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봄, 팩토리는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친구의 멋진 작업을 소개할 생각에 들떴다. 예상을 벗어나는 변수로 어수선한 와중에도 전시를 준비하는 이들이 공유한 마음은 하나의 결이었다. ‘이렇게 멋진 것을 소개할 생각에 무척이나 설렌다.’ 이 작업은 한눈에도 또 길게 두고 보아도 아름다운 것은 물론, 유용한 물건이 주는 호감과 안정감을 가진 것이었다. 이는 팩토리 에디션이 수없이 내세웠던 (하지만 외우기 힘든) 타이틀, ‘감상과 경험의 경계 없는 교감’을 말이 아닌 작업 자체로 단번에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의 대상은 바로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루프트(Luft)’와 이곳의 공동운영자인 디자이너 마키시 나미.
전시가 시작되었고, 공간에 오는 초대 작가 여러분과 관객은 직접 가구를 보고 손으로 만지며 감탄하고 또 행복해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간에 서로를 배려하고 다정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최종적으로 전시 공간을 완성하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가구는 배경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곳에 온 이들에게 적당한 마음과 생각의 간격을 배려했다.
전시 클로징을 며칠 앞두고 마키시 나미가 어렵게 시간을 쪼개어 팩토리2를 찾았다. 한국에서 동시에 진행 중인 여러 프로젝트로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면 두 볼 한가득 웃음이 번지며 기뻐하는 그였다. 팩토리의 이번 인터뷰 레터는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 마키시 나미이다.
인터뷰. 이경희
직접 디자인한 가구와 공간인 자택에서 작업 중인 마키시 나미
On and Around Table
2022년 봄에 연 <On and Around Table>은 2018년 이후 팩토리에서 하는 3년 만의 전시입니다. 참여작가도 마키시 나미 단독이 아닌 스튜디오이자 숍인 ‘루프트(Luft)’와 가깝게 교류하는 금속공예 스튜디오 ‘치카푸(cicafu)’가 함께 해요.
코로나가 일단락되면 서로의 도시인 서울과 오키나와를 오가며 팩토리와 전시를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팬데믹이 무기한 길어지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니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일단 온라인 미팅으로 조율하며 전시를 준비했어요. 특히나 이번은 제 개인전이라기보다 제가 동료들과 함께 운영하는 ‘루프트’의 전시라고 하는 게 맞아요. 팩토리가 ‘팩토리2’와 ‘팩토리 에디션’ 숍을 동시 운영하는 것이 루프트숍과도 비슷한 점이 많아서, 팩토리가 먼저 루프트라는 공간과 관련 작가를 소개하면 좋겠다고 먼저 제안해주었고, 우리도 그게 매우 재미있을 것 같아서 흔쾌히 응했지요.
<On and Around Table> 전시의 저녁 전경
ⓕ 이번 나왕 셸브엔 기존과 다른 변주가 보여요. 색상이 어두워졌고, 크기도 이전보다는 작아서 벽에 건다던가 다양한 모듈로도 활용이 가능하고요. 이에 더하여 테이블, 의자, 금속 보드 등 구성도 풍성해졌어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시면서 예전과 다른 점이 있었는지, 혹은 특히 강조해 보여주고자 하는 게 있으셨나요?

스스로 나이가 들어간다는 자각을 할 때쯤 ‘나의 생활을 좋은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생활과 잘 어울리는, 또 내가 편하게 사용하고 싶은 테이블과 의자를 자발적으로 디자인하기 시작했죠. 그게 벌써 한 5년 정도 되었나 봐요. 이전에는 제가 개별 소품보다는 공간 전체를 디자인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어요. 하지만 5년 전부터는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어 루프트숍에서 판매도 시작했어요. 이번 팩토리2에서의 전시도 루프트가 판매하는 것을 그대로 전시하고 판매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전시장에서 만나는 작업들 모두가 결국 제가 만족해서 실제 쓰고 있는 것들이라고 보면 되어요.

