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안녕하세요.

복 있는 사람 편집자 K입니다.

새로 바뀐 해가 어색해 2023년으로 잘못 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올해도 어느덧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독자님은 지금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어느 곳에 계시든 언제나 무탈히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합니다.

지난 상반기를 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보다도 독자님들이 보내주신 응원과 격려였습니다. 특히 [월요일의 복음]을 읽고 정성스레 남겨주신 피드백을 읽으며 얼마나 마음이 벅차올랐는지 모릅니다. 같은 마음을 공유하고 있다는 공감과 함께 독자님들의 새로운 시각을 접하며 생경함에 즐거운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번 주부터는 룻기에서 고찰한 참된 사랑의 의미를 담아낸 책 폴 밀러의 『사랑하다, 살아가다』를 소개해 드립니다. 이 책을 읽으며 특별히 두 여성(나오미와 룻)의 연대에 주목한 부분과 저자 개인의 삶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라는 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저자는 자폐증이 있는 딸과의 동행을 통해 성숙을 경험한 이야기뿐 아니라 실패한 이야기까지도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실패라고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헤세드의 사랑을 실현하고자 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지요. 이전에 소개해 드렸던 박정관 저자의 『룻기』 편(다시보기)을 재밌게 읽으신 독자님이라면 이번 편도 즐겁게 읽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편을 읽고 남겨주실 피드백이 벌써 기대됩니다 :)

대중 심리학의 고압적 세계가 문화를 지배하다 보니 우리는 힘든 관계에 꼼짝없이 갇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기계발 서적의 제목이 『타인을 위해 내 삶을 잃는 7단계』나 『관계에서 권력을 잃는 비결』이라고 생각해 보라. 하지만 헤세드의 본질은 그런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자신의 삶을 좁히고 제한한다. 자신을 좁은 곳에 가둔다.

질과 나는 킴 덕분에 그것을 날마다 경험한다. 우리는 3년이 넘도록 둘만이 어디론가 떠나지 못한 적이 많다. 킴을 맡길 사람을 찾기도 보통 힘든 게 아니고 자금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가 즐기는 데이트는 얼른 맥도날드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것이다(150칼로리밖에 되지 않고 값도 1달러 6센트면 된다!) 그런데 지난번 우리가 맥도날드에 간 사이에 하필 집에 전기가 나가 킴이 겁에 질렸다. 그러므로 당신이 꼼짝없이 갇힌 심정이라면, 헤세드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킴은 우리에게 헤세드 사랑을 처음 가르쳐 주었다. 킴 덕분에 우리는 변화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만큼 킴에게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늘 뭔가를 하다 말고 시중을 들어야 한다. 느긋하게 앉아 영화라도 볼라치면, 킴이 들어와 마음속의 불만이나 문제를 늘어놓는다. 자폐증이 있는 킴에게 “나중에 우리가 해결할게”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던 일을 중단하는 데 익숙하다. 킴은 우리를 불평 많은 노인네가 되지 않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도 우리를 향한 사랑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 그분은 헤세드 사랑으로 우리에게 묶여 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랑으로 자원하여 우리에게 자신을 묶으셨다. 그래도 나는 “하나님이 꼼짝없이 갇혀 있다”라는 생생한 표현이 좋다. 하나님의 헤세드 사랑의 구속적(拘束的) 특성을 부각시켜 주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에 구속되어 있다. 반대로 이슬람교의 알라는 완전히 자유자재라서 자신의 신봉자들에게 헌신할 수 없다.

구약에서 누구보다도 헤세드를 많이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사실 하나님은 “나는 헤세드라”(렘 3:12, 나의 번역)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에 거부당하시고도 그분은 언약에 충실하셨다. 이스라엘과 우리를 향한 구속력 있는 헌신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을 선물로 보내셨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향한 헤세드 때문에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향해 묵묵히 가셨다.

하나님은 룻을 통해 나오미에게 헤세드를 베푸신다. 룻은 나오미의 애통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나오미가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라고 하소연한 지 몇 초도 안 되어 룻이 사랑의 손으로 나오미를 꼭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경건한 깨달음만이 아니다. 룻기 전체의 무게가 거기에 실려 있다. 매번 룻은 나오미의 탁월한 구속자다. 형식적 구속자는 보아스이지만 실질적 구속자는 룻이다. 2장에서 보아스는 온 성읍이 룻의 사랑에 감탄했다고 말한다. 보아스도 룻의 사랑에 경의를 표한다. 4장에서 여인들이 합창하며 칭송한 것은 보아스의 사랑이 아니라 룻의 사랑이다. 룻은 나오미의 비애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룻은 나오미에게 하나님의 얼굴이다. 우리의 얼굴―우리의 온유함과 담대함과 사랑 속에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하나님이 이 땅에 보이시는 그분의 최고의 자화상이다. 룻은 복음의 화신이다. 믿음으로 행하는 사랑의 모든 행위는 복음을 보여주는 작은 그림이다. 우리가 사랑으로 죽을 때, 사랑으로 죽으신 예수께서 재현된다.

