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센 #영상미 #이야기속이야기 #판타지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지난 한주도 잘 지내셨나요? 당신께서 잘 지내셨다면 저도 잘 지냈습니다.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미술관에 다녀왔어요. 미술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캔버스를 보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작품의 크기 그 자체가 가진 힘이 분명히 있어요. 시야를 압도하는 작품을 마주하자 그동안 책이나 모니터로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갈증이 한순간에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도 큰 그림을 그려봐야지 하고는 호기롭게 전지를 꺼냈는데 언제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영화는 종합 예술이라고들 하지만 저는 시각적 요소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색감이나 독특한 화면 구성, 비현실적이지만 꿈꾸어 봄직한 의상이나 인테리어를 마치 평범한 일상처럼 담아내는 영화를 보면 희열을 느껴요. 전문 용어로 미장센이 훌륭하다고 하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영화들이 상대적으로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기억 속에는 어떤 영화가 아름다운 장면으로 각인되어 있나요?

더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2006)
올해 다섯 살 난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 분)는 쇄골이 부러져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농장에서 오렌지를 따다 나무에서 떨어졌거든요. 병원 생활이 지루할 법도 한데 호기심 많은 우리의 주인공은 병원 곳곳을 탐색하느라 분주합니다. 하루는 간호사 애블린에게 쓴 편지가 바람에 날려 그만 엉뚱한 사람에게 가고 맙니다. 다급하게 편지를 찾아 빼앗아 들고 방을 나서는 알렉산드리아를 로이(리 페이스)가 불러 세워요. 그리고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환상적인 이야기를요.

로이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병원에서 이야기 속 배경으로 장면이 전환됩니다. 강렬한 색감 대비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건축물 때문에 CG인가 싶지만 모두 현실에 있는 장소라고 해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야기에 어울리는 장소를 찾아 촬영을 했답니다.

영화 포스터를 보고 뜨악해서 달아날 수도 있는데 (제가 그랬습니다...) 일단 한번 시작해 보세요.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흑백 오프닝과 환상적인 영상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거예요. 불가능해 보이는 액션 장면을 몸 바쳐 만들었던 수많은 스턴트맨들에게 보내는 타셈 싱 감독의 헌사도 함께 말이지요.

감독 : 타셈 싱
러닝타임 : 1시간 57분
Stream on Watcha
라이프 오브 파이 (2012)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영상에 압도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전 3D로 이 영화를 보았는데, 그때까지 3D 영화는 기술 자체에 지나치게 집중하다 이야기가 재미가 없거나 과한 영상으로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라이프 오브 파이'는 딱 필요한 만큼 적절하게 3D 기술을 활용해서 장면이 주는 임팩트를 극대화했습니다. 형광으로 빛나는 해파리가 가득한 바다와 그 위를 나르듯 유영하는 거대한 고래, 노을로 물들어 구분이 희미해진 바다와 하늘 등 장면이 바뀔 때마다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죠.

영화는 인도의 한 동물원 곳곳을 비추며 시작합니다. 그곳은 파이(수라즈 샤르마 분)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죠. 파이가 첫사랑을 시작할 무렵, 파이네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만 배가 폭풍우를 만나 파이만 홀로 구명보트에 살아남습니다. 정확히는 함께 배에 탔던 여러 동물도 함께였는데 문제는 그중에 호랑이 리차드 파커가 있었다는 것이죠. 망망대해에서 하필이면 호랑이와 함께 표류하게 된 파이. 이 소년의 표류는 언제 끝날 수 있을까요.

감독 : 이안
러닝타임 : 2시간 6분
Stream on Neflix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2006) 
저는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의 기괴한 생명체들을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얼핏 보면 무서운데 자꾸 보다 보면 어딘지 귀엽고 때로는 사랑스럽기까지 해요. 감독이 그만큼 애정을 듬뿍 담아 만들어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화 '판의 미로'는 그가 창조한 생명체들이 꿈틀거리며 잔뜩 나와서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는 꿈과 희망이 넘치는 그런 동화를 생각하면 낭패를 보고 말 거에요. 기예르모 델 토로의 동화는 그림 형제의 잔혹 동화에 가깝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동화 속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영화가 스페인 내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 몰랐어요. 좀 더 나이를 먹고 다시 영화를 보니 오필리아(이바나 바쿠에로 분)가 상상한, 또는 겪은 동화적 세계와 스페인 내전이라는 현실의 상황이 대비되어서 더 슬프고 처연하네요. 어린 소녀 오필리아, 어쩌면 지하왕국의 공주 모안나가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는지 함께 지켜볼까요.
 
감독 : 기예르모 델 토로
러닝타임 : 1시간 59분
Stream on Watcha & Netflix
함께하면 좋을 웹사이트 🎥
Alternative Movie Posters
- 새로이 그린 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는 영화의 얼굴이라 할 수 있겠죠.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영화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아내야 합니다. 하지만 종종 의욕이 너무 앞섰는지 과장된 문구나 촌스러운 디자인으로 오히려 영화의 이미지를 망치는 웃지 못할 결과물을 탄생하기도 합니다.   

AMP (Alternative Movie Posters)는 공식 포스터 대신 여러 일러스트레이터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그린 대안 영화 포스터를 선보입니다. 좀 아쉬웠다 싶었던 영화 몇 편을 검색했는데 개성 넘치는 그림체로 그린 포스터를 보며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어요.

오늘 뉴스레터에 실린 영화 포스터도 공식 영화 포스터가 아니고 AMP에서 찾은 대안 포스터입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세 작품 모두 Ise Anaphada라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이예요. 어때요, 마음에 드시나요?

웹 사이트 구경가기 
Ise Anaphada 작품 더보기
이번 주는 모두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네요. 아름다운 영상에 매혹되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디까지를 믿고 믿지 말아야 할지 모호해지지만 굳이 따져 무엇하겠어요. 그 자체로 이미 영화는 우리에게 현실을 살아갈 힘을 주잖아요.

돌아오는 금요일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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