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2023. 6. 24.
미술비평 뉴스레터 에포케 레테(epoché rete) 
[아홉번째 뉴스레터] 몰래 들어간 작업실2: 기억의 여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판단은 어떻게 사고를 가로지르는가?
근거는 기대보다 얄팍하고,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사고思考를 방해하는 수많은 요인이 지척에 깔려 있어 우리는 쉬이 길을 보지 못하고 쫓기듯 생각에 마침표를 찍어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는 그 마침표를 더 빨리, 더 쉽게 찍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지는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에포케 레테’는 ’정지, 중지, 보류‘를 의미하는 epoché와 신경망을 의미하는 rete를 결합한 명칭이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관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을 모두 괄호 속에 집어넣고, 느슨히 이어진 연결망을 통해 대화를 지속하고자 한다. 시시각각 나를 침투하는 속단의 유혹을 접어두고 우리, 잠시 생각하자.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를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겠으나 그 무게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될 수 있도록.

에포케 레테의 아홉 번째 레터는 멤버인 김민주, 심하린 그리고 한문희가 각각 구유빈 작가, 이코즈 작가, 이용미 작가를 만나고 느꼈던 것들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김민주와 구유빈 작가, 심하린과 이코즈 작가, 그리고 한문희와 이용미 작가는 일련의 만남을 통해 각자의 관심 주제와 작업의 연결고리를 연결짓는 협업을 진행하였다. 에포케 레테는 이번 기회를 통해 향후 비평가-작가 간의 다양한 교류와 협업의 기회를 만들어 담론의 장을 확장시키기를 기대하고 있다.

* 에포케 레테 멤버 최은총에 의해 기획된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서양화과 교류모임' 산하 비평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작성된 글들입니다.
* 이 글들은 2023년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서양화전공 오픈스튜디오 《우리 대학원 정상영업합니다》((2023.6.7.-6.11.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관 A동) 현장에 비치되었습니다.

[① 잊혀져 가는 감각을 붙잡을 때] 김민주 ×  구유빈 작가
[② 혼란의 '언어'로 말 걸기] 심하린 × 이코즈 작가
[③ 찬란하게 박제된 사랑은 욕심인가요.] 한문희 × 이용미 작가

잊혀져 가는 감각을 붙잡을 때

김민주 (@minjoo__art) x 구유빈 (@kooyubin_)

 구유빈, <가을 끝날 무렵>, 캔버스에 유화, 91 x 116.8 cm, 2022

   잊혀져가는 감각을 붙잡을 때 스쳐지는 기억과 그날의 잔상을 실감하는 순간 단절되어 버린 듯한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시공간은 확장된다. 구유빈의 작품에서 감각과 기억의 연결고리 이자 새로운 의미로 작용하는 사물들에 대한 감각적인 회화 기법은 작가의 개인사적인 경험과 보는 이의 찰나의 감정을 마주하게 만들어 묘한 감각을 끌어당긴다. 우리가 지난 기억을 떠올릴 때 오래된 기억일수록 구체적인 이미지보다 흐릿한 잔상으로 회상하는 것처럼 찰나의 기억 속에 내재된 흐릿한 잔상의 이미지는 그날의 감정과 순간, 그리고 그 날의 공기와 온도를 은은하게 구현해낸다.


   이를 효과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작가는 그날의 세부적인 잔상과 기억 그리고 감각을 지난날의 잔상을 응축하고 있는 환경과 사물이 가진 색감과 형상에 주목하며 내면의 감정을 묘사한다. 이외에도 카메라에 담긴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실제 경험과 감각에 결부된 요소들을 되살리고자 평면적인 스크린 화면에서의 색감과 현실에서의 빛을 활용한 인지과정을 재현한다.

구유빈, <Swimming Pool>, 캔버스에 유화, 60.6 x 72.7cm, 2023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여 형상화한 보편의 형태와 특정한 양식은 감각적인 직관의 대상이라 주장한 괴테는 색채란 빛과 눈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 작용이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색감은 인간의 지각 현상과 감수성을 비롯한 통찰이 요구되는 미학적 요소이다. 구유빈은 간직하고자 하는 그날의 잔상과 실제 이미지에서 도출되는 색감을 자신만의 기법으로 극대화하여 과거 경험 속 여운과 감각에서 작용하는 지각 현상을 관객들에게 주지시키며 소통하고 있다.


