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도 수고하셨습니다.
12/27(금) 
 2024 연말 결산 100 제 1탄 
 유튜브 / 팟캐스트 / 음악 / 공연 부문


12/29(일) today
 2024 연말 결산 100 제 2탄 
 예능 / 책 / 영화 / 드라마 부문
사상 검증 구역: 더 커뮤니티ㅣ연애남매ㅣ더 보이프렌드ㅣ정욕ㅣ미술 사는 이야기ㅣ시에나에서의 한 달ㅣ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ㅣ도쿄도 동정탑ㅣ옐로 페이스ㅣ드라마ㅣ아래층에 부커상 수상자가 산다ㅣ괴물들ㅣ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ㅣ로봇 드림ㅣ존 오브 인터레스트ㅣ마이 선샤인ㅣ룸 넥스트 도어ㅣ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ㅣ베이비 레인디어ㅣ졸업ㅣ커넥션ㅣ사자의 은신처ㅣ이토록 친밀한 배신자ㅣ스파이가 된 남자ㅣ조명가게
🔐😙
읽는 도중에 레터가 잘려 보이지 않도록,
처음부터 새 페이지로 보시기를 권장합니다.


 26.   variety show / wavve original 

사상 검증 구역: 더 커뮤니티

지난날 MBTI를 위시한 각종 유형별 테스트를 질릴만큼 접했던 한국인이라면 이 프로그램의 초반부를 보며 크게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참가자들이 사전 테스트를 통해 획득한 '사상 점수'는 MBTI와는 달리 불특정 다수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데 쓰는 도구로는 다소 부적절한 구석이 있다. 초면인 사람들 앞에서 나의 사상을 드러내는 순간 '당신과는 더 이야기를 해 볼 것도 없다'는 편견이 따라붙을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의 나는 말문이 막히는 순간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말을 걸었다. 그것은 정치 서바이벌 프로그램 <사상 검증 구역: 더 커뮤니티>가 준 용기 덕분이었다. (1/26)



 27.   variety show / wavve original 

연애남매

"내 혈육의 로맨스" 같은 건 궁금하지 않다는 일각의 반응 속에서 이 프로그램을 찍먹했던 나는 섣부른 판단을 보류했다. <환승연애>를 연출한 이진주 PD가 <연애남매>에서 ‘연애’가 아닌 ‘남매’ 쪽에 방점을 찍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어떤 오빠는 사랑에 눈이 멀어 여동생을 제대로 케어하지 못했고, 어떤 남동생은 자기 누나가 마음을 준 사람에게 팽 당할 때 속마음 인터뷰에서 그것이 자신의 일인양 분개했다. 큐피드의 화살표가 어디로 향하는가보다 중요한 건, 남매가 서로의 진정한 아군이 되어줄 수 있는지를 의심하고 또 신뢰해보는 일 아닐까? (3/1)



 28.   variety show / netflix original 

더 보이프렌드

“서로를 늪에 빠트리는 속성의 사람들인데 어느 늪이 더 질척거리는지 늪의 점도가 문제네요.” 어떤 연애 프로그램 패널이 참가자들의 심리를 이렇게까지 묘사할 수 있을까? 일본 최초의 퀴어 연애 예능 프로그램 <더 보이프렌드>은 패널의 수준급 해설이 백미다. 그리고 직업적인 이유로 몸을 만들기 위해 매일 닭가슴살 쉐이크를 마시는 남자에게도, 뉴요커와 그럴듯한 연애를 꿈꾸며 만났지만 자기 안의 결핍을 확인한 어느 일본 남자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는 거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이 연애 프로그램은 시종일관 세련되고도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편집을 자랑한다. 한국 일렉트로닉 밴드 글렌체크의 2022년 발표곡 ‘Dazed & Confused’를 메인 OST로 쓰는 선곡 센스는 덤이다. (7/9)



 29.   book 

정욕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리드비)

