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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님
〈시사IN〉 사회팀장 김동인 기자입니다



내년 5월이면 기자로 일한지 10년이 됩니다. 으레 이쯤 되면, 꽤 많은 기자들이 자기 ‘진로’를 정합니다. 기자 수가 많은 언론사일수록 더더욱 그렇죠. 어떤 기자는 정치권 네트워크를 늘리는 데 열중하고, 또 어떤 기자는 특정 사회 정책 분야를 심도 깊게 탐구합니다. 저는 굳이 표현하자면 잡종입니다. 이런 저 자신을 굳이 나쁘게 보진 않습니다. 정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돈과 변화가 없으면 질식하는 유형도 있으니까요.

선거가 끝나고 보직이 바뀌었습니다. 6월부터 사회팀에서 일하는 중입니다. 이전에는 정치팀에서 오래 일했습니다. 정치권 소식을 너무 집중해서 바라보면 평범한 삶이 겪는 고통에 조금 무뎌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팀으로 보직을 옮기자마자 그동안 만나기 어려웠던 사람들과 최대한 접촉을 늘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를 인터뷰 하더라도 비수도권에서 장사하시는 분을 굳이 찾아가고, 청년 이슈를 쫓을 때에도 대기업 재직자는 가능하면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의식하지 않으면 안온한 세계에 갇히게 되더라고요. 서울에 위치한 좋은 직장에 다니고 사회 이슈에 능통하며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건 편합니다. 하지만 기자가 대화하기 편한 취재원으로 둘러싸여 있다면, 세상을 너무 높은 기준으로만 기록하게 되지 않을까요? 마치 대한민국 중산층이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정도 되는 아파트에 살면서 종부세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기록하는 것처럼요(실제로 이런 기사가 많답니다).  


요새 저는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한 분들을 자주 만나고 있습니다. 세상의 흐름이 바뀌었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싼 값에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장바구니도 점점 가벼워지고 있고요. 당장 위태로운 층위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피해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자영업자·소상공인일 것입니다. ‘데이터가 묻는다. 방역 대가가 ‘빚’이냐고’ 기사를 준비하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은 생각보다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죠. IMF 때 저는 막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많은 또래 친구들처럼, 가정 경제가 무너졌고 그 여파에서 벗어나는 데 시간이 참 오래 걸렸습니다. 시대의 여파로 인해 경제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과 만날 때면, 트라우마가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중심의 서사’에 몰두하면 주변에 놓인 다수의 이야기를 놓치게 됩니다. ‘무엇이 2030을 ‘영끌’로 내몰았나’ 기사를 준비할 때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기사에는 꽤 많은 2030 투자자들의 사례가 등장하는데요. 의외로 이 사례를 찾는 게 쉽진 않았습니다. 대다수 청년층, 특히나 금융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청년일수록 금융 전문가들이 교과서처럼 얘기하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투자와는 거리가 멀었죠. 해서 서울 집을 영끌할 정도로 고도의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사람들은, 대개 적당히 괜찮은 직장을 가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영끌이 지칭하는 청년의 범주는 생각보다 넓지 않았습니다. 


반면 코인은 좀 달랐습니다. 투자를 적극적으로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도 코인 거래소 앱을 깔고 거래를 시작하는 건, 마치 새 모바일 게임을 경험하는 것처럼 손쉬웠습니다. 주식도 크게 다르진 않았어요. 팬데믹 국면에서 꽤 많은 증권사들이 마치 게임 아이템을 제공하듯, ‘계좌 개설 시 랜덤 주식 증정’ 이벤트를 벌였으니까요. 요즘은 돈을 모으거나 빌리거나 불리는 것 모두 모바일과 비대면이라는 조합으로 손쉽게 이뤄집니다.