   작가는 실제 상황과 감각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자 디지털 기계를 활용한다. VR에서의 공간이 특정한 장소를 들여다보며 물리적 환경에서의 유사 감각을 느끼게 하듯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디지털 스크린에서 재현된 실제 감각을 회화로 살려낸다. 이를 실험하기 위해 특정한 사물에 빛을 투영하여 촬영하는 작업 방식을 선보인다. 자연광에서의 사물과 조명등과 같은 카메라의 플래시를 통해 빛의 노출도를 높여 빛을 투영하면서 사물 외의 존재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남겨진 사물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밝은 플래시로 인해 사물의 주변 환경이 점진적으로 사라지는 상황을 온전히 기억되지 않고 잊혀져가는 흐릿한 기억에 대한 형상으로 은은한 색감과 블러 기법을 통해 작품 속에 담아낸다. 여기서 아이패드와 포토샵의 기능을 통해 노출 세기와 채도를 조절하여 그날의 잔상과 감각에 맞닿아 있는 색감을 도출하여 회화로 구체화시키는 기법을 활용하였다.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사물에 대한 빛과 색채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도출한 은은한 색감으로 자신 내면의 감각을 탐구하고자 시도한다.

(도 1) 구유빈, <밤공기>, 캔버스에 유화, 91 x 91 cm, 2023

   코로나19는 작가에게 과거를 회상하여 화면이 아닌 실제 경험에서의 감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일상에 대한 그리움을 되새겨 삶의 활기를 되찾고자 하는 주요 동기로 작용되었다. 이는 작가 외의 다른이들에게도 공동의 기억으로 작용된다. 작품 <밤공기>(2023)에서 올려다본 밤하늘 속 조명 빛을 받은 벚꽃은 빛을 받아 존재감을 드러내는 벚꽃과 조명 등으로 환해진 거리 간의 시너지를 나타내는 가운데 어느 봄날의 감각과 기억을 나타낸다(도 1).   


   또 다른 작품 <Sunday Morning>(2023)은 2022년 초가을 온 가족들이 모여 외출을 하기 전, 가족들의 흔적이 담긴 테이블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감정과 아침의 햇살, 상쾌한 공기를 가족의 흔적을 나타내는 상황 속 오브제들로 집약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도 2).

(도 2) 구유빈, <Sunday Morning>, 캔버스에 유화, 112.1 x 145.5 cm, 2023

   아직 코로나19의 여운은 종결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우리의 일상생활 속 흔적을 남긴 채로 부유하고 있다. 일명 소확행의 필요성은 현대인들에게 나날이 커져가고 있는 지금 우리의 일상은 안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날의 감정과 세부적인 상황에 집중하여 빛의 요소로 형상화된 과거의 잔여물을 은은하게 전달하고 있는 구유빈의 작품은 인간 내면의 심리와 감각의 형상들로 관객의 감각에도 문을 두드려 서로의 감각과 기억을 공유하고자 시도한다.

혼란의 '언어'로 말 걸기 

 심하린 (@sharinooo) × 이코즈 (@ekozist)

“꿈은 중국식당의 포춘쿠키 속에 들어 있는 점괘만큼이나 현실과 무관했다.”1)  

2023년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서양화전공 오픈스튜디오 《우리 대학원 정상영업합니다》((2023.6.7.-6.11.) 전시 전경

   이코즈의 작업은 반복되는 꿈을 기록하는 것에서 비롯됐다. 실제의 기억과 유사한 형태의 특정 장소와 존재, 사물들이 등장하는 꿈이 유년 시절 언젠가부터 시작되어 10년 이상 이어지면서, 꿈의 기억과 실제 기억은 마침내 서로를 침투하고 파고들기에 이르렀다.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현실과 꿈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데서 발생하는 혼란을 불식하고자 그는 거듭되는 꿈을 기록하는 행위를 시작하게 되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현재의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들을 붙들고자 하는 것으로, 기억의 불완전성에 의해 잊혀가는 순간들에 다시 생명을 부여하는 행위이다. 특히 내면의 심층 의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지는 꿈의 기록물은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도록 비밀스러운 곳에 꼭꼭 숨겨지는 결말을 맞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테다. 그러나 이코즈의 기록은 그렇지 않다. 어릴 때의 기억은 꿈속의 장면으로, 그리고 이를 기록한 꿈 일지는 다시 그만의 시각적 언어로 중역(重譯)되어 회화 작품으로 거듭나게 된다. 요컨대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머물러 있던 것들이 보편적 형상으로 ‘번역’되어 ‘타자’와 마주치게 되고, 그 만남에서 새롭게 하나의 사건으로 다시 성립될 가능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새로운 만남은 그의 꿈 일지가 지닌 특징을 통해 실현된다. 이코즈의 꿈 일지는 서술(敍述)되는 대신 기술(記述)되었으며, 꿈을 꾼 직후에 바로 작성됨에 따라 조각난 파편들의 집합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상황의 묘사 없이 기술과 나열에 집중하여 ‘갈겨진’ 꿈의 기록과 실제 기억 사이에서 비롯되는 ‘어긋남’은 혼란을 유발한다. 이때 꿈은 현실이라는 원본을 통해 수집된 경험으로 이루어진 유사 세계가 아니라 현실과 서로 닮았지만, 독자적인 힘을 지닌 세계로 존재하게 된다. 만약 현실의 재현이나 상징이 아니라면, 심지어 어떤 측면에서는 현실과 무관한 것이라면 도대체 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실과 별개로 존재하는 또 하나의 인식론적인 ‘현실’인 동시에, 함의하는 의미, 즉 고정된 기의가 존재하지 않는 잔영과 이미지의 세계이다. 그리고 이 공간은 논리와 인과가 부재하며 주체의 인식과 판단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결국 타자의 장소로 열릴 수 있다.2)  

