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지는 그 작은 면에 결코 적지 않은 정보를 담고 있다. 어쩌면 일당백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4년 3월 넷째 주: 11호
안녕하세요. 〈복음과상황〉 4월호 마감을 마치고 돌아온 정민호 기자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월간지 에디터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글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원고를 읽고 편집하고 지면에 실을 때면, 저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때로 너무 잘 쓴 글을 보면, 글쓰기에 엄두가 나지 않아요. ‘이런 글, 저런 글을 쓰고 싶다’ 말은 하지만 생각보다 못 쓴 글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짧은 글조차 실패하는 경우가 잦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글쓰기 모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글쓰기에 자신이 없더라도 도전해보고 싶은 분들과 함께 말이죠. 기자로서 꾸준히 교육도 받고 일도 하지만, 자발적인 글쓰기 배움과 도전은 계속됩니다.

누구나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이야기가 ‘서사’로 태어나는 순간은 그것이 말해지고, 써지고, 들려질 때겠죠.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이야기도 꿰어지고 공유될 때 진가가 드러납니다. 〈서사의 서사〉 뉴스레터는 아직 꿰어지지 않은 구슬 같은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글을 잘 쓰시는 분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서투르고 화려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듣는 것. 그 자체로도 좋을 것 같거든요. (투고 문의는 피드백으로 보내주세요!)

오늘은 이범진 편집장님과 강동석 기자님의 글을 보내드립니다. 글 잘 쓰는 우리 복상 멤버들 이야기네요.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데
이범진

  
〈복음과상황〉 400호를 준비하면서, 옛 자료들을 하나씩 훑어봤다. 주제는 정말 돌고 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더니, 나름 참신하게 여겼던 최근의 기획들도 한두 번씩은 다루었다. 창간 독자들은 지금의 복상이 시시할 수도 있겠다. 복상은 20~30년 전에도 청년들이 왜 교회를 떠나는지 고민했다. 문제의식부터 대안까지 변한 것은 별로 없다. 다만, 그 주제를 던졌던 청년(중년)들은 중년(노년)이 되었거나, 교회를 떠났다.

그리고 예부터 계속되는 주제와 ‘이런 잡지 하나쯤은 있어야지’ 하는 당위가 이 잡지 자체의 생존 여부, 구독이나 후원으로 이어지기 버거운 것이 현실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대선배 한 분은 그때를 떠올리며, “회사 형편이 어려워서 폐간하려고 했는데, 독자들이 폐간을 못 하게 했다”라고 회상했다. 복합적인 감정이다. 고맙지만, 그럴 거면 진즉에 도와주지 하는 마음이 한쪽에 있는 것이다. “이건 뭐,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도 없는 거야.”

400호에 이르기까지 만 33년 역사 중 책에 담긴 사연은 극히 일부일 것이다. 400호를 맞아 최장기 편집장 두 분을 인터뷰한 이유였다. 서재석 전 편집장(1995년 3월~2004년 1월 재직, 총 103호 발행)과 옥명호 전 편집장(2012년 9월~2021년 2월 재직, 총 101호 발행). 두 분이 복상을 이어온 이야기가 400호에 실렸다.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초고를 두 분에게 보내며 검토를 청했다. 모두 빠른 시간에 원고의 완성도를 높여서 보내주셨다. 분명 이 후배의 급한 마음과 동기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기사에 두 분이 함께 일하던 때의 사진이 들어가면 좋겠다 싶었다. 정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창고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먼지 쌓인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카메라 필름과 현상된 사진들, 데이터를 담은 CD들이 담겨있었다. 아, 옛날에는 사진을 사진관에서 현상했었지. 맡긴 사람 이름, 윤환철, 옥명호, 서재석…. 옛날 이분들 모습을 찾아 기사에 실으면 그림이 좀 나올 것이었다.
수백 장의 사진을 찬찬히 살폈으나, 단 한 장도 없다. 기껏해야 뒷모습.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데, 다른 사람들 사진만 남기셨구나.