언론이 주목하지 못하는 ‘주변 서사’의 극단에 일하지 못하는 비수도권 청년의 부채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이 ‘주변 서사’에서는 우리가 한 번도 겪지 못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른바 ‘쿠팡깡’도 그런 문제 중 하나더라고요. 쿠팡이나 네이버쇼핑 같은 온라인 몰에서 최근 후불결제(당장 주문하고 나중에 결제)가 도입되고 있는데, 급히 이 쇼핑몰에서 상품권이나 물건 등을 구입한 뒤 이걸 현금화하는 방식입니다. 세련된 기술로 포장한 유니콘 기업들, 빅테크 기업이 대규모 채권자가 되는 구조죠. 이런 변화들, 어쩌면 암담한 수렁으로 빠지는 생은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습니다. 


용접공 노동자가 스스로를 조선소 도크에 가두고 비정상적인 임금 구조와 노동 환경을 고쳐달라 외칩니다. 팬데믹 한 편에서 버티고 버티던 자영업자들이 인플레이션 충격을 받습니다. 빚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고금리 악순환에 휘말립니다. 저는 생이 그다지, 세상이 딱히 아름답지 않다고 여기는 염세주의자에 가깝습니다. 세상이 밝고 아름답고 상호호혜적이어야 한다는 기대나 희망도 크게 갖지 않습니다. 그저 먼발치에 놓인 착취를 사람들한테 알리고, 적어도 재기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공동체적인 관용이 조금 더 넓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활기찬 소식이어야 할 뉴스레터에 무거운 이야기를 담은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그렇지만 (두 단어가 잘 어울리진 않지만) 부지런한 염세주의자의 시선과 노력이 미약하게나마 사회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믿고 제 노동의 근거를 마련합니다. 저에게 노동은 자존이고, 그 자존을 유지하려면 노동의 이유가 명확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시사IN>의 한 페이지에, 염세적인 시선으로 부지런히 세상 이야기를 ‘멀리서부터’ 길어올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희망은 절망을 정면으로 응시해야만 가능하단 생각이 듭니다. 후원독자 여러분들 중에도 그런 생각과 각오로 하루하루 살아가시는 분들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2022년 7월
김동인 드림



🗞️ 김동인 기자의 기사들
  • 가까이 다가온 '보통 일베들', 어떻게 혐오를 만드나 <보통 일베들의 시대>를 쓴 독립연구자 김학준씨를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더 많은 소셜믹스가 필요하다”는 대목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과 함게 고민해보고 싶은 주제입니다. 
  • ‘용산 집무실 논란’에서 건진 5년 리더십의 열쇳말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 논란이 된 용산 집무실 이전 논란을 ‘거버넌스’라는 키워드로 분석해보았습니다. 취임 전 이야기지만,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이 정치를 대하는 태도를 볼 때 앞으로도 거버넌스 측면의 문제는 계속 부각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예고된 재앙’ 인구문제, 지금 당장의 공약은? 인구, 지방소멸, 저출산, 고령화, 산업 문제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이런 ‘인구문제’는 생각보다 크게 부각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러나 인구감소의 타이밍은 점점 빨라지고 있고, 30년 후의 한국 사회의 위기는 예상보다 일찍 도래할지 모릅니다.

정치는 일상과 밀접하지만 여의도라는 장소로 상징되듯 삶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거리를 좁히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시사IN이 정치 라이브쇼 <정치왜그래?>를 시작합니다.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시사IN 유튜브에서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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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당신에게

미칠 영향이 너무 큽니다



기술은 세상을 바꿉니다. 기술에 따라 주요 산업과 문화, 직종들이 달라집니다. 기술은 개인의 삶도 바꿉니다. 미래를 준비하려면, 지금 떠오르는 핵심 기술의 흐름에 주목하며 관련 역량을 익혀나가야 합니다. 그 흐름에 오르든, 흐름의 방향을 바꾸고 싶든, 먼저 해당 기술을 이해해야 합니다.


〈시사IN〉이 ‘2022 〈시사IN〉 인공지능 콘퍼런스(SAIC 2022)’에 건 목표는 단순명료합니다. AI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 싶은 당신에게 이 부문의 슈퍼스타들을 통해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AI로 인한 변화를 감지하지만, 낯선 맥락에 압도되어 엄두를 내지 못한 당신에게는 AI의 진입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계기를 드리려 합니다. 특히 학생들에게는 강연 프로그램이 끝난 뒤 멘토링 기회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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