(도 1) 이코즈, 〈북구 죽장면 하옥리 하옥계곡아래〉, 194 x 130.3 cm, 캔버스에 유채, 2023

   이코즈의 그림 속 불안감과 긴장감을 가중하는 여러 장치는 이와 같은 ‘번역성’과 ‘타자성’을 이룩하는 데 기여한다. 이를테면 〈북구 죽장면 하옥리 하옥계곡아래〉(2023)와 〈북구 죽장면 상옥계곡〉(2023)에 등장하는 텐트와 타프는 계곡과 관련된 내용의 꿈에서 차용한 것이다 (1). 꿈속 어린아이 모습의 ‘이코즈’는 할머니 집 바로 앞 보도 10분 거리에 있는 강과 이어지는 계곡에서 피서객들을 구경하곤 했다. 이들이 설치한 다양한 색과 종류의 그늘막은 아이의 시선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모습이었기에, 꿈속의 ‘그’는 텐트와 타프에 본인을 투영하길 시도했다.

 

   화면 중앙에 배치된 타프는 일회적 점거에는 유용하지만 지붕의 기능 이외에는 어떠한 외부의 침입도 막지 못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불완전’한 공간을 제공해준다. 또한 팽팽하게 당겨진 채 고정된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종의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아울러 주황색과 파란색, 즉 보색 관계에 있는 두 색이 병치됨에 따라 각각의 색이 가진 시각적 효과가 극대화되고 비현실적인 장면이 구성된다. 이처럼 완전하지 못한 것을 특성으로 하는 소재가 강렬하면서도 멜랑콜리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색채들과 뒤엉키면서 이코즈가 만들어낸 혼란스러운 가상 공간은 어릴 때 기억, 꿈의 장면, 그리고 꿈 일지와는 구별되는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로 자리 잡는 데 성공한다.

(도 2) 이코즈, 〈11-8 현관문 기준 오른쪽 방에서 왼쪽 방을 향해서〉, 22.0 x 53.1 cm, 캔버스에 유채, 2023

   연쇄된 번역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간극과 그에 따른 혼란은 실제로 그림 속에서 새로운 공간 이미지로 구현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을 잘 살펴보면 색면들 사이로 또 다른 공간이 열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밖에 〈11-4 양옆으로 긴 검은 지붕집〉(2023)과 〈11-8 현관문 기준 오른쪽 방에서 왼쪽 방을 향해서〉(2023)의 경우에는 마치 긴 통로처럼 확장된 공간이 나타난다 (2). 특정 지점을 향해 확장된 공간은 그 명료한 방향성으로 인해 공간적으로는 분명하게 인지된다. 다만 이 공간이 실내인지 실외인지, 혹은 큰 공간인지 작은 공간인지 구체적인 정보를 알 수 없어 막연한 혼란을 야기한다.

   결국 거듭된 번역의 통로에서 발생한 새로운 공간을 어떻게 채우고 확장할지는 이제 그곳을 지나다니는 타자와의 대화에 따라 또 달라질 것이다. 꿈은 발설되는 순간부터 ‘꿈 아닌 것으로 변질’한다. 마찬가지로 이코즈 개인으로부터 비롯된 사적인 기록은 하나의 정지된 순간에 머무르지 않고 중역의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유동하는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건을 연이어 제시하고 있으며, 이로써 작가 개인의 지난날은 우리의 눈앞에서 생동하는 ‘지금’이 된다.

1) 배수아, 「올빼미」, 『올빼미의 없음』 (창비, 2010). 45-46.

2) 손영창, 「데리다의 무조건적 환대와 타자성」, 『프랑스문화연구』 24(2012): 97-127 참조.

찬란하게 박제된 사랑은 욕심인가요. 

 한문희 (@y_e_s_n_o_) × 이용미 (@_leeymi)

*이용미 작가님의 작업은 현재 A.P.23의 《모으기: 사사로운 규칙과 세계》(6.22-6.30)에서 전시 중입니다.