2009년 팩토리에서 했던 첫 전시에서 저는 제가 발표하는 게 가구보다는 예술작품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독일에서는 순수예술(fine art)을 공부했기 때문이었죠.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하면 갤러리 안에서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를 그땐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새는 바뀌었어요. ‘실제 내가 집에서 쓰고 있는 것을 갤러리로 가져오는 것은 어떻게 보일까, 무슨 의미일까?’ 하는 거죠.

ⓕ 이번 전시가 특히나 눈길을 끄는 것, 아니 그보다 마음이 오래 머무르는 이유는, 전시 타이틀에 실제 내용이 매우 잘 어울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전시장에는 루프트의 작업 이외에도 세 명의 작가 (윤라희, 이소영, 차승언)를 초대해 이라는 액자식 시리즈 전시를 소개했고, 전시, 작품, 연계 프로그램에 따라 매번 가구 배치를 바꿔가며 설치에 가변성을 높였죠. 지금 저희가 대화를 나누는 이 둥근 테이블 위에서는 오늘과 같이 여러 차례의 인터뷰, 어린이 워크숍, 아티스트 토크, 각종 미팅과 담소가 오가기도 했어요. 마키시 나미의 작업이 공간을 채우고 있지만 때에 따라 배경이 되면서 매번 새로운 장면과 시간이 펼쳐지고 있어요. 루프트에서 본인의 작업을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양 볼 가득 함박 미소가 번지며) 일단 무척 좋았어요. 요즘 저는 제 작업이 그 공간에서 주인공인 것처럼 직접 드러나는 것엔 큰 관심이 없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래의 기능을 잘 수행하는 것, 또 배경으로서도 아름답게 존재하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다양한 예술작품과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보며 ‘매우 자연스러운 길로 잘 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2018년에 했던 전시 <I Always Look at a Base>가 사실 그런 취지였거든요. 저는 미술관에 가면 작품도 보지만, 작품이 설치된 주변 구조물이나 좌대도 유심히 봐요. 이번 전시가 이제 와 보니 2018년에 했던 그 전시와 주제나 맥락이 비슷하다는 걸 팩토리2에 와서 보고서야 비로소 다시금 깨달았어요. 가구 위에 혹은 주변에 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이 더 선명하게 이해가 된달까요. 이 자체가 생활 속에 있는 것 같잖아요.
<On and Around Table> 중 3인의 초대 작가 전시 <Time on Table> 윤라희(위), 이소영(왼쪽 아래), 차승언(오른쪽 아래)
표현 방법이 가구일 뿐
팩토리는 ‘팩토리 에디션’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심리스 플로우(seamless flow), 예술 감상과 일상 경험의 경계 없는 교감’을 제안하고 있어요. 이러한 팩토리의 취지가 루프트의 작업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기에 이번 전시도 마키시 나미 개인전이 아닌 루프트를 선보인 게 아닌가 해요. 그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팩토리를 지켜봐 오셨잖아요. 이러한 방향성에 대해서는 동료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느낌은 좀 다를 수 있지만 방향에서는 저와 매우 비슷한 것 같아요. 루프트는 전체적으로 좀 무겁고 심플하지만, 팩토리는 그것만 가진 게 아니잖아요. 예술, 공예, 디자인, 건축, 음악 등 다양한 분야를 나누지도 않고, 그들 간 우위를 두지 않고 혼재한다는 게 아름답다고 봐요. 예술은 현실 너머에 있는 접근 불가한 대상이고, 가구는 보편적인 거라고 나누지도 않잖아요. 예술 작품도 나름의 기능이 있는 프로덕트로 생각할 수 있고, 우리가 앉은 이 동그란 테이블도 어찌 보면 아주 미니멀한 작품으로 볼 수 있고요. 팩토리도 이런 생각을 가진 곳이라서 저라는 디자이너에게도 여러 번의 전시를 의뢰하신 것 같아요. 겉으로 보기에 표현방식은 달라도 밑에 깔린 생각은 같은 것을 공유하는 것 같아요.
