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은 켄싱턴 공원의 연장선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조민석, 군도의 여백, 서펜타인 파빌리온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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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공동체적 문명 공간'이고 이는 한국의 '밥상' 개념과도 연관된다"
H(Hans Ulrich Obrist): 이곳에서는 모두가 각자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어요. 마당에 앉거나 걸을 수 있고, 책이 잔뜩 쌓여 있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볼 수도 있죠. 곳곳에서 사운드트랙을 들을 수도 있고요. 여기 뒤에 있는 놀이터에 갈 수도 있으며, 이 공간에서 차나 커피를 마실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이러한 선택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할 때, 센트럴 파크를 설계한 프레드릭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를 언급한 것이 흥미로웠어요. 센트럴 파크와 켄싱턴 가든은, 공원이 가진 본질적 특성인 ‘공동체적 문명 공간’이라는 점에서 서로 연관되어 있죠. 저 또한 이 파빌리온이 아주 사교적이라고 느껴져요. 당신은 이런 부분이 옴스테드와 연결될 수 있다고 했어요. 이를 '조직된 사교성'이라고 불렀고요.
C(조민석): 그건 옴스테드의 용어고, 저는 그 말을 인용했을 뿐이에요. 그는 정치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타임즈'에 글을 썼고, 당시 영국 남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시민 상황, 노예제도 등을 관찰했죠. 그리고 저는 센트럴 파크 디자인의 동기가 다른 경쟁작들과 달랐다고 생각해요. 다른 작품들은 매우 형식적인 영국 또는 프랑스 정원이었지만, 그는 인위적으로 다정한 환경을 만들어서 모두를 함께 모이게 했어요.
그리고 여기 ‘마당’은 켄싱턴 공원의 연장선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공간이 공원 구조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도시 인프라의 일부로서, 공원과 공원 내 보행자 활동을 위해 만들어졌고요.
우리의 아이디어는 다양한 삶의 배경을 가진 모든 사람을 이곳으로 모아,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곳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었어요. 마치 한국의 ‘밥상’ 문화처럼, 테이블에 약 20가지 음식이 놓여 있고 각자 취향에 맞는 코스를 만드는 거예요. 뛰어난 요리사가 만든 음식 경험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것과는 다릅니다. 물론 때로는 그런 대단한 음식 경험도 좋지만, 일상적인 음식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저는 이런 방식이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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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의 도서관(The Library of Unread Books)과 서울의 도서관 붐"
H: 파빌리온의 '재료'에 대해서 이야기할 시점인 것 같네요. 처음부터 이 공간이 콘텐츠를 생성하는 기계가 되기를 원하셨죠. 실제로 여러 면에서 그렇게 되었고요. 처음에 당신이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함께 브레인스토밍하다가 제가 헤만 총(Heman Chong)과의 협업을 제안했습니다. (…) 헤만 총은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예술가이고, 그는 기록 보관가 르네 스탈(Renée Staal)과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읽지 않은 책의 도서관(The Library of Unread Books)'프로젝트*는 도서관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었어요. 이 도서관은 읽지 않는 책을 기부받아 비치해두고, 계속해서 성장하는 공동 지식의 아카이브를 생성했습니다. 저는 헤만 총과의 연결을 주선했고 이번 파빌리온 안에 해당 도서관이 들어오게 되었죠. 앞으로 더 많은 책이 추가될 예정이니, 꼭 다시 오셔서 많은 변화를 직접 체험해 보시길 바라요. (...이어서 갤러리에 대한 언급을 하였음)
C: 도서관과 갤러리를 같이 언급해 주셔서 좋네요. 저는 이 둘이 한국 정자의 전통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풍경 속에 돌 받침 위에 소박한 나무 구조물을 세웠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곳에서 춤을 만들거나 시를 쓰기도 하죠.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늘 학문, 문학 활동과 연관되어 있었죠. 글쓰기는 서예처럼, 독서는 노래처럼, 노래는 낭송처럼 서로 구분 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어요.
