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레터 79호
2024/7/2
리튬 배터리 제조업 화재 참사를 지켜보며
김양우

지옥의 현현


2024년 6월 24일, 화성의 배터리 공장에서 수십 명의 노동자가 좁은 공간에 갇혀, 천 도가 넘는 불길과 검은 연기에 휩싸여 숨졌습니다. 단순하게 상황만 기술하여도 눈 앞에 지옥이 현현한 것 같은 공포와 고통이 느껴집니다. 감각이 마비되는 듯한 초현실적인 상황이지만, 누군가는 현장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가야 합니다. 가장 먼저 소방공무원들이 가스와 불길을 뚫고 들어갔습니다. 산업보건에 종사하는 우리들도 각자의 방식대로 지옥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리튬 배터리 제조업, 불법 파견 (또는 도급), 외국인 노동자 등 몇 개의 키워드만 놓고 보아도 정말 많은 것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지옥 속으로 들어가서 문을 굳게 걸어 잠그지 않는다면, 똑같은 지옥이 또다시 열릴 것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기사] BBC코리아, 화성 아리셀 공장 대형 화재... 리튬 배터리, 왜 화재에 취약한가?

[기사] 연합뉴스, 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38명 사망…지하 2층서 폭발(종합2보)


이번 사건에서 짚어 봐야할 주제는 정말 많지만, 배터리 제조업과 리튬 배터리 화재로 좁혀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우선 기본으로 돌아가 배터리가 무엇인지 살펴본다면 전체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배터리의 기본원리


배터리는 한국어로 전지(電池)라고 하는데, 이 전지라는 말은 영어로는 셀(cell)과 배터리(battery) 두 가지 단어에 모두 대응하는 번역어입니다. 두 가지로 구분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전지라고 부릅니다. 둘은 어떻게 다를까요?


셀(Cell)은 전기화학 전지(Electrochemical cell)을 줄여서 부르는 말입니다. 전기화학 전지(Electrochemical cell)는 전기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기본 단위가 되는 장치를 말합니다. 다소 개념적인 용어입니다. 

배터리(battery)는 이러한 전기화학 전지를 적절하게 구성하여 실제로 전기 생성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만든 장치를 뜻합니다. 

말이 어렵게 느껴질수 있지만, 전기화학 반응은 본질적으로 산화-환원 반응(Oxidation-Reduction reaction)입니다. 산화 반응은 전자(electron)을 잃는 반응, 환원 반응은 전자를 얻는
반응으로 정의됩니다. 서로 떨어진 화합물 사이에 적절한 처리를 하고 전자가 이동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으면 산화-환원 반응이 일어나면서 전자가 이동하게 됩니다. 즉, 화학
반응이 일어나면서 전류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배터리의 기본 원리입니다.

전류는 양극에서 음극으로 흐르지만, 전자의 이동은 반대 방향입니다. 전자를 받는 쪽, 환원 반응이 일어나는 장소가 양극(cathode)이 되고 전자를 주는 산화 반응이 일어나는 장소가 음극(anode)이 됩니다.



최초의 전지


가장 원시적인 전지는 갈바니 전지(Galvanic cell)로, 양극재는 구리(Copper), 음극재는 아연(Zinc)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전하를 띄지 않는 원자나 분자가 전자를 잃거나 얻게 되면 전하를 갖는 이온이 됩니다. 따라서 아연 금속 원자가 전자를 잃으면 아연 금속 이온이 되어야 하고, 여분의 전자를 받을 수 없는 금속 원자이기 때문에 구리 이온이 전자를 받아 구리 금속 원자가 되어야 합니다. 


갈바니 전지에서 음극에서는 아연 이온이 생기고, 양극에서는 구리 금속이 생겨난다는 것이지요. 구리 금속이 생길수 있도록 구리 이온을 공급하고, 아연 이온이 안정적으로 존재하도록 하는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갈바니 전지는 황산구리 수용액을 사용하여 아연 이온을 안정화시키고 구리 이온을 공급하는 방안을 찾은 결과입니다.


산화-환원 반응이 지속될 수 있는 매개 역할을 하는 황산구리 수용액과 같은 매개체를 전해질(electrolyte)이라고 합니다. 배터리 기술의 핵심은 어떤 양극재, 음극재를 쓰느냐와 함께 전해질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있습니다.


배터리 상용화 단계에서 직면한 문제와 해법


배터리가 상용화 단계에 이르면서 크게 세가지 문제에 직면합니다.

