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지는 그 작은 면에 결코 적지 않은 정보를 담고 있다. 어쩌면 일당백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이예은입니다.
저는 산책하는 걸 좋아해요.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땐 다른 운동이 너무 하기 싫어서 매일 1만 보씩 걷기도 했어요(효과도 1만 점입니다). 당시엔 힘든 생각이 들 때면 바로 침대를 벗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무작정 걷다 보면 마음을 괴롭히는 생각들이 잠잠해지곤 했거든요. 1보에 1개씩 생각을 툭툭 떨어뜨리며 걸으면 어느새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씻고 잠들 수 있었어요. 반대로 좋은 생각을 얻어 즐겁게 돌아오기도 했지요.
이런 신비한 일은 아마 산책 중 마주치는 무해한 존재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새로 생긴 다코야키집과 사장님네 가족, 해가 떨어지면 공원에 모여 에어로빅을 하시는 분들, 멀리서부터 저를 발견하면 신나게 뛰어오려는 강아지들과 그런 강아지를 다급하게 진정시키는 주인들, 자꾸만 눈싸움을 거는 길고양이들. 한 발짝 떨어져서 그들을 지켜보며,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저와 밀접하지 않은 이들의 모습에서 쉼을 얻죠.
살다 보면 전혀 관계없는 것들에서 거저 힘을 받기도 합니다. 무심코 열어본 메일함에서 마주한 저희 이야기가 독자분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출판사를 운영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박명준 대표님은 ‘띠지’에 담긴 의미에 대해, 이재원 대표님은 ‘판형’에 대한 고민을 써주셨습니다. 독자로서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들을 출판하는 이들의 눈으로 보니 얼마나 많은 고민이 담겨있는 것인지 알 수 있네요. 오늘도 즐겁게 읽어주시고, 소중한 의견들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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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띠지는 그 작은 면에 결코 적지 않은 정보를 담고 있다. 표지로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출판 시장에서 띠지는 어쩌면 일당백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띠지가 아니라면 독자는 책에 대한 핵심 정보를 대체 어디서 한눈에 얻을 수 있을까? 띠지가 아니라면 출판사는 어디에다 책 소개를 효과적으로 쓸 수 있을까? 어쩌면 띠지는 출판사가 전달하고픈 책의 알짬을 작은(대략 12×3cm의 협소한) 지면에 압축해 넣은, 책 소개의 결정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띠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책의 대강을 짐작할 수 있고, 소개할 수 있다.
유진 피터슨의 유고작 ⑦ 《잘 산다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이 책이 어떤 책인지 묻는다면, 띠지를 읽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당신의 평범한 삶에 깃든 비범함을 발견하십시오!”라는 호소가 담겨있는 “유진 피터슨 미출간 원고”를 엮은 책으로, “박영선, 김기석, 김영봉” 같은 목사님들이 이 책을 추천하셨다, 라고. 피터슨을 아는 독자라면 이 정도로 소개가 충분할 테고, 띠지 문구에 흥미를 가졌지만 부족하다 느끼는 독자라면 뒤표지와 책날개의 좀 더 상세한 소개를 살피면 책에 대한 더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을 보자. “휘트먼과 더불어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걸작 시 모음”이라는 띠지 문구가 아니라면 디킨슨이 미국 문학에서 이 정도 위상을 지닌 시인임을 (웬만한 문학 애호가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알 수 있겠으며, 이어진 문구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시인”이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찬사까지 눈에 들어왔다면 울프를 신뢰하는 독자로서 이 책을 손에서 내려놓기가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되어 전작까지 역주행하고 있는 클레어 키건의 ⑧ 《맡겨진 소녀》의 띠지를 보자. 반드시 읽어야 할 너무도 탁월한 작품이지만 우리에게 처음 소개되는 저자와 그 작품의 가치를 전하려는 출판사의 간절한 마음이 읽힌다. “키건은 한 세대에 한 명씩만 나오는 작가다_〈타임스〉. 2022 부커상 최종후보 작가의 국내 초역. 2009 데이비 번스 문학상 수상작. 〈타임스〉 선정 21세기 출간된 최고의 소설 50.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최종후보 〈말없는 소녀〉의 원작 소설. 김금희, 김보라 추천!” 이게 다 띠지에 담겨있다! ⑨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이제 널리 알려진 키건의 작품에 이처럼 장황한 소개는 과하지 않나 싶겠지만(향후 키건의 작품에는 이런 장황함 대신 “클레어 키건의 신작” 정도면 충분하겠지만), 천하의 탁월한 작가도 처음 소개될 때 이런 상세한 정보와 소개가 필요했던 게다. 어떻게든 이 작품이 꼭 읽혔으면 하는 편집자의 간절하고 곡진한 마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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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띠지를 달고 그 안에 필요한 정보와 멋진 문구를 담는다고 해서 책이 잘 팔릴까? 알 수 없다. 어쩌면 무관할지 모른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지 않는가. 아무도 알 수 없는 게 그 운명이다. 별것 아니다 싶은데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도 보았고, 정말 대단한데도 거의 소개되거나 읽히지 않는 책도 부지기수다. 정말 최근 책은 나름의 운명이 있는 것 같다. 출판사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최선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 운명을 조금이라도 바꾸어보려는(제 운명을 찾아주려는) 편집자가 들이는 노력의 끝단이 곧 띠지이지 않을까?
