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7일 새벽 1시30분 일본 근해에서 필리핀 선적의 대형 화물선 ACX 크리스털호와 충돌한 미 해군 구축함 USS 피츠제럴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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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6월 17일 새벽 1시30분경 미 해군 구축함 USS 피츠제럴드호가 일본 근해에서 필리핀 선적의 대형 화물선 ACX 크리스털호와 충돌합니다.  이 사고로 해군 대원 7명이 사망합니다. 충돌로 물에 잠긴 격실 내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피츠제럴드호는 7함대의 주축 이지스 구축함이죠. 미 해군 제7함대는 중국, 러시아, 북한 등 동북아 등을 관할합니다. 각종 미사일 공격 등을 방어하고 요격하는 전투함인데, 화물선도 제대로 피하지 못한 것입니다. 


-미국의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는 이 피츠제럴드호 충돌 사고와 비슷한 시기에 7함대에서 벌어진 또 다른 충돌사고를 파해쳐 미해군 7함대의 문제점을 들춰내 퓰리처상을 수상했습니다. 13000쪽 분량의 조사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하고 재판에 참석하며 전·현직 해군 병사와 장교 그 가족들까지 찾아 인터뷰를 벌였습니다. 


-오늘 소개할 기사는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기사로 피츠제럴드호의 충돌사고를 세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기사에 묘사된 생생한 장면을 재구성하기 위해 진술서와 로그 기록, 인터뷰 등을 확인했고, 인터뷰를 거절한 이들은 진술서 등 기록을 통대로 인용했다고 합니다. 따옴표(“”)로 인용된 대화는 인터뷰와 진술서에 쓰인 그대로라고 하네요.


-이 기사를 소개하는 이유는 ‘내러티브 포물선’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내러티브 포물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 3막 구조 ‘시작-중간-끝’을 더욱 세분화해 시각화한 것입니다. 갈등의 흐름을 사건과 상황에 맞게 포물선 형태로 그려낸 것이죠. <퓰리처 글쓰기 수업>(잭 하트)을 보면 이 내러티브 포물선을 건축가의 설계도에 비유합니다. 독자들이 계속 글을 읽어나가도록 설계된 사건의 배열인 것이죠. 


-내러티브 포물선은 발단-상승-위기-절정-하강의 단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사는 이 순서대로 진행되기도 하고, 사건의 중간지점, 즉 상승 혹은 위기 단계에서 시작해 발단의 과정으로 다시 돌아가는 ‘플래시백’의 형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기사는 프롤로그부터 5개의 챕터가 이어지고 에필로그로 마무리됩니다. 각 챕터가 이 내러티브 포물선에서 제 역할을 하는데요. 포물선 전체는 플래시백 형태로 설계됐습니다. 프롤로그와 챕터 1은 사고 직후의 상황 즉, 상승 혹은 위기 상태를 보여주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사고 직전의 상황이 챕터 2~3에서 다뤄집니다. 발단과 상승의 과정입니다. 다시 챕터 4에서 사고 직후 침실에서 빠져나오려는 해군 대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챕터 5에서는 사고 직후 수습 과정과 유가족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절정에 이른 사건이 하강하기 시작하고 사고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에필로그로 대단원을 이룹니다. 


-감춰졌던 방대한 진실을 드러낼 때 내러티브를 활용하면 읽는 이가 더욱 공감하고 분노하며 깊이 빠져들 것입니다. 오늘의 뉴스레터는 한 편의 긴 이야기를 챕터의 주욕 단락을 발췌해 모아뒀습니다. 이런 내러티브 포물선을 상상해보면서 주욱 읽어보면 스토리 구조에 대해 공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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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2017년 6월 17일 새벽 1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각, 알렉산더 본은 해군 구축함 USS 피츠제럴드호의 침상에서 침실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갑자기 차갑고 짠 물이 느껴져 잠이 달아났다. 그는 두 다리로 버텨 서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때 허벅지에 강한 물살이 느껴졌다. 


주변의 수병들이 비명을 질렀다. “물이다! 침수됐어!”  본은 검은 플라스틱 안경을 더듬어 찾으며 창문 하나 없는 어두운 침실을 살피려고 애썼다. 


