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사전 연재,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오늘은 사랑에 관한 일기를 가져왔어요. 퀴어인 자신과 이성애자였던 엄마 아빠의 연애를 반추하며, '사랑의 영원성'과 '자연스러운 만남'에 관해 저자이자 화자는 자문합니다. 사랑과 연애가 필연적으로 지니는 아이러니와 쓸쓸함에 관해 함께 곱씹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알라딘을 통해 펀딩도 받고 있는데요. 오늘이 책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마지막 날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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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0

2021년 12월 19일 일요일


H와는 퀴어 퍼레이드에서 만났다. 페미당당이 행진을 이끄는 트럭에 올랐던 해였다. 이삿짐 용달 트럭에 페미당당을 상징하는 분홍색으로 무대를 세우는 것부터 우리가 직접 했다. 브라톱에 엉덩이가 다 보이는 쇼츠만 입고 트럭 위에서 출발을 기다리는데, 저 아래에서 흰 티셔츠를 입은 여자애가 팔을 흔들며 나에게 필사적으로 뭐라 뭐라 소리쳤다. 
처음에는 스태프인 줄 알았다. 그의 말이 레이디 가가의 노래에 묻히자, 그는 트럭 위를 향해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내밀었다. 아, 사진을 찍으려고.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 보였다. 그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더니 손으로 전화 받는 시늉을 해 보였다. 문제가 생겨서 주최 측에서 나한테 전화를 했는데 못 받았구나! 저 뒤편에 있던 핸드폰을 가져와 확인했지만 아무런 알림도 떠 있지 않았다. 전화가 안 왔다고 핸드폰 화면을 가리키는데 그제야 음악 소리가 줄어들며 그의 말이 들렸다. 손 하트를 만들며 “애인 있어요?” 전화 받는 시늉을 하며 “번호 줄 수 있어요?”
그렇게 드라마 아니 시트콤처럼 우리는 만났다. 더는 우리가 아니지. H와 나는 이날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내가 그를 트럭마다 번호 따고 다니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놀리면 그는 누구 번호 물어본 경험은 평생 한 번뿐이었다고 억울해했다. 그와 나의 대화 패턴이었다. 
그에 비하면 앱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좀 시시한가? 앱을 통한 만남은 자연스럽지 않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만남이란 퀴어 사회에서는 특히 꿈만 같다. 저 사람이 퀴어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 성별만 달라 보이면 일단 들이대고 보는 이성애자의 만남과는 까다로움의 수준이 다르다.
이성애자들, 즉 나의 엄마와 아빠도 꽤 낭만적으로 만나서 연애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아니 내가 대강 구성한 바로는 그렇다. 그들은 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만났다.
엄마는 책을 좋아해 그곳에 입학했지만 다른 큰 뜻은 없었다.(나중에 엄마의 아버지, 즉 나의 할아버지가 교수로 일하게 된 곳이다.) 그런데도 글을 곧잘 써서(또는 교수의 딸이라서) 졸업할 즈음에는 유학을 재차 권유받았다고 한다. 아빠는 나이트클럽에서부터 목욕탕까지 곳곳에서 일하다가 작가가 되기 위해 대학에 갔다. 엄마 말로는 아빠 친구가 대리 시험을 쳐 주어서 입학할 수 있었다는데, 모를 일이다. 하여튼 엄마는 학교를 금방 졸업하고 할아버지의 운전 기사가 태워 주는 차를 타고 회사에 출퇴근했고, 아빠는 등록금이 없어서 학교를 중퇴했다. 
서로 알고는 있었지만 친하지는 않았던 둘은, 어느 여름날 동해에서 우연히 만나서 가까워진다. 전화 예약조차 낯선 시절, 피서철을 맞은 동해에서는 동네 남자애들에게 민박집 호객을 시켰다. 동해에 놀러 온 엄마는 고향에서 친구들과 호객하던 아빠와 그렇게 만났다.
이런 간지러운 사연을 내가 왜 알고 있지? 엄마도 아빠도 당신들이 사귀게 된 서사를 나에게 들려주었을 리가 없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지어 낸 일화는 아닐까. 하지만 엄마한테 진실을 다시 물을 수는 없다. 분노에 가까운 회피성 반응만 돌아올 테니까.
자연스러운 만남이란 무엇인가? 앱으로 짝을 찾는 일보다 더 낭만적인가? 더 큰 사랑을 보장하는가? 앱은 없어도 맞선은 있던 시대에 엄마와 아빠는 그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만났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삶을 기억하기 시작한 시절부터, 아니 그보다 앞서 내가 기어다니던 때부터 서로 데면데면해 보였다. 
내가 태어날 때 아빠는 병원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 말에 따르면, 내 탄생을 기념하며 친구들이랑 술 처마시느라 못 왔단다. 엄마는 하룻밤 꼬박 진통 끝에 나를 낳고서 생각했다. ‘아기만 낳고 이혼해야지.’ 결국 동생을 또 낳았지만. 어쩌다 금연을 결심한 이의 돗대 같은 존재로 태어났을까, 나는.

