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으로서 이 그림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캔버스의 반대편에 있다는 점이에요. 그림 왼쪽에 벨라스케스가 캔버스를 보고 초상화를 그리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진행 중인 그림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그렇죠. 그런데 벨라스케스가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초상화라고 하기에는 캔버스가 너무 커요.
연구를 통해 확실하게 밝혀진 건 캔버스 맞은편에 왕과 왕비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림 속 인물들이 모두 왕과 왕비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 이것만이 이 그림에서 드러나는 사건이에요. 나머지는 모두 물음표입니다.
‘시녀들’과 같은 그림은 하나의 의미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봐야해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림을 보고 ‘이건 ㅇㅇ를 그린거다’라고 답을 찾으려고 하죠. 그런데 ‘시녀들’에서 답을 찾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이 그림은 여러 가지 질문과 답이 교차하는 아주 복잡한 작품이에요.
‘시녀들’을 두고 규칙이나 표현에 대한 얘기를 할 수도 있고, 마르가리타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공주를 둘러싼 하인들에 대해 집중할 수도 있고요. 또 그런 하인, 즉 궁전 직원의 일원으로서 벨라스케스를 볼 수도 있습니다.
-이 그림이 신비로운 또 다른 이유는 엄청난 사이즈에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죠. 벨라스케스가 이 작품을 그릴 때 57세로. 자신이 후대에 기억될 예술가임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역사적 의식을 갖고 후대에 남을 걸작을 만든 것이죠. 또 34년 동안 자신의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를 왕이 믿고 후원해 준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이 그림으로 후세에 기억에 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것이군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에서 손으로만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동원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당시 벨라스케스 뿐이었어요. 과거엔 없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었거든요.
-장르나 주제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인가요?
주제 면에서 아주 모호한 그림입니다. 초상화 같지만 르네상스 시대 미술 관점으로 보면 역사화로 보이기도 합니다.
역사화에서는 작가가 다양한 인물을 배치하며 각 인물들의 다른 행동을 보여주는 능력을 증명해야 하거든요.
여기서는 해부학뿐 아니라 표현 규칙, 공간 구성을 모두 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에서 그 모든 것을 완벽히 보여주고 있어요.
초상화는 인물을 보고 모방하는 능력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아카데미 미술에서는 역사화보다는 덜 중요한 장르로 여겨졌어요.
그런데 이 그림은 초상화와 역사화 두 가지를 혼합하고 있어요. 이 점에 ‘시녀들’을 이 시대 독보적인 그림으로 만드는 요소입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