소설가 아사이 료는 우리 안에서 어떤 소통은 장려되거나 또는 규제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온라인 서비스를 경유하며 풀어내는데에 능한 작가다. 2012년 소설 <누구>에서는 트위터 멘션이었던 것이, <정욕>에서는 유튜브 댓글로 그 논의가 확장 되어간다. 그리고 바로 그런 문제들이 결국 “확실히 눈에 보이는” 다수의 욕구에 닿아 있다는 걸 보여준다. 회사 점심시간 또는 고등학교 동창모임에서 악의 없이 무엇이 평범하고 일반적인지 확신하며 말하는 사람을 보고 놀라다 못해 절망했던 적이 있다면 이 소설에서 힘을 얻을 것이다. (3/28)



 30.   book 

미술 사는 이야기

(유지원 지음, 마티)

미학을 공부하고, 리움 미술관 큐레이터로 근무한 유지원은 2010년대라는 시간대에 이끌린다. 그 때와 견주어볼 때 “지금은 어쩐지 재미가 없다고 입을 모으는 각자 도생의 시대”다. 내가 아트북 페어 언리밋을 처음 방문한 것도 2010년대 중반이었으니 그게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왜 이런 세상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지? 너무 재미있잖아!’ 라고 감격했던 시기를 지나, 조용히 흥미를 잃게 되는 날들을 보낸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방문자로서의 기대치를 조율할 필요도 있겠지만, 곳곳에서 열리는 온갖 행사들이 어쩐지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 권태기에 만나게 된 반가운 책이었다. (4/30)



 31.   book 

시에나에서의 한달

(히샴 마타르 지음, 신해경 옮김, 열화당)

지금껏 참여해보지 않은 대표적인 유행 중에 ‘한 달 살기’가 있다. 그렇다고해서 <시에나에서의 한 달>을 이탈리아 피렌체의 근교 도시인 시에나에서의 한 달 살기 욕망을 간접 체험하기 위해 펴본 것은 아니었다.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의 꺼끌꺼끌하면서도 보드라운 표지를 만져본 순간 그 감촉을 외면하기가 어려웠고 다른 책들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표지에 제목이 없고 그림만 있다는 점도 대범하게 다가왔다. (...) “정말 고맙지만, 전 정말로 괜찮아요. 그냥 다니러 온 거예요. 늘 시에나에 와 보고 싶었거든요. 미술 작품을 보러요.” (5/1)

🔖 <시에나에서의 한 달> 리뷰: '국회의원을 위한 그림 큐레이션' 전문 읽기



 32.   book 

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

(정희원, 전현우 지음, 김영사)

교통 철학 연구자인 전현우는 이 책을 함께 쓴 정희원 노년내과 의사와의 관계성을 “철도에 미친 나와 사람들의 가속 노화 방지에 미친 정희원”이라 말한다. 그들은 교통 지옥에 갇힌 도시인의 기쁨과 슬픔을 각자의 직업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정희원은 사람들이 왜 삶 속에서 건강하지 않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가를 거의 모든 문제의 출발점으로 본다. 교통 지옥에서 오늘은 지하철을 탈 것인가? 택시를 탈 것인가? 자가용을 끌 것인가? 혹은 걸어갈 것인가? 매순간 선택을 해야만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너무 가혹하다는 것. 경기도민이면 한 권씩 구매하시길. (5/14)



 33.   book 

도쿄도 동정탑

(구단 리에 지음, 김영주 옮김, 문학동네)

올해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구단 리에가 논란이 될만한 수상소감을 남겼다. “작품 일부에 챗GPT로 만든 문장을 사용했다”라고 말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정말 코앞까지 다가와 창작자를 겨누고 있고, 어떤 창작자는 그 앞에서 항복을 선언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었다. 구단 리에는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해명 했는데, 챗GPT로 만든 문장은 소설의 전체 분량 중 2% 미만을 차지한다는 거였다.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단 또한, <도쿄도 동정탑>이 단점을 찾기가 어려운 작품이라는 말과 함께 “심사 당시 AI 사용 여부는 문제되지 않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수상 소감에 이끌려 보기 시작했는데, 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을 얻게 되었다. (7/31)

