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의 요청으로 하루 종일 서울에 다녀온 아내가 아랫마을에 이른 것은 밤 9시 경이었습니다. 근처 국도변의 농협에서 돈을 찾기 위해 현금인출기에 카드를 넣었습니다. 갑자기 카드를 삼켜버린 인출기는 그와 동시에 모든 작동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인출기에 적힌 비상번호를 찾아 전화했고, 기술자가 도착하기까지 기다리라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기술자가 인출기를 초기화한 다음에야 아내의 카드가 나왔고, 그때의 시각은 밤 10시였습니다. 인출기가 삼킨 카드를 되찾기까지, 아내는 무려 1시간이나 속절없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거창에서 서울에 다녀오느라 파김치가 된 아내가 늦은 밤, 집을 지척에 두고 카드를 삼킨 인출기 탓에 1시간이나 기다리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힘듦 덕분에 그 다음 고객(필경 이튿날 첫 고객)은 아무 문제없이 현금인출기를 이용하였을 것입니다. 내가 까닭 없이 힘든 일을 당할 때 그 힘듦이 누군가를 위한 봉사이며, 내가 무슨 일을 하든 그 속에 앞선 사람의 힘듦이 전제되어 있음을 자각하며 산다면, 올해는 분명히 새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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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책]
현대 문명의 기반이 구축되던
"뿌리이자 출처이며 어린 시절"
중세의 성격을 명료하게 규정하려면 많은 부분을 생략하거나 왜곡을 각오해야 가능하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중세는 한 사람의 육체 및 사고의 골격과 근육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한 인간에게 과거의 시간은 흘러가 사라져버리지 않고, 내부에 축적되며 다양한 특성으로 발현된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다양한 경험과 성장통이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불가피한 과정이었음을 회고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세는 현대 문명의 기반이 구축되던 "뿌리이자 출처이며 어린 시절"이었다. 《중세와 그리스도교》는 제1부에서 그리스도교 세계가 형성되는 300년에서 750년경 사이를 들여다본다. 이 시기는 고대적 요소와 중세적 요소가 중첩된 이행기로서 서양 라틴 문명의 유년기이다. 제2부는 1050년경까지이며 카롤링 왕국이 라틴 그리스도교 세계를 통합해 가고, 이슬람 세계가 급속히 성장하던 때이다. 봉건제가 성장하고, 그리스도교 세계의 외연이 대략 확정되었다. 동서 그리스도교 세계는 1050년경 분열이 확정된 때이기도 하다. 제3부는 11세기에서 13세기로 중세 유럽의 전성기이다. 이민족의 침입 위협이 서유럽에서 사라졌고, 경제적으로 풍요했으며, 교황이 그리스도교 세계의 수장이자 세속에 대해서까지 권위를 행사하던 때이다. 십자군 원정이 당시의 모순을 노출시킨 때이기도 하다. 제4부는 14, 15세기에 해당하며, 지속되던 성장이 정체된 시기이다. 환경적 요인과 아울러 앞 시기의 모순이 분출하면서 대전환을 맞은 시기로 요약된다.