이번 <On and Around Table>이 팩토리에서 다섯 번째 전시예요. 이중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혹은 마키시 나미께 중요한 기점이 되는 전시가 있다면 어느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제가 팩토리에 처음 왔을 때는 엠케이투(mk2) 이미경 님의 가구가 전시 중이었는데, 그건 제게 하나의 사건 같은 장면이었어요. 그때까지 저는 온전히 디자이너이기만 했어요. 누군가의 의뢰가 들어오면 거기에 잘 맞춰 만들어주는 사람이요. 그런데 이미경 님의 전시 속 가구는 그것이 가구인지 예술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어요. 그게 시사하는 바가 커서 저도 팩토리에서 전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당시 함께 일했던, 그리고 팩토리 디렉터인 홍보라 씨와도 친분이 있는 고가현 그래픽디자이너에게 부탁해서 소개를 받았어요. 보라 씨가 흔쾌히 좋다고 해서 전시를 하게 되었고, 그 전시를 통해 저는 생각이 많아지고 작업을 하는 태도도 변했어요.
이미경 님과 저는 나이가 같고 (전공은 다르지만) 독일에서 공부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더 관심이 갔던 것 같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예술가가 되고 싶었고, 가구를 만들면서 그 마음이 달라진 것도 아니었거든요. 예술가와 디자이너 사이의 경계를 느낄 때도 있지만 또 없는 것도 같다고 생각하던 시기여서 그 가구 전시가 특히나 인상적이었어요.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보여주는 것 같은! 당시 제 주변의 사람들에겐 그 변화가 보이지 않았겠지만, 저의 내부에서는 나름의 목표가 뚜렷하게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거죠. 그리고 갤러리에서 가구 전시하는 걸 처음 보기도 했어요. 실제로 이미경 님에게는 그게 가구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표현 방법이 가구일 뿐. 그게 저는 재미있더라고요.
 오랜 시간 막연하게 고민하던 것이 눈앞에서 펼쳐진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오갔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용기도 얻으셨겠고요. 그리고 실제 전시를 하면서 여러 사람의 반응도 접하셨겠죠? 당시의 전시 전경을 보면 가구를 바닥에서 띄워 벽에 걸었어요. 정말 예술품처럼 보이기 위한 장치였나요?
네, 저도 그 셸브를 단순히 가구 혹은 예술품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관점에서 사람들이 보고 느끼길 바랐어요. 그런데 막상 전시했을 때는 하나도 안 팔렸어요. (웃음)
바닥이 아닌 벽에 걸어 전시했던 마키시 나미의 <나왕 셸브> 시리즈 no.11
순수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일본에서 가구 디자인을, 졸업 후 독일로 가서 순수예술인 조소를 전공하셨습니다. 대학 시절의 전공을 지금도 업으로 이어서 하고 있으시고요. 처음에 어떤 생각으로 가구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느끼셨는지 궁금해요. 그러니까 중고등학생 때 마키시 나미는 어떤 생각을 하는 청소년이었나요?
저의 아빠는 화가이고 엄마는 직조를 하는 공예가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미술과 공예 양쪽 모두와 가깝게 지낸 셈이었죠. 그래서 사춘기 시절의 제가 나름 설계한 전략은, ‘아빠가 아티스트이고 엄마는 공예가니까 나는 다른 길을 갈 테야’였어요. 그래서 선택한 게 디자이너였죠.
그 ‘다른 길’이 수학자나 사회학자는 아니었잖아요. 예술이라는 큰 영역을 공유하고 있어요. 부모님과는 다른 걸 하겠다고 택한 게 디자인이었군요
네, 오직 다른 걸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요. 그래도 엄마는 당시 집에 엄마가 만든 카펫도 있고 관련 목제 도구가 많았기에 제가 엄마 영향으로 가구를 한 거라고 얘기하시곤 해요. (웃음) 아무튼 디자이너의 길은 제게 다른 걸 하겠다는 큰 결단이기도, 자연스러운 선택이기도 했어요.
그럼 이미 중고생 때부터 가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가구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좀 더 정확히는 목재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마키시 나미가 디자인한 셸브에 '루프트'의 동료인 오케다 치카코가 디자인한 그릇이 놓여 있다.