물론 출판사가 좋은 책을 내고, 서점과 여러 매체가 소개하고, 독자가 찾아서 읽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좋은 책을 내면 독자가 알아서 읽어주고 초판 정도는 너끈히 소화되는 아름다운 세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소수의 눈 밝은 독자가 있어 선구적으로 읽기도 하고 소개도 하지만, 적은 수일 뿐이다. 이는 비단 책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분야든, 제아무리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놓았다 해도 가만있는데 누가 알아서 사주지 않는다. 그렇게 돌아가는 세상이라면, 영업자는 왜 필요하며 광고는 무슨 쓸모가 있을까. 정말 좋은 작품이라면 최선을 다해, 발품을 팔아, 가용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알려야 한다. 그것이 광고일 수 있고, 홍보일 수 있고, 판촉 전략일 수 있고, 책 자체에 올라가는 띠지일 수 있다. 띠지는 그 책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리려는 출판사와 편집자의 소리 없는 아우성일지 모른다.
물론 독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어떤 출판사나 선명하게 각인된 시리즈는 책이 나오면 독자들이 알아서 구매해주기도 한다. 몇몇 출판사 책은 그 출판사 이름만으로 책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사게 되는 경우가 있다. 행복한 모본이다. 그렇게 신뢰받는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는, 이렇게 좋은 책을 냈는데 왜 몰라주는가 낙심할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책을 알리고 소개할 일이다. 광고와 홍보, 소개를 위한 채널이 제한적이고 거의 없는 출판사에게 띠지는 그런 필사적인 권서 활동의 소박한 장일지도 모른다.
출간한 책 중에 가장 안 팔린 책이 공교롭게도 호기롭게 띠지를 안 한 책이었다. 대상이 불명확한 제목, 유행하지 않는 주제, 낯선 저자, 기피하는 저자 프로필 등도 이유였겠지만, 한눈에 얻을 수 있는 표지 속 정보가 너무 적었다. 한순간에 표지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하는 바쁜 독자의 눈을 사로잡지 못하는 책은 묻히기 십상이다. 가끔 생각해본다. 그 책에 띠지를 둘렀으면 그 운명이 달라졌을까?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그 책의 매력을 충분히 어필하지 못한 아쉬움은 남는다.
물론 얼토당토않은 내용과 추천인 명단으로 독자를 현혹하려는 띠지는 분명 문제가 있겠다. 그런 불성실한 띠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런 일을 벌이는 출판사라면 머잖아 독자들 신뢰를 잃을 테고, 결국에는 띠지가 의도하는 바와는 달리 독자에게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띠지의 문제는 미적인 부분에 있다. 완성된 표지 위에 생뚱맞은 천연색 종이가 올라간 형국은 눈에 거슬리게 마련이다. 이런 문제를 인식한 편집자와 디자이너는 표지와 어울리는 띠지 디자인을 찾아 도서의 미적 완결성을 높이려고 남모르는 땀을 흘리고 시간을 들인다. 표지를 해치지 않는 선을 넘어, 표지와 조화를 이뤄 디자인 완결성을 이루려는, 상업적 목표와 장인적 고집의 공존 시도가 띠지에 보인다. 표지에도 하지 않은 ⑩ 코팅을 띠지에 하기도 하고, ⑪ 비싼 고급 종이를 사용하여 품위를 올리려고도 한다. 띠지는 그냥 광고 딱지가 아니라 책의 한 요소로 완결되게 하려는, 미학적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는 애씀일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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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메시지》를 처음 출간할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이야 모든 집에 하나씩은 있는 읽는 성경으로 자리 잡았지만, 처음 《메시지》를 낼 때만 해도 과연 이 책이 한국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었다. 설렘도 있었지만 두려움이 더 컸던 당시 우리의 바람은 소박했다. 딱 초판만 팔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일로 한국교회로부터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면 좋겠다는 정도(뉴에이지를 끌어들여 어처구니없는 비판을 하는 무리가 있었다). 물론 출간 후 《메시지》는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읽는 성경’이라는 시장을 만들어냈지만, 출간 당시 성경은 예배용 성경뿐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경건한 한국교회에 메시지 같은 불온한 책이 자리할 틈은 없어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 책이 얼마나 좋은 책이며 안전한 책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선택을 받은 책인지 알리는 것이었다. 하여 생각해낸 콘셉트는 “성경 옆의 성경”이었고, “1천만 독자가 선택한 성경 옆의 성경”이 핵심 문안이었으며, “이동원, 임영수, 이문식, 김기석, 오정현 목사 추천” 같은 문구가 필요했다. 물론 이 모두가 모두 ‘띠지’에 실렸다.
