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편지 ‘당신이라는 영화의 관객이 될게요’ 잘 받아 보셨을까요?
첫 편지 ‘당신이라는 영화의 관객이 될게요’ 잘 받아 보셨을까요? 영화처방사 미화리의 첫 처방영화 <백엔의 사랑>을 보고 나면 가드를 올리고 주먹을 앞으로 쭉 뻗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원투! 그것만으로도 괜히 기운이 나는 것만 같습니다. 내 모습을 인정하고 용기를 내고 싶은 모든 H 님들에게 이 이야기가 잘 가닿았기를 바라며, 오늘은 두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쉽게 타인을 부러워하고 열등감에 곧잘 빠지고 마는 우리들에게 미화리가 추천하는 이번 영화도 특효 처방일 거라 믿어요 :)
  ‘기적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항상 혼자 걷고 항상 더 원하고 빛나길 기다리는 나.’ _<엔칸토>
─✲─
이미화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동료 작가들을 쉽게 부러워합니다. 책이 출간된 지 일주일 만에 중쇄를 찍는 작가, 행사가 열릴 때마다 만석이 되는, 모객의 어려움이라곤 모르는 작가, 지면이 자주 주어지는 작가, 유명인 피드에 책이 소개되어 역주행 중인 작가, 그리고 이전보다 더 훌륭한 글을 쓰는 작가. 내가 가진 게 무엇인지, 그게 얼마나 감사한지 아는 것과 무관하게, 너무너무 부러워요. 당사자의 입장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글쎄요. 내가 그걸 알아야 할까 싶을 정도로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내게도 연재 중인 지면이 있고, 내 글을 꾸준히 읽어주는 독자가 있지만, 그걸 잘 알고 있음에도, 동료 작가의 소식을 접하고 나면 부러움이 슬그머니 그 자리를 차지해 버립니다. 마치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것처럼, 일찍 부화한 어린 뻐꾸기가 원래 주인이었던 알을 슬그머니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것처럼, 부러움 뻐꾸기가 자존감 알과 만족감 알을 밀어냅니다. 부화하지도 못한 채 깨져버린 나의 자존감과 만족감… 그런 날에는 마치 신비한 능력을 부여받은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만 아무 능력을 받지 못한 미라벨이 된 기분이 듭니다.
“근데 언니 능력은 뭐야?”
“미라벨은 능력 못 받았어.”
신비의 땅 엔칸토의 생명이 깃든 집, 까시타에는 신비한 마드리갈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신비한’ 마드리갈 가족으로 불리게 된 건 가족 구성원 모두가 신비하고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모 페퍼는 기분에 따라 날씨를 변화시킬 수 있고, 브루노 삼촌은 미래를 볼 수 있고, 엄마는 음식으로 사람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미라벨의 두 자매 이사벨라와 루이사는 물론이고 사촌인 돌로레스와 카밀라에게도 능력이 있는데요. 어떤 이유에선지 오직 미라벨만이 아무런 능력을 부여받지 못했죠.
 
아침부터 분주한 오늘은 마드리갈 가족의 막내 안토니오의 능력 수여 의식이 있는 날입니다. 자신만의 능력을 적극 활용해 행사를 준비하는 가족들 사이에 어색하게 움직이는 미라벨이 있습니다. 미라벨도 할 수 있는 선에서 돕고 싶은데 가족들은 그런 미라벨의 호의를 마다합니다. 오늘 의식은 완벽해야 하니 준비는 능력자들에게 맡기고 넌 빠지라면서요. 안토니오도 미라벨처럼 의식에서 아무 능력을 받지 못할까 봐 모두가 예민해진 상태였거든요.