그런 두 분의 사진을 400호 지면에라도 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지면에는 실리지 않은 B컷 중에는 인터뷰어인 내 모습도 있었다. 사수였던 옥명호 전 편집장에게 톡으로 사진을 전송하며 한마디 보탰다.
‘제가 잘 나온 거 같아서 보내드립니다.’
‘내 생각엔 내가 더 잘 나온 것 같은데.’

중년남성 특징 중 하나가 이런 근자감으로 셀카를 SNS에 올리는 거라는데, 그렇게 치면 나는 작년부터 중년이 된 것 같다. 인정하기로 했다. 마음은 늘 서른셋이지만 만 나이로도 마흔을 훌쩍 넘겼으니, 난 명실상부 중년남성이다. 셀카도 더 찍어 올리자.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데.

이범진
〈복음과상황〉 편집장으로 일한다.


나는 어쩌다 병렬독서에 손을 댔나
강동석

  
잘 안 읽힌다. 요즘, 일 때문이 아니고서는, 완독한 책이 손에 꼽힌다. 병렬독서를 해서 더 그런 것 같다. 손을 댄 책은 많다. 제대로 끝낸 책이 없다. 독서 정체기가 아닐까? 안 읽는 날은 없는데 다 읽는 날이 없다. 책갈피만 잔뜩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다 읽는 책이 한 권도 없으면 독서 효능감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 상황에서 독서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꽤 곤혹스러운 일이다.

사실 월간지 에디터로서 그때그때 발췌독하거나 여러 책을 한꺼번에 건드리는 일은 숙명과도 같다. 출판사에서 보내오는 도서도 검토해야 하고, 기획을 진행하거나 준비할 때 참고서도 찾아봐야 하고, 개인적으론 읽고 싶은 책도 읽어야 한다. 처음부터 병렬독서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업무 특성 때문인가? 생각도 해봤는데, 마냥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언제부터 고단한 병렬독서인이 된 걸까?

설명하기에 앞서, ‘병렬독서’라는 말에 관해 생각해보자.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 독서법을 뜻한다. 한 책을 한 번에 다 읽지 않는다. 이 책 저 책 뒤집고 엎으며 읽고 또 읽는다.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병렬독서’라는 말을 잘 몰랐다. 어디서 이 말을 알게 된 걸까? 그 흔적을 찾기 위해 구글에 ‘병렬독서’라고 검색해봤다. 이런 독서법을 지칭하는 다른 용어도 있었다. ‘문어발 독서법’ ‘풍차돌리기 독서법’….

더 찾다가 다다른 곳은 내가 구독하는 ‘민음사TV’였다. 병렬독서 중인 직원들 얘기를 담은 세 영상을 발견했다. 각 영상 제목 앞부분을 옮겨본다. ‘현대인 특: 병렬 독서함. 표지만 읽은 책부터 다섯 쪽 읽은 책, 다 읽은 책까지 싹 털어 봤습니다. …’ ‘"드라마도 다 병렬로 보시잖아요." 병렬 독서에 미친 편집자가 읽고 있는 책 전부 털어 봤습니다. …’ ‘"눈 떠 보니 병렬 독서 중" 14년 차 출판사 마케터가 요즘 읽고 있는 책 7권 …’.
민음사TV 섬네일 갈무리
영상을 보니까 기억이 났다. 아, 민음사TV를 보다가 발견한 단어였구나. 2023년 12월 1일 업로드된 영상에 ‘믿거나 말거나’ 약 68권을 병렬독서 중인 편집자가 등장한다. 이 영상을 보고서 ‘병렬독서’라는 말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 말을 민음사TV에서 만든 것은 아니다. 이미 2009년에 번역 출간된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뜨인돌)에서 ‘초병렬 독서법’을 소개하고 있다. 아마 그전부터 쓰던 용어였겠다.