🔖 <도쿄도 동정탑> 리뷰: '미감과 빻은 말' 전문 읽기



 34.   book 

옐로 페이스

(R. F. 쿠앙 지음, 신혜연 옮김, 문학사상)

이 소설의 첫문장을 읽으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내가 아테나 리우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그날 밤, 우리는 아테나가 넷플릭스와의 계약에 성공한 것을 축하하는 중이었다.” 대중의 인기를 얻지 못해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던 소설가 '준'이 팬케이크를 먹다가 질식사한 베스트셀러 동료 소설가 '아테나'의 차기작 원고를 훔쳐서 발표하기로 한다. 여기서 두 사람의 시장가치나 인지도보다 더 중요한 정보는, 아테나는 중국계 미국인(소수자)이고 그의 원고를 훔친 준은 백인(다수)이라는 점이다. 살 떨리게 흥미로운 출판계 풍자 소설이다. (8/5)



 35.   book 

드라마

(서한나 지음, 글항아리)

지난 해, 앤솔로지 에세이를 공저한 서한나 작가와 합동 북토크를 한 적이 있다. 행사를 마치고 초면인 그에게 다음 책은 언제쯤 나오냐고 물었는데 그 즈음의 나는 서한나의 첫번째 에세이 <사랑의 은어>를 읽고서 그의 차기작에 미리 충성을 다짐한 상태였다. 당신의 다음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나의 바람은 잘 전해졌을까? 그나저나, 부사나 형용사가 없는 책 제목은 용맹스럽다. 이런 시대에 달랑 명사 하나만 가지고는 세간의 반응을 서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바로 이 책처럼 말이다. <드라마>의 부제는 ‘그럼에도 친구가 되는 여자들’이다. 그런 여자들이 주조연은 물론이고 연출, 촬영, OST 선곡까지 다 해먹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9/11)



 36.   book 

아래층에 부커상 수상자가 산다

(케이트 가비노 지음, 이은선 옮김, 윌북)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올해의 경사가 남긴 여운을 유지하면서, 권위에 의해 호명된 문학이 독자들의 마음에 심는 울림에 감화 되면서, 지금 읽기에 적당한 그래픽노블이다. 이 이야기 속 주인공도 아시아 여성 작가이면서 부커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수상이라는 거대한 이벤트는 창작자 개인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칠까? 이 점이 궁금하다면 <아래층에 부커상 수상자가 산다>를 통해 영예롭게 트로피를 거머쥔지 약 50년이 지난 중견 소설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겠다. 한페이지당 네컷 구성의 그림에 텍스트가 빼곡히 채워져 있으므로, 가볍게 집어 들었다면 글자수가 결코 적지 않음에 놀라게 될지도 모르지만. (9/21)

🔖 <아래층에 부커상 수상자가 산다> 리뷰: '대도시의 소설 읽기법' 전문 읽기



 37.   book 

괴물들

(클레어 데더러 지음, 노지양 옮김, 을유문화사)

모순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바라볼 때, 문화 평론가이자 시네필, 책 벌레인 클레어 데더러의 <괴물들>은 흥미진진한 책이다. 그는 한 때 로만 폴란스키와 우디 앨런의 영화를 아꼈고, 작품 뿐 아니라 창작자로서의 그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들은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못했다. 그들이 작품 바깥에서 저지른 일들이 작품에 얼룩처럼 묻었다. 알다시피 작품에는 죄가 없고, 여기서부터 클레어 데더러의 사랑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그가 정의하는 괴물이란 “특정 행동으로 인해 우리가 어떤 작품을 작품 자체로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람”이다. 이쯤 되면 당신의 머릿 속에 떠오르는 '입체적'인 개자식이 한 명쯤은 있을 거다. (9/30)

