 그래서 변화의 가능성이 있을 때 모든 사물은 살아있는 것이다. 완성된 것은 이제 더 이상의 변화가 없는 죽은 것이다. 그래서 쓸쓸하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중간 생략)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 (마기 '우화의 강 1' 중)     


텔레파시는 유대가 약하거나 소원한 사람들 사이보다 친하고 자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더 강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좋아하면 물길이 튼다는 말, 서로 지켜보아 준다는 말은 그런 느낌일 것이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늘 가까이 있는 듯 친밀감이 이어지는 친구는 그만큼 넉넉한 강물로 연결된 것이다. 산다는 것이 밥 먹듯 일상적으로 만날 수는 없지만 떨어진 공간에도 불구하고 유대감이 이어진다면 대단한 사이이다. 읽는 시에서 나도 같은 감정을 크게 느낄 때 행복감마저 든다. 압축되고 요약된 시는 어느 매체보다 감동을 크게 준다. 


마종기의 시를 읽으며 곳곳에 줄 쳐지고 표시가 되는 것은 그곳에 그만큼 내 마음이 얹혀 있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시에 그대로 표현하여 나 대신 문자로 드러내 주는 고마움에 몇 번이고 반복하여 읽는다.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기를(by. 흔희)

보고 싶던 영화가 있었다. 그날을 돌이켜 볼 때, 사실 내가 보고 싶어 했던 그 영화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내 돈과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영화인지 알아보기 위해 제목을 검색하였을 뿐이다. 시작은 영화 제목이었지만 정보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인터넷의 세계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이동진’이라는 영화 평론가였다. 처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블로그의 게시물이었다. '영화 평론계의 아이돌'이라는 평을 받는 이동진은 이미 팬층이 두터웠으며 그의 팬 중 한 사람이 이동진의 영화평을 모아 블로그에 정리해 두었다. 잡지에서 보던 서평과 달리 그는 ‘한줄평‘이라 하여 길어봤자 세 네 문장 정도의 길이로 감상평을 압축적으로 제시하였다. 많은 한줄평 중에서도 특히 시선이 머문 것은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한줄평이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장애인인 여성과 비장애인인 남성의 사랑을 그린 영화이다. 서로에게 몰두하고 마음 한 켠을 내어주던 연인은 이내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대학 졸업을 앞두며 번번이 구직 면접에서 낙방을 하는 그에게 장애인인 여자친구와의 미래는 너무 까마득하다.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감을 견디지 못하고 남자는 여자를 떠난다. 시간이 흐르고 남자에게는 새 여자친구가 생긴다. 그녀가 자기에게 집밥을 해주고 싶다고 말을 한다. 그 말을 듣는데 그는 갑자기 남겨 두고 도망쳐 나왔던 옛 연인이 생각나 오열을 한다. 영화의 장면은 전환되고 뒤이어 남자를 오열하게 만들었던 그녀가 나온다. 남자 친구 없이는 집 밖의 세상에 나올 수 없었던 그녀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길가를 오고 간다. 더벅머리에 가까웠던 그 시절의 미숙함은 사라지고 단정하게 정돈된 머리로 씩씩하게 정면을 응시하며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여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버리고 떠나온 자는 여전히 그 시간에 남아 오열하지만, 버려졌던 자는 그 시절을 뒤로하고 자기의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다.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결말 자체가 주는 여운으로 인해 본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문득 생각이 나던 영화였다. 이동진은 이 영화에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부디 우리가 도망쳐온 모든 것에 축복이 있기를.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기를. 결국 우리가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삶의 뒷모습도 많이 누추하지 않기를.'


영화만큼이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불쌍한 여자친구를 버린 나쁜 놈이라고 욕을 해가며 영화를 봤던 20대의 나였다.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에서 묘한 승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내가 30대가 되어 이동진의 한줄평과 마주하였다. 나에게도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언가에게서 도망쳐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으레 그런 경험이 있다. 초라함, 부박함의 뒷모습도 너무 누추하지 않기를 바라며 남자 주인공을 끌어안아 주는 문장을 남긴 그가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동영상 검색 사이트에서 '이동진'이라는 이름 석자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그는 신문사에 취직하여 영화코너의 기사를 쓰며 인기를 얻게 되었다. 10년간의 회사생활은 자기가 조직사회와 그다지 맞지 않는 인간이라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간절해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것이 아니었다. 현실이 자기를 압도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망가져도 좋으니 여길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길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10년간의 기자 생활을 접고 현재까지 25여 년 간의 영화 평론가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운이 좋다고 하였다. 포장 없이 자신의 충동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이동진이라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다.