박흥식 지음 | 536쪽 | 2024년 1월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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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주와 오후의 정원]
이덕주, 전 감신대 교수
지난여름 평택지방 부흥사경회 강사로 초빙을 받아 갔을 때 일이다. 둘째 날 저녁 집회를 앞두고 식당에서 지방 임원 목사들과 식사하던 중이었다. 식당 밖에서 갑자기 "끼이익!" 하더니 "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 동시에 "으아악! 우리 아기, 어떡해! 우리 아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교통사고였다. 식당 종업원은 물론이고 식사하던 사람들도 우르르 몰려나갔다. 그리곤 얼마 후 들어와 실황 중계하듯 바깥소식을 전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댓살 먹은 어린 아기가 부모의 손을 놓고 길을 건너 뛰어가다 과속으로 달려오던 승용차에 받혀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 있고 그걸 본 부모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부짖었다. 다행히 연락을 받은 119 구급차가 급히 달려와 응급조치를 하고 아이와 부모를 싣고 떠났다. "이미 죽었는지도 몰라", "평택엔 큰 병원이 없는데, 어쩌지?" 종업원들의 걱정스런 대화로 상황은 종결되었다. 불과 10분 동안의 소동이었지만 그 사건은 내게 '잠 못 이루는 밤'의 고뇌를 안겨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 순간부터 "사고 순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사고를 당한 아이나 애타게 울부짖는 그 부모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밖으로 나가본들 다른 사람들처럼 구경밖에 할 것이 없었다. 결국 난 자리에 앉아 내키지 않는 젓가락질만 계속하였다. 그런 내가 비겁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자괴감에 무력감이 더했다. 그날 저녁 집회 내내, 그리고 집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엉거주춤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들지 않았다. 선잠에서 깨어난 새벽 이른 시간, 속 깊은 곳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부터 소리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넌, 누구냐?" "은퇴했지만 목사지요." "그래, 목사라면 그 순간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 그러했다. 목사라면 그 순간 구경도, 식사도 아닌 기도를 했어야 했다! 생명과 영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자비를 베푸시어 아이를 살려주시어 그 부모에게서 희망의 싹을 거두지 말아달라고 기도했어야 했다. 동석했던 목사들과 간절한 마음으로 합심기도를 했어야 했다. 난 그걸 못했다. "너, 목사 맞아?" 난 여전히 '덜 된 목사'였다. 그걸 깨닫는 순간 회개가 터져 나왔다. "난 아직 멀었습니다. 난 그런 놈입니다." 그러자 "알면 되었다. 다음부터 잘 해!"란 음성이 들려왔다. 사흘 째 마지막 날 저녁집회는 나의 죄책 고백으로 시작되었다. 그날 사건은 나로 하여금 행위(doing)와 존재(being) 사이에 무엇이 우선인지를 재확인시켜 주었다. 복음서에서 주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행위의 문제, 즉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칠까요? 말까요?"(마 22:17),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눅 18:18),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돌을 던질까요? 말까요?"(요 8:5)라고 질문했다. 주님은 그런 질문을 존재의 문제로 바꾸셨다. "황제의 사람이면 황제에게로, 하나님의 사람이면 하나님께 충성할 것이다." "물질의 사람은 물질적인 것을, 영의 사람은 영적인 것을 구할 것이다." "의인이라면 의인답게, 죄인이라면 죄인답게 처신할 뿐이다." 행위의 문제를 존재의 문제로 풀어가라는 가르침이었다. 현역 때는 "어떻게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행위 문제로 고민했다. 그래서 성취와 소유로 성공 여부를 따졌다. 그러나 은퇴 후 바뀌었다. 얻는 것보다 버리는 것,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참 행복인 것을 깨달아가는 요즈음, 일이 닥칠 때마다 던지는 질문은 오직 하나다.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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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저자의 일상]
▷ 《화진포의 성》은 누구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우리나라 초대 의료 선교사로 온 닥터 홀(Dr. Hall) 가의 2대에 걸친 이야기입니다. 제가 퇴임하고 고향 고성에 내려가 있을 때 화진포 호수 위에 세워진 화진포의 성을 보면서 지으신 분이 셔우드 홀(Sherwood Hall) 선교사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저분들의 선교 사역을 글로 써서 알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어두운 시절에 우리나라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학교를 짓고 또 전염병을 퇴치하고 의식을 계몽해주신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오늘을 사는 우리가 꼭 다시 반추해야겠다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조선회상》을 쓴 닥터 셔우드 홀 선교사님의 전기를 각색해서 사실 그대로 쓴 전기소설입니다.
▷ 선교사님들이 하신 일 중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어머니 선교사가 처녀로 먼저 서울에 오셨습니다. 한양이죠. 로제 닥터가 약혼한 상태에서 먼저 서울에 오시고 닥터 제임스 윌리엄 홀이 중국으로 가게 되었는데 약혼녀가 있는 한양으로 가겠다고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했고 그것이 이루어져 한양에 와서 결혼을 하게 됩니다. 아들 셔우드 홀을 낳게 되죠. 그리고 그분들이 평양을 개척합니다. 평양에서 최초의 여성병원인 광혜원을 만들고 맹아학교도 만들어서 의료 봉사 선교 활동을 하다가 너무 안타깝게도 아버지 제임스 윌리엄 홀이 34세의 나이에 청일전쟁 부상자들을 치료하다가 전염병에 걸려 순교합니다. 로제 홀은 애기 하나 낳고 뱃속에 있는 유복녀를 두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실의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다시 사명을 깨닫고 유복녀를 낳고 다시 아이 둘을 데리고 조선으로 옵니다. 그 후 의료 활동을 하시면서 의과 전문학교도 세우셨는데 그것이 지금 고려대 의대 전신입니다. 그 아들 셔우드 홀은 결핵 퇴치로 크리스마스 씰을 최초로 만들어서 해주에 결핵요양원을 세우고 결핵 퇴치로 큰 공을 세우죠. 나중에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려고 침략 야욕을 하여 선교사들을 다 추방시킬 때인 1940년도에 추방을 당합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끝까지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인도 아즈메르에 있는 결핵 요양원에 가서 평생을 선교하는 대단한 믿음의 선교사의 이야기죠.
