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맥도날드, IGSB, 서터힐벤처스 이야기
2022.6.13 | 470호 | 구독하기 | 지난호
안녕하세요!
실리콘밸리에 나와있는
때는 2003년. 미국 네브라스카 주와 아이오와 주 경계에 있는 도시 '오마하' (Omaha). 인구 약 50만명 가량의 이 작은 도시에 갑자기 전국에서 2만명 가까운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었어요. 추운 동쪽도시 뉴욕에서 날아온 사람들도 있었고, 따뜻한 남서쪽도시 LA와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죠. 온 곳은 다 달랐지만 얼굴은 모두 들떠 있었어요. 마치 BTS의 공연에 참석한 팬들의 표정처럼 곧 다가올 지적 성찬에 그들의 두뇌에는 침이 잔뜩 고여 있었죠.
오마하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에요!   

그들이 모두 기다리던 것은 한류스타나 빅테크 기업의 CEO가 아니었어요.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수만명의 사람들이 기립박수와 함께 환영한 인물은 70세가 넘은 할아버지 두 사람. 게다가 그들은 최신형 스마트폰이나 멋진 신형 전기차 같은 것들을 소개하러 나온 것도 아니었어요. 책상 위에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제품이자 투자한 회사의 제품인 코카콜라 한 캔과 씨즈캔디(See's Candy)만이 놓여져 있었을 뿐이죠. 그렇게 등장한 오늘의 주인공은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 워런 버핏은 당시 빌 게이츠에 이어 세계 2위 부자 (당시 재산 350억 달러 - 당시 환율 약 35조원) 였어요.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의 2003년 주주총회 모습 <사진=워런버핏아카이브>

워런 버핏은 자신이 세운 회사 '버크셔 헤더웨이'의 주주총회에 참석한 미국 전역의 주주(투자자)들에게 여러 질문과 답변을 하고 있었어요. 세계 2위의 부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투자의 비결을 물어봤죠. (당시 영상 링크) 그렇게 오전 내내 질문공세가 이어지고 난 다음, 점심을 먹으러 일어나기 직전에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30대 후반의 젊은 벤처투자자 한 사람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이렇게 질문을 했죠.

"버크셔 헤더웨이는 위대하게 될 수 있는 회사에 투자하고, 위대한 경영자들을 고용하여 회사의 가치를 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우 감사합니다. 그런데 두 분이 경영자들을 선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두 분은 어떤 경영자를 좋아하시나요?" 

"흠 정곡을 찌르는 질문인데?"
버핏은 질문을 듣자마자 숨도 쉬지 않고 곧바로 이렇게 말하죠. 

"열정이죠. 우리가 어떤 회사 주식을 살 때는 말이죠.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요. '이 회사 경영자는 돈을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사업을 사랑하는 걸까?' 물론 돈을 사랑하는게 문제가 될 건 없어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1년이나 2년 뒤에는 우리와 같이 있지 못할 가능성이 높죠."

(버핏 할아버지~ 저도 사실 돈 보다 열정이 더 좋아요!)

버핏은 말을 이어요. 

"자신의 사업을 직접 일군 창업자들은 말이죠. 평균적으로 일반 경영자들에 비해 회사에 대한 사랑이 깊을 거에요. 제가 버크셔 헤더웨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들은 투자자가 회사에 간섭해서 일을 망칠 것 같으면 '꺼져!!!!' 라고 외치고도 남을 사람들이죠....(중략).... 그들은 계속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도 남을 사람들이에요. 비록 은행에 돈이 많이 쌓여 있다 하더라도, 그 돈을 쓰지도 않을 거에요. 왜냐하면 자신이 하는 일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그런 회사에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이 말을 들은 샌프란시스코 출신 젊은 벤처투자자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어요.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온 이 벤처투자자는...돈을 비롯한 여러가지 목표들을 동시에 쫓는 여우(Fox)같은 창업자 보다는, 자신의 일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자신의 일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돌쇄같은 고슴도치(Hedgehog)들에게 투자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투자한 회사가, 

배달의 민족 
하이퍼커넥트
크래프톤 
로블럭스 

등과 같은 곳들이죠. 눈치 채셨나요? 바로 많은 혁신가 분들이 알고 계시는 투자회사 '알토스벤처스'에요. 그리고 2003년 워런 버핏에게 질문했던 그 인물은 이 회사의 공동창업자이자 파트너인 남호 (Ho Nam) 였고요.  