🔖 <괴물들> 리뷰: ''입체적'인 개자식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전문 읽기



 38.   book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김도미 지음, 동아시아)

책을 달뜬 목소리로 권하는 사람들은 멸종 위기에 처한 무형문화재 같은 존재다. 동아시아에서 출간된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는 은행나무가 운영하는 팟캐스트 <은근한 책방>에서 올해 가장 많이 언급된 책 제목 중 하나라고 한다. 담당 마케터가 경쟁사 팟캐스트에 출연해 기회가 될 때마다 이 책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 건 당연해 보이지만, 누군가 팔려야 하는 책을 팔기 위해 기교한 꾀나 모략을 쓰지 아니하고 정공법(이 책이 좋다고 말하거나, 좋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거나)을 택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암 유병자가 21명당 1명인 시대"에 이 책을 만나 "치료와 요양도 병자가 처한 상황이나 개성을 따른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이제서야 알게 됐다. (10/31)



 39.   movie 

로봇드림

"외로우신가요?"라는 홈쇼핑 광고 카피에 순식간에 현혹되어 반려용 '로봇'을 구매하는 그는 뉴욕의 1인 가구주 '도그'다. 어쩌면 이 영화를 "만난 지 15분 만에 생이별을 하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도그가 자신이 조립한 로봇과 처음으로 눈을 맞추는 순간은 영화가 시작된지 7분이 지났을 때이고, 방전된 로봇을 해변에 두고 뒤돌아서는 건 22분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은 러닝타임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차분하게 지켜보다보면, 놀랄만한 결말을 만나게 된다. (3/13)



 40.   movie 

존 오브 인터레스트

이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새로 도입할 시설의 설계도를 두고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한다. 이제부터는 사람을 태우고, 불길이 지나간 자리를 냉각시키고, 또다시 태우는 과정이 더 빠르게 작동할 거라면서. 관객은 영화 속에서 강제 수용된 포로들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다. 그저 화단에 뿌려지는 재, 강가에서 떠내려오는 재, 공기 중에 떠다니는 재를 보게 될 뿐이다. 그것은 미세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아무리 나와 다른 이들 사이에 선명하게 선을 긋고 절대로 접촉이 없을 것처럼 구획을 짓더라도, 결국 같은 공기를 마시는 우리는 모두 함께 재를 겪는다.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모든 걸 보여주는 영화였다. (6/5)



 41.   movie 

마이 선샤인

우체통 높이까지 쌓여버린 눈. 그럼에도 생활과 의무를 다해야 하기 때문에 어디론가 이동한 인물의 보행이 보일듯 말듯 남겨두는 발자국.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홋카이도의 겨울은 한결같다. 눈이 저렇게 많이 나리는 곳에서만 태어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마이 선샤인>이 그런 영화다. 극중 피겨 스케이트를 배우는 주인공 소년을 향해 그의 형이 “(그건) 어차피 눈 내렸을 때 잠깐 하는 일이잖아”라는 말을 하는데, 나는 그 대사 때문에 긴 인생의 타임라인에서는 찰나같을지도 모를 순간을 소중히 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해서도 오래 생각해보게 됐다. 겨울마다 이 영화를 보고 싶다. (10/8)

*국내 개봉일은 미정이다.



