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독립이란 주제를 골랐을 때는 20살 이후로 집을 떠나 독립된 인간으로 살아 온 제 이야기를 나눠보려 했습니다만, 그 사이 전쟁이 터지고 말았군요. 방아쇠를 당겨 본 적 없는 저는 총 대신 펜이라도 들었습니다.

전쟁은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생명력을 파괴 시킵니다. 예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를 종속시키고자 무력을 행사합니다. 독립을 고립으로 바꾸어 놓는 잔인함은 한 개인이 오롯한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일상을 무너뜨리고 공동체가 만들어온 문화를 말살함으로 주체성을 무력화합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일상이 사라지는 비극을 마주하지요.

공동체의 자주권이 무너진 상태에서 개인이 주체성을 지켜내는 일이 가능할까요? 제 질문에 수용소의 상황을 놀이로 바꾸어 아들을 살려 냈던 영화('인생은 아름다워')를 떠올리며, 그것이 어떤 비범한 사람에 의해선 가능한 일이라 여기는 분은 없을 겁니다. 우리는 모두 일상을 넘어서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니까요.

동일한 생명을 지닌 개별적 존재는 어떤 연유로 타인의 독립성을 빼앗을 수 있게 되었을까요. 하늘이 내렸다는 자유를, 이를 만들어 내지 않는 자가 거둬갈 자격이 있을까요. 저는 오늘도 사라져갈 어떤 땅의 꽃, 향기, 새들의 노랫소리를 그리워하며 하염없이 시나 쓸 테지요. 이 황폐함이 스스로를 자조로 뒤덮지 않길 바라며 글 앞에 서 묻습니다. 당신의 주체성은 안녕하신가요, 우리의 주체성은 안녕할까요.

태아가 탯줄을 끊고 자궁으로부터 세상 밖으로 분리되는 경험이 한 인간이 겪는 최초의 독립이 아닌가 합니다. 엄마의 몸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았던 안위로부터의 분리, 스스로의 몸, 즉 자체로 직접 영양분을 공급받는 행위가 우리의 첫 독립인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우리는 닮은 점이 있습니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독립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우리의 첫 독립 사건을 확장 해석해볼까요? 저는 '독립'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기억 너머의 독립의 경험이 우리가 '자유'를 갈구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모두 동질의 원동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연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도 교훈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가 될 수 있는 단서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도처에는 독립보다 종속을 강요하는 이들이 즐비한 것 같습니다. 독립의 경험과 욕구를 지닌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걸 이해한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옭아매는 행동은 한낱 구린 욕심이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인데 말이지요. 독립의 역사, 해방의 기억, 연대의 경험을 많이 공유할수록 우리의 삶이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질테니까. 저는 이 모든 과정의 합을 문명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러나 달리 관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린 그 첫 독립 이전에는 모체에 ‘종속’된 존재였기에 그 기억에 의지하여 오늘날에도 여전히 종속되고자 하거나 종속을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독립과 종속은 서로 투쟁하는 사이인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독립의 경험을 더욱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다시 모태에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우리는 가부장적 강요나 독재적 정권의 강제, 독점 대기업의 압박이 우세한 시대를 오래 살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기성 세대들이 규정하는 우리의 모습은 그리 다채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잖아요. mbti만으로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다채로운지, 얼마나 잘 변화하는 존재인지, 또 얼마나 닮은 존재인지를. 그런김에 함께 독립 운동가가 되어 종속과 투쟁 해보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봅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우리의 건강한 독립을 위해서. “우리, 독립, 만세!”

지난 주말엔 문득 영화 생각이 간절해 영화 한 편을 구매했습니다. 집 떠나는 이야기가 무작정 보고 싶어서 연말에 감명 깊게 봤던 영화를 다시 틀었습니다.

‘아름다운 여행’은 게임에 빠져살던 도시 깍쟁이 아들내미가 멸종 위기의 기러기 보존을 연구하는 아빠 집에 맡겨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온 사방이 늪지인 아빠의 집에서 핸드폰을 미끼로 인터넷을 낚기 위해 창 밖으로 열심히 낚시대를 던지던 아이는 기러기가 알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어리지만 엄마 노릇을 톡톡히 하게 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기러기를 먹이고, 망토 아래 품어 재우고, 함께 헤엄치며 수영을 가르치기 까지. 아이는 진짜 엄마가 된 것 마냥 기러기들이 멀리 북극에서 부터 부화한 프랑스 남부까지 무사히 오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물심양면 가르칩니다. 비록 아빠에게 행글라이더 조작법을 배우기 위해서 시작한 기러기 뒤치닥거리였지만 그렇게 아이는 생명을 기르고 책임지는 법을 배웁니다. 

아이의 변화를 보며 새삼 한 생명을 키운다는 게 뭘까. 그렇게 고이고이 길러낸 존재가 독립한다는 게 뭘까. 고민하게 됩니다. 나는 여전히 배울 게 많고 한-참은 더 커야 할 것 같은데. 언제쯤 독립할 수 있을까? 먼 것만 같은 꿈을 꿉니다.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독립이 뭔데? 물어보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수십년전 삼일절에 우리네 선조들이 목놓아 부르짖은 것도 독립이요. 내 스스로 내 생계를 책임지는 삶을 꿈 꾸는 것도 독립일 터입니다. 