   용미는 사랑을 느낀 순간에 사진을 찍는다. 그의 사진첩에는 햇빛에 찰랑이던 풀잎, 하얗고 달큰했던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로 가득 차 있어 그 모든 순간은 움틀 어느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과거시제이던 것을 캔버스로 불러내는 계기는 현재의 용미일 테지만 그 모든 것은 동시에 용미이기도 하다. 그를 향해 생동하던 세계, 특정한 배치(assemblage) 속의 용미이기 때문이다.1) 말하자면 선택을 기다리는 사진첩 속 사진들은 용미 자신이자 그의 세계이며 세계에 흩어진 용미 하나하나이다. 

(도 1)  이용미, <between us>, 72.7 x 72.7 cm, 캔버스에 유화, 2023

   그의 세계는 디지털 이미지와 캔버스를 거쳐 내게 닿는다. 사진에 다 담기지 못하는 감정은 두 차례의 과정을 경유함으로써 비로소 작가의 감각과 유사해진다. 그럼에도 그가 직접 느꼈을 본연의 찬란함을 나는 아마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다만 몰랐던 시간의 용미와 조우하며 다른 정동(affect)을 기할 뿐이다. 그리고 그건 아주 사소한, 이를테면 선명한 경계를 뒤덮는 산란한 부서짐 따위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일련의 그림에는 무어라 정체를 확언할 수 없는 흩날림이 존재해, 외부의 경계를 흩트리며 우리를 그림 안에 불러들인다 (도 1).


   이 그림을 보는 당신은 세계에 어떻게 존재하나? 당신은 홀로 서 있지는 않다. 단단한 지면과 벽과 그림과 그림을 비추는 빛은 당신과 같은 위치에 ‘배치’되어 있다. 제인 베넷은 우리를 둘러싼 사물을 죽어있는 도구로 보지 않는데, 사물이 자신의 힘을 강화하거나 약화시켜 다른 신체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영향은 인간과 물질이 겹쳐지는 범위에서 배치를 통해 일어난다.2) 배치는 특정한 정동을 이끌어내고, 그 정동은 온전한 당신의 감각이 아닌 당신을 둘러싼 모든 요소가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이 그림에도 정동이 겹겹이 쌓여 있다. 정확히는 용미의 그림 속 요소들은 모두 어떤 배치에서 그가 느낀 정동인 것이다. 그 앞에 선 당신의 정동에서도 용미의 흔적은 묻어난다.

(도 2)  이용미, <불가능한 수집_일기>, 150 x 150 cm, 캔버스에 유화, 2020

    실상 공존하지 않았던 정동의 조각들은 <불가능한 수집_일기>에서 하나의 조화로운 화면으로 나타난다 (도 2). 포토샵에 불러내어진 몇십 개의 이미지는 각각의 레이어에 자리를 잡아 서로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위치를 잡으려 조금씩 움직이고 편집된다. 그 모든 순간에 존재했던 용미와 그가 사랑하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기 위해서. 네모난 프레임에 갇힌 풀잎 더미의 조그맣고 올록볼록한 태(態)를 발견하는 순간은 순전히 우연이지만, 그에 맞춰 다른 사물을 고르고 질감을 조정하며 몇십 개의 레이어를 편집하는 행동은 계획적이다. 불완전한 기억과 지극히 표면적인 사진의 간극을 채우는 손짓은 어느 완성될 화면을 짐작하며 멈춘다. 


   작가 특유의 집요함과 미감을 통해 디지털 이미지는 하나의 작품으로 맺음짓는다. 그 자체로 너무나 완전해 보여서, 완결되어 보이는 디지털 이미지를 구태여 회화로 옮겨오는 이유가 무언지 물은 적 있다. 좀 더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과정이라는 답을 들으며 용미는 정말 사랑이 많고 욕심도 많구나, 생각했더란다. 사랑과 욕심은 어쩌면 딱 달라붙어 있는지도 모른다. 찬란히 나를 유혹하는 것과 사랑에 빠져 그 빛이 조금은 바래더라도 박제하여 붙들고 싶은 욕심, 피로한 몸을 일으켜 사랑을 쥐어 보고자 ‘불가능한 수집’을 그려내는 용미가 그러하듯이. 

1) 제인 베넷(Jane Bennett, 1957- )에 따르면 배치는 여러 종류의 생동하는 물질들 그리고 다양한 요소들을 일시적으로 묶은 것이다. 이 배치에서, 객체들은 사물로서, 즉 주체가 그것들에 부여하는 맥락으로 온전히 환원될 수 없는, 그것들의 기호로 고갈되지 않는 생생한 실체로 드러난다. 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문성재 역 (현실문화, 2020) 42- 82.

2) 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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