일본 해안에서 12마일 떨어진 태평양의 수면 아래, 깔끔하게 정리돼 있던 제2침실이 무너져 내렸다. 수병들이 ‘관짝’이라고 부르는 비좁은 이층 침대는 비정상적인 각도로 구겨졌다. 베이지색 철제 관물대는 물에 잠기는 중이었다. 신발, 옷, 매트리스, 심지어 운동용 자전거까지 어둠 속에 제 멋대로 떨어져 좁은 침실 통로를 막고 있었다. 


본은 비상용 랜턴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침대에서 뛰어내리는 다른 대원들을 볼 수 있었다. 몇몇이 부유물을 헤치고 배의 좌현에 있는 본의 침대 옆 탈출 사다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피츠제럴드호의 선체가 포장지처럼 찢어져 생긴 구멍으로 수만 톤의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


<챕터1>


충돌 당시, 크리스털호의 선수는 피츠제럴드호의 또 다른 침실과도 부딪혔다. 이 침실은 한 남자가 쓰던 곳이었다. 40세의 피츠제럴드호 함장 브라이스 벤슨의 침실이었다. 


벤슨의 선실은 수병들이 쓰는 제2침실보다 4층 더 높은 곳, 그러니까 해수면 위쪽에 자리했다. 


크리스털호는 벤슨 함장의 침실 아래쪽에 구멍을 뚫어놨다. 이 충돌로 의 벤슨 함장의 침실과 접견용 사무실을 은박지처럼 한 데 구겨놨다. 


충돌의 충격으로 벤슨은 잠에서 깨났다. 금속 배관이 그의 위로 떨어졌다. 벤슨의 머리에선 피가 흘렀다. 벤슨은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는 철제 기구와 전선에 뒤엉켜 움직이지 못했다. 


충돌 충격으로 벤슨은 잠에서 깼다. 금속 덕트가 그의 위로 떨어졌다. 그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강철과 전선이 뒤엉킨 곳에 파묻힌 채 갇혀 있었다. 그는 아내가 만들어 준 누비이불을 움켜쥐었다. 누비이불에는 파란색과 흰색의 사각형이 군함 형상을 감싸고 있었다. 


침실은 춥고 어두웠다. 벤슨은 찬 공기가 스치고 지나는 걸 느꼈다. 충격 속에서 그는 자신이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침실 벽이 찢겨나가 벤슨은 140도 각도로 어두운 바다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멀리 일본의 해안에서 비치는 불빛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는 배가 피격당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귀에 수병들의 비명과 신음소리가 들렸다. 


(...)


콜드웰 선임하사가 침상에 누워있는 벤슨을 발견했다. 끊어진 전선에서 불꽃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함장님," 콜드웰이 말했다. "제 손을 잡으세요.” 


"신발을 신을 수가 없어.” 벤슨이 말했다. 


"신발 따위는 신경쓰지 마세요. 함장님!” 콜드웰이 말했다. “제 손을 잡아요!” 


태평양의 검은 바닷물이 흘러가는 동안 두 사람은 팔을 마주 잡았다. 콜드웰을 뒤에서 붙잡고 있던 해병들이 함장과 함께 그를 끌어당기자, 벤슨 함장은 침실에서 끌어냈다. 


벤슨은 맨발에 긴팔 셔츠, 운동용 반바지를 입은 채 흠뻑 젖어 있었다. 얼굴에 피가 흘렀다. 그는 사다리를 붙잡고 한 칸식 올라갔다. 


충돌 16분 후인 오전 1시 46분, 벤슨은 휘청거리며 함교에 올라섰다. 아드레날린과 공보, 그리고 분노가 그를 사로잡았다. 피츠제럴드호는 어둠 속에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기울어져있었다. 전기가 모두 나가 통제 모니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상용 랜턴과 달빛만이 함교를 비췄다. 


벤슨은 당직 장교가 흐느껴 울고 있는 걸 보았다. 


“함장님, 제가 다 망쳐버렸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함교는 혼돈 그 자체였다. 장교와 당직 사병들은 모두 기절한 것 같았다. 어둠 속에 흔들리는 플래시와 휴대폰 불빛에 비친 질려버린 표정들이 언뜻 보였다. 배는 고요했다. 항해 중인 함정이 끊이 없이 내는 굉음에 익숙한 선원들에게는 무서울 정도의 적막감이었다. 


(...)


<챕터2>


(...)