남호 파트너는 미라클레터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해요.

"저는 워런 버핏에게 배운 것이 정말 많아요. 물론 버핏의 능력범위는 저와 많이 달라서 우리는 서로 다른 유형의 투자를 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의 접근 방식은 전혀 다르지 않아요. 접근 방식이 뭐냐고요? 그건 바로 '가치투자'에요. 물론 여러분들이 볼 때 워런 버핏이 하는 가치투자와 벤처투자는 서로 다르게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장기적으로 놓고 보면 위대한 회사들은 대부분 비슷해요. 정말 놀라운 창업자들이 그 회사를 이끌고요, 아주 놀랄만큼 오랜 시간 동안 성장을 계속해요. 그리고 정말 강력한 성벽(Moat)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놀랄만큼 이익이 많이 나죠."

아마 많은 분들이 생각하실 거에요. 워런 버핏의 가치투자와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남호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해요. 남들이 아직 보지 못한 위대한 가치를 갖고 있는 회사를 찾는다는 측면에서 벤처투자는 가치투자의 부분집합일 뿐이라고요. 그리고 이는 남호 대표 혼자만의 주장은 아닌 것 같아요. 실제로 워런 버핏의 가치투자 철학에 영향을 받은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자들은 한 둘이 아니거든요. 못 믿으시겠다고요? 그럼 한 번 같이 사례들을 돌아 보실까요.


오늘의 에디션 

  1. 한 비주류 교수의 수업 
  2. 산타바바라 투자그룹 
  3. 마이클 모리츠? 꺼져 
  4. 그리고...알토스벤처스 

    잭 맥도날드 교수의 수업

    워런 버핏은 1976년부터 매년 스탠퍼드 비즈니스 스쿨 수업에 날아와 강의를 했다. 자신의 친구였던 잭 맥도날드 교수와의 인연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진은 2002년 강의가 끝난 뒤 스탠퍼드 교정에서 촬영. 좌로부터 잭 맥도날드, 워런 버핏, 멜로디 맥도날드(잭의 부인) <사진=스탠퍼드대학교 비즈니스 스쿨>  

    1997년 스웨덴의 왕립 노벨상 위원회는 '마이런 숄즈'라는 한 천재 경영학자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주게 돼요. 옵션의 가격을 결정하는 모델인 블랙-숄즈 모형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던 건데요. (블랙숄즈 모형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미라클레터를 또 한 번 써야 할 것 같아서....패쓰~) 어쨋건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던 '마이런 숄즈'는 노벨상 수상과 함께 영웅이 되었고, 학교 내에서 그는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아요. 그리고 '마이런 숄즈'는 한 가지 변하지 않는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죠. 그건 바로....
    마이런 숄즈는 나중에 LTCM이라는 펀드를 시원하게 말아드신다는....

    '마이런 숄즈'의 노벨상 수상 이후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학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시장은 효율적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그런 걸 뭐라고 하죠? 아참, '주류'라고들 하죠! 맞아요.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학과는 "시장은 늘 옳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게 돼요. 하지만 단 한 사람 만이 그 주류에 끼어들지 못했어요. 그 '비주류'가 바로 이번 스토리의 주인공 잭 맥도날드 (Jack McDonald) 라는 교수였어요. 잭은 '마이런 숄즈'와 생각이 조금 달랐어요. 


    그리고 잭 맥도날드 교수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 워런 버핏을 1976년부터 스탠퍼드 대학교 강의실에 초청했어요. 당시에는 워런 버핏이 유명하게 되기도 전이었는데 말이에요. 왜 그랬나면, 맥도날드 교수와 워런 버핏은 생각이 많이 비슷했기 때문이에요.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생각들이 완전히 일치했죠.

    1. [회사의 본질적인 가치]와 [회사의 주가]는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 남들이 모두 주목하고 있는 [회사의 주가]가 아니라, 
    : 남들이 보지 못하는 [회사의 본질적인 가치]를 보는 사람이 투자에 성공한다. 
    2. [회사의 본질적인 가치]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 제품, 기술, 경쟁력 등등...
    : 하지만 그 중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최고경영자의 능력이다. 
    3. 성공하는 투자자가 되려면 많은 주식에 투자할 필요는 없다.
    : 몇몇 회사만 투자해도 성공할 수 있다.
    : 단, 그 회사들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잭 맥도날드 교수는 이런 투자철학을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자들에게 전파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해요. 남호 알토스벤처스 파트너에 따르면 잭 맥도날드 교수는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학석사 (MBA) 과정을 듣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다고 해요. 남호 파트너 님의 말이에요.

