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M 다큐, 혹시 저를 아세요?, 디 엔드, 빛이 산산이 부서지면, 메소드연기 10월 5일부터 10월 7일 사이에 본 영화들 |
|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0월 5일부터 10월 7일까지는 다음 다섯 편을 보았습니다. 원래는 월요일 늦은 밤에 보내드리려고 했는데요. 스티비에서 안내해주신 서버 점검 시간과 혹시라도 겹칠까봐 오늘만 화요일 아침에 발행 합니다. 그럼 저는 다음 영화를 보러 출발해보겠습니다!
🎥 <알엠: 라이트 피플, 롱 플레이스>(2024년 12월 국내 개봉 예정)
🎥 <혹시 저를 아세요?>(개봉일 미정)
🎥 <디 엔드>(개봉일 미정)
🎥 <빛이 산산이 부서지면>(개봉일 미정)
🎥 <메소드연기>(개봉일 미정)
|
|
|
04.
<알엠: 라이트 피플, 롱 플레이스 RM: Right People, Wrong Place>
이석준 연출ㅣRM, 산얀, 정크야드, 장세훈, 손지민 등 출연ㅣ80분
정말로 모든 걸 찍었(을 거)다. 10년 넘게 케이팝 업계에 속해 있는 RM은 아직도 카메라가 두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하지만, 동시에 일단 카메라가 돌아간 결과 기록으로 남게 된 엄청난 양의 미편집본들을 살펴봐야 하는 다큐멘터리 PD의 노고를 걱정한다. 극 영화보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는 장르적 편견을 RM은 기꺼이 활용한 것처럼 보인다. 촬영분 중 분명 많은 컷이 버려졌을테지만, 동시에 이 영화는 아주 많은 컷을 살려놓은 듯한 인상을 전해준다. UN 총회에서 유창하게 연설하던 사람의 반듯함은 잘 겹쳐지지 않는다. 헐렁한 모습, 작업의 방향성을 찰진 비속어와 함께 설명하는 모습, 무엇보다 일희일비하는 모습은 반전 매력도 팬 서비스도 아니고 그저 한 사람을 이루는 일부다.
그동안 방탄소년단 멤버로서 1/7을 문제 없이 해내는 것을 자신의 미션으로 삼아왔던 그는 관성을 벗어나 'TEAM RM'을 꾸린다. 다큐멘터리에서도 RM의 지분은 꼭 새로운 팀에서의 1/n만큼을 차지하는데, 그것이 나쁘지는 않다. 지분이 적더라도 그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이 영화가 결과적으로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느 날,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무심코 그가 내뱉은 말을 기억해둔 TEAM RM의 동료 덕분에 솔로 2집의 타이틀 "Right Place, Wrong Person"이 결정 된다. 모든 게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거대한 고양이 포스터를 들고 있는, 영국에서 결혼식의 들러리가 되는 RM은 종종 자신의 나와바리가 아닌 곳에서 'Wrong Person'이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음악을 만드는 일, 그리고 삶은, 언제나 당혹감, 적응, 난감함, 적응의 연속이라는 것처럼.
|
|
|
05.
<혹시 저를 아세요? Do I Know You from Somewhere?>
아리아나 마르티네즈 연출ㅣ캐롤린 벨, 이안 오티스 고프, 맬러리 에머럴트 출연ㅣ80분
'올리브'는 남편 '베니'를 위해 사둔 선물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애를 먹는 중이다. 방을 샅샅이 뒤지다가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고해성사를 한다. 내가 선물을 샀는데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어. 뭘 샀는데? 실은 뭘 샀는지도 기억이 안 나. 오직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 아무런 단서도 가지고 있지 않은 올리브의 분실물 수색 작업은 해피엔딩을 맞이할까? 올리브의 문제는 가벼운 건망증도, 비교적 젊은 나이 치고 앓게 된 알츠하이머도 아니다. 그는 지금 시간여행을 하는 중이다.