그리고 요즘 서울과도 관련이 있어요. 최근 아주 작은 도서관들이 서울 곳곳에 생기는 좋은 현상이 유행하고 있어요. 이런 도서관 프로젝트를 진행한 건축가 중 김정임 씨가 있는데, 저와 오래된 친구이기도 하고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어서 그가 더 많은 설명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네요. 한 뉴욕 타임즈 기사는, 이를 디지털 혁신으로 유명한 도시에서 아날로그적 변화가 일어난 현상이라며 완벽하다고 표현했어요. 디지털 피로가 만연한 도시라, 아날로그 요소인 도서관이 더 잘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신 덕분에 르네 스탈, 헤만 총과 연결되어서 정말 기뻤어요. 그들의 도서관은 공공 공간에서 자유롭게 책을 가져가 읽을 수 있는 미발견된 지식의 공유 공간이죠. 정말 흥미로운 프로젝트예요.
* 읽지 않은 책의 도서관 프로젝트에서 ‘읽지 않은 책’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이 아직 읽지 않은, 즉 잠재적인 지식과 정보의 저장소로서 기능하는 책들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누군가가 읽지 않았던 책을 자유롭게 가져가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이는 ‘공공의 지식을 공유하고, 모든 사용자가 새로운 정보를 탐색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였다. 즉, 기존 도서관의 형태(책 보관)를 넘어, 사람들 간의 지식 공유와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장소를 디자인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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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진행중인 '읽지 않은 책의 도서관' 프로젝트 ©Heman Ch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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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재료"
C: 건축 재료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고트프리드 젬퍼가 말한 4가지 건축 요소*가 떠오르네요. 4가지 요소로는 돌로 된 기단(스테레오토믹), 목재(텍토닉), 그리고 패브릭이나 태피스트리라고 불리는 직물 요소(텍스타일)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여기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화로) 입니다.
당시 맥락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고트프리드 젬퍼의 이론이 제시된 시기가 1851년이었죠. 이때는 수정궁(Crystal Palace)이 바로 근처에서 생긴 시기입니다. 산업 혁명의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며 철강과 유리로 건축된 현대적 건축물이 등장한 거죠. 그 시대의 ‘힙스터’가 독일 출신인 듯한데, 젬퍼는 그 시절에 로지에의 원시 오두막으로 돌아가, 인류학적 관점에서 가장 원초적인 형태를 탐구한 것입니다. 당시 대부분이 기술 요소에 관해 논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1800년대로 돌아가 생각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고트프리드 젬퍼 건축의 4요소: 바닥 - 석재가공, 스테레오토믹 / 지붕 - 목재 가공, 텍토닉 / 벽 - 직물 제작(피막), 텍스타일(패브릭) / 화로 - 금속 세공, 도기제작
*로지에의 원시 오두막은 건축의 가장 단순하고 원초적인 형태를 상징한다. 그는 기둥, 보, 지붕이라는 3가지 기본 요소가 건축의 본질을 이룬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요소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이 건축의 이상적인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로부터 100여 년 후, 독일에서 텍토닉 논쟁이 있을 때 젬퍼는 '건축의 첫 번째 요소가 화덕, 두 번째 요소가 카페트다'라고 했다. 화덕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공동체 생활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은유하고 있다. 이는 건축이 인간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또한 카페트는 공간을 감싸는 피막, 텍스타일을 은유하고 있다. 공간을 세우는 뼈대를 감싸는 장식 요소가 예술의 형태로 발현되어, 건축의 장식적인 측면에 큰 중요성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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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전통 곡물 저장소의 모습 ©(좌) RIC, photographer Charles Woolf (우) wealddow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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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돌 기단(스테레오토믹)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한국은 바위와 산이 많기 때문에 늘 풍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했죠. 영국에도 습기나 곤충을 피할 수 있도록 바위 위에 떠 있는 형태로 설계된 아름다운 곡물 저장소 건물이 있더군요. 결국, 본질적 층위에서 보면, 한국의 전통 돌 기단과 영국의 전통 곡물 저장소는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또, 이번 서펜타인 파빌리온에는 텍토닉 요소로서 목재와 함께, 외피(텍스타일) 요소도 있습니다. 오랜 경험을 통해 비를 막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아름다운 천막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폴리카보네이트를 선택한 이유는 100%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VC와 동일한 특성이 있죠.