병렬독서라는 말의 기원에 대해서 더 파헤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쨌든 민음사TV에 소개된 병렬독서인들은 각각 5년 차 한국문학 편집자, 4년 차 해외문학 편집자, 14년 차 출판 마케터니까, 업무 특성 때문에 이들이 이런 습관을 들였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 중 두 명은 ‘태생적’ 병렬독서인을 자처하고 있다. 나도 여러 책을 한꺼번에 읽는 몇몇 사람을 알고 있으니, 병렬독서가 드문 사례는 아니라는 것.

나는 태생적 병렬독서인이 아니다. 한 권을 붙잡으면 다 읽든지, 읽다 말든지. 보통은 둘 중 하나였다. 그러다 학생 시절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살 수는 없을까?》(이하 부흥과개혁사)를 읽고, 청교도 신학자인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꽂히고 말았다. 한국에 출간된 관련 저서를 모두 읽고 싶어졌다. 생각보다 얇게 나온 책이 많았는데,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시리즈가 문제였다. 하나같이 두꺼웠다. 대체로 700쪽 정도.

무엇보다, 그 시리즈 중 하나인 《신앙감정론》을 무척 읽고 싶었다. 당시 나는, 참된 신앙을 분별하는 방법에 관해 깊이 몰두하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는 강박과 집착 때문이기도 했다. 《신앙감정론》은 내게 절실한 책이었다. 그리하여 고안한 방법이 하루에 30쪽씩 꼼꼼히 읽는 것이었다. 마치 숙제하듯이. 이 분량은 조금씩 늘어났고, 같은 시리즈로 나온 《구속사》와 《부흥론》까지 독파했다.

두꺼운 책을 연속해서 다 읽게 되니, 독서에 자신이 붙었다. 조지 마즈던의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855쪽), 양낙흥의 《조나단 에드워즈 생애와 사상》(758쪽)까지 읽고 나니, 뭔가 눈이 뜨인 듯한 느낌이었다. 이때 독서 방식에 대한 얽매임이 깨졌던 것 같다. 물론 그전에도 발췌독은 해봤다. 책은 한자리에서 다 읽는 것이 좋다, 여러 책을 한꺼번에 읽으면 집중이 안 된다 등 제멋대로 독서의 ‘정도’(正道)를 따지려 한 게 문제였다.

이후 병렬독서와 함께, 다소 자유로운 책 읽기를 추구했다. 그러면서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문학동네), 앨런 제이콥스의 《유혹하는 책 읽기》(교보문고)를 비롯해 독서에 관한 다양한 책을 읽었고, 독서에 관한 독서는 《이동진 독서법 -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위즈덤하우스, 2017)에 와서야 일단락되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책을 어떻게 읽고 사용할지는 독자 마음이라는 것.

누군가는 병렬독서와 구분되는 개념으로 ‘직렬독서’를 이야기한다. 집요한 태도로 한 분야 책을 연속해서 파고드는 읽기를 말한다. 병렬독서를 자랑하듯 설파하는 이도 있다. 책상에서 각 잡고 읽는 책 한 권, 운동할 때 오디오북으로 읽는 책 한 권, 외출 중 시간 날 때 스마트폰으로 읽는 전자책 한 권, 잠들기 전에 전자책 단말기로 읽는 책 한 권…. 이렇듯 자신만의 독서 루틴을 만드는 것도, 유익한 시도일 수 있다.

어떤 독서법이 정답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의도에 따라, 목적에 따라서 최적화된 읽기 방법은 다를 테니까. 그럼에도 한 가지 방법을 오래 추구하다 보면, 관성화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현재의 나처럼 독서 정체기가 오는 걸까…? 최근, 교회 주보에 책을 소개하는 글을 써야 해서, 예전의 독서 기록장을 찾아보게 되었다. 꽤 많은 기록에 놀랐다. 언제부터였을까, 책을 읽고서 꼼꼼히 기록하지 않게 된 시점은.

요 몇 년간은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아이디어만 메모하거나 추후 인용할 페이지만 체크해두었지, 내용을 따로 기록하지 않았다. 누구든 때맞춰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을 거다. ‘교차 학습’ 개념을 논하며 ‘병렬독서’를 옹호하는 이도 보았다. 서로 다른 주제를 번갈아 살피면 뇌가 더 활성화되기에, ‘뒤섞어서 연습하라’ 권한다. 장기 기억에 도움을 준다는 것. 즉, 공부든 독서든, 병렬이 좋다는 말. 그것참, 포장하기 나름이다.