퀴어문화축제에 해마다 오는 혐오 세력은 매해 비슷한 문구가 쓰인 팻말을 든다.(똑같은 손 팻말을 매해 돌려 가며 쓰나? 그 팻말은 한 해 내내 어느 교회 창고에 쌓여 있나?) 그 단골 문구 중 하나는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 나를 낳았어요.” 나는 엄마와 아빠의 사랑으로 태어났을까? 이혼 결심과 함께 태어난 아기는 부모의 사랑으로 탄생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이 한때 사랑하고 또 피부를 맞댈 정도로 친밀했다는 증거는, 오직 나의 존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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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조선’하고 결별을 통보한 여자친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대선 캠프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다!

낮에는 여자 대통령을 만들고
밤에는 레즈비언 데이트를 한 117일의 일기 


심미섭은 내가 기다려 온 작가다. 적나라할 만큼 솔직하고 처절할 만큼 분투하는 이런 레즈비언 이야기를 드디어 뜨겁게 접할 수 있어서 기뻤다. 심미섭은 정면 승부를 한다. 자신의 존재만으로 이 시대를 증명해 보이겠다고 선언하고, 『사랑 대신 투쟁 대신 복수 대신』으로 완벽하게 실천해 낸다. 심미섭의 이 산문집을 읽고서야 나는 알았다. 내가 항상 기다려 온 것은 새로운 세계가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임솔아(소설가·시인)

동성 애인과 막 헤어진 페미니스트 활동가가 홧김에 진보 정당의 대선 캠프에 들어가 새로운 일상을 꾸리며 써 내려간 ‘페미니스트 난중일기’. 이런 박진감 넘치는 일기는 본 적이 없다. 심미섭은 편집자 엄마에게 물려받은 매끈한 언어를 횃불처럼 쥐고 레즈비언 연애부터 진보 정치까지 온갖 모순과 감정으로 가득한 삶의 한가운데를 당당히 가로지른다. 12·3 계엄 직후 첫 탄핵 표결을 앞둔 국회 앞 광장에서 거침없이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소수자 혐오 없는 광장’을 요구한 심미섭이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어 왔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권한다. —장혜영(전 국회의원)

선거 캠프, 광장, 망한 연애, 그리고 레즈비언 앱에서의 만남까지. 여성·성소수자·진보 정치 같은 말 옆에 레즈비언 앱·철학·취향 같은 단어들이 놓이며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연결되지 않았을 단어들이 재조립된다. 말할 자리가 없으면 스스로 무대를 만들고 동료를 모아 방파제를 짓는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심미섭은 이제 책을 통해 자신이 짓고 만들어 낸 세계로 초대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해도 될까 망설인 적이 있는 사람에게 특히 권하고 싶은 책이다. —권김현영(여성학자)

명품 백 대신 철학 책을 집어던지며 운다. 사유의 펜트하우스에서 야경을 내려다보며 운다. 포르쉐 대신 속도계에 마하를 띄우는 반야의 등에 업혀 질주한다.(아니, 업힌 쪽이 반야였나?) 이토록 고급스러운 슬픔은 처음이라는 뜻이다. 심미섭은 평생을 고뇌하고 되돌아보고 읽고 앓으며 자신의 슬픔을 설명할 말들을 악착같이 그러모은 거부(巨富) 같다. 그렇게 모은 언어로 이 책에서 엮어 낸 것은 문장이 아니라 탯줄이다. 이제 섹시 카우보이 복장으로 등장한 심미섭은 그 탯줄로 올가미를 만들어 빙빙 돌린다. 지난날 처절하게 사랑했던 엄마‘들’에게 탯줄을 되돌려 줄 시간이다. —현호정(소설가)



7월 28일 월요일, 마지막 일기가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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