7함대의 구축함들은 출동 횟수가 많기 때문에 계속해서 수리해야한다. 피츠제럴드호이 유지 보수해야 할 목록은 수백 건이 넘는다. 대부분 사소한 것이었다. 냉각수 교체나 세탁기 교체 등이었다. 


하지만 해결해야하는 결함 중에는 심각한 것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기본 항법 시스템의 문제였다. 


피츠제럴드호가 사용하는 기본 항법 시스템은 일본에 배치된 구축함 중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다른 배들은 업그레이드를 마쳤지만, 이 시스템은 윈도우 2000으로 구동됐다. 선박자동식별장치(AIS)의 정보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메일 시스템이 고장 난 것도 함정의 일상적 운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메일 프로그램인 아웃룩이 작동되지 않았다. 지휘관들이 기밀 메일 시스템으로 통신을 주고받을 수 없었다. 함정 전체의 네트워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지휘관들은 대원들의 작업 프로파일에 접속할 수 없거나 새로운 수리 사항을 요청하거나 부품을 주문할 수도 없었다. 


(...)


<챕터3>

새벽 1시25분, 피츠제럴드호는 크리스털호와 6000야드(약 5.5킬로미터) 떨어져 있었고, 또 다른 화물선 완하이266호와 5000야드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1만4000야드 거리에서 접근하는 머스크 에보라호와는 이대로 가다간 충돌하게 된다. 그래도 기동력이 뛰어난 피츠제럴드호가 이 상황을 벗어날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당직관인 코포크는 벤슨 함장의 명령을 어겼다. 벤슨 함장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혼자서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코포크는 당직실에 전화를 걸지도 않았다. 


“직접 해결해 보기로 했습니다.” 코포크의 말이다.


새벽 1시 30분경, 여유 시간이 모두 소진됐다. 갑판에 있던 파커가 함교로 뛰어와 소리쳤다. “배가 바로 우리 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코포크가 고개를 들자, 함교 창문 너머로 크리스털호의 거대한 갑판실이 보였다. 그녀는 우현 윙브릿지로 나갔고 문제가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피츠제럴드호는 심각한 재앙적 위험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크리스털호를 피하기 위해 코포크는 우현으로 급선회하기로 했다. 국제항법규칙에 따른 회피 기동의 표준 조치다. 


그녀는 조타수에게 명력을 전달하라고 항해사인 워맥 소위에게 외쳤다. (※워맥 소위는 레스토랑 등에서 일하다 장교가 된 지 얼마 안 됐고, 이날은 19시간 동안 쉬지 못하고 근무 중이었다.) 워맥은 그녀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래서 코포크는 우현으로 급선회하지 않기로 했다. 그 상태로 선회한다면 완하이266과 충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 이런! 망했다!”(Oh shit, I’m so fucked! I’m so fucked!)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코포크가 피츠제럴드호의 엔진을 역회전했다면 배를 멈출 시간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은 20노트 속도로 항해할 때 500피트 거리에서 완전히 멈출 수 있었다. (※함정은 자동차의 브레이크가 없는 대신, 엔진을 역회전(후진)하면 앞으로 나아가다 멈춰설 수 있다.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은 앞으로 나아가는 관성을 빠르게 제어해 비교적 짧은 거리에서 멈춰설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코포크는 기본 수칙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명령을 내렸다. 그녀는 조타수에게 최고 속도로 엔진을 가동하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크리스털호 앞으로 피해 가라고 했다. “전속 전진" 그녀가 명령했다. “키 왼편으로.” 


조타수 훈련병인 시모나 넬슨은 난생 처음으로 항해 중인 구축함의 조타를 잡은지 25분째였고,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도 몰랐다. 


1등 선임 하사 사무엘 윌리엄스는 넬슨이 당황한 걸 보고 키를 직접 잡아 코포크의 지시대로 배를 움직이면서 배의 엔진을 최대 출력으로 올렸다. 


피츠제럴드호는 다가오는 크리스털호의 경로에 바로 진입했다. 


코포크는 선원들에게 임박한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충돌 경보도 울리지 않았다. 


코포크는 “무엇이든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정녕 해내야 할 다른 모든 일을 뒤로 미뤄야 했습니다”라고 훗날 말했다. 


