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한스 축하해요~!”

“오 빨리 나왔네요 ㅎㅎ 축하해요 한스!”

“허걱! 완전 축하드려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여러분~! 아빠가 되었습니다 🎉😆”

월요일 아침 주간회의를 앞두고 팀 단톡방에 낯설지 않은 대화가 오갔다. 주말 사이 아이가 태어나 휴가를 낸 동료를 축하하는 메시지였다. 분만일은 8월 12일. 정확히 3년하고 하루를 빼면 이현이가 태어난 날이었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축하를 받았던 경험자로서 그냥 축하한다고만 하기엔 아쉬워 말 한마디를 더해 적었다. 

“주하 아버지 축하해요~! 아들자랑 좀 해줘요~~!”

한스는 내가 속한 팀의 유일한 남자 동료다. 결혼도 나와 같은 해에 했는데 심지어 아이는 같은 달에 낳았다. 이제 육아 동지라는 타이틀까지 붙이면 연말 송년회에 커플티를 같이 입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동료의 아빠 됨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야심 차게 계획했던 일이 있었다. 마치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믹스테입>처럼 육아를 하며 내가 알게 된 좋은 브랜드와 제품, 그림책, 웹사이트, 장소 등에 대한 정보를 집대성해 정리하겠다는 계획, 챗GPT나 네이버가 알려줄 수 없는 정보를 큐레이션해 선물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마음을 너무 크게 먹은 탓일까 아니면 남의 아이는 뱃속에서도 빨리 커서일까. 머릿속의 생각이 정리도 되기 전에 아이는 세상 바깥으로 나왔고 목표했던 큐레이션은 미완의 장기 프로젝트로 남게 되었다. 당사자에게 호언장담하거나 약속을 하지 않았던 계획이었기에 아무런 문제는 없었지만, 일종의 부채감은 스스로 프로젝트를 마감하기 전까지 계속 남아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이번 주는 그런 나의 부채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면서, 동료 한스와 모든 신생아 부모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문자 그대로의 ‘편지’를 쓴다. 미래를 먼저 다녀온 사람의 마음으로, 3년 전의 나를 후회하며 그때의 나에게 컨닝페이퍼를 전달하는 마음으로. 

To. 아빠 한스에게 

한스, 앞의 내용을 봐서 알겠지만 목표달성을 못 해서 미안해요.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라는 핑계를 대고 싶지만 그러기엔 벌써 10개월이 지나버렸네요. 프로젝트의 존재를 이제 모두가 알게 되었으니 브랜드 리스트부터 조금 더 사명감을 갖고 정리를 해볼게요.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행복이 얼마나 클지를 알기에 기뻤던 것도 있지만 내심 좋았던 건 드디어 회사에서도 스스럼없이 육아 이야기를 할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었어요. 그동안은 회사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 아이 이야기를 하면 저 혼자 다른 행성에 사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같은 행성에 사는 사람이 생겨서 덜 외롭달까요. 혹자는 전생과 현생, 산전세계와 산후세계로 나누기도 하던데 슬프지만 꽤 인정이 되는 이야기라 오히려 저는 이주를 환영하고 싶어요. 이 행성에서만 누릴 수 있는 단순하고 원초적인 행복이 있거든요.  

출생 소식을 인스타 스토리로 보고 메시지를 보냈던 게 마치 어제 같은데 벌써 주하도 인생 3주차네요. 3주면 성인에겐 아무런 변화도 없을 수 있는 시간이지만 주하에겐 엄청난 적응과 성장의 시기였을 거예요. 한스 덕에 저도 옛날 이현이 사진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아내가 집에서 산후조리를 했던 30일 동안 놀랍게도 아이 몸과 얼굴이 똑같아 보이는 날이 없어요. 주하도 아마 아빠 몰래 매일 변신을 하며 훌쩍 커 있을 거 같네요. 다음 주에 아이가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오면 ‘크느라 고생했어.’ 라고 아는 척을 해보는 걸 추천합니다. 아이의 첫 집들이는 부디 무사히 치르기를, 저처럼 스펙터클하지는 않기를 바랄게요. 

분만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아내분의 건강은 괜찮나요? 사실 아이가 엄마 몸 바깥으로 나왔을 뿐 아내분은 아직 임신기를 겪고 있을 수도 있어요. 몸과 마음의 회복까지 제대로 해야 비로소 임신기가 온전히 끝나는 느낌이랄까요. 직접 겪어본 사람은 아니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10개월 동안 동고동락했던 존재와 물리적 이별을 한 셈이니 웬만한 멘탈이 아니고서야 후유증이 있을 거예요. 이별로부터의 회복은 정해진 기간이 없죠. 