    "저는 잭 맥도날드 교수님께 가치와 성장이 결국 한 뿌리에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비록 저희는 벤처투자자였지만, 잭은 우리를 보고 '너흰 가치투자자야'라고 이야기했었죠. 잭은 알토스벤처스의 투자를 보고 (워런 버핏같은) 가치투자의 철학적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공하지 못하고 빌빌대던 시절에도 우리를 스탠퍼드대학교로 초청해서 강의를 하라고 했죠." 

    잭 맥도날드 교수의 수업을 들은 벤처투자 회사 산타바바라 투자클럽 (Investment Group of Santa Barbara - IGSB)의 파트너 팀 브리스 (Tim Bliss)도 이렇게 말해요. 

    "잭 맥도날드 교수님은 회사의 근본적 가치를 분석하는 원칙과 기법들을 학교에서 계속 가르쳐 주셨었습니다.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가정하고 그에 따른 투자기법들을 알려주시는 주류 교수님들과는 달랐죠. 교수님은 우리가 회사의 주가가 아니라 회사의 근본을 봐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워런 버핏이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시장평균 수익률(S&P500 같은 지수의 기간 수익률)을 훨씬 넘는 투자성과를 올렸는지 보여주면 그걸로 끝이었죠." 

    워런 버핏이 잭 맥도날드 교수의 초청으로 실리콘밸리로 날아와 강의를 시작했던 1976년 이후 매년 수백명의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학과 졸업생들이 벤처투자 업계로 뛰어들었어요. 이후 워런 버핏 스타일의 가치투자가 초창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투자 업계에 정착되기 시작하죠. 많은 성공 스토리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요. 다음에 보실 산타바바라 투자클럽이 그 대표 사례 중 하나에요. 

    산타바바라 투자그룹

    아름다운 산타바바라 해변


    미국 서부에는 숨겨진 벤처투자 집단들이 굉장히 많아요. 대중 인터뷰를 일절 하지 않고 자신들의 존재를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는 곳들이죠. 홈페이지 조차 없는 경우들이 많아요. 지금 말씀드리는 산타바바라 투자그룹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홈페이지가 없어요!) 이렇게 까지 해서 자신들의 존재를 비밀에 부치는 이유는, 자신들을 세상에 알릴 필요가 없어서 겠죠. 다시 말해, 남의 돈을 투자받을 이유가 없다는 거에요. 보통 벤처투자자들은 스타트업에 투자를 할 때 자신의 돈으로 하지 않아요. 투자자들의 자금을 끌어들여서 '펀드'를 조성한 다음 스타트업에 자금을 부어주는 구조를 갖고 있죠. 따라서 일반적인 벤처투자회사들은 자신에게 자금을 투자해 주는 투자자(LP)들에게 잘 보여야만 해요. 그들이 '쩐주'(돈의 주인)이자 '물주'(물건의 주인)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보통 벤처투자자들에게는 멋지고 화려한 홈페이지가 필요한 건데요.
      이렇게 말이에요  
        
        그런데 산타바바라 투자클럽 같은 경우는 이런 구조를 갖고 있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 투자클럽은 외부투자자들에게서 돈을 일절 받지 않거든요. 오로지 자신들의 자금 만으로 투자를 집행해요. 한마디로 잘 보여야 하는 투자자가 없는 거죠. 

        보통 벤처투자자들은 7년(한국의 경우)~12년(미국의 경우) 정도의 만기를 갖고 있어요. 투자자들에게 7~12년 정도 지나면 성과를 돌려주고 펀드를 청산하게 되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산타바바라 투자클럽 처럼 자기 돈을 가지고 투자를 하게 되면 이런 만기에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돼요. 

        산타바바라 투자그룹의 구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판단 만을 믿으며, 창업한 스타트업 기업가들을 위해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는 투자 모델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 산타바바라 투자그룹이 주는 것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 포함돼요.

