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미술관 스페인 미술 큐레이터 인터뷰 ①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1656. 캔버스에 오일, 318 x 276 cm. 사진: 프라도미술관 제공
최근 몇 년 동안 저는 들라크루아, 티치아노, 틴토레토 같은 작가들에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라파엘로나 다빈치의 수학적 그림은 마음의 안정을 주는 반면, 이 작가들은 캔버스 속에 휘몰아치는 움직임이 느껴지거든요. 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몸으로 터득한 감각이 펼쳐지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올해 상반기 프라도 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뛰어난 색채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화가들부터 루벤스, 안토니 반 다이크 등 감각적 플랑드르 예술, 여기에 아카데미 화풍을 과감하게 깨고 새로운 미술의 문을 연 인상파 화가들의 스승인 스페인 예술가들까지...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을 연구하고 전시하는 큐레이터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먼저 대표작,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관해 프라도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해 온 큐레이터 하비에르 포르투스 페레스와 나눈 대화를 소개합니다.

페레스는 프라도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컬렉션 중 하나인 17세기 스페인 미술의 보존과 연구를 담당하는 수석 큐레이터입니다.
인상파 화가들의 스승, 벨라스케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프라도미술관 제공.
- 서양 미술이라고 하면 보통 르네상스나 인상주의를 많이 떠올리는데 두 시대 사이에도 엄청나게 다양한 미술이 있습니다. 17-18세기 스페인 예술도 그 중 하나죠.

19세기 프랑스, 미국, 영국의 인상파 화가들은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스승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유럽에서 보면 벨라스케스는 19세기에 발견된 화가에요. 그 이전에는 스페인에서만 알려졌습니다.

- 19세기에 알려진 계기는 무엇인가요?

결정적인 것은 나폴레옹 전쟁(1808) 입니다. 이 때 많은 프랑스, 영국군을 통해 스페인 예술이알려졌죠. 전리품으로 일부 작품을 프랑스와 영국으로 가져가기도 했고요.

여기에 1819년 프라도 미술관이 개관하며 유럽에서 여행 온 사람들이 벨라스케스, 무리요 등 스페인 거장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 전쟁과 미술관 덕분에 스페인 작가들이 유럽에 알려지게 됐군요. 그런데 인상파처럼 일부 예술가들은 스페인 예술에서 ‘여기엔 새로운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으니 변화를 하게 된 것이잖아요. 그들은 무엇을 느낀 것일까요?

19세기 유럽 예술과 문학은 ‘사실주의’를 주목했는데 이는 17세기 스페인 회화가 이미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19세기의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들은 벨라스케스, 무리요 등을 현대적인 작가라고 느꼈죠.

사실주의 화가인 귀스타프 쿠르베는 프라도 미술관을 보려고 스페인으로 여행할 정도였거든요. 그는 벨라스케스와 리비에라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바르비종 화가인 장 프랑수아 밀레도 마찬가지였죠.

영국 스코틀랜드의 화가 데이비드 윌키, 인상파 거장 에두아르 마네도 벨라스케스를 존경했어요.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보기 위해 1846년 프라도를 찾았고,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움직임을 포착한 마무리의 대가
'시녀들'의 부분. 프라도미술관 제공
-벨라스케스의 붓질과 손동작을 직접 보고 감명 받은 것이네요?

네. 루브르에도 벨라스케스 작품 몇 점은 있었지만 최고의 작품은 프라도에 있었죠. 마네가 본 것은 대가의 마무리(finishing)었습니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가까이서 보면 미완성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모든 것이 선명해지죠.

-맞아요. 가까이에서 보면 선과 터치만 있는 것 같아요.

이런 표현은 움직임을 묘사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것들은 절대 멈춰 있지 않아요.

전부 끊임없이 움직이고 인간의 시각 역시 한 시점에 고정되어 있지 않아요. 이런 눈에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바로 미완성처럼 보이는 터치에요.
라파엘로가 그린 우르비노 공작의 초상화. 우피치미술관 소장.
-그러니까 선 원근법의 그림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멈춰 있는, 얼어 붙은 순간처럼 보이는데 벨라스케스는 대상을 끝까지 그리지 않고 여지를 남겨 두어서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한 스냅샷처럼 보이게 만든 거네요.

 ‘시녀들’은 그런 점에서 그림과 실재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그림이에요. 우선 그림 속 모든 인물들이 실제 크기와 같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바닥에서 가까운 낮은 위치에 걸려 있었는데요. 그래서 방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또 하나는 정확한 공간 구성이에요. 르네상스 시대 선 원근법뿐 아니라 공기 원근법, 빛을 사용하고 또 인물들이 저마다의 공간을 점유하면서 깊이감을 만들고 있습니다.

-인물을 통해 공간을 만드는 것은 그림 속 인물들의 배치를 통해 여러 겹의 레이어를 만든다는 이야기 인거죠?