<혹시 저를 아세요?>는 순한 데 깊은 맛이 나는 멀티버스 SF 로맨스 드라마다. 시각적으로 부담스러운 블록버스터도, 양자 역학 이론을 일장 연설하는 이과 영화도 아니라는 의미다. 그 대신, 두 시간의 축이 여기서 저기로 전환되는 접합면, 그 찰나의 순간이 감각적으로 구현되어 있기 때문에 그걸 바라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올리브의 직업은 청소년 상담가인데, 이는 공예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그들에게 건네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 담긴 무게감을 잘 알고 있는 아리아나 마르티네즈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설정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공동 프로듀서이자 남편인 고든 미한과 만일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사랑에 빠졌더라도 그들이 함께 영화를 만드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그럼 어떤 삶이 펼쳐졌을까. GV를 통해 마주한 아리아나 마르티네즈 감독은 아직 세상에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길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관객으로서 두가지 삶의 옵션을 바라보는 건 특권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걸 기회비용의 낭비라고 얘기하지 않는, 그런 점에서는 탈자본주의적 관점을 가진 따뜻한 로맨스 영화였다.
|
|
|
06.
<디 엔드 The End>
조슈아 오펜하이머 연출ㅣ틸다 스윈튼, 조지 맥케이, 모세스 잉그람, 마이클 섀넌 출연ㅣ148분
솔직히 처음에는 <듄 2>를 용산IMAX관에서 보았던 날을 떠올렸다. <디 엔드>의 배경은 지구의 종말 이후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가족이 살아가는 고립된 소금 광산인데, 거대하게 축적된 소금들이 견고한 문양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듄>의 모래 벌레가 살고 있다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렇지만 <듄>과 <디 엔드>는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영화라는 점을 우선 분명히 해두겠다...
소금 광산의 고인물 가족은 하나 같이 범상치 않다. 악몽을 꾼 후 과호흡을 하며 깨어나는 '어머니'(틸다 스윈튼)는 미술작품 콜렉터인데 집의 사면이 모두 같은 페인트로 칠해져 있는데도 저쪽보다는 이쪽이 조금 더 어둡지 않느냐는 질문을 한다. 그를 안심시켜주는 역할을 맡은 '아버지'(마이클 섀넌)는 언뜻 보기에는 다정한 남편 같지만 영화의 러닝타임이 너무나도 긴 바람에 뒤로 갈수록 본색을 드러낸다. 두 사람의 '아들'(조지 맥케이)은 착한 성정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가 원하는 방식으로 위기 상황에 대비한 모의 훈련에 임하고, 아버지의 입맛에 맞게 자서전을 대리 집필한다. 종말한 세계이기 때문에 이웃이 없어서 아무에게도 자랑할 수 없는 엄친아 캐릭터랄까. 부모의 기대가 꺾이는 건 어떻게 소금 광산에 들어왔는지 모를 '외부인 여성'(모지스 잉그럼)의 존재 때문이고, 그들은 꼭 첫 번째 데이트 때 <라라랜드>를 보고 나온 사람들처럼 노래하고 춤을 춘다.
뮤지컬 영화여서 갑자기 분위기는 <사랑은 비를 타고>가 되었다가 또 갑자기 <셸부르의 우산>이 된다. '설마 여기서 또 노래를?' 싶을 때 역시 노래를 한다. 솔로 씬부터 단체 씬까지 오리지널 넘버가 알뜰하게 13곡이나 된다. 어쩌면 이 영화 속 뮤지컬 시퀀스들을 유튜브 클립으로 쪼개서 업로드하면 높은 조횟수를 얻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도대체 이들은 왜 노래를 하는가? 뭘 부르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모르겠다. "짓누르는 죄의식을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 결국 자기 부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노랫말로 표현"(박가언 프로그래머) 한 것이라는데, 작곡은 준수하니 작사만 다시 하면 좋을 것 같다.
|
|
|
07.
