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alks; 서울은 꿀잼인데, 왜 대전은 노잼일까

서울은 꿀잼인데, 왜 대전은 노잼일까

대전세종연구원 주혜진 책임연구위원

김포는 서울이 되려 하고, 부산에서는 젊은 청년들이 계속해 도시를 떠난다. 대전에는 성심당만 남고, 포항에는 과메기만 남는다. 한국의 지역 도시는 언제부터 단 하나의 모델을, 랜드마크를, 특산물을 좇게 된 걸까?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의 저자 주혜진은 대전의 시민이자 연구원으로서 대전이 노잼도시가 된 이유와 원인을 파악했다. 서울이 되고 싶다는 욕망,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를 담아야 한다는 부담, 장황하고 화려한 아름다움 같은 것들이 그 이유를 채우고 있다. 그런데, 목표를 향해 직진하는 도시에는 모방과 열패감만 남을 뿐이다. 재미는 그곳에 없다. 대전이 꿀잼 도시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의 작은 손과 미묘한 시선에서 변화는 시작된다.

🎈 톡스 뉴스레터 구독하기

대전에서 연구를 해왔다. 연구자로서, 시민으로서 대전은 어떤 곳인가?

눈 비비며 출근하고, 퇴근길에 반찬 사서 돌아오다가 옆집 강아지와 눈 마주치는, 어디서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이 있는 곳이다. 아침 공기, 골목길, 음식 냄새, 이웃 사람과 고양이처럼 흔하고 편안한 것들로 채워진 곳 같다. 그런데도 일제강점기 때 성장한 대전의 역사를 들으면 참 낯설다. 때로는 공원 잔디밭에서 맥주를 마시며 재즈 축제를 즐기며 ‘지방세 낸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매일 같은 모습인데도 한 걸음 다가가면 무척 다르다. 다른 도시들도 그럴 것이다.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는 어떤 마음에서 쓰인 책인가?

최근 5년간 ‘노잼도시’라는 단어는 대전에 애정 좀 있다 하는 사람들의 이른바 ‘발끈 버튼’이었다. “노잼도시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도 마세요! 자꾸 그렇게 부르니까 사람들이 더 대전을 노잼도시라고 하는 겁니다!”라는 말이 나오곤 한다. (웃음) 심지어는 대전시 공문서에도 종종 ‘노잼도시 이미지를 타파할 수 있는’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그 정도로 대전은 노잼도시에 진심이다. 그런데 마음에 쏙 들게 ‘노잼도시’를 정의한 글은 보지 못했다. 관광 자원이 부족해서 그렇다는데, 정말 꼭 그것 때문일까 싶었다. 진심으로 왜 대전이 노잼도시인지 궁금해서 시작한 작업이다.

다들 대전이 노잼도시라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왜 이 당연해 보이는 명제에 질문을 던지게 됐나?

사회학자에게 ‘다들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말은 당연하지 않다. 사회 현상 중에 당연한 게 어디있겠나. 대전과 노잼 사이에 어떤 관계가 분명히 있을 테고, 그래서 이런 현상이 생겼을 텐데, 그 관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의심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실체를 알 수 없다. 그러면 지식 없이 믿음만 갖게 된다. 변화나 확장, 혁신이 어려워지는 거다. 대전이 노잼도시가 아니어야 한다면, 혁신하고 싶다면 구체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대전에는 이렇다 할 관광지가 없어 재미없는 도시라는 의견이 많다. 공감하는 바인가?

