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인스피아 저널, (37), 2022.4.20,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한편 유명한 CEO나 정치인들이 얼마나 부지런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인터뷰나 일화엔 꼭 수면에 대한 얘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시간 수면’으로 유명했고(링크), 애플 CEO 팀 쿡은 전날 10시에 자서 매일 새벽 3시 45분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런 글들을 보다보면 7시간을 자도 늘 흐리멍텅한 내가 문제인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연구자님은 평소 정신을 깨거나 집중해야할 때 보통 어떤 음료를 드시나요? 

저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파인데 사실 맛보단 그저 ‘깜짝’ 잠을 깨는 각성제 느낌으로 마시는 것 같습니다. 노곤한 오후에 멍하니 커피를 쪽쪽 빨고 있노라면 카페인 링거를 맞고 있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이는 꼭 직장인들만의 애환은 아닌 듯합니다. 학생들도 시험을 잘보려고 카페인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죠. 시험 기간 때마다 목숨을 깎아 학점을 빚는 ‘붕붕 드링크’가 유행하기도 하고요. 귀여운 포장 아래 악마같은 카페인 함유량을 자랑해(“스누피가 카페인으로 내 머리를 내려치는 기분이다”) 학교 매점에서 판매가 금지된 ‘스누피 우유’가 이슈가 되기도 했었습니다.(링크) 

문제는 카페인이 우리 몸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음에도, 카페인을 ‘젊음’ ‘에너지’처럼 긍정적인 이미지와 연결짓는 광고로 인해 부작용을 과소평가하기 쉽다는 것인데요. 

이 때문에 이 책에서 저자는 설탕, 니코틴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온 것처럼 카페인의 위험성을 충분히 고지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013년엔 카페인 금단증상이 DSM에 추가되는 등 일부 진전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뇌에 연료를 공급하세요!’ ‘젊음을 되찾으세요’ 등의 긍정적인 에너지 음료 선전들이 많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카페인은 어디까지나 우리를 억지로 깨어있게 하는 것일 뿐, 안 자도 되는 슈퍼맨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자는 1909년 코카콜라에 맞서 싸웠던 전직 미국 농림부 국장 하비 워싱턴 와일리를 소환합니다. 그는 당시 카페인의 무해함을 입증한 연구자와 기업 등을 상대로 휴식의 가치를 강조하며 법정에서 아래와 같이 호소했습니다. 

거북이의 <사계>라는 노래를 기억하시나요? 한때 전국민이 흥얼거릴 정도로 굉장한 인기였는데요. 이 노래는 민중가요(노찾사)를 리메이크한 곡입니다. 꽃밭 가득 꽃이 피든 봄바람이 불든 항상 미싱에만 매달려있어야 하는 노동자의 슬픈 처지를 담은 노랫말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조너선 크레리의 책 <24/7 잠의 종말>이 그려내고 있는 현재 우리 세계는 어찌보면 ‘사계’ 노랫말 속 세상보다도 한층 더 불행할 수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시대의 삶은 일하는 시간 뿐 아니라, 놀고 딴짓하는 일상마저도 생산성의 논리에 따라 꽉 짜여졌기 때문이죠. 

앞서 <카페인 권하는 사회>가 카페인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를 지적했다면, <24/7 잠의 종말>은 그 근본 원인(왜 카페인을 휘발유처럼 먹으면서 사람들은 오래 깨어있어야 하는가?)을 겨눈 책입니다.

얼핏 암호같아 보이기도 하는 이 책 제목의 ‘24/7’은 각각 ‘24시간’과 ‘7일(일주일)’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24/365’가 아닌 ‘24/7’일까요? 이에 대해 저자는 효율성의 논리 아래 빽빽하게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삶의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에 365 대신 7이라는 숫자를 썼다고 말합니다. ‘365일’이라고 하면 그 안에는 생일이나 축제, 기념일도 있겠고, 혹은 쳇바퀴 밖의 별다른 일(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이 일어날 ‘가능성’이 생기지만 ‘7일’이라고 하는 순간 변화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월화수목금퇼!!’로 짜여진 시간표같은 삶이 펼쳐지죠. 

약간 알쏭달쏭하기도 하지만, 수요일부터 금요일은 ‘주말을 기다리는 시간’, 일요일부터 화요일은 ‘주말이 사라져서 시무룩한 시간’으로 쳇바퀴처럼 이어지는 일상을 떠올려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되긴 합니다.