        • 경험
        • 경영능력
        • 시장조사
        • 인재 소개 (경영자 소개) 
        • 만기가 없는 기다림 

        현재 산타바바라 투자그룹이 갖고 있는 운용자금의 규모는 약 100억 달러 (12조원) 정도로 추정이 되고 있는데요. 놀라운 점은 이 투자회사가 1979년 설립된 이래 무려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투자 자산의 규모가 불어났다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더 놀라운 점은 이 투자회사를 처음 만들었던 인물 '리스 두카' (Reece Duca) 와 '팀 브리스' (Tim Bliss) 두 사람은 처음에 정말 형편없는 상태였다는 사실이죠. 


        '리스 두카'는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가정의 2세 였는데요. 아버지가 11살 때 돌아가시고, 소년 가장으로 커야만 했어요. 공부를 잘 해서 UC산타바바라 라는 명문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지만 그의 손에 들려진 투자자금은 그렇게 많지 않았죠. 

        '팀 브리스'는 상황이 더 열악했어요. 서핑으로 유명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어촌 도시 '카핀테리아' 출신인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수중에는 땡전 한 푼 없었죠. 오히려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3만 달러 정도의 빚이 있었던 상태였어요. 

        두 사람은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처음으로 만나요. '리스 두카'는 1968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하면서 가치투자를 처음 접했고, 이후 실제로 IPO 에 올라가는 회사들을 방문해 가면서 실제로 가치투자를 집행했어요. 덕분에 대학원을 졸업할 때 즈음에는 5만 달러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었죠. 그런데 어느날 자신과 비슷한 가치투자 철학을 갖고 있는 '팀 브리스'라는 대학원 후배를 알게 된 거에요. '리스 두카'는 그렇게 번 돈의 일부를 후배인 '팀 브리스'에게 떼어주면서 자신이 만든 산타바바라 투자그룹에 합류를 시켜요. '한번 이 돈 가지고 네가 원하는 투자를 해 봐' 라면서 말이죠. 그런데 팀은 첫 해에 돈을 크게 잃어요. 시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투자수익률은 첫 해에 -20%를 기록하게 되죠. 하지만, 기적은 그 다음해 부터 일어나요.

        이게 팀 브리스의 당시 투자 수익률이라고 해요 

        그들의 가치투자 철학은 결국 큰 빛을 발하면서 지금에는 약 12조원의 운용자산을 갖고 있는 투자회사로 성공했어요. 그리고 그 운용자산은 모두 남의 돈이 아니라, 자기 돈이라는 것이 중요하죠. 그렇다면 이 투자회사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산타바바라 투자그룹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 따르면 이 투자회사는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어요. 

        • 매우 초기단계의 회사에 투자한다
          • 자신을 벤처투자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 대신 자신을 '컴퍼니 빌더'라고 소개한다 
        • 많은 회사에 자금을 뿌리지 않는다 
          • 일년에 한 두 회사에만 투자한다 
          • 투자한 회사가 많아지면 펀드에서 도와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 투자한 회사에는 전략적으로 개입한다 
          • 파트너들이 회사 경영진에 들어가서 회사를 힘껏 돕는다 
          • Advent Soft, The Learning Company 같은 회사들이 대표적 
        • 펀드 만기 따위가 없다 
          • 상장된 이후에도 영원히 회사를 도와줄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 "좋은 회사는 영원히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IGSB의 믿음이다

        산타바바라 투자그룹은 이후 'AppFolio', 'Tegus' 등과 같은 스타트업 회사에 투자하여 성공하는 스토리를 보여주면서 (50년이 넘는 세월에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어요. 다시 상기 드리자면요. 산타바바라 투자그룹을 만든 '리스 두카'와 '팀 브리스' 두 사람은 50년 전 처음 시작할 때 돈이 거의 없었어요. 가진 것은 오로지 '가치투자는 성공한다'는 믿음 하나 뿐이었죠.

        마이클 모리츠? 꺼져

        마이클 모리츠, 세콰이어캐피탈 회장

        고성이 오가고 있었어요. 소리를 지르고 있는 한 사람 중에는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탈 세콰이어그룹의 회장인 마이클 모리츠 (Michael Moritz) 가 있었죠.