대전이 노잼도시가 아닌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는 한 유튜브 영상을 봤는데, 대전도 ‘이렇다 할 관광지’가 없지 않다. ‘이렇다 할’이라는 말은 일종의 기준이다. 전문가들은 관광 행태와 관광 자산 통계를 내고 그 결과를 통해 ‘이렇다 할 관광지’라는 기준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간다고, 매출이 높다고 다 재미있고 멋진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곳들은 막상 다녀오면 시시해지기도 하지 않나. 대전뿐 아니라 어느 도시든 그곳에 사는 사람은 자신만의 ‘유잼’을 꾸준하게 개발해 왔다. 사소한 장소나 사건이라도 감각을 열고 깊이 느끼는 순간을 경험하면 모든 도시가 소중하고 의미있다. 그때 생기는 게 비로소 ‘재미’다. 그런 경험이 그곳을 다시 방문하게 한다.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스리체어스

도시가 노잼이라는 건 무슨 뜻인가?

내가 충분히 느끼고 즐거워할 여지를 주지 않는 도시가 진짜 ‘노잼’이라고 생각한다. ‘넌 이걸 즐겨야만 해!’라고 뻔하게 들이대는 곳에 우리 모두 한 번 쯤 들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건물 외형, 내부 장식, 조형물과 체험 장치가 단순하고 전형적일 때 그런 감정이 든다. 아슬아슬한 스릴, 눈부신 화려함, 적당한 맛과 같이 상투적인 건 얼마나 재미가 없겠나. 정해진 즐거움이나 아름다움이 있는 것처럼 꾸며진 장소에서 실망하는 것 같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꿀잼도시인가?

어떤 장소가 일단 서울에 있다면 ‘이렇다 할’ 기준의 반은 충족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서울의 삶, 특히 서울이 청년에게 얼마나 가혹한 도시인지를 다들 느끼면서도 모두가 서울을 동경한다는 것, 더 나아가 서울을 동경하지 않을 수 없도록 우리 사회가 움직이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다른 도시에서 서울로 온 청년들이 과연 서울을 ‘꿀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최근에는 지역 도시에 ‘힙한 서울스러운’ 카페와 장소들이 많이 생긴다. 원인이 뭐라고 보는가?

대전이 노잼이 아닌 이유를 찾고 싶어서 작년에는 대전의 핫플레이스와 힙플레이스를 검색어로 소셜 미디어 텍스트 최근 6년 치를 크롤링해 분석했다. 대전의 핫하고 힙한 곳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뜨고 지더라. 부동산 사장님처럼 상권의 흥망성쇠를 분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서울이라는 도시가 갖는 의미였다. 대전의 힙플레이스를 얘기하는데 서울이 엄청나게 중요한 기준이더라. 서울스럽고, 서울에서 뜬 것이 대전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그곳을 보고 힙하고, 핫하다고 했다. 아마 다른 도시의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다 보니 모두 비슷한 풍경들이 지방 도시를 채우게 된다.

많은 도시가 서울처럼 되고 싶어 한다. 지금의 한국 지역 도시들에 ‘서울’은 어떤 존재라고 보나?

추격의 좌표 가장 끝에 있는 곳이다. 아마 서울 뒤에는 뉴욕이나 파리가 있지 않을까. 목표이자 표준을 서울이 제시하고 있다. 서울을 향한다는, 추격의 방향은 정해져 있는데 그 이유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 같다. 묻거나 따지지도 않고 서울을 추격하다 보니 도시들끼리 경쟁하게 된다. 모방과 반복의 경향도 강해지고 속도가 붙는다. 도시 각각의 실질적인 내용을 채우는 데 쓰일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 내에서도 강남, 강북을 시작해 꼬리표와 순위, 지향이 생긴다. 도시의 모습에 목적이 있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로 들리는데, 한편으로는 바람직한 도시의 모습도 있지 않나? 우리는 어떤 모습의 도시를 지향해야 하는가?

