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생을 단어 몇개로 정의내리는 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독일 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인생을 어쩔수없이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불꽃같은 삶"이라고 표현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어쩔수없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파스빈더에 대해서는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를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스빈더는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약 13년의 시간동안 TV 시리즈를 포함하여 37여편의 작품을 만들었으며 심지어 1970년 한 해 동안에만 5편의 장편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단순히 다작만 한것이 아니라 그의 죽음이 그가 포함되어 있는 사조인 '뉴 저먼 시네마'(New German Cinema)의 끝으로 자주 여겨질만큼 그의 커리어는 매우 강력한 영향을 가졌었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약 2주만에 만든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4)는 칸 영화제에서 상을 탔으며 많은 평론가들 사이에서 그 해 최고의 영화로 꼽힌 바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영화를 만들때 감독으로서 연출만 한것뿐만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 시나리오 작가, 미술 감독, 편집자와 배우의 역할도 하였던 다재다능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가 천재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커리어적으로만 바라봐도 무척 흥미롭지만 파스빈더의 개인적 삶 또한 매우 다사다난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사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별로 숨기지 않고 살았던 인물이었으며 자신의 가족, 친구 그리고 해당 시기의 파트너들이 전문 배우가 아니어도 영화에 출연시키는 일이 매우 많았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4)도 파스빈더의 당시 파트너가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았었습니다) 그와 그의 파트너들의 관계는 매우 불안정하고 건강하지 못한 관계인 경우가 많았으며 그의 파트너중 한명은 그와 헤어진 후 의도적으로 파스빈더의 생일이 있던 주에 술과 약물 복용을 통해 자살하였다고 합니다. 파스빈더 자신 또한 마약과 술을 가까이 하며 살았고 결국 그는 다음 작품을 구상중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불신하였으며 인간혐오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의 영화들은 억압받는 자와 억압하는 자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대하여 주로 다루었으며 영화속에 외로움, 사랑과 동반자에 대한 갈망, 상대방의 감정을 이용하는 인물의 모습이 자주 등장했다는 것을 떠올리면 파스빈더라는 개인이 가진 세계관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연민마저 조금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할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1978)은 그의 영화 중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했던 영화이자 그가 오랫동안 외면받아왔던 독일에서도 대중적인 인정을 받게 한 영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