아무튼 나는 벌써 한 달 가까이 이어진, 이 독서 정체기를 벗어나고 싶다. 어쩌면 한동안 안 읽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내가 경험한 병렬독서의 단점 중 하나는, 이 책 저 책 관심을 두다 보니 돈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이참에 책값 좀 아껴서 배우자에게 칭찬이라도 받아볼까? 꾸역꾸역 읽어내든, 휴식기를 보내고 오든, 앞으로도 나는 계속 책을 읽을 것이다. 정체기인 요즘에 병렬독서 중인 책들을 소개하며 글을 정리하려 한다.
1. 정성국, 《야고보의 편지 – 온전한 공동체를 꿈꾸는 흩어진 교회들에게》(복있는사람)

저자는 아신대학교(ACTS) 신약학 교수이다. 막 읽기 시작한 책이지만, 〈복음과상황〉 402호(2024년 5월) ‘에디터가 고른 책’ 후보로 고려 중이다. 2018년에 정성국 교수가 출간한 《묵상과 해석 – 그리스도인의 삶, 영성》(성서유니온)을 워낙 만족스럽게 읽었기 때문이다. 〈매일성경〉에 ‘큐티를 위한 해석학적 변명’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내용을 엮었는데, 성경 해석에 관해 고민하던 지점을 해결해준 책이었다. 다음 책이 나오면 반드시 사서 읽겠다고 다짐했다. 단독 저술이 좀처럼 출간되지 않았다가, 드디어 나온 것이다. 성경 해석에 대한 믿음직한 안내자였던 바울신학자의 ‘야고보서 해설서’라니. 저자의 사역(私譯)도 수록됐다. 야고보서 해석의 ‘다음 페이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다.

2. 존 파인버그 외, 《천국에 대한 네 가지 견해 – 그리스도인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IVP)

이 책으로 〈복음과상황〉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내세적 천국 개념을 한쪽에서는 너무 강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강조하지 않으니, 담론을 끌어올려 균형을 잡아보면 좋겠다. 한마디로, 일 때문에 읽고 있는 책이다. 진즉 다 읽고, 어떤 식으로 다룰지 계산이 나왔어야 했다…. 여태 헤매고 있다니. 총회니, 마감이니, 〈서사의 서사〉 편집이니, 여러 일정 탓에 다 읽지 못했다(고 핑계를 대본다). 주말 안에 다 읽으려는데, 가능할까? 나는 지금 독서 정체기가 아닌가. 그래도, 해야만 한다.

3. 오에 겐자부로, 《새로운 문학을 위하여》(21세기문화원)

‘오에 겐자부로 소설론의 결정판!’이라는 광고 문안이 뒤표지에 적혀있다. 이런 문구에 느낌표까지 찍히면 나는 경계부터 한다. 다른 책이었으면 그랬겠지만, 오에 겐자부로의 신간 아닌가. ‘예약 구매’가 뜨자마자 주문을 넣었다. 그는 나의 ‘최애’이면서, 글쓰기의 한 전범(典範)이다. 1995년에 번역 출간된 《소설의 방법》(소화)을 조금 더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내려 한 책이다. 핵심 키워드는 ‘낯설게 하기’. 러시아 문학 이론을 많이 가져온다. 확실히 《소설의 방법》보다 쉬워서 좋다. 《새로운 문학을 위하여》를 다 읽으면, 《소설의 방법》도 다시 읽어보려 한다. 분명 ‘다시 쓰기’가 오에 겐자부로 작법의 특징인데, 어떻게 ‘다시 쓰기’를 실현해나갈지, 그것을 내 글쓰기로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방법론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읽고 있다.

