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으로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시겠지요?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난민신청을 했는데 광주출입국관리사무소가 난민신청자가 받아야 할 비자를 주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소송을 했다. 그런데 1심에서는 지고 2심에서는 이겼다. 당사자와 함께 동행이 문제제기한 것이 항소심에서 결국 받아들여졌다...는 내용입니다.
당사자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고 변호사 입장에서는 짜릿한 역전승인 것이지요.
그럼 이 사건의 당사자 V와 소송까지 오게 된 사정을 잠시 살펴볼까요?
청년 V는 2015년에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왔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요. V는 비전문취업 비자로 한국에 온 것이거든요. 5년간 광주 인근의 공장에서 일을 했어요. V는 조국 캄보디아에도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기를 바라는 청년입니다. 그래서 광주 5.18 민주화 운동도 알아요. 80년대 한국의 20대 청년들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집회를 하고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V와 같은 캄보디아의 많은 시민들도 민주주의를 바라고 열망하고 있거든요.
캄보디아의 집권당은 캄보디아인민당(CPP)이라고 합니다. 군사정권과 한편이지요. 대한민국의 군부독재시절 자유당에 반대하는 민주당/신민당 등이 있었던 것처럼, CNRP(Cambodian National Rescue Party, 캄보디아 구국당)가 제1야당으로 있으면서 집권당과 군부독재에 맞선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활동들이 점점 더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지요.
V도 당원으로 가입을 하였습니다. 위험을 느낀 CPP는 2018년 총선을 앞두고 2017년 11월 제1야당 CNRP를 강제해산시키고 관련 인사들을 체포 연행하는 등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멀리 한국에서 조국의 상황을 지켜보던 V도 무언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광주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5.18 민주광장에서 캄보디아 상황을 알리는 집회도 하고 서울도 올라가고 유투브도 하고 그랬어요. CNRP 한국지부 부대표가 될 정도로 열심히 활동하였습니다.
한국에서의 체류기간이 끝나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CNRP 당원들에 대한 탄압이 심했거든요. 그래서 2020. 3. 9. 광주출입국사무소에 20쪽이 넘는 난민신청서를 작성하여(이거 쓰느라 몇달이 걸렸습니다)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박해사유로 난민신청을 하였고, 난민신청자로서 체류자격을 변경해달라는 신청도 함께 하였습니다. 난민신청서가 20쪽!이 넘는다니 놀라우시죠? 그것도 영어 아니면 한글로 써서 내야만 해요. 자국어가 아닌 언어로 써서내야 하니 기본적인 사실관계 기술이 매우 힘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