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감독 김희정)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168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7월 26일 오늘의 큐 💡   
Q. 만약 죽게 된다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사고로 남편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진 '명지'(박하선)는 핸드폰 속 '시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러자 시리의 쾌활한 대답,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제자를 구하려 뛰어든 강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영영 생을 달리한 남편 '도경'을 그리워하는 명지는 슬픔을 달래기 위해 폴란드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남편과 나의 과거를 기억하는 동창을 우연히 만나고, 남편의 죽음을 점차 객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한편 도경이 미처 구하지 못한 학생 '지용'의 절친 '해수'는 지용의 부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지용의 누나를 보살피지요. 

김희정 감독의 신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이 영화에는 소설에서 다뤘던 내용에서 좀 더 확장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사회가 여러 죽음들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서 폴란드의 바르샤바한국의 광주라는 도시를 오가며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우리에게 역으로 묻는 시리의 대답은 어쩌면 대답 아닌 질문 그 자체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사랑하는 이들이 죽었을 때, 우리의 마음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말이죠. 애도의 간격과 깊이에 대해서, 무엇보다 공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이 영화를 인디즈의 글을 지도 삼아 감상해 보세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속절없이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의 얼굴을 헤아려 본다. 다리뼈가 으스러진 듯 땅바닥에 주저앉다가도 서서히 들어 올려지는 고개. 느리게 사방을 헤매는 눈동자. 눈물에 젖은 채 구겨지는 표정. 이들을 품고선 정지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얼굴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속 인물들로부터 새어 나온다. 그렇게 이들은 거대하고 뾰족한 쇠붙이에 꽂혀있는 어느 시간 주위를 맴돈다.


(중략)


제목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는 명지가 시리에게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을 때 시리가 두 번째로 뱉은 말이다. 이 되물음은 영화 말미에 이르러 지금 명지와 우리가 딛고 있는 이곳은 어디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영화는 바르샤바와 광주에서 일어났던 무수하고 무고한 희생과 그에 대한 저항을 이야기하고 이는 우리에게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이 밖에도 숱한 사회적 비극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있음을, 한 명의 슬픔은 결국 우리 모두의 슬픔과 연결되어 있음을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서늘하고도 기운 있게 속삭인다.


인디즈 김채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감독 김희정|103|드라마|12세이상관람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 ‘도경’을 잃은 ‘명지’는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폴란드 바르샤바로 잠시 떠난다. 하지만 ‘도경’의 소식을 모르는 대학 동창 ‘현석’과의 재회에 ‘명지’는 낯선 곳에서 불쑥불쑥 남편과의 추억을 마주하게 되는데… 
한편, 같은 사고로 단짝 친구인 ‘지용’과 이별한 ‘해수’는
곳곳에 남겨진 친구의 빈자리를 느끼며 하나뿐인 동생을 잃고 몸이 마비된 ‘지용’의 누나 ‘지은’을 돕는다. 그러던 중 ‘해수’는 ‘지은’에게 새 편지지와 함께 ‘명지’의 주소를 건네는데…

홀로 남겨진 나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다정한 말 한마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남겨진 자들이 선택하는 방법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그리고 〈낙타들〉


바람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런 법이다. 이 바람이 떠난 이의 옷깃을 스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떠나도 그 사람의 기억은 도시 곳곳에 남아있고, 남은 이는 그 도시를 살아가야 한다. 함께 기다렸던 신호등과 까만 새벽 들렀던 편의점, 손도 맞잡을 틈 없었던 인파 속부터 믿을 수 없는 도시의 고요함을 함께 누리던 순간까지. 잊고 싶어도 마주하게 되는 모든 것들은 오로지 남겨진 자의 몫이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원작 소설로 먼저 접했던 내가 소설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것도 바로 명지가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왔을 때 퀴퀴하게 시들어 버린 열무 줄기였다. 음식 위에 하얗게 슨 곰팡이, 어수선한 집 안을 채운 남겨진 것들의 상한 냄새. 싱싱했던 것은 남겨졌다는 이유로 까맣게 죽어버리고, 누군가를 떠나보낸 적 있는 사람만이 이 냄새를 알고 있다. 바로 여기서부터 영화의 질문이 시작된다.


어디로 가고 싶냐는 질문은, 지금 이 공간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던지는 질문과 같다. 명지(박하선)가 바로 그러하고, 그는 이 도시를 떠나기로 선택한다. 또 다른 도시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떠밀려 하게 된 선택이지만 현석(김남희)의 말마따나, 도시는 나의 선택에 따라 무수히 달라지는 세계다. 모르던 길로 들어서면 새로운 곳이 펼쳐지고, 내 선택으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내 선택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다. 


꼭 바깥으로 나가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지용의 누나도 선택한다. 침대에서 떨어지고, 계단을 오르고, 글씨를 쓰면서. 오늘 소개할 박지연 감독의 〈낙타들〉에서도 여자는 선택한다. 냉장고를 타고 우주로 날아가기로. 어디로 가야 할 때는 언제나 선택이 동반된다. 모든 것은 선택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어디로 갈지 선택하면, 곧 새로운 세계 혹은 도시 혹은 순간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는 전혀 다른 세계다.


인디즈 안민정

〈낙타들〉 

감독 박지연|11분|애니메이션


오래 전 남자는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여자를 떠났다. 여자는 몇 번의 이별을 겪으면서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사막을 건너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은 이미지로 구현된다. 이별, 사막, 황사, 냉장고 속의 여자, 얼굴 속에 앵무새가 있는 남자, 우주 등 이미지 구현과 공간의 변화를 통해 여성의 심리를 극대화해서 보여주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2011년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기생충〉의 제시카, 알고보니 수녀 출신?
님은 김희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인디즈 큐 구독자라면 한 번쯤은 보셨을 수도 있겠어요. 2007년 장편영화 〈열세살 수아〉로 이름을 알린 김희정 감독은 이후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까지 총 다섯 편의 장편영화를 선보였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을 주요 OTT에서 만날 수 있지만, 오늘은 그중 두 편의 영화를 소개합니다. 〈설행_눈길을 걷다〉에서는 박소담 배우의 눈부신 연기를, 〈프랑스여자〉에서는 중년 여성의 회환과 마음 깊은 곳의 소망을 동시에 만날 수 있어요. 
〈설행_눈길을 걷다〉
감독 김희정│출연 박소담, 김태훈│98분

눈 오는 추운 겨울, 정우(김태훈)는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 수녀들이 운영하는 산 중의 요양원을 찾는다. 현실과 꿈 속을 오가며 술에 대한 유혹과 고독한 싸움을 벌이던 그는 그 곳에서 만난 수녀 마리아(박소담)와의 교감을 통해 회복의 싹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정우는 요양원에서 만난 포수의 배낭에 든 술을 노리고 그를 따라 사냥에 동참했다가 폭설 속에 고립되는데…
〈프랑스여자〉
감독 김희정│출연 김호정│89분

배우를 꿈꾸며 파리 유학을 떠났지만,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 정착한 `미라’. 이혼 후 2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그녀는 옛 친구들과 재회한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후배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지만 선명하지 않은 기억 속에서 혼란스럽던 그때, 갑자기 그 시절로 돌아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특별한 여행을 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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