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네, 콜포비아입니다”[풀칠 113호]

안녕하세요, 이번 주 풀칠 마감 당번 마감도비입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이번 주 풀칠 주제는 ‘전화공포증’입니다. 최근 미디어를 통해 MZ세대 직장인의 특징으로 소개되기도 했죠.

그런데 말이죠. 신입사원 치고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떨지 않은 직장인이 있었던가요? 풀칠러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새로운 현상인 거 같기도 하고 오래된 애환인 거 같기도 한 전화 공포증, 여러분의 경험이 궁금하네요.

얼마 전 주니어 직장인들이 모이는 자리에 참석했다가 모두의 공감을 산 주제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통화가 너무 긴장된다는 거였다. 거래처와 통화로 업무 얘기를 주고 받는 건 너무 어려우니 가급적 카톡이나 문자로 연락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듣는데 뉴스에서 어렴풋하게 들었던 ‘콜포비아’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집에 와서 검색을 해보니 ‘콜포비아’ 혹은 ‘전화공포증’라는 단어는 MZ세대(아 지겨워!) 직장인을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였다.

그럼 콜포비아의 대표적인 증상은 무엇이냐. 지난 9월 알바천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콜포비아 증상에는 ‘전화를 받기 전 깊은 긴장감이나 불안을 느낀다’, ‘전화 수신을 미루거나 거부한다’, ‘통화 시 할 말이나 이미 한 말에 대해 염려한다’, ‘통화 중 심장 박동이 빨라지거나 식은땀이 난다’ 등이 있다고 한다.

나는 어떨까. 최근 통화 기록을 열어보니 통상 하루에 열 명 정도와 통화했는데 무척 힘들었거나 긴장됐던 기억은 없다. 지극히 I형인 내가 콜포비아를 극복했다니!

돌이켜보면 신입사원 시절에는 사무실 공용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피하려고 한 적이 있다. 파티션 뒤에 숨어 자리에 없는 척 해보기도 하고 전화 벨이 울림과 동시에 탕비실로 뛰어가보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든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했다.

일단 내가 회사로 걸려오는 민원을 받아낼 역량이 있는지 자신이 없었고, 내가 말실수를 하면 회사가 치명적인 손해를 입고 그 책임을 모두 짊어져야 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시간이 약이었다. 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내 말솜씨나 임기응변이 늘었기 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업무 전화는 업무 전화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잘 모르면 기다려달라고 하면 되고, 잘 안 들리면 다시 말해달라고 하면 된다. 내 권한을 벗어난 일이면 전화를 넘겨주면 된다.

우리 모두가 하루하루 쇼미더머니 결승전을 치러야 하는 건 아니니까. 조금 절어도 된다.

게다가 MZ세대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굳이 메일로 업무 내용을 보내달라는 경우도 있다. 정확한 문의 사항을 알고 싶어서, 업무 소통 과정을 남겨두고 싶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현재 출장 중이어서 등등.

그렇게 보면 결국 콜포비아라는 건 음성과 문자라는 매체 특성 탓이 커 보인다. 내 생각엔 십년, 이십년 전에도 지금과 같이 카톡이나 메신저가 발달했더라면 그 때의 주니어 직장인들도 전화보다는 카톡을 선호하지 않았을까?

내가 서두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자 누군가 말했다. “그때는 원래 다 그러는 거 아닐까요? 처음 2~3년은 그렇게 긴장되고 하다가 나중엔 적응되는 거 같은데.” 결국 시간이 약인 걸까.

그리고 논외지만 콜포비아를 극복했다고 자부하는 나도 전화가 오면 식은땀이 나거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경우가 있다. 바로 연차를 썼거나 주말인데도 회사에서 전화가 올 때다. 물론 이때는 긴장 보다는 분노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다르지만. 그 때는 나도 말하고 싶다. “아, 저 콜포비아에요!”

야망백수 : 전화는 상대방과 굉장히 깊게 관여하는 미디어잖아요. 통화하는 동안엔 단둘이서만 이야기를 해야 하고, 시각 정보의 도움 없이, 전파에 실린 목소리의 뉘앙스로만 상대의 의중을 헤아려야 하죠. 게다가 대화 상대가 나를 평가할 수 있는 상급자라면 신경이 곤두서지 않는게 이상한 거 아니겠어요. 문자나 메일처럼 명확한 기록이 남지 않으니 재수 없이 덤터기 쓸 위험도 있고요.

MZ세대는 조직 내에서 평가를 당하는 위치일 확률이 높은데, 상급자와의 독대가 편안했던 세대가 어디 유사 이래 어디 있었답니까. 머지않아 ‘야근하면 다음날 푹 자고 싶어 함’ , ‘점심 먹고 나면 산책을 하고 싶어 함’ 같은 것도 ‘MZ세대의 특징’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가만,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워런치족’*이란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아매오 : 이야기를 마칠 때 쯤 “전화, 문자, 카톡, 메일 등 편한 방법으로 연락주세요”라는 말을 꼭 덧붙입니다. 그것이 전화든 문자든 카톡이든 메일이든 대면 미팅이든. 저는 상관 없거든요. 무릇 소통이란 빠르고 정확하기만 된다고 생각하고요, 기록이 필요할 뿐이지요. 그에 적합한 수단이면 뭐든 괜찮습니다. 정말로요.

