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3일  (No. 575)
전략은 단어 정의 때문에 실패한다

"우리는 혁신적이고 민첩한 조직으로 변모하고 고객 중심 경영으로 시장을 선도하겠습니다."

이런 말을 전략 회의 등에서 많이 들을 겁니다. 듣기엔 그럴듯한데요, 하지만 회의실을 나서는 참가자 각각의 머릿속엔 전혀 다른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제품팀은 '혁신'을 신기술 도입으로 이해하고, 마케팅팀은 새로운 마케팅 캠페인으로, 영업팀은 고객 접점 강화로 받아들입니다. 같은 말을 이렇게 제각기 해석하니 전략이 일관적인 방향은 고사하고 힘을 가질 리 없겠죠.

컨설턴트이자 저자인 안드리아 벨크 올슨(Andrea Belk Olson)은 전략이 실패하는 이유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추상적인 경영 용어가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올슨은 이런 현상을 '실행 표류(execution drift)'라 명명하는데요, 용어 해석의 불일치가 결국 전략을 무력화시킨다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혁신'이라는 단어를 어떤 이는 빠른 실험과 대담한 도전으로, 또다른 이는 제품 성능의 완벽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점진적 개선(카이젠)이라고 받아들이는 이도 있죠. 경영층이 아무리 명확한 전략을 수립해도, 각 팀이나 각국의 지사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여러 방향으로 뛰는 바람에 조직은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겁니다.

몇 년 전 저는 <나의 첫 경영어 수업>이란 책을 통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다뤘습니다. 자동차 회사 임원들에게 "자동차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니, 그들의 대답이 제각각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엔진으로 바퀴를 움직이는 운송수단'이라 했고, 어떤 이는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수단'이라 했으며, 또 다른 이는 '이동하는 생활공간'이라 정의했죠. 알고보니 각자 소속 부서의 관점에서 자동차를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전사적으로 통일된 개념이 아니라 자기 부서의 입장이 곧 정의였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부분 최적화'라는 고질병은 이렇게 통일되지 않은 용어 정의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만약 핵심 용어의 정의를 전사적으로 통일할 수 있다면, 미션과 비전을 향해 구성원을 제대로 정렬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이죠.

올슨이 제시한 해법도 같은 맥락입니다. 

1. 추상적 용어를 구체적 사례로 설명하라. 예를 들어 '민첩성'은 '전면 출시 전에 고객 100명과 함께 먼저 테스트한다'

2. 부서별 맥락에 맞게 번역하라. "성장"이 재무팀엔 유연한 예산 편성을, 운영팀엔 공급망 효율화를, HR팀엔 인재 파이프라인 확대를 의미하도록 구체화하라. 

3. 관찰·측정 가능한 행동으로 만들라. 예를 들어 '협업'을 '내 업무가 아니어도 고객 불만을 공유한다'는 구체적 행동으로 정의하라.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내가 사는 세상의 한계를 규정한다."라고 말했는데요, 경영의 관점에서 이를 해석하면 "용어 정의를 어떻게 하냐가 경영의 성과를 규정한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쟁영화를 보면 작전 직전 부대원들이 시계를 맞추는 장면이 나옵니다. 약속된 공격을 약속된 시간에 수행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화기와 훌륭한 작전도 소용없습니다. 서로 다르게 알고 있는 용어의 정의를 맞추는 것, 이것이 경쟁이라는 소리 없는 전쟁에 나서기 전 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명료한 정의가, 그리고 그 정의가 구체적 행동으로 연결될 때, 전략은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끝)


<나의 첫 경영어 수업> 책 보러가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928961

[기업 교육 계획서]  AI를 활용한 시나리오 플래닝
여러분의 조직에 방문해 내부 직원 대상으로 'AI를 활용한 시나리오 플래닝' 강의를 별도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위의 버튼을 클릭하면 '교육계획서'를 다운 받으실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운영하는 출판사 '경다방'에서 신간이 출간됐습니다. 타로 혹은 수비학에 관심을 가진 분들, 타로 수비학이 아니더라도 삶의 조언을 구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는 책입니다. 페친 여러분의 구매와 열독을 부탁 드립니다.


'유정식의 경영일기' 모두 읽기
지금까지 발행된 경영일기를 몰아보시려면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세요. 놓치신 글들을 모두 읽으실 수 있습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구독하라고 많이 소개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