4. 레베카 터식, 《시팅 프리티 – 턱 없는 세상을 향해》(반원)

‘장애 서사’는 나의 꾸준한 관심 영역이다. 이쪽 신간은 놓치지 않고 읽으려 한다. 여성 장애인의 삶을 쾌활하게 증언하는 책. 무겁지 않은 에세이 모음이지만, ‘접근성’에 관한 이야기는 단호하면서도 진지하다. 당황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과거의 순간까지도 침착하게 설명해내려고 노력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을 빨리 끝내고 읽어야 할 장애학 서적이 제법 쌓여있어서, 어서 진도를 빼야 한다. 내팽개쳐둔 지 2주가 지났다.

5. 조앤 디디온, 《내 말의 의미는》(책읽는수요일)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조앤 디디온의 책. 출간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샀다. 조앤 디디온의 미출간 원고 12편을 담았다. (저자의 주요 저서인 《상실》(책읽는수요일)도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어, 어찌나 기뻤는지. 2006년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다가 절판된 버전이 있지만, 대여섯 배 높은 가격에 판매 중이었다.) 탁월하다 평가받는 저자의 다른 글보다는 한 급수 낮은 원고 모음으로 보는 독자도 있는 듯하다. 읽고 싶어질 때 한 편씩 나눠 읽고 있는데, 한국에는 생소할 조앤 디디온과 그의 글쓰기를 해설하는 긴 ‘머리말’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내게 충분했다. 나는 그의 글을, 그가 30대 후반이던 딸을 잃고 쓴 《푸른 밤》(뮤진트리)을 통해 처음 접했다. 이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조앤 디디온의 초상〉을 보고 난 후, 그의 책이면 일단 사서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이름과 명성은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미셸 딘의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마티), 데보라 넬슨의 《터프 이너프 – 진실을 직시하는 강인함에 관하여》(책세상)에서 조앤 디디온의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이다. 비비언 고닉이라는 작가와 함께, 올해 파헤쳐보려는 작가 중 한 명이다.

6. 구사부카 이쿠마, 《팀 워커 – 팀과 함께 성장하며 개인의 목표까지 이루는 사람》(RHK)

일단 〈복음과상황〉에서 내 직함이 팀장이기도 하고, 직원 교육을 담당이기도 해서 ‘일 잘하는 법’에 관한 책은 꾸준히 챙기려 한다. 이 책도 그 일환에서 샀고, 글씨도 크고 여백도 넓고 반복적인 내용이라서 마음만 먹으면 한자리에서 금방 읽을 책이다. 다른 책들에 먼저 눈이 가는 탓인지, 좀체 읽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이전 직장에서 앞서 실천해본 내용도 섞여있다. ‘어느 정도 알고 있다’라는 생각이 독서를 어떻게 방해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일까? 때때로 ‘조금이라도 읽자’ 하고, 책을 펼치면 페이지가 금방금방 넘어가기는 한다. 팀과 함께, 일 잘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효과적인 태도와 기술을 다섯 가지 원칙으로 나누어 일목요연하게 짚는다. 목차만 찾아봐도 이 책이 어떤 제안을 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7. 리베카 리, 《편집 만세 – 100%의 세계를 만드는 일》(윌북)

영국 펭귄 출판사 편집장이 썼다. 20년 경력. 나는 편집기자 출신이고, 현재 업무에서도 교정·교열 전반을 감독하고 있기에 이런 유의 책을 업무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사본다. 업무 숙련도를 위한 독서는, 다른 편집자가 어떻게 일하고 사는지를 비롯한 각양각색의 ‘편집의 세계’를 다룬 책이 한 축이고, 맞춤법 혹은 교정·교열의 원칙이나 방향 등을 제시하거나 가르쳐주는 책이 한 축이다. 《편집 만세》는 전자에 해당하는 책이다. 외국의 편집 시스템을 엿볼 수 있고, 편집 업무에 있어서 통찰을 얻는 지점도 있다.