그녀는 우현 함교 밖으로 뛰어나갔다. 크리스털호의 뭉툭한 뱃머리가 그녀 바로 위에 어렴풋이 보였다. 검은 강철 벽이 날카롭게 위로 기울어져 들어왔다. 코포크는 밖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방위 측정에 사용되는 금속 기구인 알리다데를 붙잡았다. 


“뭐라도 잡아!” 워맥이 함교에 있는 다른 선원들에게 소리 질렀다. 


2017년 6월 17일 오전 1시 30분 34초, 북위 34.52도, 동경 139.07도에서 ACX 크리스털호와 USS 피츠제럴드호가 충돌했다 3만톤급 크리스털호는 18노트로 항해 중이었다. 8261톤의 피츠제럴드호는 22노트로 가속했다. 


크리스털호의 선수와 배 밑에 툭 튀어나온 구상선수는 피츠제럴드를 위아래로 짓눌렀다. 크리스털호의 선수는 벤슨 함장의 선실로 파고들어 철제 선체를 뚫고 함장실을 구겨놓았다. 바닥은 제2침실과 인근 격실 사이를 짓눌러 커다란 구멍을 남겼다. 


(...)


<챕터4>


로드 펠더만 병장은 충돌 순간 자신의 맨 위 칸 침대에서 깨어났다. 갑판 위에서 물소리를 들렸다. 침대 커튼을 치고 보니 사방이 어두웠고, 찬 물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펠더만은 뛰어내리려고 침대 밖으로 다리를 뻗었다가 밑에 다른 선원이 있는 것을 보고 흠칫했다. 하지만 계속 움직여야 했다. 그는 밀려 들어오는 바닷물에 다리를 담그고 아래로 내려갔다. 


순식간에 목까지 물이 차올랐다. 그는 함정 우현에 있는 사다리를 찾아 헤맸다. 그의 앞에 다른 사람들이 줄을 서고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모두 겁에 질려 허둥거렸다. 


“빨리 가!” 한 선원이 외쳤다. “막혔어!” 다른 선원이 답했다. 잔해가 사다리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었다. 


펠더만은 곧 물에 잠기려고 했다. 그는 숨을 들이쉬고 물 밑으로 잠수했다. 랜턴으로 물속을 비춰보았지만, 불빛은 희미했다. 공기가 절실했다. 그는 위로 올라가 두 개의 파이프 사이에 있는 작은 공간(에어 포켓)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물이 격실 안을 빈틈없이 가득 채우기까지 몇 인치밖에 남지 않았다. 


펠더만은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혀 멍이 들고 피부가 찢겨 피가 났다. “숨을 쉬려고 미친 듯이 얼굴을 높이 들려고 했어요.” 펠더만이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최대한 공기를 많이 들이 마신 후 물 속에 다시 잠겼다. 


(...)


펠더만은 피츠제럴드호의 우현에 홀로 남았다. 그는 어두운 물속을 수영해 탈출했다. 어둠 속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눈을 가리고 움직이는 훈련을 받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았다. 


어두운 물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그의 폐와 배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판단할 수 없었다. “물 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었던 것 같은 기분이에요.” 그가 말했다.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그냥 기다려야 할까 싶기도 했어요.” 그는 아내 리즈와 곧 태어날 딸 앨리스를 떠올렸다. 그가 죽고 열리는 추도식에 참석한 그들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냥 불빛을 향해 미친 듯이 수영했습니다.” 그가 당시를 떠올렸다. 


우현으로 나가는 출입문(해치)에 가까워졌을 때 다른 선원과 부딪혔는데, 그의 머리가 물 밖에 있는 것 같았다. 펠더만은 그 선원이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펠더만은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 그러다 우현 출입문 밖으로 끌어올려졌다. 제1침실 출입구가 보였다. 제2침실보다 한 층 위에 있었다.


“할머니의 기도가 아직 효험이 있구나.” 그는 생각했다. 


<챕터5>


(...)

오전 8시 28분, 26세의 노 에르난데스가 우현 휴게실 근처에서 발견됐다. 그의 머리에 찢어진 상처가 발견됐지만 원인이 파악되진 않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에르난데스는 아내 도라와 3살 난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길 좋아했다. 그는 휴가가 있을 때면 가족들과 긴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수영을 아주 잘했고, 꾸준히 운동하며 야외 활동을 즐기는 남자였다. 


(...)