<빛이 산산이 부서지면 When The Light Breaks>
루나르 루나르손 연출ㅣ엘린 홀, 발두르 아이나르손, 카틀라 질도티르 출연ㅣ82분
나란히 석양을 바라보고, 해가 진 후 함께 집으로 돌아온 연인의 대화는 곧 내일의 할 일을 상기시킨다. 내일이 되면 '디디'는 여기에 없는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할 것이고, 두 여자 사이에서의 양다리를 그만 둔 채 눈 앞의 '위나'에게만 올인할 것이다. 다음 날, 위나는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 예술학 전공자인 그는 수업 시간에 온몸에 테이프를 휘감고 서로를 껴안는 남자들이나, “그, 그녀, 그, 그녀” 등의 가사만으로 이루어진 (아마도 아이슬란드어일) 아카펠라를 듣는다. 그러다 어젯밤에 곁에 있던 '디디'가 운전을 하던 중 터널 사고로 즉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것은 '불행 배틀'보다 더 악질적인 구석이 있는 '애도를 위한 토너먼트경기' 같은 영화다. 친구들 사이에서 디디와의 연인으로 잘 알려진 사이였던 '클라라'는 남자친구의 죽음 앞에서 공개적으로 슬퍼할 수 있지만, 디디와 비밀 연애중이었던 위나는 그럴 수 없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위나 입장에서 보자면 클라라의 슬픔은 부전승 같은 거다. 그러나 위나에게는 기권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이슬란드 감독이 만든 이 영화가 한국에서 리메이크 된다면 어떨까 잠시 상상해본다. 젊은 연인들의 양다리 서사, 그리고 죽음. 남겨진 두 여자. 작정하면 아주 매운 막장드라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빛이 산산이 부서지면>은 막장드라마가 될 타이밍 조차 놓친, 애매한 감정선을 끝까지 끌고가는 작품이다. 관객으로서는 위나의 편을 쉽게 들어주기 어려운데, 그렇다고해서 그를 욕하거나 단죄할 수도 없다. 이게 다 아이슬란드의 볕 좋고, 물 좋고, 산 좋은 극 중 환경이 자아내는 이상한 착시 같은 거라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
|
|
|
08.
<메소드연기 Method Acting>
이기혁 연출ㅣ이동휘, 강찬희, 윤경호, 김금순, 윤병희, 공민정 출연ㅣ92분
배우 이동휘가 <범죄도시 4>로 천만 관객을 만난지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천만명이나 그의 얼굴을 안다는 뜻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본체와 같은 이름으로, 같은 직업을 가지고 영화 <메소드연기>에 등장했다. <메소드연기> 속 이동휘는 외계인 연기를 한 작품이 대표작이지만 더이상 외계인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인물이다. '불호'의 영역은 명확하지만, 연기자로서 뚜렷한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사에 협조적인 편도 아니어서 일이 끊긴다. 그러다 사극 시리즈의 왕 캐릭터로, 어렵사리 차기작이 정해진다. 이제 연기만 잘 하면 된다.
<메소드연기>를 보는 내내 고현정이 MBC <선덕여왕>을 두고 "저는 원래 25회에서 죽는 거였어요" 라고 회고하던 게 떠올랐다. 62부작의 장편 대하드라마에서 제작진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고현정의 '미실'을 본체의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 살려두었다. 그는 50회가 되어서야 죽음을 맞이하는데, 제작진은 미실을 너무나 사랑했던 충성 시청자층이 그 즉시 채널을 이탈하는 걸 감수 해야만 했다. 중요한 건 하기 싫은 순간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그 시절의 고현정이 끝까지 미실을 멋지게 연기해냈다는 점이다. 개연성이 하나도 없는 각본 때문에 도저히 이 캐릭터를 몰입해서 연기하지 못하겠다는 <메소드연기>의 이동휘를 향해 누군가가 말한다. 임금님인 외계인이든 외계인인 임금님이든 뭐든 하라고. 못할 건 없다고. 그러는동안 왕인 줄 알았는데 실은 외계인이었던 아버지를 알현하는 역할은 잘 나가는 젊은 남성 배우 '정태민'의 몫인데, SF9 출신의 배우 강찬희가 이 배역을 선택한 점에서도 의외성이 돋보인다.
|
|
|
월요일에는 대중문화를 큐레이션 하고
목요일에는 못다 한 이야기를 보냅니다.
지금까지 5,718분의 구독자와 함께하고 있어요.
COPYRIGHT © CONTENTSLOG. ALL RIGHTS RESERVED.
|
|
|
|