8. 필립 셸드레이크, 《영성이란 무엇인가 – 내 삶을 완성하는 영성에 관한 모든 것》(불광출판사)

영성 연구의 대가인 신학자 필립 셸드레이크의 책이 불교 계열 출판사에서 나오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나왔는지 보려고 샀다. 최근에도 불광출판사는 ‘종교문해력 총서’라고 해서 다섯 권을 내놓았다. 그중 한 권을 신학자 정경일이 썼다. 제목은 《지금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 길 위의 그리스도》(불광출판사). 이 또한 신선한 충격을 주는 시도였다. 아무튼 이 책은 ‘A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 《spirituality》을 번역한 것으로, 필립 셸드레이크는 종교 전반을 아우르는 ‘영성’을 유형화하여 거침없이 정리한다. 조금 거리를 둔 시선에서 기독교의 영성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9. 레베카 토드 피터스, 《몸의 선택 – 임신중지에 대한 기독교 신학적 이해》(동연)

기획 등에 참고하려고 산 책이다. 내가 깊이 관심을 두었던 주제는 아니었지만, 그럴 필요성이 생겼다. 물론 오늘날 중요한 이슈라서, 어떤 논의가 있는지 알아보려는 차원에서 살피는 것도 있다. 읽고 더 고민해야 ‘재생산 정의’에 관한 견해를 조금이라도 밝힐 수 있지 않을까. 굳이 따지면 ‘장애아 출산’을 둘러싼 문제가 내 관심사이기는 하다. ‘재생산 정의’를 논할 때 이 문제는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10. 김광민, 《나는 왜 소년범을 변호했을까 – 우리 사회에서 낙인찍힌 그들을 위한 변론》(인물과사상사)

내 관심 영역은 아닌데, 관련 텍스트를 살펴야 할 일이 있어서 참고 차원에서 읽고 있다. 배워가는 게 의외로 많고, 앞으로는 해당 이슈에 관심을 좀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11. 황석영, 《수인 1 – 경계를 넘다》(문학동네)

2017년 6월, 출간됐을 때 샀다. 사인본. 그때 열심히 읽었다가 중도에 하차했다. 왜 하차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저자와 내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자전, 회고록 쓰기를 심도 있게 탐구하고 싶어서 꺼냈다. 하나의 사례로 다시 읽어보려 한다.

강동석
〈복음과상황〉에서 글을 받고 고치는 일을 주로 한다. 그전에는 〈뉴스앤조이〉 편집기자로 일했다.


지난 호 의견💌

🗣️ 오늘도 재미있는 뉴스레터 감사합니다. 국판의 국이 국화를 뜻했었다니 전혀 몰랐네요. 저는 출판국, 방송국 뭐 그런 의미의 국인줄…. 하지만 업계용어는 업계 사람들만 알면 되지 않을까요. ㅎㅎㅎ


독자로서 저는 띠지가 매우 불편합니다. 띠지 이거 인쇄비용도 더 들고 완전 수작업으로 일일이 끼워야 할텐데…. 요즘같이 인건비가 비싼 시절에 이걸 왜 쓰지 했는데 결국 제품에 붙어 있는 홍보스티커처럼 기능하는 거군요. 그냥 띠지 모양으로 표지에 인쇄하거나 홍보스티커처럼 아예 붙여 주시면 읽을 때 덜 불편할 듯해요.


책 읽을 때는 그냥 빼고 읽을 때가 많은데 그러다가 잊어 버리고 나중에 보면 디자인이 허전한 책으로 남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그냥 띠지 있는 채로 읽고 그 띠지를 책갈피처럼 끼워서 씁니다.


저는 아예 책갈피로 기능할 있게 앞면 표지 오른쪽을 길게 만들어서 접는 자국을 아코디언처럼 만들어 주면 따로 책갈피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아주 편할 같아요. ㅎㅎ 소소한 의견이었습니다.


🗣️ 출판계 종사자인데, 국판/사륙판 용어 유래에 대해서는 처음 알게 되었어요! 대박입니다. 숫자에 약한 편이라 판형만 들어선 사이즈가 떠오르지 않는 눈물 나는 편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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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강동석 | 일러스트 이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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