특히 남편들이 이 시기에 흔히 하는 실수 중의 하나는 아내보다 아이를 우선시하는 거예요. 전 그 실수를 저질렀던 사람이었고요. 한스는 T가 아닌 F라서 실수를 해도 저보단 잘 대처하겠지만, 혹시라도 걱정된다면 아내분이 앞으로 1년 동안은 아직 임신 중이다 생각하시고 항상 0순위로 돌봐주세요. 제가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제가 겪은 육아 첫해를 만약 다큐멘터리로 찍었다면 [제1차 세계대전:기본욕구와의 전쟁]이라고 제목을 붙였을 거예요. 아이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잘 싸고)가 전부인데 그게 잘 안될 때가 많거든요. (똥이란 게 얼마나 위대하고 기쁜 존재인지 조만간 알게 될 겁니다.)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와 아빠도 100일 동안은 욕구 결핍으로 날카로워지기 쉬워요. 수면욕은 당분간 채우기 힘들겠지만, 식욕만큼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랄게요. 제가 3년간 축적한 빅데이터를 봤을 때 배고플 때 유독 아내랑 자주 싸우게 되더라고요. 만약 먹는 게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스트레스 조절이 어렵다면 번갈아가며 샤워 하시길 권장해요. 종종 따뜻한 샤워만으로도 문제가 풀리더라고요.  

꼼꼼한 한스 성격상 이미 수많은 육아서나 유튜브를 보며 다양한 지식을 학습했을 거 같아요. 몇 주에서 몇 주는 영문모를 울음을 터트리는 원더윅스이고, 몇 개월에는 몸과 말이 어때야 하고, 몇 개월에는 쪽쪽이를 떼야 한다는 등의 지식. 사실 전 예습을 많이 못 했던 사람이라 아이가 집에 올 때까지 기저귀 가는 법도 모르고 많은 부분을 아내에게 의존했는데 뒤늦게 공부하다 보니 앎이 주는 확신과 안정감은 확실히 있더라고요. 이미 육아는 과학의 영역이다라는 말도 있고요. 

다만 한편으론 대부분의 떠돌아다니는 육아 지식들이 내 아이보단 ‘모든 아이’를 향한 말들이다 보니 틀릴 때도 꽤 많았어요. 이현이만 해도 또래 평균보다 앉기가 느렸고 단어도 늦게 말한 편인 것 같은데 지나고 보니 왜 그때를 온전히 못 누리고 전전긍긍했나 싶더라고요. 빠르고 느리다를 판단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성장론자의 관점에서 하는 말인데 존재론자의 관점에서 보면 빠른 처음도 느린 처음도 다 특별하거든요. 브랜딩 업계에서 유명한 나음보다 다름, 다름보다 다움이란 말이 여기에 필요한 말인 것 같네요. 건강함을 유지하면 아이는 저절로 크는 것 같아요. 

옛 사진을 보다 보니 아이 옷이 금세 긴 팔이네요. 저도 이현이가 여름 생이라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가을과 겨울이 생각보다 빨리 왔던 것 같아요. 가을옷을 사면 겨울옷이 부족하고 겨울옷을 사면 봄옷이 필요한 게 아이와의 시간인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는 야속하지만 지나고 보니 시간의 덕을 볼 때도 꽤 많았어요. 수면교육을 할 때도, 찬바람 쐴 때마다 감기에 걸렸을 때도, 어린이집에 적응을 못 해 매일 울며 등원을 했을 때도 다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줬죠. 돌이켜보면 하루하루가 참 고단했는데 사진을 보다 보니 다 순조롭고 행복하게 지나갔다는 생각이 드네요. 핸드폰에는 행복만 저장해놔서 그런 거겠죠? 

아직 못다 쓴 메모장의 생각들이 많지만 이만 줄일게요. 다 잔소리고 과학적이지 않은 경험담이니 무시해도 좋아요.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잊고 있던 이현이의 어린 모습을 다시 보게 해줘서, 피부로 느끼던 그때의 단순한 행복을 떠올리게 해줘서.      

얼마남지 않은 주하와의 첫 여름을 만끽하기를, 

(제 아내가 그리워하는) 신생아 냄새에 푹 빠져보기를,

아이의 수많은 처음을 놓치지 않기를,

포기하지만 않으면 무조건 승리하는 게임이니 너무 애쓰지 않기를 바랄게요. 

시간여행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현아빠 규성 드림. 

Fathers’ Update

💬 저도 이서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인데요~ 아이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는 시기가 오면 육아아 정말 재미있어지는 것 같아요! 저희 아이도 제가 무심결에 했던 말들을 생활에서 따라하는데, 오늘 아침에는 어떤 재미있는 상황을 보고 이마를 탁 치며 '오 마이 갓' 그러더라구요🤣 제가 평소에 하는 행동이거든요 ㅎㅎ 아이들 앞에서는 정말 말 조심 해야할 것 같습니다. (정새롬)

💬 우리 아이의 말에 대한 추억을 되뇌어 봤습니다. 자녀의 말 외에도 많은 말들이 힘이 될때가 있지요. 최근에 본 트윗 중에 이런게 있었어요. '누군가는 좋아해주지 않을까?' 이말이 너무 좋고, 힘이된다고요. 저도 아무도 안보는 커뮤니티 같은걸 해보려고하지만 누군가는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썬데이파더스클럽 메일링 좋아해요. (정덕범)

💬 이서의 말 한마디를 노트 한 켠에 소중히 간직하며 가끔씩 꺼내보곤 하는 혁진님의 글을 보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이라는 표현을 떠올립니다. 아이의 한 마디가 행복한 기억을 선물하듯이, 아이(혹은 타인)에게도 내가 했던 말들이 어떻게 기억될까 생각도 해봅니다. 항상 좋은 글을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  (조인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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