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이 설 명절이었죠. 혹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명절 선물은 하셨나요? 어디선가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는데, 명절 선물 품목 1위는 현금, 2위가 바로 ‘홍삼’이라고 해요. ‘건강식품'도 아니고 ‘홍삼’ 하나 만으로 1위라니, 놀랍지 않나요? 그만큼 홍삼은 우리나라의 대표 건강기능식품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질문. 혹시 여러분은 홍삼을 드시나요?

  아마도 선물로 홍삼을 주고받은 경험은 다들 있으실 거예요. 하지만 내 돈으로 내가 먹을 홍삼을 구입하고, 매일 챙겨 먹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워낙 비싸기도 하지만, ‘홍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도 그다지 호감은 아닌 듯합니다. 쓰디쓴 맛과 한약 냄새, 빨간색이 가득한 패키지, 한자가 섞인 브랜드 로고, 어르신들의 건강식품. 대충 이런 것들이 떠오르죠. 그런데 이런 홍삼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브랜드가 있네요. 바로 ‘비터배터(bitter better)'입니다.

'갖고 싶은' 홍삼 브랜드

  감히 ‘MZ세대의 홍삼'이라는 수식어가 있다면, 저는 비터배터에게 붙여주고 싶네요. 홍삼 브랜드이지만 우리가 아는 그 홍삼 브랜드와는 어느 하나 비슷한 구석이 없습니다. 먼저 브랜드 네이밍부터 살펴볼까요? 비터배터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순간의 쌉싸름이 가져올 더 나은 삶을 만나보세요.”

  이 네이밍은 ‘입에 쓴 것이 몸에 좋다’고 말씀하시던 할머니들의 말씀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해요. 홍삼이 쓰다는 이유로 잘 먹지 않는 요즘 사람들의 푸념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꿔 브랜드 스토리로 담아낸 거죠. 그리고 역시 눈길을 사로잡는 건 역시 패키지 디자인이에요. 우리가 아는 그 홍삼 그림도, 빨간색 배경과 금빛 글씨도, 각진 박스 패키지도 없네요. 브랜드 오너들은 ‘한자나 전통문양을 넣지 않고도 한국의 홍삼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라고 해요. 그래서 타이포그래피도 ‘한국적인 레트로' 풍으로 표현했고, 귀여운 캐릭터는 한반도를 대표하는 동물로 ‘고라니'로 골랐다네요. 사실 홍삼과 고라니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이토록 귀여울 일인가요. 고라니의 이름도 지어줬어요. ‘쓰라니'와 ‘달라니'라고요.

  이쯤 되면 홍삼 브랜드지만 조금씩 호감이 가기 시작합니다.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두어도, 사람들 앞에서 한 포씩 꺼내 먹어도 부끄럽기는커녕 조금 자랑하고 싶어질 것 같아요. 말 그대로 ‘갖고 싶은 브랜드'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실제로 그런 것 같아요. 제품과 함께 오는 ‘클립'이 너무 예뻐서 구입했다는 소비자, 선물할 때마다 센스를 칭찬받는다는 소비자의 이야기가 스토어의 후기 목록을 가득 채우고 있거든요.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

  비터배터는 어떻게 이토록 매력적인 작은 브랜드가 되었을까요? 예쁜 패키지 디자인 때문에? 사실 에리브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단순히 디자인이 예쁜 브랜드'는 다루지 말자고 다짐했었어요. 그런 브랜드에서 배울 점은 오직 ‘예쁜 디자인' 밖에는 없을 테고, 그건 따라 하기도 어려운 요소니까요. 하지만 비터배터는 디자인만 예쁘고 트렌디한 브랜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는 ‘명확한 취향'을 가진 브랜드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비터배터는 자신의 제품들을 구입해줄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네이밍과 디자인을 만들고, 그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제품에 있어서도 그런 노력을 기울인 것 같아요. 다른 제품과는 다른, 요즘 세대가 좋아할 맛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배합을 실험하기도 했다네요. 브랜딩 활동을 보아도 마찬가지예요. 공유주거 브랜드 ‘맹그로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TUKATA’와 협업을 하기도 하고, 건강식품과는 조금 거리가 먼 29CM, W컨셉몰에 입점을 하기도 하죠.

  모든 사람들에게 먹히는 디자인,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머 코드 같은 건 없어요. 모든 건 취향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취향이 날카로워질수록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죠. 비터배터의 브랜드 오너들이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같은 언어를 쓰는 분들'과 협업했다고 표현한 인터뷰를 보았어요. 저는 비터배터의 브랜딩도 그런 것 같아요. 결국 비터배터와 ‘같은 언어를 쓰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브랜드의 소비자일 거예요. 그 ‘언어'에는 디자인을 비롯한 브랜드의 모든 취향들이 담기는 것이겠죠.