첫 번째는 이 전해질을 어떻게 안정화시킬 것인지,

두 번째는 배터리재사용할 수는 없는지,

세 번째는 충분한 전력을 제공하는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첫 번째 '전해질 안정화'는 알칼리인 수산화칼륨을 활용한 전지를 개발하여 해결하였습니다. 수산화칼륨은 겔(gel) 형태로 보존할 수 있어 황산 용액에 비하면 훨씬 안정적인 물질입니다. 이러한 배터리를 알칼라인 배터리(alkaline battery)라고 하며 오늘날 가장 널리 쓰입니다. 최초로 알칼라인 배터리를 만든 사람 중 한 명인 토마스 에디슨은 이 알칼라인 배터리를 Exide라는 상품명으로 생산하였습니다. Exide는 미국에서 가장 큰 배터리 회사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배터리 재사용'은 배터리에 역으로 전류를 흘렸을 때 산화-환원 반응이 반대로 일어나도록 하여 해결하였습니다. 그 결과 납과 황산 수용액을 사용한 납축전지(lead-acid battery)가 가장 유명해졌습니다.  충전이 가능한 배터리를 이차 배터리(secondary battery)라고 하며, 충전이 불가능한 배터리를 일차 배터리(primay)라고 합니다.



리튬 배터리의 원리


마지막 '충분한 전력공급'리튬에서 해법을 찾습니다. 리튬을 활용하기 전까지는 중금속 만으로는 충분한 전압을 형성하기 어려웠습니다. 기존의 중금속 전지로는 형성가능한 전력(power)은 기껏해야  전조등을 밝히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리튬 배터리의 등장으로 이 전력은 획기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리튬은 원소기호 3번으로 가장 밀도가 낮고 원자의 크기가 작은 금속입니다. 그래서 전기화학적 포텐셜(electrochemical potential)이 매우 크고 무게 대비 효율이 가장 높기 때문에 리튬을 배터리에 사용하려는 시도는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리튬은 반응성이 커서 어떻게 안정화시킬 것인가가 관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안정화를 위해 리튬 배터리에는 복잡한 화학 기술이 많이 동원되었습니다. 그 노력의 결과로 리튬을 코발트 산화물과 결합시켜 이온 상태로 유지하도록 하여, 이를 양극재로 활용한 리튬-이온 배터리가 개발되었습니다. 이 혁신적인 발명의 공로로 John B. Goodenough 등 세 명의 과학자는 2019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충전이 가능한 이차전지입니다. 반면, 리튬 금속 전지는 이온 상태가 아닌 리튬을 음극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충전이 불가능한 일차 배터리입니다. 리튬 금속 전지는 사용되는 양극재와 전해질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주로 할로겐화 화합물양극재와 전해질로 사용됩니다.


이번 화재 사건이 발생한 공장에서 제조한 배터리는 리튬 금속 배터리이며, 염화 싸이오닐(Thionyl chloride; SOCl₂)이 양극재로, 리튬 테트라클로로알루미네이트(Lithium tetrachloroaluminate; Li[AlCl₄])가 전해질로 쓰인 E타입 배터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라표준인증, KS고시, 일차전지 — KS C IEC60086-1제1부: 일반사항



배터리 제조업의 주요 산업재해와 환경오염


산업보건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배터리의 원리를 공부한다면, 얼마나 많은 산업재해와 환경오염 문제가 발생했을 지 직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금속은 오랫동안 배터리의 기본 요소였습니다. 최신 기술인 리튬 배터리도 리튬의 높은 반응성, 그리고 이를 안정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중금속 및 다양한 할로겐화 화합물도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제 배터리와 관련된 주요 환경오염사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2010년 이후 확인된 미국의 최대 납축전지 제조업체인 Exide의 환경오염 사건입니다.

납축전지는 제조뿐만 아니라 충전을 위한 재활용 과정도 중요한데, 재활용 플랜트 일대가 납과 비소로 광범위하게 오염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심각한 오염이 발생하였습니다. 캘리포니아 독성 물질 관리 부처(Department of Toxic Substances Control; DTSC)와 미국 환경보호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US EPA)이 공동으로 조사와 제염을 실시하였습니다. 2022년 7월, 이 사건은 국가 우선 순위 리스트(National Priorities List; NPL)에 등록되었습니다.