다행히도 안토니오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동물과 소통하는 능력을 부여받게 됩니다. 미라벨은 안토니오가 무사히 능력을 받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한편, 그럼 왜 나만?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가족의 그림자가 되어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조용히 기적을 기다리며 지내온 수많은 밤이 처량하게만 느껴집니다.
‘난 괜찮지 않아. 산을 옮길 수도 없고 꽃을 피울 수도 없어. 아픈 사람을 고칠 수도 없고 비나 허리케인을 다룰 수도 없어. 기적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항상 혼자 걷고 항상 더 원하고 빛나길 기다리는 나.’
내게도 마드리갈 가족처럼 반짝이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있습니다. ‘어떤요일’이라는 이름의 자발적 연재 모임인데요. 여섯 명의 작가가 모여 월화수목금토요일 중 자신이 맡은 요일마다 글을 발송하는 프로젝트입니다.(일요일은 쉽니다.) 따라서 연재 기간에는 일주일마다 한 편의 글을 작성해야 하는데요. 길게는 3개월간 연재가 진행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열두 편의 완성도 있는 글을 펑크 없이 써내야 하는 게 우리의 임무입니다. 

작가마다 마감 스타일도 제각각이라, 마감 시간이 임박했을 때 글이 잘 써지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2~3개의 세이브 원고가 있어야만 하는 작가(접니다)도 있습니다. 저는 퇴고를 여러 번 해야만 공개 가능한 수준의 글이 되기 때문에 최소 마감 일주일 전에는 첫 문장을 시작해야만 하는데요.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한 글이 그렇지 않은 글보다 무조건 좋은 글이 되리라는 법은 없어서, 하루 전에 쓴 동료의 글이 나의 글보다 월등히 좋을 때, 나의 비효율적인 글쓰기 습관이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일주일 동안 뜯어고쳐 완성한 노력형 글 말고 하루 만에 쓸 수 있는 재능형 글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지요.
〈엔칸토: 마법의 세계〉, 바이런 하워드·재러드 부시 감독, 2021.
마드리갈 가족의 능력 수여 의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하는 걸 빠트렸네요. 의식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문을 열기만 하면 되는데요. 그럼 나의 능력과 어울리는 테마의 방이 시공간의 제약 없이 펼쳐집니다. 동물과 소통하는 능력을 받은 안토니오의 방이 숲을 이루었던 것처럼요. 아무 능력도 받지 못하고 문이 사라져 버린 미라벨만이 아이 때부터 쓰던 단칸방에서 지낼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가족의 신비한 마법에 둘러싸여 하루를 보낸 뒤 자신의 낡은 침대로 돌아가던 미라벨의 심정이, 동료들이 쓴 아름답고 탁월한 문장을 읽다가 울고 싶어지던 나의 월화수목금요일 밤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어요. 반짝이는 동료들과, 가족과 협업한다는 건 나의 자부임과 동시에 나의 부족함을 수시로 재확인하는 일이니까요. 

안토니오의 방에서 축제가 한창인 그때, 지붕에서 기왓장 하나가 떨어집니다. 벽도 갈라지고 까시타를 지켜주는 촛불도 꺼질 듯 위태위태합니다. 혼자 마당을 배회하던 미라벨이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가족의 눈에는 까시타의 흠집이 보이지 않아요. 심지어는 질투 때문에 미라벨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의 미라벨은 굴하지 않고 까시타를 지키기 위해 혼자서 대책을 세웁니다. 

여기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라벨의 능력은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아닐까. 미라벨만이 집 안에 숨어 있던 브루노 삼촌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처럼, 위기를 감지하는 힘은 내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 마음을 쏟을 때 발현되는 능력이니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고, 결핍을 알아보고, 미소 뒤에 숨겨진 진짜 표정을 읽어낼 수 있는 게 미라벨의 힘이 아닐까 하고요. 슈퍼 파워에 비하면 다소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관계에서 필요한 건 꽃을 피우거나 날씨를 자유자재로 바꾸거나 산을 옮기는 힘이 아니라 잘 알아채는 능력이잖아요. 그래야 찢어지기 직전의 너덜너덜한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요. 무너지고 흩어진 가족을 다시 이어 붙인 미라벨처럼요. 