 42.   Movie 

룸 넥스트 도어

“조력 자살을 친구에게 부탁 하는 마사랑 조력 자살을 친구에게 부탁 받는 잉그리드 중 누구에게 더 이입해서 봤어?”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산다는 나의 지인은 '마사'(틸다 스윈튼)의 시선으로 이 영화를 봤다고 했다. 죽는 장소를 택할 수 있다면 마사처럼 채광과 풍경이 좋은 집을 빌리려는 욕망을 이해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느정도는 부유해야 이런 선택조차 가능한 일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철저히 '잉그리드'(줄리안 무어)의 입장에서 보았다. 그렇게 중요한 제안을 받았으면 질질 끌지 말고 신속하게 확답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다. 아니 실은 그런 부탁 같은 건 정말 받고 싶지 않다. (10/23)



 43.   drama / amazon original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2005년작 동명의 영화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동명의 오리지널 시리즈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로 리메이크 됐다. 다만, 원작 영화의 자취는 온데간데 없고, 영화 <결혼 이야기>에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을 끼얹은 결과물이 나왔다. 이런 인상을 받은 건 아마도 과감한 캐스팅 때문일 것이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흑인 배우 ‘도널드 글로브’가 미스터 스미스로, 일본계 미국인 배우 ‘마야 어스킨’이 미세스 스미스로 분했다. 결점 없는 백인 위주의 스파이물을 전복시켜 딱 동시대의 이야기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주연 배우들의 티키타카 합도 좋고, 편집, 음악, 미장센 뭐 하나 아쉬운 게 없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라는 OTT의 불모지를 구독한 보람이 있다. (2/2)



 44.   drama / netflix original 

베이비 레인디어

‘베이비 레인디어’란 스코틀랜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 남성 코미디언이 어떤 여성에게 4만 여개의 이메일과 350시간에 달하는 음성 메시지 테러를 받을 때마다 자신의 이름 대신 불린 애칭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준다는 동종 업계 남성 선배로부터 권력형 성폭행을 당한다. 그런데, 드라마 <베이비 레인디어>의 주연 '리처드 개드'가 자신이 스토킹 당한 경험을 토대로 드라마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는 데다가 연기까지 직접 한다는 점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한껏 어지럽게 만든다. 극적인 소재에 이끌린 연출가가 제 멋대로 사건을 해석한 게 아니라, 피해자가 자신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편집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자를 대상화하지 않는다는 게 이 작품의 가장 독보적인 특징이다. (4/11)



 45.   drama / tvN 

졸업 

“내 인내심은 완전히 바닥났어요.” 입시학원의 제자였다가 동료 강사로 돌아온 연하남 ‘이준호’(위하준)의 플러팅은 남다르다. “고추 먹고 맴맴”을 부르며 자기 PR을 하는 중년의 국어 강사 ‘표상섭’(김송일)은 올해의 캐릭터다. tvN 드라마 <졸업>은 대치동 학원가에서 일하는 국어 강사들의 일과 사랑을 그린다. 입시 과목이 많은데 왜 국어여야만 했을까? 정려원 배우는 한 인터뷰에서 “맥락과 흐름을 읽는 게 엄청 중요한 직업이기 때문에 이 인물들이 서로 마주 보고 대화했을 때 오해되는 일이 없고, 그 자리를 떠나더라도 말이 와전되는 일이 없는 직업이 국어 교사”라고 말했다. 그러고보니 대부분의 드라마 속 갈등은 말이 와전되면서 벌어졌던 것도 같다. (5/11)



 46.   drama / SBS 

커넥션

마약 밀매 집단을 잡기 위해 분투하는 범죄 스릴러 드라마는 그동안 많았다. 그러나, SBS 드라마 <커넥션>처럼 마약 수사를 담당하는 형사가 마약에 중독되었다는 설정은 보기 드물었다. 에이스 형사지만 자기도 모르게 마약에 중독된 ‘장재경’(지성)과 특종을 놓칠 수 없는 기자 ‘오윤진’(전미도)는 연락이 소원해진 고등학교 동창 사이다. 그들이 고등학교 친구 ‘박준서’(윤나무)의 장례식에서 만나 사건에 얽힌 ‘연결고리(커넥션)'을 추적해나간다.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시각적으로는 잔혹한 사건 현장이 플래시백이 반복되는게 유일한 단점이고, 지성이 매 화 정확한 딕션의 나레이션으로 짚어주는 사건 개요만 믿고 따라가면 된다. (5/24)