피츠제럴드호가 마침내 항구에 도착했을 때, 도라 에르난데스는 군중 속에서 남편의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해군은 아무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소문이 무성했지만, 누구도 누가 살았고, 다쳤는지, 혹은 죽었는지 공식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피츠제럴드호의 귀환은 무시무시한 복권과도 같았다. 선원들이 하선하기 시작하자 도라는 여러 친구이 사랑하는 가족의 귀환하는 모습을 보고 기쁨에 겨워 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저도 기뻤어요.” 에르난데스가 말했다. “하지만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그날 늦은 저녁, 도라는 모두가 떠난 자리에 친구 몇 사람과 함께 남겨졌다. 그녀는 계속 기다리기로 했다. 남은 밤동안 그녀는 콘크리트 부두를 따라 505피트 길이의 피츠제럴드호 옆을 걸었다. 아침에 그녀는 보초를 서는 병사들에게 따듯한 커피를 가져다줬다. 해군 잠수부들이 피츠제럴드 호를 수색하기 위해 도착했고, 시신은 병원으로 옮겨질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에르난데스는 친구들과 급히 차에 올라 서둘러 출발했다. 


병원에서 해군 장교 한 사람이 남편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보가 된 것처럼 멍해진 그녀는 한 가지 요청을 했다. 남편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을까요?


군의관은 한 가지 조건을 지킨다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다. 남편을 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발견된 상태 그대로 검시관이 검사해 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병원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남편은 철제 테이블 위에 시체 보관 가방에 담겨있었다. 가방은 얼굴과 가슴 부위까지 열려 있었다. 


도라와 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인이었다. 둘은 텍사스주 웨슬라코에서 함께 자랐다. 텍사스와 멕시코의 국경을 이루는 구불구불한 리오그란데강을 따라 펼쳐진 교외의 마을이다. 


남편은 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다. 도라는 남편에게 다가가 기도했다. 


“거기 앉아 너무 괴로워했습니다. 정말 비현실적이었어요.” 도라가 말했다.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 Fight The Ship : Death and valor on a warship doomed by its own Navy
By T. Christian Miller, Megan Rose, Robert Faturechi, Feb 6, 2019
  📔논픽션 책 소개 


<언더그라운드> -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2010)


-1995년 3월 20일 오전 8시, 도쿄를 관통하는 지하철 3개 노선의 5개 차량에 치명적인 화학물질인 사린가스가 살포됩니다. 사린가스 살포자들은 사이비 종교 옴진리교 신도들이었습니다. 이 일로 12명이 사망하고 5000여 명이 중경상을 입습니다. 매일의 일상을 시작되는 지하철이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한 것입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979년 데뷔한 이래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담아낸 작품을 써왔습니다. 그런데 이 책 <언더그라운드>는 실제 벌어진 사린가스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기자보다 더욱 진중한 태도로 인터뷰하고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1997년 이 책을 펴냅니다. 한국에는 그보다 13년 지나 책이 나오게 됐죠. 


-하루키의 인터뷰 방식을 보면 지독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하루키는 조사 담당자, 편집자와 팀을 맺고 언론 등에 실명이 공개된 피해자 700명의 리스트를 작성한 뒤, 연락이 닿은 140명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이 중 60여명을 인터뷰했습니다. 


-한 사람과 인터뷰할 때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 걸렸고, 길 때는 네 시간까지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터뷰 녹음테이프를 읽기 편하게 녹취록으로 만들었지만, 현장 분위기와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몇 번이고 테이프를 반복적으로 들었습니다. 인터뷰에 나서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되도록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정리한 인터뷰를 일인칭의 시점으로 정리했습니다. 하루키는 인터뷰한 자신의 인상을 담은 짧은 글도 덧붙였습니다. 이 책은 언론에서 소개될 만한 자극적인 소재보다, 한 평범한 인간이 원치 않게 마주한 사건의 현장에서 어떤 일을 겪었고 그 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내러티브 포물선’ 같은 이야기 구조가 갖춰진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는 논픽션의 가치가 잘 담겨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 소개하게 됐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마음에 담아 사실대로 적어낸다면, 그것이 논픽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꾸며내지 않은 사실이 스스로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코끼리의 번역 노트>는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 코끼리'가 엄선한 해외의 내러티브 논픽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곳곳에 숨은 이야기를 찾는 이들과 영감을 나눕니다. 
다시 읽고 싶은 긴-이야기 : 코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