새로 지은 집의 문고리를 힘차게 열어젖히는 미라벨을 보며, 눈에 띄지 않아서 나조차도 있는 줄 몰랐던 능력이 뭐가 있을까 떠올려 보았습니다. 내게는 하루 만에 멋진 글을 써내는 재능도,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도, 유쾌한 통찰력도 없지만, 그래서 그걸 글에 녹여낼 수는 없지만 어쩌면 마감에 늦지 않기 위해 세이브 원고를 2~3개씩 만들어두는 준비 능력이 내가 가진 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비교군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요. 동료가 글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과 내가 글을 쓰는 시간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나의 비교군은 나여야 한다는 것. 내가 하루 만에 쓴 글과 일주일 동안 쓴 글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되는 것, 그래서 내게는 글 한 편을 완성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알게 되는 것이 내가 나를 비교군 삼았을 때 나올 수 있는 유의미한 결과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불쑥불쑥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진 동료들이 부러워질 때면, 내가 절대로 쓰지 못할 문장에 주눅이 들 때면, 그 멋진 글을 쓴 동료까지 나의 재능이라고 우기기로 했습니다. 나의 신비한 힘은 내게 믿음직스러운 동료가 한 명도 아니고 다섯 명이나 있는 거라고요. 그럼, 능력도 여전하고 내 방도 여전히 코딱지만 하더라도, 침대만큼은 별이 다섯 개!인 장수돌침대에서 꿈을 꾸는 기분으로 잠들 수 있지 않을까요?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심하게 느껴요. 친구가 그냥 본인의 일상을 얘기한 것뿐인데도, 저는 그 친구의 얘기를 듣고 혼자서 ‘난 왜 저걸 가지지 못했을까. 부럽다. 내가 저 친구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괴롭습니다.

_K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저는 부러워하는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열등감은 내 안의 말도 못 하게 구린 감정들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고, 심지어는 생산적이기까지 한데요. 왜냐하면 제가 더 나아지기 위해 애쓰는 매일의 동력이 열등감이거든요.

 친구가 부러워서 걔처럼 되고 싶다면 그의 숨겨진 시간을 들여다보게 될 거고, 그러다 우연히 친구의 결핍과 손잡을 수도 있겠죠. 열등감은 열등감으로만 남아 있지 않을 거예요. 다른 것으로 바뀐답니다. 그게 무엇이든 K 님을 움직이게 할 거예요.