이처럼 띠지는 달뜬 마음에 한번 만나달라고 애원하는 열정 어린 연서일 수 있고, 문을 열어 이 말에 귀 기울여달라는 간절한 호소일 수 있으며, 어떻게든 독자의 마음을 얻어 그 손에 붙들리려는 매혹적인 포스터일 수 있다. 그 마음을 독자가 알아줄지 말지 알 수 없지만, 사랑병(이 경우엔 책과 그 메시지를 전하고픈 애정이겠지만)에 걸린 편집자의 마음은 시종일관 한 방향으로 꾸준할 뿐이다.
책을 만들고 나서 실물이 들어오면 몇몇 명사분께 책을 보낼 때가 있다. 이 책의 진가를 누구보다 잘 알아줄 이에게 책을 보낼 땐 작은 엽서에 손 글씨로 정성스러운 사연을 함께 적어 보낸다. 책을 품고 보듬고 완성하여 이제 독자에게 떠나보내려는 편집자가 마지막으로 마음 담아 쓰는 작은 엽서, 어쩌면 그게 띠지와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름의 운명과 소명을 가진 책이 떠나는 길을 조금이나마 평탄게 하고 멀리까지 이어지게 하고자 하는, 예비하는 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애씀(아니다, ‘보도자료’가 남았다). 부디, 독자의 손에, 그리고 더 깊이 그 마음에까지 가닿기를, 오늘도 바라고 기원하는 마음이랄까.
박명준 책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미몽에 사로잡힌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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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언론이나 서점에서 책 정보를 표기하며 국판, 신국판, 사륙판, 타블로이드판 같은 용어로 판형을 표시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인터넷 서점에서는 이런 용어를 버리고 실제 책 크기를 치수로 표기한다. 예를 들어, 선율에서 출간한 《환대의 사도행전》은 ‘신국판’이 아닌, 가로세로 152×225mm 두께 18.6mm라고 표기한다.
종이 인쇄물의 마무리 치수와 모양을 판형(book size)이라 한다. 출판 밥을 처음 먹으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용어가 국판, 신국판, 사륙판, 타블로이드판 같은 표현이었다. 특별한 설명은 없었다. 책 한 권을 들고는 이건 신국판인데 152×225가 기준이고, 1-2mm 차이가 날 수도 있고, 이 사이즈에서 세로를 작게 하거나 가로를 작게 하면 신국변형판이 된다는 식이었다. 이 용어를 익히고 주말에 서점에 나가니 수많은 책이 전부 몇 개의 ‘판형’으로만 보였다. 드디어 나도 출판인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독자들에게는 불친절한 용어일 수밖에 없었다. 신국판 사이즈가 152×225mm라고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왜 이 사이즈를 신국판으로 부르게 된 걸까? ‘신국판’이라는 단어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있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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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단행본은 “옵셋”이라고도 부르는 오프셋(Offset) 인쇄기에서 출력된다. 오프셋 인쇄기는 볼록판 또는 오목판이 아닌 평판 인쇄를 추구한다. 종이에 직접 인쇄하지 않고, 중간에 있는 고무 블랭킷과 인쇄판(CTP, Computer To Plate)을 거쳐 간접 인쇄하는 방식이다. 물과 기름의 반발 성질을 이용해 볼록 또는 오목의 요철 없이도 인쇄가 가능하다. 대량으로 인쇄해도 용지 손상이 적고, 안정적이면서 정밀하게 색을 표현할 수 있다.