그리고 약간의 장난기 섞인 선택이었는데, 강당에는 특유의 색감이 있는 스크린을 설치했습니다. 이 스크린이 인스타그램 필터 역할을 한다고 농담하기도 했죠. 장밋빛 색 덕분에 사람들이 더 예뻐 보이거든요. 티하우스에는 너무 강한 햇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선글라스 창을 만들었는데, 이 선글라스가 너무 흐려져서 ‘리히터 뷰(Richter View)’*라고 부르곤 해요.
*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대표 시리즈 중 하나인 포토 페인팅을 떠올리고 언급한 듯하다. 그는 사진 속 풍경이나 대상을 캔버스에 그대로 옮기되, 흐릿하고 불분명하게 표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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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hard Richter, Meadowland (572-4), 1985 © Gerhard Richter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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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의 여백'이라는 제목의 기원"
H: 끝내기 전에 꼭 다뤄야 할 부분이 있죠. 많은 분이 제목이 “Archipelagic Void”인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셨을 것 같습니다. 먼저, '군도' 개념은 에두와르 글리상(Édouard Glissant)*의 아주 아름다운 인용구에서 출발했어요. "오늘날 우리의 세계, 즉 관계와 리좀으로 구성된 군도의 세계에서, 건축의 기본과 역할은 더 이상 기념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이번 프로젝트가 파빌리온 역사에서 두 번째로 군도와 연결된 사례라는 것이에요. 3-4년 전, 수마야 발리(Sumayya Vally)가 디자인한 파빌리온*은 사이트에 군도를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런던에 작은 섬들을 만들었습니다. 반면, 당신은 마당을 중심으로 공원에 군도를 형성했어요. 제목을 짓게 된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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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모든 게 다 당신 덕분이에요 정말. 지난해 당신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원불교 법당 사원을 함께 구경하면서 에두와르 글리상과 당신의 대화를 담은 책인 <Archipelago>를 선물해 주셨어요. 정말 아름다운 책이었습니다. 스마트폰보다도 작은 크기로, 들고 다니기 쉬웠고 읽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어요. 그 후 서펜타인 파빌리온 제안서를 제출하라는 초대를 받았는데, 당시 그 책을 읽어보니, 우리가 제안하려 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더군요. 언급한 인용문과 함께 ‘보이드(여백)’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어요.
저는 그 책이 완전한 유토피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건 20세기 파빌리온과 관련이 있고요. 로마 유적지, 중국의 정자 그리고 불레(Étienne-Louis Boullée)*처럼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파빌리온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한국 문화에서 파빌리온(정자)은 다른 세계가 아니라 여기와 지금, 우리가 실제로 볼 수 있는 것과 관련이 있어요. 건축으로 천국을 만들 필요가 없는 거죠. 그저 주변을 발견하고 우리가 있는 이곳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 책은 저에게 어떤 계시였어요. 왜냐면 전 90년대 초 콜럼비아 대학교을 다닐 때, 데리다와 들뢰즈같이 서구 문화권에서 중요한 철학가들의 책을 읽고 자랐는데요. 그 당시에는 다른 평행 세계(동양)의 존재를 간과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 대단한 철학가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저만의 내러티브를 찾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 경험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해요. 제목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거만한' 제목이라고 평가했지만, 이것이 제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강조하고 싶어요.
*수마야 발리 파빌리온: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계획하고, 파빌리온과 비슷한 형태의 조각들을 런던 곳곳에 배치했다.
*에두와르 글리상: 카브리해 섬 마르티니크(프랑스령) 출신의 프랑스 작가, 시인, 철학자, 문화 평론가이다. 그는 박물관을 세계의 모든 문화와 상상력이 서로 만나고 들을 수 있는 ‘유토피아적 장소’로 여겼다. 또한, 박물관에서 이뤄지는 모든 전시가 각 섬 간 문화적 교류를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군도'라 말한다. 각 섬이 가진 정체성은 교류를 통해 변화하지만 희석되진 않는다.
*에티엔 루이 불레: 18세기, 기하학과 질서를 통해 급진적인 건축을 제안한 페이퍼 아키텍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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