─✲─
이미화
자타공인 영화처방사. 영화를 곁에 두고 글을 쓴다. 여전히 이야기의 힘을 믿고 있다. ‘영화책방 35mm’를 운영했고, 지금은 망원동에서 ‘작업책방 씀’을 동료와 함께 운영한다. 《Moved by Movie》(2024), 《영화관에 가지 않는 날에도》(2022), 《수어》(2021),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2020) 등을 썼다.
_[나도 영화처방사!] 답장 감사합니다. 이벤트는 연재 기간 계속 열려 있으니 많은 참여 바라요 :)_
   ★ 두 번째 고민 사연에 처방할 나만의 영화가 있다면 꼭 추천해 주세요.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 출간 후 저자 사인본을 보내드립니다.
   ★ 첫 번째 고민 사연 ‘어떻게 해야 내가 가진 모습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요?’에 독자님들이 처방해 주신 영화를 나눕니다. 두 분께 사인본 보내드릴게요 :)
✓ 젤리 님의 추천 <어바웃 타임>
  주인공은 가문의 비밀을 알게 되고 어쩌다 보니 시간여행자가 되는데요. 본인이 1회차(?) 때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과거에 돌아가 몇 번이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도록 바꿉니다. 하지만 이 능력이 만능이 아니라 과거의 내 행동은 바꿀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은 바꿀 수 없고, 어떤 시점 이후에는 그 시점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제약도 있어요. 그래서 영화의 말미에 주인공은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평범하게 하루를 살고, 다시 되돌아가서 똑같은 하루를 2번 살며 첫 번째 때는 못 봤던 걸 새롭게 느끼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 모습을 보며, 결국 오늘 하루를 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내가 살아온 과거의 총합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오늘을 살아가게 되니까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내가 원하는 오늘을 살다보면, 맘에 드는 오늘을 더 많이 쌓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 영화을 고르게 됐습니다. 
  그리고 <엔딩까지 천천히> 출간이 더더욱 기다려질만큼 너무 좋았어요. 처음 듣는 영화였는데, 글을 읽고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같이 스펙타클한 전환점도, 그 뒤에 이어지는 시시한 일상도 모두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게 어쩐지 위로가 되는 느낌이었어요.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 정혜 님의 추천 <김씨 표류기>
  사연을 읽자마자 바로 생각난 영화였어요. 가식적이거나 억지스럽지 않으면서도 사랑스럽고 희망을 느끼게 해 준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예요. 이 영화를 봤을 때가 인생의 전환점을 앞두고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을 동시에 하고 있던 시기였는데요, 마치 성당에서의 고해성사처럼 나를 돌아보면서 아프기도 했기에 나를 사랑해 줄 동기가 필요했었어요. 그런 마중물이 된 보석 같은 영화였답니다. 이 영화에서 그려지듯,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섬이 있죠. 그 섬을 나만 유일하게 잘 알고 있다고 해서 너무 외로워말고 섬 밖의 세상과 만나면서 H님도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선물이 되길 바라요. 마치 저에게 그랬듯이요 :)
  책 출간 소식 들었을 때부터 반가웠는데 이렇게 미리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귀촌하면서 영화를 자주 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 책을 통해 봤던 영화든 못 봤던 영화든 반갑게 그리워하며 사연 너머의 누군가들과, 그 곁에 맴도는 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
   ★ 첫 연재글의 답장도 나눕니다. 감사합니다!
  조용한 방안에서 작가님의 편지를 읽었어요. 인생 2막이 펼쳐질 시점에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것, 매번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하긴 그 뒤로 보통의 하루하루가 흘러가겠네요. 그것조차 소중한 사람들이 물론 있겠지만. 기다렸던 편지를 천천히 읽으면서 따뜻하게 저녁을 맞이합니다. 다음 편지도, 한 권의 책도 소중히 기다릴게요! _쏘
  내밀한 슬픔은  나만 알고 있는 아픔이겠지요. 저도 분명 그런 속사정이 있습니다.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굳이 내 기분을 구차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거나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공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도대체 이 기분은 무얼까. 저도 저를 모르겠을때가 참 많은 것 같아요. 이런 마음의 근원은 무엇일지 찾다보면 답 없는 질문과 해답을 찾아 나선으로 돌고 도는 저를 멈춰세워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꼭 대단한 것을 이루지 않아도 사회가 요구하는 번듯한 어른이지 않아도 평범한 일상에 대단한 변화가 있지 않아도 내 안에 가득 차오른 자신을 느끼는 순간만 있다면, 그래서 하루 하루가 무탈하고 때로는 무용하게 평범하게 흐른다면 가끔은 삶이 시적이라 느껴질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제 안의 촘촘하고 내밀한 저의 세계를 다정하고 따뜻하게 지키며 지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엔딩까지 천천히: 미화리의 영화처방 편지> 정말 기대되는 책이에요!! 출간까지 조급함 한 스푼 담아 기다리겠습니다 :) _rosa0408
_[작가의 방] 5월 예약하기_
   • 장소: 오후의 소묘 스튜디오(서울 은평구 응암동)
   • 시간: 화-토 15:00~18:00 | 3시간 15,000원(다과 포함)
   • 신청하기: 네이버 예약 
[엔딩까지 천천히] 출간 전 연재,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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