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추럴 와인과 가까워지고 싶다면, 낙성대 <낙성>

2022.02.09

soolaylist와 함께 감상해보세요!

기대치 못한 것에서 더 큰 행복을 느껴본 적 있는가? 우연히 방문한 공간에서 자신의 취향을 마주칠 때 처럼 말이다. 그 순간만큼 반갑고 짜릿한 것은 없을 것이다. 오늘 소개할 공간이 그렇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샤로수길을 지나 한적한 공원과 아파트 단지, 그리고 작은 상점들 사이. 어린 시절 다녔던 피아노 학원이 있을 것만 같은 의외의 공간에서 레트로함과 모던함을 동시에 지닌, 무심한 듯 친절한 와인바를 만났다.

툭 하고 놓여져 있는 표지판, 간결하게 쓰여 있는 두 글자 '낙성'.

레트로한 을지로의 모습과 닮아 있다.

계단을 오르며 이 곳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때 쯤,

드디어 낙성에 도착했다.

가지런히 진열된 빈 와인잔들이 그 증거다.

전체적으로 모던한 우드톤의 인테리어에 따뜻한 조명으로 감성을 더했다. 널찍한 공간에 놓인 큼지막한 나무 테이블과 소파. 비교적 소수의 인원이 쾌적하게 있기 좋은 공간이다. 곳곳에 자리 잡은 포스터와 빈티지 그릇은 보는 즐거움을 높인다. 잔잔히 퍼지는 LP 플레이어의 노랫소리는 덤.

낙성의 내추럴 와인 글라스 가격은 15,000원부터, 보틀 가격은 79,000원부터 시작한다. 특이사항은 그때그때마다 글라스 와인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점. 사장님께서 제철에 가장 어울리는 맛을 선정해 레드, 화이트 와인 각각 한 종류씩 랜덤으로 오픈하신다. 친절히 설명해 주시는 와인의 특징과 역사는 더욱 기대감을 높인다. 누가 알까, 우연히 맛본 와인이 자신의 인생 와인이 될지.

내추럴 레드 와인

도수 : 12.5%

가격: 15,000원

정확한 와인 명칭은 'Fai Virar Rouge 파이 비라 레드'. 프랑스 아르데슈 주에서 생산하는 레드 와인이다. 프랑스 보졸레 지방에서 주로 재배되는 포도인 'Gamay 가메'로 만들어졌다.

파이 비라를 한 모금 들이키자 와인 창고가 떠오르는 듯한 쿰쿰함이 느껴졌다. 와인 메이커들이 *브렛(brett)이라고 부르는 이향은 일반 와인에 비해 내추럴 와인에 좀 더 강한 경향이 있다. 이 냄새를 통제하는 인공 효모와 살충제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흙 향(Earthy)이 느껴지는 쿰쿰한 향과 단단한 맛. 제법 취향을 타지만, 마니아 층이 있는 만큼 한 번쯤 시도해볼 만 하다.

*브렛: 브레타노미시스(Brettanomyces)의 줄임말. 와인을 발효하는 효모의 일종으로, 모든 과일과 흙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미생물이다.

내추럴 화이트 와인

도수: 12.0%

가격: 15,000원

정확한 와인 명칭은 'André Kleinknecht Sylvaner 안드레 클레인나잇 실바네르'.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알자스 주에서 생산하는 화이트 와인이다. 오스트리아가 원산지로서 중부 유럽에서 많이 재배되는 포도인 'Sylvaner 실바네르'로 만들어졌다.

실바네르는 산미와 *유질감의 밸런스가 좋다. 쿰쿰함이 은은하게 느껴지고, 불에 탄듯한 향이 살짝 더해진다. 체리향 향수가 연상되기도. 앞서 소개한 파이 비라보다는 좀 더 자극적인 맛이다. 끝맛은 달달하고 잔잔하게 마무리 된다. 큰 호불호 없이 마실 수 있는 와인으로, 와인 초심자분들에게 추천한다.

*유질감(Oily): 와인의 미끈거리는 정도를 뜻한다. 보통 산도와 유질감은 양립하기 어려워 산도가 높은 와인은 유질감이 떨어지고, 와인의 눈물이 잔에서 금방 흘러내린다.

(와인의 눈물이란, 와인이 담긴 잔을 흔들고 그대로 두었을 때 와인이 얇은 막으로 형성되어 눈물처럼 흐르는 모습을 뜻한다.)

무심한 듯 언어유희가 섞인 매력적인 메뉴판,

내추럴 와인과 잘 어울릴 법한 메뉴 두 가지를 주문했다.

이베리코리아 목살

가격: 16,000원

한 입 먹자마자 감탄한 메뉴다. 미소로 훈연한 이베리코 목살에 명이나물처럼 감칠맛을 더하는 시금치 절임, 고소한 맛을 더해줄 버섯 말랭이까지. 장조림처럼 짭조름하고 달달한데 부드럽기까지 해 단숨에 입에서 녹아 없어진다. 여기에 드라이한 내추럴 와인으로 다시 입가심 해주면, 끊임없이 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가격에 비해 양이 적은 편이라 접시가 비는 게 아쉬운 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