우상향 직선 그래프보다는 방사형 그래프를 그리는 도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도시는 하나의 가치만 중요하게 여기는 도시다. 여러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시는 방사형을 그리고, 다방면의 도시 발전 지표를 중요하게 여긴다. 소득의 증가와 분배, 복지 혜택뿐 아니라 이웃 관계, 모임의 수 등도 중요한 도시 발전의 지표로 생각해야 한다. 새 건물이 얼마나 들어섰는지, 개발이 얼마나 이뤄졌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도 있고, 또 도시의 옛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보존하는가를 보는 지표도 있는 도시가 좋다. 그 사이의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최근 김포시의 서울 편입 논의와 관련해서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서울이라는 워너비를 좇는 마음과 정치적 계산이 맞아떨어질 때 나올 수 있는, 솔깃한 제안 혹은 꼬드김이다.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끌리는, 불량한 맛이랄까? 행정 구역이 바뀌는 데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숙의의 시간이다.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김포의 아파트값이 들썩인다는 기사를 봤다. ‘서울이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건 결국 서울에 있는 집을 소유하는 것, 서울이 되는 건가?’ 생각했다. 올가을에 대전과 세종 사람들이 많이 가입했을 법한 온라인 카페 글 1만여 건을 분석했는데, 2019년에서 2020년 사이 대전과 세종의 아파트 거래 가격이 급상승했을 때 모든 공동체와 사적 관계 이슈가 아파트 사고파는 얘기에 잠식됐더라. 도시의 경험이 아파트에 투자한 경험으로 확실하게 전환되는 걸 보면서 요즘의 도시란 내가 산 아파트가 있는 곳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보니 김포 아파트값이 들썩인 게 이해가 되더라. 잠시 메가 서울 이슈에 속 불편한 사람이 이 책을 사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웃음)

책의 첫머리가 ‘서울의 해맑음’에 끼지 못하는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는 지역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중앙에서 밀려난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수자의 위치와 지방 출신의 위치에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했나?

소수자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방식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 왔다. 성(性)을 둘러싼 구조적 불평등함은 개인의 삶에 깊이 침투하고 어떻게든 개인적 삶 그 이상으로 드러난다는 걸 깨달았다. 불평등함은 사소한 수준에서 드러난다. 기분으로 느끼고, 주위 사람들이 날 어떻게 대우하는가를 통해 깨닫고,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추적하며 이해하게 된다. 밀려나 있다는 건 그를 밀어낸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밀어낸 존재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며 동시에 추앙하기도 한다. 서울에 대해 지방 도시가 갖는 태도와 감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결국 도시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노잼도시에 사는 이라도 자신의 손으로 재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보나? 그 방법은 무엇인가?

도시 계획이나 지역성 연구는 ‘개인’을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거대한 계획을 세우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탐구하면서 ‘개인에게 도시는 무엇인가’를 질문하지 않는다. ‘당신에게 이 도시는 무엇입니까?’란 질문을 하고, 우리도 그 질문을 자신에게 했으면 좋겠다. 이 도시에서 땅, 도로, 건물과 소유한 집너머의 다른 무엇이 나에게 의미 있는지 찾기 시작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남들이 만들어 놓은 재미의 틀을 거부하게 된다. 장소에 대한 감각도 훨씬 넓고 깊게 열리지 않을까. 익숙한 곳이 색다르게 다가올 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왜 그런 감정이 느껴졌는지 생각하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 장소마다 그런 기억과 기록이 쌓이면 언젠가는 도시를 만드는 나만의 시각이나 방법론을 갖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장소, 도시와 나 사이에 관계가 생기고 가까워진다. 가까워지면 더 알고 싶고 좋아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때 이 도시가 비로소 내 도시가 된다.

마지막으로,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를 누구에게 추천하나?

서울에 살고 있지만, 서울이 영 내 도시가 아닌 것 같은 사람들에게 권한다. 서울에서 느끼는 이질감의 원인을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책이다. 물론 ‘노잼도시’라는 단어가 적잖이 불편한 대전 사람과 최근 ‘노잼’의 자리를 넘보는 다른 도시 사람들에게도 유용할 것 같다. 노잼도시가 된 이유를 알면, 노잼도시를 탈피할 방법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글 김혜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