        • "마음에 들지 않아!"
        • "회사가 이렇게 경영되어선 안돼!"
        • "지금 이걸 숫자라고 내놓은 거야?!"
        • "CEO 저 녀석이 문제야."
        • "우리 이 회사 CEO 바꾸자고!" 

        모리츠는 특유의 다혈질 성격을 삭이지 못하고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어요. 세콰이어가 투자한 어떤 회사의 이사회 미팅 (Board Meeting) 자리였죠. 이 곳에는 세콰이어 뿐만 아니라 이 회사에 투자한 여러 벤처투자회사들의 간부들이 이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해 있었어요. 다들 아무 소리 하지 못하고 앉아 있었죠. 실리콘밸리에서도 세콰이어의 힘은 절대적으로 막강했으니까요. 그때였어요. 미국 주류 언론에는 거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던 서터힐벤처스(Sutter Hill Ventures)라는 투자회사에서 온 한 사람이 조용히 마이클 모리츠에게 말을 걸었어요.

        마이클 모리츠는 이렇게 대답하죠. 

        "YES!"

        서터힐 벤처스에서 온 이 투자자는 회사에 대한 생각이 달랐어요. 창업자가 비록 당장 좋은 숫자를 만들어 내고 있지는 못하고 있지만, 위대한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하여 장기적으로 투자를 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죠. 서터힐 벤처스의 이 투자자는 조금 더 기다려 보고 싶었어요. 조금 더 회사의 창업자이자 CEO를 믿어보고 싶었죠. 그런데, 마이클 모리츠는 길길이 날뛰고 있었어요. 이런 상황에서....여러분이 서터힐벤처스의 투자자였다면, 어떻게 이야기하셨을 것 같으신가요? (아래 그림을 클릭하면 여러분의 의견을 남기실 수 있어요.) 

        그림을 클릭하시면 여러분의 의견을 남기실 수 있어요  

        서터힐 벤처스의 이 투자자는 마이클 모리츠가 "YES!"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조용히 일어났어요. 그리고는 지갑에서 수표책을 꺼내어서 숫자를 쓰기 시작했죠. 그리고는 마이클 모리츠에게 조용히 수표를 건냈어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죠.


        이 짧은 말 뒤에는 아마도 이런 말들이 숨겨져 있었지 않았나 해요.

        "나는 저 CEO를 바꾸어야 한다는 네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저 CEO는 지금 고생을 비록 하고는 있지만 방향을 잘 잡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해 나갈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단, 그에게는 충분한 응원과 관심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언쟁은 저 CEO에게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가정폭력 아래에서 큰 아이의 불행과 같은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일 거면 그냥 걸어서 나가는 편이 이 회사에 도움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네가 얼마나 유명한 투자자인지, 네가 얼마나 돈이 많은 투자자인지, 그런건 내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지금 저 아이같은 회사와 그 회사를 이끄는 창업자 CEO가 백만배 천만배 더 소중하다. 그러니 이 돈 받고 조용히 나가라."

        위의 코멘트는 비록 픽션이지만, 서터힐 벤처스 투자자가 갖고 있던 마음은 이런게 아니었을까요? 서터힐 벤처스는 회사의 경영진이 비록 아직 완성시키지는 못했지만 다듬어 나가고 있는 회사 고유의 가치를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고, 세콰이어는 그런 가치에 대한 의견이 달랐던 것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여튼 중요한 건 서터힐벤처스에는 세콰이어 따위 두렵지 않은 과감함과 용기, 결단이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미국 주류 언론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듣보잡?) 벤처투자회사인데 말이죠.

        실리콘밸리 페이지밀 로드에 있는 서터힐벤처스 본사 <촬영=신현규특파원>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서터힐이 절대 듣보잡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죠. 세콰이어가 아무리 대단한 펀드라 해도 서터힐을 존경하는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이 더 많아요.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요. 

        • 1962년 설립됐다 - 가장 오래된 VC! 
        • 분산투자 하지 않는다 
        • 한 회사에 많이 투자하고 지분도 많이 갖는다
        • 대신 회사의 성장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 때로는 파트너들이 회사의 CEO로 직접 뛴다 
        • 펀드 만기가 없다 - 그래서 영원히 지원할 수 있다 

        실제로 서터힐이 매년 개최하는 파티에 초대를 받느냐 아니냐가 실리콘밸리에서 정말 인정받는 투자자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잣대가 된다고 할 정도로, 서터힐은 아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칭송을 받는 존경할 만한 투자자로 실리콘밸리에서 자리를 잡고 있어요. 그 명성과 존재감은 사실 '워런 버핏의 후예'라고 말하기 조차 힘들 정도로 거대하지만, 워런 버핏과 상당부분 철학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죠. 이 회사의 투자스타일을 보여주는 일화가 몇 가지 더 있는데요. 