하긴, 지금의 마키시 나미도 가구 디자이너보다는 ‘공간 디자이너’가 마키시 나미를 수식하는 데 더 맞는 것 같아요.
무사시노 미술 대학교에서는 목재를 전공했어요. 나무로 그릇이나 가구를 만들었죠. 그런데 저는 손재주가 탁월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기술은 엄청난 수준이 있어야 하는 매우 정교한 작업인데, 정작 저는 그걸 잘하지는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공예가가 되기보다는 디자이너의 일을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학생 때 이미 했어요.
그러시면 목재 디자인을 하다가 독일에서 순수예술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떤 점을 기대하고 가셨는지 궁금해요.
대학 시절, 선생님이 제 진로에 도움을 주시고자 여러 나라, 여러 작가의 예를 알려주셨어요. 덴마크와 이탈리아 디자인의 차이, 일본에서 일어난 아트&크래프트 운동 사례 등. 학생이니 진로 생각은 많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제가 가고 싶은 길을 찾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도널드 저드(Donald Judd)의 구조 작업을 보면서 ‘나는 디자인보다는 예술이 맞겠구나’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당시에는 일본 내 가고 싶은 사무실도 없었고 매력적이라고 느낀 회사도 없었어요. 제 머릿속엔 예술작품들만 맴돌았고요. 여러 생각을 거듭한 끝에 도달한 결과는 무슨 일이 되었든 ‘형태를 잘 만드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태어난 오키나와는 여러 나라의 문화가 혼재한 곳이거든요. 때문에 ‘나는 일본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크게 자리 잡진 않았어요. 오히려 다른 나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죠. 그래서 유럽에, 그중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바우하우스가 있는 독일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일단은 나가보자는 생각으로, 조금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새로운 곳에 나를 놓아두는 게 필요해서 독일로 조소를 공부하러 갔어요.
실제 가보니 어떻던가요?
너무 마음이 편했어요.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다 제 마음에 들더라고요. 제가 베를린에서 공부했는데 미술관에 가도, 산책을 해도 어느 곳이든 배울 게 있었어요.
독일에서 6년 반을 지냈어요. 그동안 유럽 내에서 여행도 많이 하고 작품도 많이 만들었죠. 주변에서 많이들 좋아해 주었어요. 그랬기에 제가 예술가의 길을 가겠다고 하면 갈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독일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나 교수님은 다들 제가 건축가가 되면 좋겠다는 거예요. 가구 디자인을 하면 잘하겠다고요. 아마도 저의 작업에 건축적인 요소들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죠. 작품을 만들지만 생계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생활을 가져야 할까? 아니면 내가 만든 것을 판매하면서 돈을 버는 게 맞으니 디자인을 다시 해볼까? 하는 것들이요. 일본으로 돌아와서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는데, 독일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가 한국에 돌아가서 일하게 될 회사를 소개해주었어요. 그래서 방문했는데, 당시 그 옴니디자인 이종환 대표님의 작업실을 직접 보고 놀라서 크게 감동했어요. 공간만 보아도 그곳을 사용하는 사람을 이해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당시 그분의 작업공간만 보았을 뿐인데 ‘나도 저분의 사무실에서 일하며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어요. 일본에서는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바로 일하고 싶다고 했고, ‘내일부터 와’하시는 거예요. 그땐 제가 일본어와 독일어만 하지 한국어는 전혀 하지 못했음에도 흔쾌히 저를 받아주셔서 제 커리어의 시작은 한국이 되었죠.
그러면 한국에서 얼마 동안 일을 하신 거고, 옴니디자인을 나와 독립 후엔 주로 어떤 일을 하셨어요?
1998년 한국에 왔고 2003년까지 서울에서 일했어요. 그중 1999년에 독립했죠. 독일에서 같이 공부했던 그 친구와 함께요.