[위키피디아] Exide 납오염 사건

[홈페이지] CA DTSC Exide Home (DTSC의 토지 복원 및 청소프로그램)

[EPA 홈페이지] Exide 배터리 재활용시설 폐쇄(Decommissioning of Former Exide Battery Recycling Facility)



또 다른 사건은 2019년 4월, 미국 애리조나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공공 서비스(Arizona Public Service)의 전기 시설에서 보관 중이던 리튬 이온 배터리에서 발생한 화재입니다. 이 화재로 인해 유해 화학 물질 전담 처리반(HAZMAT) 소속 소방관 4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고는 리튬 이온 배터리의 열 폭주(thermal runaway) 현상으로 인해 갑작스러운 폭발이 발생하여 일어났습니다. 리튬은 산화-환원 반응을 일으키려는 포텐셜이 큰 물질로, 반응 시 매우 많은 양의 열을 발생시킵니다. 발생한 열이 주변 리튬의 반응을 촉진시켜 연쇄적인 발열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열 폭주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배터리 주요 제조업체인 LG화학, 애리조나 주 정부, 소방 연구기관이 각각 보고서를 제출하였고, 배터리 결함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기사] 폭발적인 리튬 이온 에너지 저장 사고를 촉발한 원인에 대한 분쟁 발생

[논문] 리튬 이온 배터리의 열 폭주 방지 및 완화 전략 검토. 2022

[홈페이지] 소방관 국제연합(IAFF) HAZMAT(유해물질) training



마지막으로 2023년 10월에 미국 조지아 주 리튬 이온 배터리 공장 화재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 US OSHA)의 조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건은 SK 배터리 미국 법인이 운영하는 SK ON 공장에서 발생했습니다. 리튬 이온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크게 번지지 않아 자체적으로 진압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OSHA는 이 공장에서 사업주의 중대한 위반 사항을 발견하여, 2024년 4월에 77,200달러의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근로자들이 불화수소 가스에 노출되었고, 구호 조치, 탈출 경로, 교육 등이 완비되지 않은 점이 주요 위반 사항이었습니다.




제언


미국에서 발생한 리튬 이온 배터리 관련 사건들이 모두 한국 기업과 관련이 있습니다. 첨단 배터리 제조업이 한국의 주요 산업이 되었다는 사실과 한국의 산업 구조와 노동 환경이 얼마나 다변화되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산업보건은 급격한 산업의 발전 속도에 허덕이면서 꽁무니를 쫓을 수 밖에 없고, 이번에도 노동자들의 피로 무언가를 써내려갈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써내려 갈 내용이 너무 많겠지만, 산업보건 측면에서 몇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첨단 배터리 제조업에서 사용하는 유해인자와 직업성 노출에 대한 실태 조사가 필요합니다. 열악한 근무 환경이 확인된 만큼 직업성 질환의 위험을 파악해야 합니다.


둘째, 생존자에게 노출될 수 있는 직업성 노출과 트라우마에 대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생존자 보호에 최선을 다함과 동시에 어떤 종류의 직업성 노출의 개연성이 있는지, 증상은 없는지 코호트를 구축하고 데이터를 확보하여 관련된 다른 재해에 대비해야 합니다. 


셋째, 화재 진압에 출동했던 소방공무원들의 건강 관리도 필요합니다. 22시간의 진압 동안 고열과 화학 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에 대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더불어 이러한 특수 화재에 대비한 별도의 교육이나 팀 구성에 대한 장기적 대책도 수립해야 합니다.


넷째, 첨단 배터리 제조업에 대한 산업안전보건 포털이 필요합니다. 2017년에 같은 배터리를 제조하는 업체에서는 대형 화재 이후 자체적으로 기준을 만들어 화재 예방을 했습니다. 대기업들도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규제에 대비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기준과 연구를 진행했을 것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이러한 협조를 구하여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규제 마련과 정보 제공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OSHA를 모델로 한 포털을 구축하기를 바랍니다.


[KBS] 경쟁사도 과거 큰 불…“건물 분산 배치로 피해 최소화”

[OSHA] Battery Manufacturing



이런 큰 재난이 발생하면 우리는 원인을 분석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오를 다집니다. 책임자를 처벌하고, 규제를 정비하며,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겠지요.


하지만 반대로 다음에 이러한 일이 언젠가는 반드시 발생할 것이고, 우리는 언제나 뒤를 쫓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이미 지옥이 현현하였음을 인정한 뒤에 이번 사건을 바라본다면 오히려 더 보이는 것이 많지 않을까 감히 말해봅니다.  


글쓴이: 김양우 (한양대 구리병원 직업환경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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