룻의 승리

룻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오미의 말처럼 룻의 말도 서서히 감정이 고조되다가 강력한 절정에 도달한다. 그녀는 나오미를 향한 자신의 복합적 헌신에 이런 맹세로 쐐기를 박는다.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7). 룻은 자신이 헤세드에 충실하지 못할 경우 스스로 저주를 받겠다고 했다. 나오미는 경악하며 말문이 막힌다.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룻 1:18). 이처럼 강한 사랑을 꺾을 수는 없다. 거의 압도적이다. 히브리어로 “굳게 결심함”이라는 말은 “온 힘을 다했다”는 뜻이다. 자아에 대해 죽는 일은 룻에게도 쉽지 않았다. 나오미처럼 룻도 힘들여 자아를 죽였다.

내가 제자로 훈련하고 있는 한 남자에게 사랑의 핵심이 죽음이라고 설명했더니 그는 그 개념에 몸을 움찔했다. 그러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내를 사랑하여 죽으라는 말은 식탁 위의 접시 물에 빠져 죽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힘들여 자아를 죽이려면 기분이 더러워진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많은 느낌 중 하나다.

사랑의 무게를 견디려면 하나님께 뿌리를 두어야 한다. 삶의 에너지를 사랑의 대상에게서 얻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얻어야 한다. 상황이 힘들수록 당신은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랑의 도가니다. 교만하게 자기를 믿는 태도가 거기서 깨끗이 없어진다. 당신 자신에게는 사랑할 수 있는 힘이나 지혜나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신이 사랑할 수 없음을 의심의 여지 없이 안다. 거기서 믿음이 시작된다. 자신이 사랑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믿음은 사랑의 원동력이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축 내지 숨은 뼈대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 5:6)이다. 사랑할 수 있는 힘은 믿음에서 나온다. 사랑의 짐을 감당하려면 하나님께 뿌리를 두어야 한다. 우리는 사랑을 지속할 능력이 없기에 하나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국 믿음은 지속적인 부르짖음이 된다. 성전에 간 세리처럼 우리도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라고 부르짖는다.

감당 못할 상황에서 인간의 사랑이 다 바닥나면 당신은 어느새 항상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한순간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혼자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당신은 사랑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하나님을 의지한다. 그래서 믿음은 올라야 할 산이 아니라 내려갈 수밖에 없는 골짜기다.

룻의 삶 속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어떻게 아는가? 우선,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의지한다는 룻의 고백이 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다음으로, 나중에 보아스는 룻이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룻 2:12).

이곳은 성경적 믿음이 폭발하는 진원지다. 그래서 우리는 의문이 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받으셔서 그를 열국의 아버지로 삼아 주셨는데, 룻의 믿음에는 어떻게 하실 것인가?

사랑의 사람, 룻

우리는 사랑할 때 살아난다. 룻이 사랑으로 자신을 얽어매자 그 성품의 깊이와 질이 드러난다. 룻은 조용한 힘과 사랑을 겸비한 보기 드문 사람이다. 그녀는 나오미에게도 꺾이지 않고 장래의 고난에도 굽히지 않는다. 사실 룻은 싸워서 고난을 취한다. 사랑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질 수 없다. 룻은 생각이 깊고 정말 똑똑하다. 자신을 산 제물로 내주는 룻이 나오미의 고통에 대한 유일한 답이다.

그것을 담대함이나 용기나 배짱이라 불러도 좋다. 룻은 삶으로 직행한다. 나오미의 말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되받는다. 사실 룻이 얼마나 강했으면 그렇게 달변이던 나오미마저 말문이 막혔겠는가. 룻은 또한 예술가다. 그녀의 아름다운 사랑은 아름다운 시적 답변과 잘 어울린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룻 1:16-17, 형식을 고침)

룻은 사랑할 때 빛을 발한다. 우리도 “주어진 자리에서”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이 내 삶 속에 허락하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예수의 숨결이 나타난다. 우리의 아름다움은 화려한 이력을 쌓을 때 찾아오는 게 아니라, 힘든 사람이나 환경에 부대끼며 견딜 때 찾아온다.

헤세드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타인에게 선을 행하겠다는 결의다. 나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지라도 언약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다. 내 몸의 모든 세포가 피하라고 외칠 때에도 헤세드는 사랑을 선택한다. 이런 의지적 사랑이 예수와 아버지의 관계의 핵심이며, 우리와 아버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하신 예수의 말씀은 당연한 것이다. 사도 바울도 자아의 죽음을 통해 예수의 죽음과 연합했다고 고백한다.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후 4:11-12). 이것이 갈보리 사랑의 정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