디자인 스튜디오로 독립한 처음에는 엽서를 만들기도 했고, 정말 아무거나 여러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조금씩 조금씩 인테리어 일이 들어오고, 코엑스에서 하는 디자인 박람회에 나가기도 했는데, 박람회에서 우리 작업을 본 최정화 작가님이 제게 연락을 주셨어요. 작품이 너무 좋으니 자신의 갤러리에서 전시해보자고. 그래서 우리가 만들었던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전시를 했거든요. 그 전시에 지금 서울에서 파트너로 디앤디파트먼트(D&Department) 호텔을 함께 준비하는 엠엠엠지(mmmg)의 유미영 씨도 처음 만나 알게 되었고요. 그러고 보니 참 오래되었네요.
20년이 넘었어요.
그러니까 저를 디자이너로 키운 건 바로 여기, 서울이에요. (웃음) 팩토리에서도 한결같이 저를 많이 지지해주셨고요. 그러고보면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오키나와잖아요. 그곳은 일본, 중국, 한국 모두에게서 영향을 받았거든요. 그중에서도 한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너무 딱딱하지 않은 것이랄까요? 한국은 디테일보다는 전체적인 인상이나 느낌, 센스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말로 설명하긴 쉽지 않지만요.
디자인을 공부하셨는데 독일 유학 중에는 건축이 맞는 것 같다는 피드백도 받으셨잖아요. 말씀을 들어보면 무언가 큰 맥락 안에서 조율하는 것, 총괄하는 것에 뛰어난 감각을 가지신 것 같아요. 가령, 하나의 사물이 있다고 할 때 그 사물만이 아니라 그것이 놓이게 될 주변의 맥락, 상황, 사용자 등 총체적인 것을 보는 능력이 탁월해 건축가라는 직종을 제안 받으신 게 아닌가 해요. 마키시 나미가 운영하시는 스튜디오 이름 ‘루프트’도 공기를 의미하잖아요. 그게 어떤 공간 속 간격을 염두에 둔 것이니, 중심에 있는 무엇보다는 그걸 둘러싼 것에 대해서 늘 고민을 하시나보다 하는 짐작을 해봅니다.

-1부 끝-
마키시 나미 Makishi Nami 真喜志奈美
1966년 오키나와 출생. 무사시노 미술대학 공예공업디자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베를린 국립예술대학 대학원 조각과를 졸업한 후 서울의 건축디자인 사무소에서 6년 이상 근무했다. 1999년 본인의 디자인 사무소를 서울에 개소하고 운영하다가, 이후 2003년 일본으로 돌아가 2년 뒤 루프트를 설립했다.
대표적인 공간디자인으로는 유르겐 렐(Jurgen Lehl, 도쿄), 미나 퍼호넨(minä perhonen materiaali, 도쿄, 교토), 엘라바(elävä), 앤트러사이트(Anthracite, 서울 서교), 모노하(MO-NO-HA, 서울 한남) 등이 있고, <엔벌로프(ENVELOPE)>, 〈나왕셸브(LAUAN SHELVES)〉 등의 제품을 디자인했다.
“정말이지 안 해본 거 없이 다 해봤어.” 팩토리의 홍보라 대표 (이하 보라보라)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그 ‘정말’은 진짜 정말인 게, 팩토리가 처음 만들어진 2002년부터 최근까지를 얼추 더듬어보면 주제, 분야, 장르, 프로그램, 표현, 공간, 심지어 운영방식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작은 예술공간이 앞구르기 옆구르기 하며 만들어낸 촘촘한 시도는 대체 그 안에 무슨 에너지가 일었기에 가능했을까 싶다. 사진과 짧은 글들로 돌아보면 모두가 반짝이는 순간이지만,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으고, 시행착오를 겪고, 울다 웃으며 밤을 보내고 포옹했는지는 미처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본 인터뷰 시리즈는 팩토리 안팎에서 함께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만들어지기까지, 또한 앞으로 만들어나갈 함께 그린 풍성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를 기대하며 기록하는 것이다. 당신과 우리, 지난날과 앞으로의 시간, 그리고 지금 여기 모두로 열려 있기를 바라며.
팩토리2 드림
팩토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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