다만 중요한 건 내 시간을 주도적으로 쓰고 싶은 만큼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업무지시도 아니고. 심지어 업무지시 할 때도 적절하게 양해를 구하는 마당에. 15분 뒤에 전화한대놓고 30분 지나도록 조용하면 열받죠. 답장도 안 하면서 곧 죽어도 전화는 싫다는 사람은 대체 뭡니까! ㅠㅠ

쩝. 저라고 원래 이랬겠습니까. 통화 목록 대부분이 업무상 통화라는 사실이 지난 역사를 증명하죠. 지금도 가끔 낯선 이름들이 가득한 통화 목록을 보면 기분이 참 이상하고 그럽디다. 그래도 다들 새겨두고 일하면 조소통이란 결국 배려라는 것. 어떻게 내가 원하는 것만 하나요. 세상 사는 게 원래 안 그런데.

파주 : 며칠 전 회사에서 MZ세대의 트렌드를 소재로 한 컨퍼런스를 개최했는데요. 거기에서도 '콜포비아'를 Z세대의 특징 중 하나로 짚더라고요. 놀라운 건 전화를 두려워하는 이유를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라고 답했다는 건데요. 세상에! 그냥 싫은 게 아니라 '나의 부족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라니. 이거야말로 프로답지 않나요?

저도 전화를 하다 보면 온갖 실수를 남발하게 됩니다. 적당히 감추고 적절히 감추어야 하는데, 전화를 하다 보면 도통 그게 쉽게 되지 않더군요. 어디선가 저를 찾는 고객사의 전화벨이 울리면 저는 또 뚝딱거리고 말겠죠. 어쩌겠습니까. 이토록 전화에 취약한 채로 자란 것을. 그저 내일 예정된 전화를 무탈하게 넘기기를 바랄 뿐입니다.

▲ snooze

2년 차 풀칠러, 스타트업 CX 담당자

아매오 : CX 담당자가 무엇인가?

풀칠러 : Customer Experience, 고객 경험이다. 온오프라인 서비스 운영 중 발생하는 고객의 문의, 불편사항에 대응하고 해결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CS, 고객 문의 대응 업무 외에도 서비스 전반을 살펴보며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한다.

아매오 : 어쩌다 그 일을 하게 된 건지 궁금하다

풀칠러 : 원래 낯선 사람을 상대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런 성격을 고치고 싶어서 일부러 지원했다. 오래 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지금까지 하고 있다.

아매오 : 이번 호 주제가 ‘콜 포비아’다. 본인은 여기에 해당하는가?

풀칠러 : 치킨 주문도 못 하는 사람이 있더라. 그 정도는 아니다. 그치만 업무나 고객 문의에 대응하는 전화는 꺼리는 편이다.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 고객에게 줘야 하는 정보를 제대로 못 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전화할 일이 생기면 스크립트를 정리한 다음에 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아매오 : 언제까지 그 일 할 거 같나?

풀칠러 : 아직까지는 다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딱히 없다. 이직을 하더라도 비슷한 직무를 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아매오 : 풀칠의 모토는 ‘밥벌이 이상의 풀칠을 위하여’다. '돈 벌어야 해서' 말고 일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풀칠러 : 고객 문의나 오류 상황에 따라 순간적인 감정 소모가 크긴 하다. 반대로 문제가 해결됐을 때 얻는 보람도 그만큼 큰 것 같다. 특히, 사소해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크게 다가올 수 있는 문제를 미리 발견하고 개선 했을 때 뿌듯하다. 그게 이유 아닐까.

풀칠러A

선생님 그 AI 솔루션 저도 알고 싶습니다. 마케팅 문장을 마구 뽑아 낸다는 알려주세요!!!

파주

지난주 취재 미팅을 갔다가 연락이 두절된 마감도비의 코멘트를 글쓰기 인공지능 서비스 '뤼튼'으로 대신했는데요. 글쓰기 AI가 꽤 그럴듯한 말들을 적어냈지만, 저는 마감도비님의 처연한 코멘트가 그러워지더라고요. 'But not today'라는 건 탑건 파일럿만이 아니라 에디터에게도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요? 제발... 제발요ㅠ

풀칠러B

AI가 마케팅의 영역까지 발을 들였다니 놀랍네요. 세상이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것 같아서 조금 씁쓸하기도 하고요. ㅠ

그렇지만, 너무 해맑은 생각일 수도 있지만, AI의 창작물보단 사람의 창작물이 더 높은 가치를 지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그에 응당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요..?

아매오

원시적인 입소문이 마케팅의 전부였던 시절도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아직까지는 AI도 인간을 돕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저는 너무 낙관적인 걸까요?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