 47.   drama / TBS 

사자의 은신처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미치토’와 그의 형 ‘히로토’가 단둘이 살아가는 집은 평온하게 루틴이 유지되는 집이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을 ‘라이온’이라 말하는 5세 남자 아이가 그 집의 처마 밑에서 발견된다. 세 남자의 긴급 동거가 시작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아무도 모른다>에서 어른들에게 버려진 4남매네 장남 ‘아키라’ 역으로 분하며 14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야기라 유야’ 배우가 <사자의 은신처>에서는 버려진 아이를 보호하는 어른의 역할을 선보인다. 일본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20년을 훌쩍 가로지르는 두 캐릭터를 연결 지으며 그저 감동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0/11)



 48.   drama / MBC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객관적인 판단이 불가하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드린다. MBC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올해 최고의 드라마였다. 범죄 프로 파일러인 '장태수'(한석규)가 연쇄 살인범을 쫓는 과정에서 자신의 딸 '장하빈'(채원빈)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어쨌든 ‘범인이 누구인가’가 중요한데, 인물 관계도를 아이패드에 그리면서 이 드라마를 보는동안 얼마나 지우개 기능을 많이 사용했는지 모른다. 매 회 인물 관계도가 새로 쓰였고, 제작진은 사건의 전말을 순순히 알려주지 않았다. 드라마의 장르가 부녀스릴러물인만큼, 데면데면한 부녀가 부엌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 그 테이블의 간격이 지나치게 길게 느껴졌는데 드라마에 얼마나 과몰입을 했으면 나는 가구 협찬사의 포스팅까지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드라마 속 장가네 부엌 테이블의 규격은 180cm*90cm이었다. (10/11)



 49.   drama / netflix original 

스파이가 된 남자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와는 달리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범죄 추적극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굿 플레이스>에서 협업한 연출가 마이클 슈어와 노년의 배우 테드 댄슨의 합은 이번에도 역시 돋보였다. 건축가 교수 일을 은퇴하고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찰스’(테드 댄슨)는 어느날 우연히 발견한 구인공고를 보고 면접을 보게 된다. 그곳은 사실 탐정 회사였고, 가뿐하게 ‘노인 스파이’ 자리에 합격한 찰스는 그날부터 귀중품을 도난 당한 사건의 범인을 찾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의 한 실버타운에 잠입하게 된다. 실버타운은 편안한 노후를 위한 곳이기도 하지만 달리 말하면 죽음이 일상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잘 애도하고 상실을 다루어가는 법을 보여주는데, 결국은 관계를 계속 포기하지 않고 확장해나가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11/21)



 50.   drama / disney+ original 

조명가게

8부작인 이 드라마 4화까지만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몰라 중도 이탈하려고 했다가 꾹 참고 한 편만 더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그 이후로 신세계가 펼쳐졌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한밤의 어두운 거리를 본인의 이동 동선에 포함시켜서 걷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그 시간에 유일하게 영업하는 조명 가게에 입장한다. 이곳이 조명 가게니까 방문객들이 전구를 살 것이라 예상하게 되지만, 디즈니+ <조명가게>는 이 가게에서 혹은 이 거리를 걸으면서 그들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찾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나는 이토록 슬프고 애절한 드라마가 ‘왜 신파로 다가오지는 않는 걸까?’라는 질문을 가지게 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종류의 이야기였기 때문인 것 같다. (12/4)


<콘텐츠 로그> 구독하기

<2024 연말 결산> 제 1탄 보기

"연말결산 100을 예고했지만
50번까지만 보내는 이유는
고심 끝에 한 번 더 리스트를
추렸기 때문입니다(-_-)...*
2025년 1월 6일에 다음호로 만나요!"

🟠 이번호까지만 읽고 해지하기

COPYRIGHT © CONTENTSLO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