그는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 책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깊게 탐구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탐구한 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호모사피엔스', '총균쇠' 등과 같이 쉬이 읽어지지 않는 많은 분량의 책을 정리하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덧붙여 동영상으로 공유했다. 동영상 촬영을 앞두고 어떤 내용을 말할지 머릿속에 몇 개의 꼭지를 생각해두기는 하지만 할 말을 전부 대본으로 쓰지는 않는다고 했다. 몇 가지의 핵심어를 기준으로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해설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그에게 나는 점점 빠져들었고 몇 가지 인터뷰 영상을 더 찾아보기도 했다. 수집벽이 있어 일 년에 책과 음반을 각각 1,000권 그리고 1,000장 정도를 사모은다고 하였다. 이미 집에 보유하고 있는 책이 20,000권을 돌파했으며 음반도 10,000장이 넘는다고 하였다.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고 좋아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아부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에 마음이 치우쳐 퇴사를 한 그였다. 그는 자신이 평했던 영화의 평점이나 한줄평에 대해 시간이 지난 후 생각이 바뀌면 그것을 수정해 둔다. 수정한 것들을 따로 정리하여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둔다. 영화 평론의 대중화를 이끌었다고 평을 받는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번복하고 그것을 공유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 시절의 아둔함도 미숙함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에 드러내고 고쳐나간다. 아마도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가 보다. 시간이 지나 나의 부박함을 용서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언젠간.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기를. 결국 우리가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삶의 뒷모습도 많이 누추하지 않기를. 누추한 삶의 뒷모습도 언젠가는 추슬러 갈 수 있는 우리이기를.

가을이 왔다. 성시경이다. (by. 아난)

 

아직 31도쯤 되지만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다고 느낀다. 파란 하늘에 바람이 불어 가을이 오는 건가 싶으면 늘 성시경의 노래를 꺼내 듣는다. 겨울에 듣는 캐럴처럼 내게 가을은 성시경이다. 


성시경 노래는 성시경만이 부를 수 있다. 쓸쓸하면서 다정한 특유의 음색과 분위기는 성시경에게만 있다. 말하듯 부르는 그의 노래를 쉽게 보고 불렀다가 나자빠진 많은 이들을 보았다. 그의 노래에는 불필요한 영어나 억지로 쓴 가사가 없다. 꾹꾹 눌러쓴 편지 같은 노래를 듣다 보면 모든 이야기가 성시경의 경험이라 생각들 정도로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성시경은 ‘이윽고’하며 노래를 뱉는 순간부터 사람들을 집중시킨다.


중1 때부터 이상형으로 성시경을 꼽았다. 키 크고 지적인 느낌의 외모부터 다정하고 부드러운 성시경의 음악과 까칠한 사람 그 자체로 모든 게 좋았다. 이런 나의 이상형을 밝히면 반응은 늘 엇갈렸다. 대부분 “왜? 성시경을?” 하고 물어왔다. 특히나 남자애들은 다른 잘생긴 배우나 가수를 들며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애정만세'라는 일반인과의 연애 프로그램에서 그는 '버터왕자'라는 별명을 얻으며 남자들의 적이 되었다. 성시경의 매너와 다정다감함이 과하고 느끼하다며 싫어했다. 중간중간 나도 한 시대를 풍미한 많은 배우나 아이돌들을 좋아했지만 돌고 돌아 늘 성시경이었다. 성시경이 활동을 하며 쌓아간 이미지는 ‘남자 친구가 가장 싫어하는 가수’, 애주가, 대식가, 이 시대 최고의 댄스가수 등등이었기에 이상형이라고 밝혔을 때의 반응은 더욱 극명해졌다. 20대가 되어서야 종종 성시경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럴 때면 나조차도 “아니. 왜?”하며 의아하고 반가웠다. 


성시경의 앨범 덕분에 어떻게 노래를 들어야 하는지 내게 맞는 방식을 찾을 수 있었다. 데뷔곡인 '내게 오는 길', '처음처럼'을 듣자마자 '사람 목소리가 어쩜 이럴 수가 있는지!' 감탄하며 그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호기심이 생겨 앨범 전체를 들었고 모든 곡이 좋았다.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 노래 가사를 흘려듣던 내가 성시경 앨범은 CDP를 틀고 가사집을 보며 들었다. 성시경이 얼마나 앨범에 많은 공을 들였고 모든 가사와 노래 순서에 이르기까지 고민하고 넣었는지를 생각하며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목소리에 집중했다가, 후에는 깔리는 반주음만 들어보려 애쓰고, 흩어지듯 뿌려지는 코러스를 잡으려 귀를 쫑긋하고 듣곤 했다. 요즘에도 새롭게 접하는 노래가 마음에 들면 그 가수의 앨범 전곡을 순서대로 들어보는 편이다. 앨범을 여러 번 들으면서 자연스레 가사가 머리에 들어오면 노래를 처음 듣던 순간도 마음에 남는다. 2008년에 나온 성시경의 '안녕 나의 사랑'이 담긴 앨범을 들으면 대학교 1학년 때 풋풋했던 시절의 추억이 생각난다. 성시경의 앨범 전곡이 거를 필요 없이 술술 넘어가는 노래들로 가득 차있었기에 가질 수 있었던 음악 듣기 습관이다. 