네. 모든 인물이 같은 선상이 있지 않아요. 또 커다란 치마를 이용해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어요. 또 인물들이 하고 있는 일도 각각 달라서 동작을 통해 생동감을 불어 넣고 있어요. 이렇게 복잡한 방식으로 그림을 살아 있는 것처럼 만드는 것은 진정한 대가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고, 이 때문에 19세기 화가들이 그를 존경했던 것입니다.
무엇을 그린걸까? 수많은 해석을 낳은 미스터리의 그림
그림 위쪽 드넓은 공간. 왼쪽 캔버스와 그 옆에 서 있는 벨라스케스. 또 거울 속으로 보이는 왕과 왕비. 프라도미술관 제공
-관람객으로서 이 그림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캔버스의 반대편에 있다는 점이에요. 그림 왼쪽에 벨라스케스가 캔버스를 보고 초상화를 그리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진행 중인 그림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그렇죠. 그런데 벨라스케스가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초상화라고 하기에는 캔버스가 너무 커요.

연구를 통해 확실하게 밝혀진 건 캔버스 맞은편에 왕과 왕비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림 속 인물들이 모두 왕과 왕비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 이것만이 이 그림에서 드러나는 사건이에요. 나머지는 모두 물음표입니다.

‘시녀들’과 같은 그림은 하나의 의미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봐야해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림을 보고 ‘이건 ㅇㅇ를 그린거다’라고 답을 찾으려고 하죠. 그런데 ‘시녀들’에서 답을 찾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이 그림은 여러 가지 질문과 답이 교차하는 아주 복잡한 작품이에요.

 ‘시녀들’을 두고 규칙이나 표현에 대한 얘기를 할 수도 있고, 마르가리타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공주를 둘러싼 하인들에 대해 집중할 수도 있고요. 또 그런 하인, 즉 궁전 직원의 일원으로서 벨라스케스를 볼 수도 있습니다.

-이 그림이 신비로운 또 다른 이유는 엄청난 사이즈에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죠. 벨라스케스가 이 작품을 그릴 때 57세로. 자신이 후대에 기억될 예술가임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역사적 의식을 갖고 후대에 남을 걸작을 만든 것이죠. 또 34년 동안 자신의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를 왕이 믿고 후원해 준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이 그림으로 후세에 기억에 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것이군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에서 손으로만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동원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당시 벨라스케스 뿐이었어요. 과거엔 없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었거든요.

-장르나 주제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인가요?

주제 면에서 아주 모호한 그림입니다. 초상화 같지만 르네상스 시대 미술 관점으로 보면 역사화로 보이기도 합니다.

역사화에서는 작가가 다양한 인물을 배치하며 각 인물들의 다른 행동을 보여주는 능력을 증명해야 하거든요.

여기서는 해부학뿐 아니라 표현 규칙, 공간 구성을 모두 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에서 그 모든 것을 완벽히 보여주고 있어요.

초상화는 인물을 보고 모방하는 능력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아카데미 미술에서는 역사화보다는 덜 중요한 장르로 여겨졌어요.

그런데 이 그림은 초상화와 역사화 두 가지를 혼합하고 있어요. 이 점에 ‘시녀들’을 이 시대 독보적인 그림으로 만드는 요소입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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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해주신 전시를 보면서 우리나라 무속 미술도 떠올랐습니다. (무속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형형색색 끈과 천으로 장식된 미술들....예술과 무속 미술의 한끗 차이가 궁금해지네요.
👉 줄리앙 크루제의 작품이 아프리카 토속 문화에도 일정 부분 뿌리를 두고 있어 자연스레 무속 미술이 떠오른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끗 차이'인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네요 ㅎ. 작가의 감각이나 현대에 관한 사상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해야할까요?

🔸시대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서양, 특히 그리스-로마의 신화에 대한 해석이 흥미롭습니다. 동양에는 그런 서사적 신화가 빈약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중남미나 아프리카의 사정은 또 어떤가요.
👉 제가 다른 지역의 신화를 다 알지 못해 정확히 답하기는 어렵지만, 동양과 중남미 아프리카에도 풍부한 신화적 서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이유에서 최근 현대미술가들은 그리스 로마를 떠나 다른 지역의 신화나 선주민 설화에도 관심을 갖고 활발히 탐구하고 있습니다.

🔸신화는 언제나 예술에 좋은 소재를 제공하는군요. 그나저나 줄리앙 크루제의 작품들과 공간 연출은 어딘지 모르게 작년 국제갤러리에서 본 양혜규의 <동면한옥>을 떠올리게 하네요. 크루제가 좀 더 인터내셔널한 느낌이 있지만요. 양혜규의 한국적인 감성도 좋았어요.
👉 구독자님 의견을 듣고 보니 감성은 다르지만 양혜규의 작품도 비슷한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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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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