닥터 홀 가 그분들이 지금 양화진에 잠들어 계십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며느리 선교사님과 여기 와서 잃은 자녀 둘 여섯 식구가 양화진에 묻혀 있습니다.
▷ 책을 통해 바라는 점
먼저, 믿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다시 초대 선교사의 믿음의 열정으로 자신의 믿음을 추스르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선교사의 삶을 살아주길 바랍니다. 믿지 않는 분들은 '선교사님들이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나라를 사랑해서 예수님의 행적을 써가셨구나', '이분들이 하신 일이 예수님이 하신 일이구나' 하며 예수님을 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일성이 휴양을 하고 갔다고 해서 화진포의 성을 김일성 별장이라고 하는데, "화진포의 성"이라는 이름을 바로 찾아서 전국 방방곡곡에, 해외에서 오신 분들께도 그 이름을 찾아주었으면 합니다.
※ 내용 출처: 2023년 강원교육자선교회 새빛나캠프
※ 이미지 설명: 1932년부터 결핵 퇴치 기금을 모으기 위해 발행된 크리스마스 씰들. 왼쪽부터 남대문(1932), 캐롤 부르는 소년소녀(1933), 아기를 업은 여인(1934)의 모습이다. 씰 발행을 허가해주지 않아 첫 씰에는 '해주구세요양원'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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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순간들]
백승목, 그사랑C교회 전도사
사람에게 생기는 모든 문제는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어쩌면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인들의 문제는 조금은 다른 듯(?) 아니 그 이상인 듯 보인다. 그것은 곧 '더 잘 먹고 잘사는 것'에 대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문화는 더 잘 먹고 잘사는 그럴 듯한 삶에 포커스를 맞추고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경제의 논리가 되고 문화의 논리가 되는 것만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그러한 세상의 논리가 왜 우리에게 씁쓸한 것이 되어야 하는가? 더 나은 좋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 죄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는 세상 속에서 구별된 그리스도인이다.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세속에 물들어 있는 우리를 하나님의 세계로 다시 초대한다. 하나님의 언어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하나님이 그분의 사람들을 결정적으로 부르시는 원리에 대해 말해준다. 그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속에 녹아져 있다고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속 빈 들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 말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때로 하찮아 보이는 길가에 버려지는 듯한 들풀조차도 입히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이 세상이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세상은 온통 인간세계의 모든 영광의 주인공인 솔로몬의 화려한 영광을 좇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과 다른 이 놀라운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비전이 되어야 하며, 그것이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해야 될 의미와 목적이 될 것이며, 그 사명을 이루어나갈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주님의 사람과 교회가 무엇이며 그것이 하나님과 나란 존재에 어떤 의미이며 그것이 세상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이 귀한 설교들을 통해 다시 한번 복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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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또 멀리]
화살기도
아직도 남아 있는 아름다운 일들을
이루게 하여 주소서
아직도 만나야 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여 주소서
아멘이라고 말할 때
네 얼굴이 떠올랐다
퍼뜩 놀라 그만 나는
눈을 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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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나옵니다
𝓃𝑒𝓌 전도의 정신
130년 전, 예수를 만난 일본의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의 전도 정신 선언문. '생계', '명예', '교회', '나라'를 위한 전도가 횡행하는 현실은 130년 전 일본이나 지금 한국이나 다르지 않다. 일본이 낳은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는 전도자는 물론 모든 기독인이 갖추어야 할 '전도의 정신'과 전도자의 '신체 조건과 기질', '지식', '경험'을 논하고 있다. 진정한 전도는 '하나님'과 '사람'을 위한 것이다.
우치무라 간조 지음 | 188쪽(예상) | 2024년 1월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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