단언컨대, 취향의 시대

  소비자들은 무엇을 보고 건강식품을 구매할까요? 1순위는 단연 ‘효능'입니다. 이런 걸 흔히 기획서에서는 ‘Key Buying Factor(KBF)’라고 부르곤 해요. 건강식품은 건강해지려고 먹는 것이고, 그러니 건강식품을 선택할 때도 효능을 기준으로 고르겠죠. 하지만, 비터배터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의 KBF도 ‘효능'이 1순위일까요? 어쩌면 질문에는 ‘건강해지려고'라 대답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브랜드를 선택한 진짜 이유는, 그보다는 ‘취향을 저격당해서'가 아닐까요.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듯이, 이제 브랜딩은 취향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사실 세상엔 이미 너무나 많은 브랜드와 제품이 있으니까요. 독보적인 아이디어나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우리 브랜드만의 차별점을 내세워 브랜딩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시대에 새로운 작은 브랜드를 시작하려는 우리에게, 그래서 브랜드의 취향이 더 중요해집니다.

  물론 취향에는 정답이 없죠. 더 나은, 더 뛰어난 취향이라는 것도 없고요. 그럼 어떤 기준으로 브랜드의 취향을 판단해야 할까요? 이제 사람들은 ‘필요한 것'과 ‘갖고 싶은 것’을 구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브랜드를 소비자의 ‘필요한 것'이 아닌, ‘갖고 싶은 것' 목록에 올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소비자의 마음속 그 미묘한 차이를 발견해야만 합니다. 결국, 누가 우리 소비자인지를 규정한 후, 그들이 어떤 것들을, 왜 갖고 싶어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겠네요.

  사실 이건, 주변 사람들이 연인의 선물을 고민하고 있을 때 제가 항상 해주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상대방이 ‘필요한 것' 말고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사주라고요. 사람은 갖고 싶은 것을 가졌을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끼기 마련이거든요. 우리도 누군가가 갖고 싶어 할 만한 브랜드를 만들어 보자고요. 브랜드가 넘쳐 나는 시대에 또 하나의 브랜드를 더하려면, 적어도 그 누군가는 좀 더 행복해져야 할 테니까요.

  오늘도 구독자 분들께서 궁금해했던 이야기를 들고 왔어요. 뭐, 아주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시겠지만🤣 그래도 이 자리를 빌어 궁금증을 풀어 드리려고 합니다. 대체 어디까지가 '작은 브랜드'인가, 하는 의문이에요. 사실 저도 의문이에요. 어느 날에는 셰프 혼자 운영하는 원테이블 레스토랑에 대한 글을 썼다가, 또 어느 날에는 중견기업이라고 충분히 부를 법한 브랜드를 다루기도 했으니까요. 그래도 아주 기준이 없는 건 아니랍니다. 그 기준이란,

브랜드 마케터가 없어야 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저도 흔히 제 직무를 '브랜드 마케터'로 소개하는데, 브랜드 마케터가 없어야 한다니요. 그런데 사실, 마케터 중에서도 브랜드 마케터는 가장 나중에야 뽑게 되는 포지션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브랜드 마케터 같은 '담당자'가 있을 정도면 꽤나 전문적으로 브랜딩을 하고 있는 곳일 테니, 그보다는 조금은 비전문적이라도 현실적인 브랜딩을 하는 곳을 찾고 싶었던 것이죠. 하지만 생각보다 확인하기도, 적용하기도 힘든 기준이더라고요? 그래서 곧 기준을 바꾸고 말았어요.

케이스 스터디가 없어야 한다

  이미 브랜딩 잘하기로 소문났거나, 업계에서 뜨는 브랜드로 인정받았다면. 아무래도 작은 브랜드라고 하기 어렵겠죠? 그리고 그런 브랜드라면 저보다 더 전문가인 분들이 여러 모로 분석을 해놨을 거구요. 그래서 검색을 했을 때, 이미 브랜딩 Case Study가 존재하는 브랜드는 제외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이것도 사실 엄격하게 적용하지는 않고 있어요. 브랜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면, 이미 분석이 있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거든요.

무엇이든 배우면 됐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마지막 기준입니다. 작은 브랜드를 준비하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배울 점이 있다면 되는 것 아닌가! 규모가 아주 작지는 않더라도, 브랜드 전문가가 있더라도, 그 브랜드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프로젝트의 취지에 맞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접근하기 시작했어요. '이 브랜드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어떻게 실행에 옮겼을까? 나라면 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다면 모두 우리가 배울 만한 '작은 브랜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