즉, 옛날엔 단지 일터에서 노동을 하고, 집에선 휴식을 취하거나 할 수 있었지만 이젠 언제 어디서나 업무 전화와 이메일에 응답하고, 링크드인에 프로필을 업데이트하고 인맥을 관리하고, 업무용 비즈니스 인스타그램 등에 DM 답장을 보내고, 틈틈이 개인 커리어를 위해 주체적 ‘부캐’로 ‘N잡’에 종사하고, 투자 정보를 살펴 개인 자산을 분산 투자하는 것 등 모든 생산적인 활동이 24시간 멈춤없이 돌아간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생활이 가능해진 것은 위에서도 말했듯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 때문(덕분)이기도 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24/7의 세계에서 욕망 없이 ‘하고픈 것도 없고 사고픈 것도 없이’ 느긋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겐 부적응자라는 딱지가 붙죠. 

모든 사람은 시민이기 이전에 소비자여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최신 상품을 원해야 하고, 그걸 갖고 있는 사람을 부러워해야 하고, 그것을 사기 위해 밤 늦게까지 일해야하고, 빚을 지고 그것을 갚아 가고, 그것을 살 때 쯤 또 새로운 최신 상품이 나왔다는 소식에 초조해해야만 세상이 멈춤 없이 돌아갑니다.

이 책의 제목에서 저자가 ‘24/7의 세계’에 이어 ‘잠’이란 단어를 붙인 이유는 잠이 갖는 예외성과 취약함 때문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바쁘게 일하더라도 자는 시간만큼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예외성), 그리고 잠을 자는 동안엔 누구나 어린아이처럼 다른 이들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라는 점(취약함)이라는 건데요. 

저자는 이런 잠이 갖는 ‘완전한 무쓸모’와 ‘취약함’이란 특징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나 안전하게, 충분히 꿀잠을 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생산성을 최우선시하는 커다란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매슈 워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하는가?>(이하 동일)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옛날 다른 사회과학 책에서 이 책이 인용된 것을 보고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잠에 대해 해찰해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이 책을 집어들면 깜짝 놀라실지도 모릅니다. 붕어빵엔 붕어가 안들어있다 수준까진 아니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잠'은 문자 그대로의 수면보다는 은유적인 의미(후기 자본주의에서의 삶의 낭비, 여백)에 가까우며, 짧은 분량이지만 독해가 결코 만만치 않은 책이거든요. 하지만 오늘 레터를 읽고나서 이 책을 읽으신다면 비교적 어렵지 않게 이 책의 문제의식과 함께 해찰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오히려 제가 이전에 다루었던 '관심경제' 회차(레터링크)에 연결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우리의 주의력을 과부하시키는 미디어로 인해 우리가 정작 건강한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는 점에섭니다. '관심경제' 회차를 관심있게 읽어보신 분이라면 이 책도 추천합니다.

-매슈 워커는 수면전문가로 수면의 이득에 대해 적극적으로 주장한 대표적인 과학자입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나 인용된 연구 등은 어찌보면 기시감이 드는 것들이 많은데요. 그럼에도 책을 들고 읽었을 때 처음 그 독특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람의 반짝이는 초기 불꽃을 볼 수 있다는 점은 이미 고전이자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린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었습니다. 또한 아무리 기시감이 드는 내용이라고 해도, 이 책을 읽는 내내 다시한번 꿀잠 실천의 의지를 다질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을 읽는 것을 통한 이득입니다.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오늘부터 오는 4월 30일(토)까지 설문조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인스피아의 좋은 점 및 아쉬운 점, 어떤 콘텐츠나 어떤 서비스를 원하는지 등에 대해 두루 의견을 청취하려 합니다. 설문조사 종료 시점에, 설문조사에 응해주신 분들 가운데 연락처를 남겨주신 분들에 한해 5분을 추첨해서 제가 그간 레터에서 다루었던 책 혹은 개인적으로 소중하게 아껴 읽었던 책(언젠가는 레터에 소개될지도 모르는!)을 구입해 보내드리려 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레터 하단의 감상을 남기는 설문과는 다른 설문입니다. 이번 회차에 대한 감상 등은 평소처럼 최하단 ‘편지보내기’를 이용해주세요! / 작성해주신 응답 및 연락처는 오직 설문 용도로만 사용되며 이벤트 이후 폐기됩니다.) 

1.혹시 지난 회차 가운데서 '아, 이 회차에서 이 책(혹은 영화 등)을 다뤘었으면 좋았을텐데, 아깝다!'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지난 회차의 주제에 대한 책이라도 추천해주시면 검토 후 레터에서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신간도 구간도 상관 없습니다. 회차명과 책 이름, 그리고 짤막한 추천 이유를 적어서 아래 '💌편지 보내기' 버튼을 통해 보내주세요. 지난 회차의 레터 내용은 아카이브 페이지(💬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요새 날씨가 한해에 얼마 즐기지 못하는 정말 황금같은 날씨라는 생각이 듭니다. 날씨 때문에 뒤척이는 때가 많다는 걸 생각해보면, 꿀잠 자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죠.  연구자님 꿀잠 자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레터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