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이었던 왕족을 둘러싼 불안한 환경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프랑스 혁명이었습니다. 구드룬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프랑스 왕을 시민들이 죽였다는 소식은 허리케인과도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벨라스케스의 시대처럼 왕을 그릴 수는 없었죠. 왕과 왕비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 의해 폐위될 수 있는 존재임을 세계가 깨달았으니까요. 고야 역시 이 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고야의 예술 세계를 보면 궁정 화가로서 공식적인 시각은 지키되 언제나 그 이면에 있는 다른 의미도 마음속 깊은 곳에 지켜왔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식 초상화는 의뢰인의 마음에 쏙 들도록 그리면서,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혁명을 지지했던 스페인의 지식인, 계몽주의자들과도 가까이 지냈고 함께 책을 읽기도 했죠.
그 결과 왕족이 바라보는 세상과 도도한 시대의 흐름,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표현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구드룬은 이것을 “영원한 군주가 아닌 ‘지금’을 그린 것, 그림 속에 근대적 개념인 ‘시간’을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림 속에 얼굴을 돌린 여자는 왕의 아들과 결혼하기로 예정된 마리아 안토니아입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릴 시점엔 아직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고개를 돌린 모습으로 표현했죠.
어딘지 알 수 없는 그림 속 배경은 왕의 가족이 몇 시간 뒤면 어디 있을지 모른다는 느낌을 증폭시킵니다. 즉 고야는 이 그림이 지금에만 유효하다는 일시적인 감정을 시각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완곡하지만 더 복잡하고 단단하게 남긴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 유럽의 분위기. 아름다운 환상 같은 왕족의 초상화에서 한 번 감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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