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는 병역거부 후원회에 참여해주신 분들께 드리는 것에요.
공주교도소 입구에서
후원자님 안녕하세요, 자유입니다.

옥중서신이 와서 놀라셨죠? ^^ 이 편지는 <김자유 병역거부 후원회>에 참여해주신 분들께 드리는 것에요. 후원자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선뜻 후원에 동참해주셔서 정말 놀랍고 감사했어요. 일주일만에 총 34분이 참여하여 222만원을 모아주셨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발걸음을 내딛는 저에게 큰 힘이 되었어요. 그리고 대체복무 제도개선 운동에 요긴하게 쓰일 씨앗 자금을 마련해주셔서 운동에 힘을 보탤 수 있게 되었어요. 후원금은 시민단체 '전쟁없는세상'에 전액 전달하여 투명하고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사실 그냥 조용히 병역거부 해도 될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회운동을 하며 깨달은 게 있어요. 제가 어떤 일을 한다고 갑자기 세상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로부터 반경 100m 까지는 저의 힘만으로도 큰 파동을 일으키는 게 가능하더라고요. 활동가 1명이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임팩트는 나의 가족, 친구, 지인, 동료 등 주변인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그들이 변화에 동참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적절한 계기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니까요. 평소 뉴스에 흘러가던 이야기가 나랑 가까운 어떤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어느 날 알게 되면, 그때부턴 진지하고 강력한 사건으로 다가오면서 깊은 이해관계자로 전환됩니다. 제가 100명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분들이 200명에게 영향을 주실 거에요. 그래서 저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인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기 전에 내 주변부터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의 가족들도 이번 후원에 동참했다는 점이 참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병역거부자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대체복무 제도개선 활동을 열심히 펼치고 있어요. 최근 보도된 유엔의 권고를 이끌어내기도 했고요. 앞으로 더 좋아질 거에요. 대체복무 제도가 생긴 후 가장 큰 변화는, 이제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 군대를 가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이 보장된 것입니다. 그런데 국방부와 병무청은 대체복무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남성 청년들에게 전혀 고지·홍보하지 않고 조용하게 운영하고 있어요. 군인을 한 명이라도 잃고 싶지 않으니까요. 이 때문에 대체복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리는 일도 중요한데요, 그래서 후원자님께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어요. 군대에 갈 나이가 된 소중한 청년이 주변에 있다면, 대체복무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본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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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턴 제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공유드릴게요 :) 10월 말에 강원도 영월군에 신설된 '대체복무교육센터'에 들어가서 70여 명과 함께 3주간 온보딩 교육을 받았어요. 지금은 충남 공주시에 있는 '공주교도소'에서 지내고 있답니다. 전국 교도소 중에서 공주교도소에 TO가 1명 나왔길래 제가 희망지로 신청했고 배정을 받았어요. 서울 쪽에도 근무지가 몇 곳 있었는데요, 인기가 많아서 신입에게는 기회가 없더라고요. 나중에 전보 신청을 통해 근무지를 옮길 수 있는데 그때 서울로 이동을 고려해볼 생각이에요.

제가 공주교도소를 선택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현재 대체복무를 하고 있는 사람이 1600명 조금 넘는데, 99%가 특정 종교를 가진 분들이에요. 저처럼 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자는 전국에 단 7명에 불과해요. 그중 저 포함 4명이 공주교도소에 있답니다. 지인들이기도 해서, 외롭지 않기 위해 이곳으로 왔어요. 특정 종교로 대체복무 중인 분들은 그들의 교리에서 정치·사회적인 활동과는 거리를 두라고 한대요. 그래서 그들과는 "사회적"인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더라고요. 저한텐 일상의 모든 것이 사회적인데... ^^ 다행히 이곳 공주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동지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그리고 공주교도소는 번화가에 가깝게 위치해 있어요. 걸어서 5분만 나가면 시내가 나오더라고요. 생활하기에 편리하고 시외로 나가기 위한 터미널도 가깝답니다.