오프셋 인쇄기에 들어가는 정해진 용지는 복사기에 들어가는 A3·A4처럼 작은 종이가 아닌 큰 종이 전지(全紙, whole paper)를 사용한다. 인쇄기에 들어가는 가장 대표적인 종이를 ‘국전지’라고 부르는데, 939×636mm다. 또 다른 인쇄용 전지는 사륙전지라 부르고 사이즈는 국전지보다 큰 1090×728mm이다. 그래서 오프셋 인쇄기에는 사륙전지를 자른 사륙 반절이라 부르는 515×728mm의 전지를 사용한다. 그러니까 거의 모든 오프셋 인쇄기에는 국전지와 사륙 반절 용지로 인쇄하고, 이걸 자르고 제본해서 다양한 책으로 만든다.
국전지는 A3·A4 등 A계열로, A5 사이즈 책을 ‘국판’이라 불렀다. 우리나라 인쇄 기술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건너왔으니, 당연히 종이도 일본 제품을 수입해 사용했다. 그때 수입하던 A1 전지 상표가 다알리아꽃이었고, 이것이 국화꽃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 전지로 만든 A5 크기의 책을 ‘국화꽃판’이라 불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국판’으로 바뀐 셈이다. 이 인쇄 용지가 인쇄판에서는 ‘국룰’인 용지이기 때문에 국전지로 부른 것이 아니었다. 신국판은 국전지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국판보다 조금 더 크기를 키워서 새로운 국판이라는 의미로 신국판이라 불렀다.
사륙전지도 이와 비슷하다. 사륙전지는 B3·B4 등 B계열 용지로, B6 사이즈 책을 ‘사륙판’이라 불렀다. 사륙전지 B6의 크기는 128×182mm였고, 이를 일제강점기 인쇄소에서 4치 6푼 × 6치 2푼이라 불렀고, 시간이 가면서 부르기 편하도록 사륙판으로 정리되었다.
즉, 일제강점기 인쇄용 전지 회사 이름과 전지 크기로 만들어진 용어를 사용해온 셈이다. 이와 전혀 상관없는 독자들에게 책의 판형, 사이즈 정보를 전달하는 용어로 ‘강요’한 것이다. 이렇게 독자들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그렇다고 정확한 사이즈에 대한 정보도 없이, 국판이니 신국판이니 하는 용어를 받아들여야 했다.
출판은 저자를 통해 독자에게 어떤 ‘가치를 창조’하는 일이라고 배웠는데, ‘판형의 강요’ 앞에서는 소통 없는 가치 창조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펜을 쥔 자가 얼마나 권위적일 수 있는지도 돌아보게 되었다. 출판하는 이들에게는 뿌리 깊게 박힌,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어서 독자들과 소통하기보다 일방적으로 강요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일본 종이 회사 상표인 ‘다알리아꽃’ ‘4치 6푼 × 6치 2푼’도 출판의 역사라면 역사겠지만, 여기에 의미를 두고 전통처럼 여겨서야 되겠는가. 숫자로 표기해서 정확한 정보를 주는 것이, 가치를 창조하겠다는 이들에게 훨씬 어울리는 모습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배워온, 뿌리 깊게 박혀있는 편집·교정 원칙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독자와 소통하기 위한 수단·방법으로 여기며, 끝없이 바꾸고 변화해가야 하지 않을까. 심지어 편집 원칙이 편집 권위처럼 여겨진다면, 오히려 과감하게 버리고 바꾸어야 독자와의 ‘소통’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판형 정보를 바꾼 곳은 출판사가 아닌 인터넷 서점이었다.
서점에 가면 신국판과 국판과 사륙판 책만 있지 않다. 다른 크기의 수없이 다양한 책이 있다. 몇 개의 판형에 수많은 책의 다양성을 가두려는 생각을 넘어, 수없이 많은 가능성을 향해 마음을 열고 끝없는 변화를 시도하려는 태도, 이것이 언제까지 책을 팔아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하는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출판인의 자세이지 않을까. 저자와 독자와 서점이 아니라, 출판하는 내가 싹다 갈아엎어질 마음으로 출판의 재개발을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나비 하나 날지 않는 듯한 출판 시장에도 따뜻한 봄바람이 불지 않을까. 그렇게 할 때 가로세로 152×225mm 두께 18.6mm인 《환대의 사도행전》을 한 권이라도 더 사주시지 않을까.
이재원 홍성사, 위즈덤하우스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선율 출판사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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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 의견💌
🗣️ 오늘 아침, 출판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에 따른 출판일들의 한숨 섞인 탄식도 들었고요. 출판 생태계와 관련한 이재원 대표님의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듭니다. 현실이 이런데도 책 읽는 문화의 확산을 위해 애써 주시는 〈서사의 서사〉 모든 관계자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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