성시경의 라디오를 들으면서 인간적으로도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때를 떠올리면 똥머리를 틀고 '푸른 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를 듣던 내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대학교에 와서는 'FM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를 즐겨 듣고 팟캐스트에 다시 올라온 그의 라디오를 방청소할 때마다 돌려 들었다. 예전부터 성시경은 건방진 고학력자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라디오에서 내가 만난 성시경은 삼수생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수험생 사연만 오면 흥분에 가득 차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고, 친구 같은 패널들과 이야기하다 신이 나 놀리기에 바쁘고, ‘오빠’라는 말에 잘 녹아버리는 철없는 사람이었다. 라디오를 들을수록 연예인 성시경에 대한 동경보다는 '으휴'하면서도 찾게 되는 고학번 오빠에게 드는 맘 같은 게 생겨났다. 그러면서도 어떤 때는 날이 서서 사회에 대해서 주저 없이 자기 생각을 말하는 예리한 모습에 반하기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 콘서트도 군 입대 전 성시경의 콘서트다.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실제로 그의 노래를 드디어 라이브로 듣는데 야외 콘서트라 하늘로 눈을 옮기며 들으니 황홀한 마음이 다 들었다. 같이 울면서 그의 군입대를 배웅하고 돌아오길 기다렸고 다시 잠실에서 열린 그의 콘서트에 뛰어갔다. 콘서트에서 성시경은 곡을 시작하기 전에 곡의 의미나 가사, 부르기 전에 자신의 감정을 말해주었다. 부르기 힘들고 감정 잡기도 쉽지 않지만 성시경이 참 애정한다며 불렀던 곡이 있다.  '그 자리에, 그 시간에'라는 곡인데 그 이후로도 내 마음에 남아, 들을 때마다 그 콘서트가 떠오른다. 마치 성시경과 나만 세상에 존재하는 듯 집중해서 들었고 노래를 들을 때면 언제나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내게 큰 행운이다. 


여태도, 앞으로도 내게 성시경만큼 설레고 절절한 마음이 드는 가수가 있을까? 가을이 올 때면 새로운 앨범으로 그가 함께 와주길 늘 기다린다. 그러나 요새 그는 신곡보다는 기가 막힌 국밥집을 소개하며 국밥부 장관이 되었고 친한 유명인들과 맛난 음식을 두고 이야기를 하다가 막걸리까지 개발했다. 이러다 영영 성시경의 새로운 노래가 나오지 않는 건 아닌지, 그의 성대가 혹여나 노래하기 힘들어질까 봐 조마조마하다. 2019년 이후로 그는 부산에 오지 않고 서울에서만 공연을 하고 있어 피켓팅을 뚫고 공연을 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번 가을에도 지난 앨범들을 꺼내 들어야 할 판이다. 찰랑거리는 소주잔과 볶음밥을 향하던 그의 숟가락을 잠시 내려두고, 열댓 곡 넘게 꽉 차게 들어간 앨범과 함께 '영원한 나의 가을 산타'로 돌아와 주길 기다린다.

💌 지난 호 구독자 후기 (#22. 기억에 남는 선생님)
고라파덕님 : 온기가 느껴지는 글이네요. 세 분을 만난 적도 없지만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어렸을 적 뵈었던 선생님들이 생각나면서 제 마음도 따뜻해졌어요. 계속 연이 닿는 선생님이 한 분도 안 계신다는게 조금 적적해지는 하루였습니다. 
🍯 땡비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소개
 - 못골👨🏻‍🎨 : 한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진을 찍어왔다. 한계를 넘어 뭐든 끝까지 가는 남다른 의지력을 지녔다.
 - 흔희👩🏻‍🎤 : 눈치를 보지않아 '인간 사이다'로 불리나 K장녀로 은은히 돌아있다. 직업 때문에 생계형 낱말수집을 한다.
 - 아난👩🏻‍🍳 : 목구멍 보이게 웃는 큰 리액션과 미친 에너지 때문에 '어린 짐승'으로 불렸다. 빵을 굽는 방구석 빵수니. 
오늘의 땡비 어땠나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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