그러나 이내 홀로 서는 것도 혼자서는 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나를 기른 부모님없이, 나를 가르친 선생님없이, 나를 붙들어 준 친구들과 함께 해준 동료들 없이, 지금 존재하는 이곳에 내가 서 있을 수 있었을까요? 내 힘으로 내 자신을 책임지는 것. 그러나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독립개체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소통하고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 스스로 선다는 것 아닐까요? 서로가 오롯이 스스로일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 그것이 무척 고픈 요즘입니다.

아빠와 함께 준비했던 여행이었건만 긴박한 상황에 의해 아이는 홀로 먼 길을 떠나게 됩니다. 함께 연습하고 준비했지만 홀로 오롯이 이끌어내야 하는 비행은 두렵고 떨리기만 합니다. 그런 주인공의 여정이 계속 될 수 있었던 건 아마 선뜻 내밀어진 도움의 손길과 아이와 함께하는 기러기들 때문일 겁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여행이 어떻게 끝맺어지는 궁금하시다면 이번 주말에는 아름다운 유럽의 풍경 속으로 방구석 랜선 투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당신이 스스로 서기까지 길고 지난한 걸음마를 지켜봐 준 존재를 떠올리면서요.

'사수가 없는 게 기본값'. 한동안 제가 마음 속으로 되뇌었던 말입니다. 얼마전 사내 여러 이유로 갑자기 사수 없이 혼자 일하게 되었거든요. 성장의 필수 요소는 방향성을 제시해줄 유능한 리더라고 생각해왔는데 이끌어줄 사람이 없어진 거죠. 혼자라는 두려움때문에 넘쳐나던 일 욕심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잠들기 전까지 유튜브에 '퇴사', '이직'을 검색하기를 일주일. 관점을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혼자인 것을 기회로 삼아 자율성을 갖고 나만의 독립된 커리어를 만들어 보자고요.

일하는 사람에게 독립은 무엇일까요. 책 『인디펜던트 워커』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디펜던트 워커는 회사에 소속돼 있어도 독립적으로 일한다. 회사나 직무만으로 일을 정의하지 않고, 스스로 일을 주도하면서 각자의 선택과 역량에 따라 개인화된 일을 만들어 간다.'

저자의 말을 읽고나니 작년 팀장님이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 일로 만들고 내 일로 끝낼 수 있다면 저는 일을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땐 참 아리송한 말이었는데 지금에서야 독립의 의미와 함께 생각해 보니 속뜻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평범한 일도 내 고유한 역량을 녹여 나만의 일로, 나에게 남는 일로 만드는 것이구나. 그리고 회사, 직무, 타인에게 기대지 않으면서 주도적으로 일을 바라보고 끝내는 것이라고요. 올해는 일터에서 사수 없이 스스로 성장하는 기쁨을 얻으려 합니다. 일을 시작하고 끝맺는 주체는 언제나 독립된 나, 혼자니까요.

5년째 독립을 외치고 있는 비버입니다. 독립을 갈망하기 시작한 건 캐나다 토론토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고부터인데요. 1년 동안 나만의 루틴으로, 나만의 규칙을 갖고 살다가 집에 왔을 때 '나'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외치는 독립은 스스로 경제권을 가지고, 부모의 집을 떠나 혼자 사는 것이었습니다. 왜 아직 독립을 못 했냐고 물어보신다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이 없어서’라고 대답했는데요. 최근에 절친한 지인과 대화하다가 제가 독립하지 못한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라푼젤(Tangled, 2010). 보지는 않았어도 익히 내용을 아실 텐데요. 세월을 되돌릴 수 있는 마법이 깃든 라푼젤의 긴 머리카락이 떠오릅니다. 그녀는 깊은 숲속 높은 탑에 살고 있죠. 탑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던 고독한 공주가 탑을 벗어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인데요. 어쩌면 한 사람의 독립을 다룬 내용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라푼젤을 탑에 가둬두고 키운 마녀 고델은 매번 이렇게 말합니다. "바깥세상은 너무 거칠고 위험하단다."

“When will my life begin?” (대체 내 인생은 언제 시작되는 걸까?)

라푼젤의 인생은 탑에서 나왔을 때 시작됩니다. 그녀는 남자 주인공과 함께,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전에 겪지 못한 바깥세상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가끔 탑을 떠나온 것을 후회하기도 하고, 종종 탑에 홀로 있을 고델을 걱정하며 돌아가고 싶어도 합니다.

독립은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가 됨. 독자적으로 존재함을 뜻하는데요. 비슷하게 사용하는 말로 자립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독립은 ‘의존하지 않는 상태’를 나타내고, 자립은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섬’을 의미하죠. 자립이 조금 더 주체적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단순히 물리적,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으면 독립은 할 수 있지만, 스스로 설 수 있는 완전한 독립, 즉 자립이 되려면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홀로 우뚝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완전히 독립하지 못하는 이유는 경제권에 있지 않았습니다. 경제적 독립보다 필요한 것은 정서적인 자립이었습니다. 경제적 독립은 나를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을 환경과 상태를 만들어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을 결정하진 못합니다. 독립은 불안과 걱정, 고독을 동반하는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두 발로 땅을 딛고 서는 힘은 정서적인 자립에 있는 것 같습니다.

"Venture outside your comfort zone. The rewards are worth it.”

익숙한 곳을 벗어나봐. 충분히 가치 있을거야.

- 영화 '라푼젤' 중에서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홀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건 걸을 준비가 되었다는 소리일 겁니다. '나' 다운 발걸음을 딛기 위해서, 자유롭게 걸어 다니기 위해서,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 오늘도 저는 독립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