        • 엔비디아에 투자해서 끝까지 지원 - 1999년 엔비디아 상장시 지분 10% 보유 (링크)
        • 스노우플레이크에 투자해서 경영진도 붙여 줌 - 2021년 상장시 지분 17% 보유 (링크)
        • SUMOLOGIC에 투자해서 끝까지 지원 - 2020년 상장시 지분 11% 보유 (링크)


        그리고...알토스벤처스

        남호 알토스벤처스 파트너  

        워런 버핏 -> 잭 맥도날드 등으로 이어진 가치투자 철학의 벤처투자 접목은 한국계 벤처투자자들인 알토스 벤처스에까지 이어졌어요. 1990년대에 잭 맥도날드의 수업을 들은 남호 알토스벤처스 공동창업자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죠. 

        "가치투자란 그저 (주식을) 싸게 사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못보거나 주저하는 사이, 표면 아래에 있는 깊고 본질적인 것을 발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링크)

        알토스벤처스는 성장하는 기업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시장이 아직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면 그 회사의 주가가 많이 올라 차익을 실현할 기회가 생기더라도 오히려 '묻고 더블로 가'를 시전하는 특징을 갖고 있어요. 예를 들어 우아한형제들의 기업가치가 계속 올라가는 과정에 8차례나 투자를 단행했죠. 로블럭스 기업가치가 올라가는 과정에서 4차례나 회사의 주식을 더 매입했고요. 회사의 본질적 기업가치가 더 올라가면 그때마다 주식을 더 많이 사는 행동패턴. 이건 바로 워런 버핏의 투자패턴과 같다고요! 

        많은 사람들이 워런 버핏의 가치투자와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가 무슨 관계냐?! 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이처럼 둘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한국에서 쿠팡 토스 크래프톤 배달의민족 등에 투자해서 성공한 알토스벤처스가 갖고 있는 투자철학의 원류 또한, 거슬러 올라가보면 워런 버핏과 IGSB, 서터힐 등과 같은 가치투자의 명가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요. 

        알토스벤처스 관련 내용이 더 궁금하시면 링크된 기사를 참조해 주세요.


        워런 버핏이 말하는 '가치투자' (Value Investing)는, 아직 시장의 많은 참여자들이 보지 못한,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비정형 상태의 회사들에 주목하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어요. 마치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던 아들의 재능을 빨리 알아보고 축구 교육에 집중시킨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 다이아몬드가 실제로 번쩍거리면서 빛을 발할 때까지,

        • 도와주고
        • 기다리고
        • 응원하며
        • 같이 생활하는 

        자식을 향한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과도 같은 삶. 농사를 짓는 농부와도 같은 삶. 그게 바로 가치투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 맥락에서 보면, 벤처투자 만큼 가치투자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투자도 없는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드네요. 경기침체 물가상승 등등으로 주식 투자 환경이 어지러운데요. 워런 버핏의 가치투자와 그에 영향을 받은 실리콘밸리의 기술기업 투자 벤처캐피탈들은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이 있어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회사는 티파니 보석상에 전시된 완제품 다이아몬드 같은 것이다. 가치투자자들은 그런 회사가 아니라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회사를 찾는다. 엄청난 인재들이 위대한 사업구조를 만들어 나갈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다듬어 지지 않은 상태에 있는 회사들 말이다. 진정한 가치투자자들은 그런 회사들이 번쩍번쩍 빛을 발할 때까지, 도와주고, 한없이 기다리며, 응원하고, 무엇보다, 그들과 같이 생활한다." 
         
          
        Directly Yours,
        신현규 드림


        PS. 신현규 특파원은 이번 레터를 끝으로 실리콘밸리에서 드리는 미라클레터 집필을 종료하게 되었어요. 앞으로는 이상덕 이덕주 두 분이 레터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미라클레터 계속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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