공주교도소에 온지 일주일이 됐어요. 대체복무자들 생활을 위해 리모델링한 건물이 교도소마다 별도로 있는데 그곳에서 지내요. 아직 온보딩 기간이라서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고 개인 시간을 가지면서 적응하고 있어요. 46명이 다니던 학교에 저 혼자 전학 온 셈이라서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새로운 생활을 익히는 등 적응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요.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와보니 너무나 안락하게 잘 셋팅되어 있어서 매일 놀라고 있어요. 공간도 말끔하고 비품·편의시설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게 섬세하게 갖추어져 있더라고요. 동료 대체복무자들과 교도관(영화에서 교도관은 부패하고 폭력적인 사람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청렴하고 친절한 공무원이랍니다) 분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습니다. 또한 대체복무요원은 군인과 달리 계급이 없기 때문에 선후배 간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 평등한 관계에요. 사회생활 만렙인 저에게 이정도 환경이면 적응하기 거뜬하죠? :)

물론 어려움도 예상되어요. 마치 십수 년 전 학교에 온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대체복무자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교도관들이 있는데요, 교도관 마음대로 생활 규칙을 만들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법이 부여했어요. 그래서 납득하기 어려운 지시에 복종해야 하는 일도 생깁니다. 어떤 것은 원만하게 해결이 필요하고, 어떤 것은 양보할 수 없는 인권의 영역이라 제도적인 다툼으로 권리를 지켜야 하는 것도 있어요. 강원도 영월군 대체복무교육센터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깜짝 놀랐어요. 평생 인권의 렌즈를 끼고 살아온 저에게는, 당연하게 행해지는 인권침해가 너무 많이 보이더라고요. 누군가 손을 들고 일어나 지적하고 바꾸지 않으면 다수가 고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묵과할 수 없었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 별명이 "인권 학생회장"이었는데 역할을 해야지 않겠어요? 담당 교도관님과 면담을 하였더니 몇 가지는 즉시 시정이 되었어요.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라 풀 수 없는 것들이 있어 인권위 진정을 넣었고 조사가 진행 중이에요. 앞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물론 인권 구제 절차를 동원하기 전에 대화와 소통으로 원만하게 개선할 수 있다면 가장 좋아요. 앞으로 지혜롭게 대처해볼게요.


대체복무교육센터의 인권침해적 생활지도에 대해 국가인권위 진정서 제출 (2023. 11. 14)

대체복무요원은 교도관 보조업무를 하는데요, 한 마디로 인턴 교도관이라고 보시면 돼요. 다만 수감자를 직접 대면하는 업무는 교도관의 전문 영역이기 때문에 제외됩니다. 행정업무, 민원응대, 시설관리, 의료지원, 비품관리, 세탁보조, 식당보조 등 교도소라는 기관이 운영되기 위한 각종 부서에 배치되어 교도소 공무원들의 업무를 서포트하고 N개월마다 순환 근무를 해요. 저는 아직 무슨 업무를 할지 정해지지 않았어요. 부서마다 쭉 돌아보며 견학을 했는데요, 아주 보조적인 일이라서 업무 강도가 낮고 단순한 일입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4시경에 퇴근을 해요. 평일 퇴근후 또는 휴일에는 자유시간을 가지고요. 외출·외박·휴가 제도가 있는데, 외출은 한 달에 약 20회, 외박은 5주마다 약 2박3일, 휴가는 분기마다 약 3박4일 보장됩니다. 꽤 많죠? 그래서 퇴근 후에는 사람들이 대부분 밖에 나가서 개인 일정을 갖기 때문에 생활관(기숙사)이 한산하게 비어있어요. 복무 기간이 3년으로 긴 대신에, 최대한 유연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한 장치래요. 저는 법적으로 보장된 겸직 허가를 받아서 자유시간에 주로 누구나데이터 일을 하고 있고요 :) 6년 넘게 누구나데이터를 리모트워크로 운영했던 덕분인지 팀원들과 특별한 이질감 없이 협업하고 있어요. "누구나데이터 일과 병행이 가능할까" 했던 걱정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어요. 제가 전념해온 미션을 이어갈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누구나데이터 팀은 비영리단체 성장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계속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내년 초에 깜짝 놀랄만한 것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
누구나데이터 팀원들과 zoom 회의 중인 모습 
요즘 '◯◯에서 한달살기' 같은 거 많이 하잖아요. '공주 에어비앤비에서 36달 살기' 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고등학교 졸업 이후 계속 일하고, 창업하느라 지금 30살 먹기까지 제대로 쉬거나 여행을 떠난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캐리어와 맥북 하나 덜렁 들고 공주로 워케이션을 왔더니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네요. 월급도 줘요. 이보다 좋을 수가 없군요. 하하. (정신 승리..?)

아, 그리고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 중 하나인 교도소를 깊숙이 경험할 수 있는 점은 좋은 기회에요. 벌써 삶의 시야가 조금 넓어졌거든요. 교도소가 궁금하다면 나중에 제게 무엇이든 물어보셔요. 근무지 배치고사에서 전교 2등한 나름 "우수 인턴 교도관"이랍니다 :)

또 소식 전할게요. 고맙습니다.

2023년 11월 24일 공주에서,
후원자님께 김자유 올림.
* 저에게 답장을 보내고 싶다면 이 메일에 회신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